소설리스트

243화 (243/360)

#243 이제야 세상이 뭔가 변하는 것 같구나

버지니아 월링턴.

총사령관의 파격적인 진급 소식이 특수 작전 행정부에 가장 먼저 전해졌다.

“진짜 총사령관님이 중장이라고!?”

“어제 대통령이 임명했지 말입니다.”

“와아. 미쳤네, 진짜!”

“오늘 회식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자신들을 직접 차출한 게 총사령관.

그게 뭐라고 영광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행정병들이라 기쁨이 남달랐다.

덩달아 오늘은 일을 대충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행정실 중대장이 문 앞에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자꾸 중대장 실망시킬래. 어? 너희들이 뭘 했다고 회식이야?”

“...... 죄, 죄송합니다.”

행정병들이 고개를 숙이며 머리를 긁적거린다. 이윽고 중대장이 헛기침하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7시까지 일 끝내고, 식당으로 모일 수 있도록. 간단하게 목이라도 축이자!”

“역쉬!”

행정실에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앤드류 카네기와 JP 모건은 구석에서 쑥덕거리고 있었다. 모건의 입에선 탄성이 쉼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어떻게 된 인간이 점점 손에 닿지 않을 만큼 멀어지냐.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이 정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 그만큼 독특한 캐릭터라는 거지. 지금 가진 것도 엄청난데, 미래를 생각해 봐.

나이도 젊고, 재산도 많고. 개인 전투 능력에 부하들도 하나같이 괴물들이다.

남들은 하나도 갖기 힘든 걸 막스는 전부 손에 쥐고 있었다.

- 딱 하나. 동양인이라는 게 걸렸는데. 지금은 그것도 의미가 없어졌어.

- 맞는 말이야. 한계가 무너졌지.

모건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카네기는 결심을 굳힌 듯 말했다.

- 일전에 막스가 말한 철강 사업. 난 그걸 해 볼 생각이야. 나한테 그냥 던진 말은 아닐 테니까.

- 그 인간이 대충 던지는 스타일은 아니지. 보면 사업 보는 안목도 장난 아니야. 아무튼, 우리가 빠르게 성공하려면 막스를 붙잡아야 해.

전쟁 이후의 청사진 속엔 반드시 막스를 집어넣어야 했다. 그게 이용이든 협조든. 막스는 자신들의 미래를 위한 최고의 카드였다.

모건과 카네기가 수군거릴 때, 코닐 헤리스는 책상에 앉아 서류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가장 기뻐해야 할 사람이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황야에서 우연히 만난 동양인이 삼성 장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생각할수록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물론 시기와 질투는 아니다. 막스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절절히 깨달은 게 우울함의 원인이었다.

‘막스를 못 만났으면, 우리 가족들은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버지는 리븐워스의 평범한 대장간에서 일했을 거고, 변변치 않은 급여에 삶은 쪼들리고 팍팍해서 대학 따윈 꿈도 못 꿨을 것이다.

행정병으로 근무하면서 코닐은 여기에 모인 자들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집안이 엄청나거나, 개인 능력이 특별하거나.

반면, 특출나지 않은 자신이 이곳에 있는 건 오로지 막스 때문이었다.

‘새들과 섞인다고, 닭이 하늘을 날 수 있을까.’

막스의 역사적인 진급으로 코닐은 되려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행정실 옆 사무실 국립 탐정 경찰국.

케이트가 책상에 앉아있는 피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오늘 같은 날 안 쏘냐?”

피치는 입을 다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지만 말과 달리 입은 귓가에 걸리고, 눈은 반달을 그리고 있었다.

“뭘 그렇게 참고 있어. 좋으면 소리치면 되지. 아무튼, 사랑하는 남자가 승진, 아니 역사에 길이 남을 삼성 장군이 됐는데 그냥 넘어갈 거야?”

“...... 남자친구? 어, 그럼 한 번 쏴야 하나.”

피치는 케이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우리 케이트, 뭐가 먹고 싶니? 오늘 같은 날 언니가 안 사주면 언제 사주겠어.”

“언니, 그 약속 지켜야 해요.”

“여우 같은 뇬.”

기다렸다는 듯이 케이트는 부하들을 소집시켰다.

“가서 캠프 팔로워들이 파는 물건들 싹싹 긁어 와.”

“먹을 것만 되지 말입니다?”

“얘는 한술 더 뜨네. 당연히 먹을 것만 사야지! 양심이 없네, 양심이.”

