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6화 (246/360)

#246 최후의 전투(2)

북부와 남부의 일부 의원들은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해 물밑 협상을 꾸준히 시도해왔다.

서로 밀사를 파견하고 평화회담을 추진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연방이 내건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무기를 내려놓고 남부의 모든 주에서 노예제를 폐지할 것.

연방이라는 국가권력에 복종할 것.

또한 문제가 남아있는 경우 입법 회의와 법원 및 투표를 통해 합법적 경로로만 해결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남부의 요구는 주 헌법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연방의 개입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결국 노예제를 하든 말든, 주에서 결정한다는 게 핵심이고, 이런 기조는 게티즈버그 패배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 연방의 태도가 돌변했다.

- 조건 없는 항복만 받아들인다.

연방은 율리시스 그랜트가 했던 ‘무조건 항복’만을 요구했다. 그 외 모든 협상을 거부했다.

사실상 평화회담은 물 건너간 것이었다.

*

버지니아 리치먼드 남부 연합 수도.

각료들의 회의가 열렸다.

부통령 알렉산더 스티븐스가 비관적인 말을 내뱉었다.

“결국 3년간의 전쟁으로 우리가 얻은 건 피폐한 국민과 황폐화한 영토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선택은 하나뿐입니다.”

링컨의 친구이자 1840년대 휘그당의 정치적 동맹자, 알렉산더 스티븐스는 줄곧 연방과의 협상을 주장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이번에도 반발을 불러왔다.

“그래서 무조건 항복하란 말이오?”

“존 브라운은 이미 노예 해방까지 선언했습니다. 이대로 항복하면 남부는 끝장난 거라고 봐야지요.”

이미 모든 게 끝장난 것 같은데, 뭘 더 본단 말인가.

사실상 반대파들이 노리는 건 올해 실시되는 대선이다. 그들은 공화당이 몰락하고 민주당이 정권을 장악하길 원했다.

그리고 이는 꽤 현실성이 있었다.

남과 북 모두 전쟁으로 지쳐있는 상황.

승기를 잡은 존 브라운이지만 민심이 우호적이지는 않다.

전쟁을 막지 못한 책임, 전력이 우세함에도 3년이나 전쟁을 끌어온 무능함.

이와 맞물려 노예 해방선언은 노예제를 옹호하는 국민까지도 등을 돌리게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존 브라운과 공화당을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으로 만들면 되겠습니까? 고작해야 몇 개월입니다. 우린 그때까지 버티면 됩니다!”

“맞습니다! 협상하더라도 다음 정권과 하는 게 지금보단 유리하겠죠!”

그러다 존 브라운이 다시 재선에 성공하면?

혹은 더욱 급진적인 인물이 당선된다면?

‘이런 상황에도 남부의 운명을 두고 도박을 벌이다니.’

스티븐스와 그 동조자들은 의원들을 설득하는 대신 대통령을 찾아갔다.

- 항복이라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소리요? 아직 우린 싸울 여력이 있소.

- ......

하긴, 따지고 보면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다.

잘못된 군사 전략, 지휘관으로 친구를 기용, 국내 위기에 대한 무관심.

이런 무능력한 지도자는 지금도 로버트 리 장군과 전쟁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으니.

‘과연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구나.’

전쟁을 끝내려 한 의원들은 현실을 개탄하며 남부의 미래를 비관했다.

*

연방 대선이 끝날 때까지 버티겠다는 남부의 전략과 달리, 연방의 정치판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가장 큰 변화는 공화당의 분열이다.

애초에 당론으로 채택했던 대륙횡단철도, 홈스테드 법안이 틀어지고 지연되자 급진 공화당원들은 대통령을 공격했다.

더욱이 그들은 대통령이 이번 재선에 실패할 거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존 브라운이 이런 고민을 막스에게 털어놨다.

- 이대로는 당내 경선조차 승리를 장담할 수 없네. 그들이 내세우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가 했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이네.

