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8화 (248/360)

#248 로버트 리의 항복

버지니아 서쪽 애포매톡스 코트 하우스.

남과 북 군인들이 대치하는 가운데, 북군 총사령관이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군단장급들이 함께했다.

집 안에는 두 개의 책상이 놓여 있었는데, 회색 군복을 입은 남군 장군들이 미리 기다리고 서 있었다.

말끔한 복장에 새하얀 머리와 수염이 수북한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

이마가 넓고 곱슬머리와 수염이 인상적인 스톤월 잭슨 장군. 후덕한 인상의 어찌 보면 잭슨과 닮은 제임스 롱 스트리트 장군 등.

그동안 북군을 괴롭혔던 남군 명장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오직 한 곳.

막스를 향했다.

“북군 총사령관. 막스 조입니다.”

“...... 로버트 리일세. 생각보다 젊군.”

“제가 좀 동안입니다.”

이를 꽉 깨문 로버트 리의 양쪽 뺨 근육이 솟아난다. 그는 막스를 지나쳐 율리시스 그랜트와 악수를 나누었다.

둘은 멕시코 전쟁을 추억하며 몇 마디를 주고받았는데, 셔먼의 차례가 되자 로버트 리의 안색이 돌변했다.

“...... 왜 그랬나?”

셔먼이 어깨를 으쓱하는 동안, 막스는 잭슨 장군과 인사를 나눴다.

“토마스 잭슨이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군요. 막스 조입니다.”

잭슨은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선은 막스에게서 떠나질 않았다.

잭슨은 순수한 의미로 감탄하고 있었다.

‘가장 어린 별이 가장 빛나는구나.’

한편으론 씁쓸하다. 이제 마흔에 불과한 자신이 북군 총사령관 앞에선 노장처럼 느껴졌다.

잭슨의 감상과 달리 제임스 롱스트리트 장군은 짧게 자신을 소개하곤 입을 닫았다.

치열하게 싸웠던 장군들의 어색한 인사가 끝났다. 로버트 리가 부관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럼 시작하지.”

앞으로 나선 양측 참모진들은 항복 협정서를 어떻게 쓸 것인지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는 동안 막스는 로버트 리를 바라보았다.

담담한 척하지만, 불안해한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전쟁에서 패한 사령관으로서 자신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을까.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는 게 정상이었다.

‘로버트 리와 잭슨은 이번에도 영웅이 될까.’

남부는 이 둘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영웅으로 내세울 것이다.

마음같아선 바닥까지 추락시키고 싶지만, 총사령관의 권한은 절대적이지 않았다.

막스 입맛대로 저 둘을 처분하기엔 사안이 적지 않았다. 해서 막스는 원 역사의 주인공 율리시스 그랜트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남부의 재건, 화합을 위해서라도 그들이 필요하다는 그랜트의 논리였다.

‘과연 그걸로 될까.’

처음엔 반대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반대로 남군 장군들을 전부 처형 한다고 세상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인류 역사상 대부분 사건은 시작과 끝이 깔끔한 적이 없다. 남북전쟁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 항복 조건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치열하게 논쟁을 벌일 것이다.

뾰족한 대책 없이 무턱대고 총사령관인 막스를 저격하는 정치인들도 있을 거고. 그들은 어떻게든 막스를 흠집 내려 할 것이다.

전쟁을 야기시킨 정치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불씨처럼 남아있었다.

‘고민하면 끝도 없지.’

원 역사와 같든 다르든, 뭐가 올바른지 어떻게 알겠는가.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매 선택의 갈림길에서, 역사의 틀에 맞추는 건 자신을 가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미래는 바뀌었다.

양측 참모진들이 머리를 맞대었지만, 이들 모두 항복을 어떤 식으로 다뤄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 때문에 멕시코 전쟁의 항복 협정서를 기본 형식으로 채택하고, 논의한 협의 사안들을 정리했다.

대부분 막스와 로버트 리가 몇 번에 걸쳐 주고받은 편지에 담긴 내용이었다.

막스는 훑어본 끝에 참모들이 작성한 원안 그대로 로버트 리와 담판을 지었다.

항복 조건의 핵심은 남군이 무기와 기타 군 재산을 포기한 후 가석방되는 것.

항복한 군인이 무기를 들지 않으면, 더는 문제 삼지 않으며 남군 장교들에겐 말과 보조 무기를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보조 무기는 로버트 리가 차고 있는 롱소드 때문인데. 막스의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금으로 치장된 칼은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막스는 자신의 허리춤에 찬 투박한 칼과 비교를 안 할 수가 없었다.

‘하여간 북군 총사령관 알기를 거지 같이 알지.’

막스는 입맛을 다시며 책상에 앉았다.

로버트 리는 2m를 두고 책상에 앉아 항복 협정서를 훑어봤다. 그리고 동시에.

스윽, 스윽.

종이 위로 펜을 놀린다.