그날 월링턴에서 조촐한 파티가 벌어졌다.

모닥불이 피워지고, 자연스레 경찰국과 특수 작전 행정실이 함께 어울리게 됐다.

“코닐이 술 먹는 모습도 다 보고. 세월 많이 흘렀네.”

피치가 웃으며 코닐 옆에 앉았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행정 장교들이 흠칫하며 멀어졌다.

한때 미모에 홀려 흑심을 품은 자도 있었지만, 상대는 경찰국 국장 터커가 가장 어려워하는 여인. 특수부대 일원이자 세븐 스트롱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관

심 자체를 끊어버렸다.

코닐이 주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총사령관님은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아무 연고도 없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연고가 왜 없어. 네 가족이 연고지. 그동안 많이 도와줬잖아.”

피치가 웃으며 말하자, 코닐의 얼굴이 붉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껏 도움만 받았지, 도움을 준 적은 없어요.”

“얘가 갑자기 자기 성찰 모드네.”

시무룩한 코닐을 보며 피치는 고개를 저었다.

“총사령관이 그랬어. 황야에서 너희 가족을 만난 게 행운의 시작이었다고. 매번 혹한기 때마다 한 얘긴데. 정작 너 있었을 땐 안 했구나.”

폭력의 시대. 인종차별이 극심한 시대에 황량한 사막에서 만난 동양인을 받아 줄 백인 가족들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코닐은 그것 또한 우연으로 치부했다.

“도움이 되고 싶은데, 제가 능력이 변변치 않네요. 여기 와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막스가 자신을 여기로 보낸 이유야 빤하다.

그들과 견줄 만큼 능력을 갖추란 소리였다.

“코닐. 너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구나. 나도 항상 내 동생이 잘 됐으면 싶거든. 근데 그게 아니어도 내 동생이라는 건 변함없어. 가족이란 그런 거야.”

“...... 가족.”

“쳇. 오히려 네가 거리를 뒀네? 우리 총사령관 많이 외로웠겠는데···.”

피치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코닐을 동생처럼 여겼는데, 정작 본인은 막스를 타인 취급했다니.

피치는 조금 속이 상했다.

“그, 그건 절대 아니에요. 그냥 내가 좀 한심해 보여서 그랬어요.”

“그런 생각 자체가 거리를 두는 거야. 난 네가 좀 더 편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하나 더 충고해주면.”

코닐이 귀를 쫑긋 세우며 피치를 쳐다봤다.

그녀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춰서 얘기했다.

“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총사령관 눈에 안 찰 거야. 그러니까 마음 편히 먹어.”

“...... 참 위로가 되네요.”

“그치? 마음을 내려놓으면 그렇게 편하다?”

“보면, 둘이 엄청 잘 어울려요. 피치도 얼른 제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어머, 어머. 코닐 얘 말하는 것 좀 봐. 뭐 더 먹고 싶은 거 있니? 이 누나가 다 사줄게.”

입이 귀에 걸린 피치가 호들갑을 떨던 때.

JP 모건이 불쑥 끼어들었다.

“말씀 중 실례하겠습니다. 코닐 이병. 총사령관님과 이전부터 알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된 거지?”

“어. 그게···.”

“다들 궁금해하니까, 나와서 말해 봐.”

“예에?”

‘이게 무슨.’

코닐은 사수인 모건의 손에 끌려 땔감이 쌓인 곳에 올라섰다. 피치는 반달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타닥, 타닥.

갑자기 나무 타는 소리만 들려오고 주변이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입으로 뭔가를 오물거리며 코닐이 말하기만을 기다렸다.

동양인으로서 연방 군인들의 정점에 오른 남자. 그의 과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있나.

‘눈빛들 진짜 부담스럽네.’

살면서 이토록 관심받았던 적이 있었던가.

코닐은 무대에 올라선 주인공의 심정으로 말을 이었다.

“음. 처음 만남은 아마 오레곤 트레일과 조금 떨어진 유타 남부였을 거에요. 당시 인디언들이 우리 가족을 습격했는데···.”

예전 추억을 떠올리던 코닐. 말하던 중 몇 번이나 가슴 한구석이 울컥했다.

막스가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왔는지.

이방인으로서 지금 자리에 오르기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도.

캠프 추종자들이 파는 술들이라 봐야 목만 축이는 정도. 사람들은 총사령관의 말도 안 되는 무용담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날 월링턴에선 밤늦게까지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총사령관이 있는 버지니아 매나사스.

