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 최후의 전투(1)
“나는 펜보다 총이야.”
막스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마크 트웨인은 왜 아까운 재능을 썩히냐며 귀찮게 굴었다.
스토우 부인도 전쟁 끝나면 같이 글을 써보자고 권유할 정도였다.
간단한 식사가 끝나고, 더글라스가 이곳에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그냥 있어도 무언가 잔뜩 화가 나 있는 얼굴이 더욱 진지해 보였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는 총사령관 얼굴만 보려고 온 건 아닙니다.”
“하실 말씀 있으면 편하게 하세요.”
“음. 노예 해방 선언에 이어 동양인인 당신께서 총사령관이 된 건 분명 기뻐할 일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뭔가 허탈한 기분도 듭니다.”
흑인들은 목수, 군종, 요리사, 경비원, 노동자, 간호사, 정찰병, 첩보원 등으로 군에 헌신하고 있지만 그중 장교는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더글라스는 단 한 명뿐인 동양인이 총사령관에 오른 것과 비교하며 차별을 역설했다.
“최근 볼티모어에선 흑인이 장교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공격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만약 천 명의 장교 중 백 명이 흑인이었다면 이런 일이 생길까요? 특이하고 불편한 시
선이 사라지려면 그걸 평범함으로 바꿔야지 않겠습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시간을 기다리기보단 행동이 더 빠른 결과를 가져오는 법입니다. 움직임이 없으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요.”
더글라스의 말에 날이 서 있다.
총사령관이 직접 흑인들을 장교로 임명하라는 압박이었다.
‘이건 아니지.’
불편함을 느낀 마크 트웨인과 스토우 부인은 불편한 듯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얼마 남지 않은 음식만 응시했다.
잠시 고민하던 막스가 이내 입을 뗐다.
“갑자기 이런 연설이 기억나는군요. 지금 필요한 것은 불빛이 아니라 불길이다. 우리에겐 폭풍이, 회오리바람이, 지진이 필요하다. 이런 나라의 감정이 솟구쳐 올라와야,
이 나라의 양심이 눈을 뜬다.”
후대에 명연설로 손꼽히는, 10년 전 더글라스가 뉴욕에서 한 연설의 한 토막.
막스의 입에서 그것들이 흘러나오자 더글라스의 눈이 커졌다.
막스는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말하는 그 불길과 폭풍이 치는 시기가 바로 지금입니다. 대통령께서 노예 해방을 선언하고, 전쟁의 목적을 분명히 했지요. 그리고 저는 최전선에서 그걸 행동으
로 옮기고 있습니다.”
“......”
“백인은 13달러, 흑인 병사는 7달러를 지급하기로 한 원안에서 현재는 동등하게 하는 것으로 수정됐습니다. 또한 흑인들이 정식 입대한 건 채 일 년이 되지 않았는데, 장
교라니요? 숫자를 채우기 위해 아무나 장교로 만들 순 없지 않습니까.”
막스는 담담히 더글라스를 응시했다.
“갈 길은 멀지만, 여러분들의 노력으로 흑인들의 처우는 분명 개선되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2년 전 연방 정부에서 인구 조사를 했더군요. 거기엔 인종을 세 가지로 분
류했습니다.”
백인, 흑인, 혼혈. 정부는 이 세 가지로 미국에 거주하는 모든 인종을 분류했다.
“저는 혼혈에 속합니다. 인디언, 히스패닉과 같은 분류죠. 결국 백인들의 시각으론 다 똑같아 보인다는 건데, 더글라스 당신은 어떻습니까? 일단 저는 백인, 흑인, 히스패
닉에게 두루두루 차별을 경험해 봤습니다.”
감히 총사령관을 차별한다고?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처음부터 계급장 달고 태어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더욱이 이 땅에 사는 동양인으로서 어떤 대우를 받았을지는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제 바람이 있다면, 굳이 흑인뿐 아니라 모든 대상을 포괄적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인권에는 순서가 없거든요.”
흑인 다음은 여성, 아이, 히스패닉, 동양인.
마지막까지 인디언의 차례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럼 그때까지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원 역사에서 인디언은 남북전쟁 기간 내내 투쟁을 이어간다. 연방은 군자금과 대륙횡단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인디언의 영토를 침략하고 빼앗고, 약속을 뭉개버린다.
덫 사냥꾼으로 서부의 전설적인 키트 카슨은 이 기간 내내 인디언과 전투를 벌였다.
콜로라도에선 우테, 나바호, 아라파호의 부족이 학살당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하지만 막스가 그 모든 사건을 삭제시켰다.
인디언은 캔자스와 콜로라도를 지켰고, 대륙횡단 철도를 지연시켜 영토 분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건 존 브라운 대통령이 막스와 뜻을 같이했기 때문이었다. 내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존 브라운은 흔들리는 연방 경제를 지탱하려 무리하게 인디언의 땅을 갈취하
지 않았다.