여기에 대한 막스의 대답은 간단했다.

- 새로운 당을 만드세요.

매번 반대만 일삼는 급진 당원들을 걸러내고, 뜻이 맞는 자들만 추려 창당한다.

막스가 가장 바라던 바였다.

통상 전당대회는 늦어도 6월 안에 열리게 된다. 이때 경선을 치르고, 대통령 후보와 런닝메이트가 정해진다.

존 브라운과 링컨은 측근들과 의논 끝에 창당을 결심했다.

스케쥴은 즉시 막스에게 전해졌다.

- 5월 21일, 당을 창설하고 6월 2일 컨벤션에 모여 전당대회를 개최할 것이네.

막스는 이 날짜를 토대로 공격 일자를 확정했다.

- 그럼 5월 25일. 총공세를 시작하겠습니다.

전쟁과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상황에 따라 노선을 갈아타는 박쥐들.

그들을 걸러내기 위해, 막스는 정당이 완성된 뒤 총공세를 가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앞으로 5년이 편할 테니까.

총공세 날짜가 월링턴에 있는 피치에게도 전해졌다.

피치는 리치먼드에서 활동하는 비방디에르 엘리자베스 반 루와 정보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녀는 리치먼드의 악명높은 수용소 리비 감옥의 죄수들과 내통했는데, 맥클레란의 페닌슐라 작전 당시 붙잡힌 북군 장교들이었다.

엘리자베스 반 루는 리치먼드 전체를 아우르는 비방디에르 수장이 되어 내부 정보를 빼돌리고, 심지어 탈출에 필요한 장비까지 제공했다.

리비 감옥에 있던 죄수들은 탈옥을 위해 땅굴을 파기 시작하고, 탈출을 시도하려 했다.

그런데 피치의 지시를 받은 엘리자베스 반 루가 뜻밖의 말을 전달했다.

- 여러분, 조금만 참고 기다리세요.

- ......

원 역사에선 탈출한 절반이 물에 빠져 죽거나 남군 병사에게 잡혀 사살당한다.

쥐 지옥이라 불릴 만큼 열악한 환경.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

탈옥밖에 답이 없었지만, 그들은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1864년 5월 2일.

막스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발신인은 존 브라운, 그런데 예상 밖의 내용물이 담겨 있었다.

[국민연합당 입당 신청서]

‘나보고 당원이 되라고?’

전쟁을 승리로 끝낸 총사령관이라면 몸값은 천정부지로 솟구칠 터. 그 유효기간은 적어도 대선 기간 내내 이어질 것이다.

‘존 브라운은 아마 이걸 바랬겠지.’

그것과는 별개로 막스는 책상에 신청서를 올려두고, 팔짱을 낀 채 한참을 노려봤다.

어차피 정치에는 뜻이 없다.

다만 당원이 되면 무슨 이득이 있을지.

사업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를 고민했다.

5월 21일.

메릴랜드 볼티모어에서 국민연합당이라는 정당이 탄생했다. 핵심 구성원들은 공화당, 통합당, 전쟁민주당의 당원들로 존 브라운과 뜻을 같이하는 자들이었다.

그 외에 막스를 찾아왔던 사회운동가들도 대거 입당했다.

막스 대신 참석한 콜린은 당원 명부를 확보하고, 이를 막스에게 건네줬다.

“예전 공화당 창당 때랑은 비교도 안 되더만. 유명인사들은 죄다 모였더라고.”

“그건 콜린이 그만큼 인맥도 넓고 아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증거죠.”

“그래서 그런가. 하긴, 워싱턴에 있으면서 보고 들은 게 많아지긴 했지.”

콜린이 시가를 내뿜으며 낄낄거릴 때, 명부를 훑어보던 막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앤드류 존슨.’

원 역사에서 링컨의 러닝메이트로, 암살당한 링컨 대신 대통령직을 맡은 인물.