사인이 끝나자, 로버트 리의 굳은 얼굴이 풀어졌다. 그동안 자신을 억눌렀던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듯한 표정.

그래서인지 말이 좀 가벼워졌다.

“오늘은 복장에 꽤 신경 썼네. 수용소에 끌려가더라도, 부하들에게 올바른 모습을 보이고 싶었거든. 아무튼, 자네가 진짜 미국인임을 기쁘게 생각하네.”

진짜 미국인? 비꼬는 건지 진심으로 기쁘다는 건지 뉘앙스가 묘하다.

북군 장군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막스는 여유로운 태도로 응수했다.

“우린 모두 미국인입니다. 아마 오늘의 결과는 위대한 미국을 향한 첫 발걸음이 되겠지요.”

서로 사인한 서류를 확인한 뒤, 막스와 로버트 리는 악수를 나누면서 항복 회의는 끝이 났다.

이 역사적인 회의장을 빠져나오긴 전.

막스는 참모장들에게 다음을 지시했다.

“축포는 터트리지 않는다. 남군 또한 같은 미국의 시민 아닌가. 우리는 남군의 패배를 축하하지 않으면서 기쁨을 표시해야 한다. 그리고 굶주린 남군 병사들에게 식량을 

나눠줄 수 있도록.”

이 말을 들은 남군 지휘관들의 가슴이 울컥해졌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부끄러움을 느낀 로버트 리가 고개를 떨군다. 잭슨과 롱스트리는 밖으로 나가는 북군 총사령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날 2만 8천여 명의 남군은 개인화기를 반납하고 넉넉한 식량을 배급받았다.

게티즈버그 리틀 라운드 톱에서 전투를 벌였던 북군의 조슈아 챔벌린 장군은 한 가지 임무를 맡았는데, 항복하는 남군 보병의 행진을 주재하는 일이었다.

‘쓸데없는 짓 같은데.’

처음에 막스는 집어치우라고 말하려다, 이게 이들만의 문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무기를 반납한 병사들. 남군 장군은 우울하고 복잡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북도 환호도, 말발굽도 들리지 않은 고요함을 뚫고,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군의 장군은 고개를 들어 나팔 소리가 들리는 곳을 응시했다. 그리곤 말머리를 돌려 손을 들어 외쳤다. 집으로 돌아가자고.

행진을 주재한 챔벌린 장군은 터벅터벅 발걸음을 내딛는 남군 병사들을 향해 경례하며 예의를 표시했다.

막스는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바라봤다.

‘전쟁의 끝에서 낭만이라.’

이해할 수 없는 감동과 아련함이랄까.

여러모로 남북전쟁은 과거와 미래 전쟁의 과도기임은 분명했다.

이날 로버트 리가 항복한 소식이 애포매톡스 역의 전신을 통해 존 브라운에게 전해졌다.

막스는 회의장을 떠났지만, 로버트 리는 그곳에 남았다.

그는 휘하의 부하들에게 고별인사를 하고, 각자의 길로 돌아갈 것을 당부했다.

당장 그 말에 따르더라도 일부는 게릴라가 된다. 그리고 남부 곳곳에 퍼진 잔존 병력과 함께 연방을 공격할 것이다.

막스는 그들을 뿌리뽑기 위해 다음을 지시했다.

“저항하는 반란군들에겐 항복 협정서를 내밀어 전투를 중단시킨다. 불복하는 경우 원칙대로 교전을 허락한다.”

사실상 남북전쟁은 종식되었지만,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과 조셉 존스턴 장군의 군대는 여전히 북군의 골칫거리였다.

올 때와 달리, 막스는 기차를 이용해 매나사스 사령부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애포매톡스 역으로 가려던 차,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콜린에게 물었다.

“존 기어리 군단장은요?”

“그 양반이 좀 느리잖아.”

콜린이 두 손으로 거구인 존 기어리의 몸집을 표현했다. 그리고 때마침 뒤에서 말 두 필이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콜린의 표현처럼 네이선 로어 만큼 덩치가 큰 존 기어리였다.

막판에 가장 크게 동선을 움직인 군단이 있다면 단연 존 기어리였다.

하퍼스 페리를 사수하다가도, 총사령부를 지키고, 어느 순간엔 서부 사령부를 지원하기 위해 애팔레치아산맥을 넘어 테네시까지 넘어갔으니 말이다.

“내가 좀 늦었소, 총사령관!”

“늦긴요. 이제 서두르면 되지요. 근데 누굽니까?”

손을 들어 인사한 존 기어리 옆엔 닮은 꼴의 젊은 장교가 함께였다.

“내 아들입니다, 총사령관. 인사해라, 에드워드.”

“지, 직접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버지를 닮아 키가 크네.”

“얘가 보기엔 그래도 나보단 날렵해. 에드워드 너 그거 발차기하는 것 좀 보여줄래? 총사령관 따라 한다고 연습 많이 했잖아.”