프레드릭 더글라스는 과연 막스에게 행동하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
사회운동가들이 돌아가고 며칠 뒤.
1864년 새해가 밝았다.
1월 1일부로 노예 해방 선언이 정식으로 공표되고, 수정헌법 13조를 통과시키기 위한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한편으론 지금껏 잘 눌러왔던 문제들이 여기저기 불거졌다.
존 브라운의 재선이 다가오고, 자금 상황이 어려워지자 재무장관과 의원들이 인디언에 관한 기조를 바꾸려 했다. 이유는 역시 경제였다.
- 이대로면 연방도 남부처럼 경제가 붕괴할 겁니다! 그깟 인디언들이 전쟁 승리보다 값지단 말입니까?
휘청이는 경제. 3년을 끌어온 전쟁의 피로감.
재선으로 술렁이던 정치판은 그 어떤 흠이라도 끄집어내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나마 연방은 사정이 나았다.
남부는 모든 수치가 바닥을 쳐 집집마다 곡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전쟁을 종식시켜야 할 이유가 계속해서 늘어났다.
한 달 전, 콜로라도 준투 요새.
인부들이 수백 개가 쌓인 상자들을 마차에 싣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발을 삐걱했다.
살집이 붙어 더욱 거대해진 알프레도가 놀라 소리쳤다.
“야! 그거 놓치면 우리 다 죽는 거라고 내가 몇 번 말했니! 어? 그거 포탄하고 화약이라고!”
“...... 미, 미안.”
중국인 양옌은 식겁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콜로라도에서 세탁과 잡일을 하던 그는 차홍과 결혼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돈을 모으고 있었다. 물론 차홍은 전혀 관심
을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이상한 게, 넘어오나 싶으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최근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차홍은 막스를 마음에 두고 있다.
서부 사령관, 총사령관, 그리고 삼성 장군이 된 뒤론 아예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미친년 정신 차려!’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랑하는 여인에게 상처를 줄 수야 있나.
양옌이 바라는 게 있다면, 하루빨리 막스가 피치와 맺어지는 것. 해서 아침저녁으로 둘의 결혼을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수십 명이 달라붙어 짐을 운반하는 일은 금방 끝이 났다. 짐이 마차에 실린 걸 확인한 키트 카슨 준장이 마부와 부대원들에게 소리쳤다.
“자, 그럼 동쪽으로 출발해 볼까!”
“조심히 가세요. 마차 흔들려서 폭발하면 큰일 납니다.”
‘...... 마차가 안 흔들릴 수가 있나?’
말 채찍을 후려치려던 마부들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런데 이미 누군가는 말을 후려쳐 히잉하며 마차가 출발했다.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물론 그 정도의 충격으로 터지진 않았다.
안전하게 몇 겹으로 포장은 해두어, 마차가 뒤집힐 정도가 아니면 괜찮았다.
콜로라도 마차들이 동쪽으로 향한 지 한 달.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스미스앤 웨슨 공장 창고에서도 정체불명의 무기들이 마차에 옮겨졌다.
“워싱턴으로 보내야 할 물건들이다. 기차 시간이 될 때까지 서둘러야 할 거야!”
인부 대여섯이 달려들어 천막으로 감싼 묵직한 쇳덩이를 마차에 옮겨 실었다.
바닥에 놓을 땐 쿵 소리가 나며 내려앉을 듯 바퀴가 삐걱거렸다.
먼저 실린 마차가 기차역으로 향하고, 나머지 작업을 끝내자 총 60여 개를 역으로 보낼 수 있었다.
“스미스, 진짜 직접 갈 생각이에요?”
“이때가 아니면 언제 보겠어. 대체 이딴 물건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라고.”
명색이 무기 전문가라면 전쟁터에 한 번쯤은 가야지 않겠는가. 호레이스 스미스의 나이도 어느덧 56세. 죽기 전 마지막으로 전투를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부디 몸 조심히 하시고. 총사령관 옆에 찰싹 붙어 있으세요.”
“알았어, 알았어.”
스미스는 동업자 대니얼 웨슨에게 회사를 맡기고 무기들과 함께 기차에 올랐다.
같은 시작 뉴욕 맨해튼의 남부 해안가.
막스가 세운 의류 공장에서 만든 물건들이 항구에서 배로 선적되었다.
인부들이 무거운 짐을 운반하며 투덜거렸다.
“대체 뭐에 쓰는 물건인데, 이렇게 많아.”
“졸라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
“어떻게, 끝나고 술 한잔 콜?”
“콜!”
“어이, 로지. 개소리 말고 짐이나 날라!”
척 피치가 소리치자 인부들은 다시금 작업에 열중했다.
이들은 데드레빗의 갱단원들.