테네시주 출신으로 노예를 소유했고, 노예제를 찬성한 백인우월주의자에 민주당 소속 의원.

링컨은 전후 복구를 위해 나름 탕평인사를 한 셈이었는데, 이는 완벽한 자충수였다.

앤드류 존슨은 전쟁의 결과물로 어렵게 만들어 놓은 흑인들의 권리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리고 남부에는 유화정책을 펼쳐 최악의 대통령으로 손에 꼽히는 인물이었다.

‘탕평책은 얼어 죽을. 이 자가 대통령 될 일은 없겠지만, 싹을 잘라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막스는 명부의 인원을 다시금 살펴봤다.

로렌스 인사들과 율리시스 그랜트를 포함, 연방 장군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었다.

‘이중 누가 러닝메이트로 좋을까.’

한편, 국민연합당 창당식과 동시에, 공화당과 민주당에서도 대선을 위한 대규모 행사가 열렸다.

그들은 존 브라운의 신당 창설을 비난하고,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며 깎아내렸다.

어제의 동지가 이제는 적이 되어 존 브라운을 끌어 내리려 비난을 퍼부었다.

박쥐들은 완벽하게 걸러진 듯했다.

그리고 며칠 뒤인 5월 25일 새벽.

북군의 총공세가 시작되었다.

*

남군은 리치먼드 주변의 능선이란 능선은 죄다 이용해 방어선을 구축했다.

게티즈버그에서 당한 걸 그대로 되돌려주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막스는 보란 듯이 방어선을 무너트렸다.

해를 등지고, 하늘 높이 열기구가 솟아오른다.

수십 개의 열기구는 이내 남군 진영을 향해 날아왔다.

위이이이잉.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자, 놀란 남군 장교들이 병사들을 집합시켰다.

잠이 달아난 장교가 소리쳤다.

“저것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떨어트려라!”

그런데 생각보다 높고 거리도 멀다.

더욱이 북군이 밀집 포병으로 남군을 향해 집중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콰아앙!

남군 진영에 포탄이 떨어지고, 참호 안에 있던 병사들은 하늘을 향해 총을 쏘아댄다.

동시에 뭔가를 잔뜩 진 북군 보병들이 거리를 좁히며 전진했다. 뒤늦게 남군의 포병이 대응 포격을 가할 즈음.

“이곳에 무기를 설치하라!”

누군가는 즉시 땅부터 파기 시작하고, 나머지는 가져온 파츠들을 땅에 펼쳐놓았다.

머리통이 들어갈 만한 넓은 구경에 원통형으로 생긴 포신. 그 앞부분에 결할 할 두 다리.

포신 밑바닥을 미리 파둔 땅속에 박아두고 포구는 비스듬히 하늘로 향했다.

결합한 두 다리는 땅에 펼쳐 고정함으로써 준비를 끝마쳤다.

처음 이 무기를 본 북군 장교들이 하나같이 외친 말이 있다.

- 이거 혹시, 구포를 축소한 겁니까?

구포는 포신이 짧고 발사 각도가 큰 대포다.

그 크기와 무게가 상당해서 주로 요새를 방어하거나 공성전에 사용되곤 한다.

그런데 막스가 만든 건 휴대가 가능하고, 사정거리가 길며 곡사포보다 고각 사격이 가능한 박격포였다.

본래는 세계 1차대전에서 등장할 무기였으나, 막스는 남군의 능선과 참호로 만든 방어선을 무력화하기 위해 박격포에도 손을 대었다.

그런데 그 형태와 용도는 유럽에서 만든 박격포와 다르다.

엄밀히 따지면 중국의 국공내전, 즉 중화민국과 공산당이 내전을 벌일 때 만든 비뢰포와 유사했다. 아니 같다고 해도 무방하다.

당시 드럼통으로 급조해 만든 단순무식한 무기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비뢰포의 위력은 예상 밖으로 뛰어났다.