월링턴보다 하루 늦게 진급 소식이 전해졌다.

“로어! 우리 파티 벌여야 하는 거 아냐!?”

“보스가 중장이야, 중장이라고! 이런 날 그냥 지나칠 수 있어!?!”

“먹고 죽즈아아아!”

대원들의 말에 네이선 로어는 개소리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보스가 정식 총사령관에 별 세 개까지 달았다. 이럴 때일수록 책잡힐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거야.”

“..... 듣고 보니 그러네.”

“하긴, 사방이 적이긴 하겠다.”

“흠. 사소한 실수라도 걸고넘어지겠네, 진짜.”

우연히 밖에서 듣고 있던 막스.

자신을 생각해주는 부하들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들어가서 무슨 말이라도 해줄까 하다 발걸음을 되돌렸다.

‘파티는 나중에 제대로 하자.’

시기는 당연히 전쟁이 끝나야 할 거고.

장소는 알래스카가 좋을 것 같다.

혹한기 훈련이 끝나고,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주변에 널린 얼음을 대충 컵에 담아 위스키를 부어 마시면.

‘크.’

상상만 해도 취하는 기분이다.

막스는 집무실로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파격적인 진급의 여파로, 며칠 동안 막스 집무실엔 고위 장교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각지에서 날아온 축하 편지들도 수북이 쌓여갔다.

막스는 기다리던 편지라도 있는지, 뒤적거리다 이내 팔짱을 끼며 천장을 쳐다봤다.

‘노벨이 답장을 안 하네.’

*

테네시주 야스퍼.

하루 행군을 끝내고 채터누가를 코앞에 두고 서부 군대가 야영을 준비했다.

천막 지휘소에 소집된 장군들은 이번 진급을 두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솔직히 좀 아쉽군요. 장군께서 총사령관이 되길 내심 기대했는데 말입니다.”

“그러게요. 빅스버그를 점령한 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과거 서부 사령부 시절에도 막스는 임시직에 머물러 있었다.

장군들은 이번에도 적당한 후임자가 오면 막스가 총사령관직을 내려놓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리고 그 후임자로 율리시스 그랜트로 여기고 있었는데, 보기 좋게 기대가 무너졌다.

막스와 그랜트의 관계를 알았다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생각들이었다.

“장군들의 실망스러운 표정을 보니, 전 그게 더 실망스럽군요.”

율리시스 그랜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갔다.

“빅스버그? 그 작전 구상이 누구의 머릿속에 나왔다고 생각합니까? 서부 전선이 지금껏 승리를 이어간 건 총사령관이 닦아 놓은 길을 따라간 것이요, 연전연패를 거듭했

던 동부 전선이 승기를 잡은 것도 총사령관 덕분입니다.”

“......”

‘대체 이 자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는 건가.’

갑자기 짜증이 치민 그랜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런 뒤 말을 이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총사령관과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전쟁터를 누빈 걸 평생의 영광으로 여길 겁니다. 그러니 내 앞에서 그런 말들은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장군들이 머쓱한 표정을 짓자, 분위기 전환 겸 그랜트가 물었다.

“그나저나, 지금 셔먼 장군의 위치가 어디인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미시시피 중부.

말을 타고 달려온 연락병이 내리자마자 소리쳤다.

“셔먼 장군님! 긴급 소식입니다!”

“혹시, 로버트 리가 죽었나?!”

“..... 아뇨. 막스 조 초, 총사령관님이 정식으로 임명되고, 중장으로 진급하셨습니다.”

“중장?!?”

눈이 커진 윌리엄 테쿰세 셔먼은 이내 웃음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이제야 세상이 뭔가 변하는 것 같구나! 이런 날 그냥 있으면 되나. 오늘 작품하나 만들고 가야겠다!”

남부 연합의 보급 철도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셔먼은 보이는 족족 철로를 파괴했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철로로 예술작품을 만들 생각이었다.

병사들이 온갖 작업 도구를 이용해 철로를 뜯고 자르고 파내고. 철을 녹여 휘어지게 했다.

그리고 나무에 철로를 엮어 일명 ‘셔먼의 넥타이’를 완성했다.

‘음. 뭔가 아쉽지만, 생각보다 멋지군.’

막스 조 중장을 위한 트로피 같은 느낌적인 느낌. 셔먼은 아름다운 예술품을 보듯 한동안 감상에 젖어 있었다.

원 역사대로라면 조지아주에서 시작해야 할 셔먼의 광기가 조금 일찍 드러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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