그중 피치가에 속한 자들로, 뉴욕 갱단들이 대부분 박살나고 와해 된 뒤로 줄곧 의류와 공산품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테디우스 대령. 매나사스로 가거든, 이것 좀 전해주시오.”
190이 넘는 거구의 레드 피치가 짐꾸러미를 잔뜩 내밀었다.
이를 받은 테디우스 로우가 눈을 껌뻑거렸다. 그는 막스 공장에서 부인과 함께 겨울 동안 소형 열기구를 만들고, 이제 막 완성품을 매나사스로 가져가려던 참이었다.
“이게 뭡니까?”
“우리 사···. 아니 총사령관님에게 줄 음식들인데. 이게 또 총사령관 사랑은 장모 아니겠습니까.”
레드 피치가 껄껄거리는 소리가 배 곳곳에 울려 퍼졌다.
총사령관 사랑이 장모? 고개를 갸웃거리던 테디우스는 일단 선물을 챙겨두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총사령관 물건이면, 소중히 가져가야 했다.
“아무쪼록, 가거든 내가 많이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주시오, 테디우스 대령.”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쯤 되니 월링턴에 있다는 딸, 에밀리에 파운 피치가 누구인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아무튼, 이날 테디우스 로우는 이백 명에 달하는 우락부락한 갱단들의 배웅 속에 워싱턴으로 떠날 수 있었다.
콜로라도 준투, 피츠버그, 뉴욕에서 출발한 물건들이 배달되기까지 두 달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그사이 미시시피주에 이어 앨라배마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진격하던 셔먼에게 커다란 장애물이 나타났다.
그는 너덜너덜해준 부하들의 시체를 보며 분노를 터트렸다.
“이런 개자식들! 이런 무지막지한 무기를 만들다니!”
경제가 폭망하는 와중에도 남부 연합은 무기 개발에도 많은 투자를 강행했다.
그중, 가브리엘 제이 레인즈 중령이 만들어낸 무기가 있었는데, 바로 지뢰였다.
크림 전쟁 당시 함선을 격침하기 위해 만든 기뢰에서 착안해, 레인즈는 세계 최초로 어뢰와 지뢰를 만드는 기염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 결과 미시시피주와 앨라배마에 집중적으로 매설해 셔먼을 괴롭혔다.
당시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셔먼에게 막스는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 지뢰는 밟으면 터집니다. 소든 닭이든 동물들을 앞세우세요, 셔먼 장군.
“전군 주목! 지금부터 주변에 있는 동물이란 동물은 전부 끌고 온다, 실시!”
“실시!”
그렇게 군인들은 진군을 멈춘 채 하루 동안 동물을 닥치는 대로 긁어모았다.
그날 저녁. 결과물을 확인하던 셔먼의 얼굴이 굳어졌다.
“..... 뱀 어떤 놈이야.”
그날 뱀들은 병사들의 위장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날 셔먼은 소와 염소, 닭을 앞세워 동쪽으로 분노의 진군을 시작했다.
“밀알 한 톨 남기지 말고 짓밟고, 불 지르고 때려 부숴라!”
미시시피주는 연습에 불과하다.
앨라배마에서부터 셔먼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자리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철도와 대형건물, 목장, 면화밭까지 남부의 전쟁 수행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파괴했다.
셔먼의 넥타이는 갈수록 진화해 진정한 예술품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1864년 3월.
마침내 셔먼이 조지아주로 진입. 더 많은 병사를 이끌고 주도인 애틀랜타에 도착했다.
콰아앙!
도시 전역에 포격과 방화, 약탈이 이루어졌다.
거대한 불길이 목조 건물들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마차 한 대가 간신히 불바다를 탈출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
입술을 앙다문 미모의 여인,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스칼렛은 새로운 희망을 찾아 마차를 질주했다.
집단 패닉에 이어 남부에 증오와 분노가 들끓는다.
정치인과 언론인들은 잔인한 전쟁광, 명예도 영광도 없는 미치광이라며 셔먼을 공격했다.
장생불사할 정도로 욕을 쳐들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당당했다.
- 전쟁의 영광은 헛소리다! 봐라, 전쟁은 이처럼 지옥이다. 그리고 잔혹하다. 그렇다고 이걸 하지 말아야 하나? 아니, 난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더욱 잔인해질 것이다!
남부인들은 셔먼의 무차별 포격과 초토화를 보고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셔먼이 남부의 시선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때, 율리시스 그랜트는 조지아주에서 노스캐롤라이나로 향하는 대장정을 끝내고 마침내 버지니아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막스는 뉴욕과 피츠버그, 콜로라도에서 가져온 무기를 만지작거리며 그랜트가 합류하길 기다렸다.
‘최후의 전투가 코앞이다.’
연방 대선까지 버틸 수 있으면 버텨보라.
지금껏 보지 못한 화력을 보여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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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남북전쟁 마지막이 쉽지 않네요.
속도감을 높여봤습니다만, 글이 산만해진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