“1분대 포탄 장착 완료!”

“2분대도 완료!”

줄줄이 분대들이 준비를 마치자, 지휘관이 깃발을 내리며 소리쳤다.

“사격 개시!”

포신 밑 상단에 있는 심지를 잡아당기고 3초.

콰아아앙!

야포를 씹어먹을 만한 엄청난 굉음과 땅 먼지가 일어났다.

멀리서 망원경으로 지켜본 호레이스 스미스는 탄성을 내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선도 필요 없고 그냥 투석기라고 보면 되겠군요.”

“밑판의 탄성을 이용하는 거라, 포구 안에 아무거나 집어넣어도 되죠.”

그걸 증명하듯 막스는 옆에 있는 참모에게 지시를 내렸다.

“포탄 아끼고, 거리 좁힌 뒤엔 돌을 사용해.”

“옛 썰!”

스미스는 망원경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정밀성은 좀 떨어지는 것 같군요.”

“그게 뭐 중요하겠습니까. 그냥 닥치는 대로 퍼붓는 데 의의가 있는 거죠.”

단순무식한 구조라 정밀성 따윈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막스가 노리는 건 능선을 넘어 날아오는 무지막지한 폭탄과 돌, 혹은 위협적인 그 무엇이었다.

“그나저나 저 열기구엔 뭐가 실···. 설마 기름입니까?”

“기름도 있고, 폭탄도 있고. 복불복입니다.”

하늘에서 총에 맞아 어지럽게 비행하는 열기구에서 액체가 흐른다. 어떤 건 공중에서 폭파하면서 날카로운 무언가를 사방으로 분사하기도 했다.

망원경에서 시선을 뗀 스미스가 막스를 쳐다보며 물었다.

“대체 저런 생각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무기의 핵심은 파괴력과 효율성이죠. 말이 나온 김에, 앞으로 개인 화기보다 저런 무기에 집중하는 건 어떻습니까? 급한 김에 만들었지만, 박격포를 개량하면 리볼버 천 

개 파는 것보다 더 이득일 겁니다.”

호레이스 스미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권총, 라이플은 경쟁회사들이 많다. 그만큼 만들기 쉽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앞으로 돈이 되는 건, 국가 단위에서 구매하게 될 방산 무기가 될 겁니다.”

“오늘 보니 이해가 되는군요.”

때마침 개틀링 기관총이 참호에서 이탈하는 남군을 향해 총탄을 쏟아냈다.

남북전쟁은 현대전으로 가는 과도기.

참호전과 대략 살상 무기에 눈을 뜬 자들은 더욱 가공하고 잔인한 무기를 만들게 될 것이다.

막스는 적들이 심혈을 기울여 구축한 진영이 초토화되는 걸 지켜봤다.

수많은 보병과 기병들이 방어선을 뚫고, 적진으로 진격한다. 포병과 박격포 부대는 그만큼 거리를 좁히고, 적진의 심장으로 다가갔다.

버지니아 리치먼드.

겹겹이 쳐둔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퍼졌다. 위기감을 느낀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은 내각 관료들과 함께 리치먼드를 버리고 버지니아주 댄빌로 탈출했다.

그리고 얼마 후.

마침내 북군이 리치먼드를 점령했다.

“여기에서 자네와 마주 앉아있게 될 줄이야.”

존 브라운은 믿기지 않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불과 40시간 전까지 남부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가 사용했던 사무실이었다.

“며칠 안 남았습니다. 전쟁은 곧 끝날 겁니다.”

“우릴 등진 의원들이 땅을 치고 후회하겠군.”

“그래서 선택이 중요한 거죠.”

이날, 민주당과 공화당에서 개최한 전당대회에서 각기 대통령 후보가 선출되었다.

민주당은 전 북군 총사령관 조지 맥클레란.

공화당은 전 서부 사령관 존 프레몬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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