“...... 아버지?”

에드워드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존 기어리는 그것도 귀여운지 자식 자랑을 늘어놓았다. 따지고 보면 막스와 에드워드의 나이 차이는 크지도 않았다.

원 역사대로라면 에드워드 기어리 대위는 워 해치 전투에서 아버지의 두 팔에 안긴 채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막스는 워 해치 전투 자체를 삭제시켰다.

그 덕분에 에드워드는 영광스러운 애포매톡스에 올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날즈음 아들을 소개해주는 건, 나름 주변 눈치를 의식했기 때문이었을까.

막스는 부자의 관계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남북전쟁은 이들처럼 부자가 함께 전쟁에 참전한 경우가 많았다.

한 마을에서 모집된 가족, 친척들이 중대를 구성했다.

그 때문에 어떤 전투에선 중대가 몰살당하여 마을 전체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그 비극이 끝이 났다.

“그럼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에드워드 기어리의 배웅을 받고 막스와 존 기어리는 볼티모어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콜린과 네이선 로어, 그 밖에 특수부대원과 두 개 중대가 총사령관 호위를 위해 함께였다.

가는 내내, 막스 옆에 앉은 존 기어리는 잠시도 입을 쉬지 않았다.

처음은 전쟁과 관련된 말들이 점차 사업으로 확대되었다.

콜로라도 광산 주주인 존 기어리는 전쟁 기간 재산을 크게 불려 나갔다.

그뿐 아니라 막스에게 자금 일부를 위탁해, 지금도 무서운 속도로 늘고 있었다.

대화하는 사이 둘의 관계는 콜로라도 때로 돌아가 있었다.

“아무튼, 전쟁 끝나면 본격적으로 총사령관하고 사업을 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사업이요?”

“뭐야, 왜 그런 표정으로 물어봐? 거리감 느껴지게.”

존 기어리가 섭섭한 얼굴을 하자 막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각자 잘하는 걸 해야죠. 사업은 나한테 맡기고, 정치를 계속하는 건 어때요?”

“정치?”

“국민연합당 당원이잖아요.”

“난 뭣도 모르고 총사령관이 들어간다고 해서 따라 들어간 거야. 전당대회는 관심도 없다고.”

“그러지 말고, 내일 볼티모어로 가세요.”

“왜? 가서 뭐 하라고?”

눈을 크게 뜬 존 기어리를 보며 막스가 물었다.

“혹시, 에이브러햄 링컨과 친해요?”

“링컨 부통령? 뭐,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닌데.”

존 기어리가 눈을 껌뻑이자, 막스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럼 잘됐네요. 이번에 링컨의 러닝메이트로 나가세요.”

존 기어리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뭐, 뭐야. 존 브라운 대통령은!?”

“몸이 안 좋습니다. 그나저나, 조용히 말하세요.”

“여기 죄다 특수부대원들 타고 있는데?”

“......”

막스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자 대원들이 보란 듯이 귀를 내밀고 있었다.

하긴 전당대회가 시작되면 딱히 비밀이랄 것도 없었다.

“일단, 링컨이 후보로 나선다는 건데. 내가 갑자기 러닝메이트가 되는 건 뜬금없지 않아?”

“왜요. 자신 없어요?”

“원래 나 민주당원이었잖아.”

“그래서 더 경쟁력이 있는 겁니다.”

민주당 집권 시절,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은 존 기어리를 캔자스 준주 주지사로 임명했다.

당시에도 기어리는 민주당원이었지만 색이 모호한 인물이었다.

캔자스에서 청중에게 연설한 사례가 그랬다.

- 나는 정당도, 구역도, 북부도, 남부도, 동부도 서부도 모르고 오로지 캔자스와 내 조국만 알고 싶다.

실제로 존 기어리는 노예주보다 자유주 인물과 가까웠다. 지금 막스와 함께 있는 게 그 증거였다.

민주당이지만 실제론 공화당에 가까운.

진보의 껍데기만 뒤집어 쓴 앤드류 존슨을 대신하기엔 존 기어리 만한 인물이 없었다.

“내가 러닝메이트라니. 진짜 가능할까?”

“생각해 보세요. 내일 전당대회 가면, 항복 회의에 참석한 유일한 장군이 될 겁니다.”

“오?!”

“더구나 내일이면 신문 헤드라인에 오늘 항복한 소식이 쫙 퍼지겠죠?”

“오오!!”

“그런데도 경선에서 졌다? 그땐 다 접어요. 정치고 사업이고. 그냥 군에 말뚝 박읍시다.”

“..... 그건 좀.”

그런데 막스 말대로다.

이번에는 경선부터 본선까지 절대 질 수 없는 선거였다.

공화당, 민주당 후보자들이 다른 사람도 아닌 맥클레란과 존 프레몬트니까!

“선거에서 지면 그 두 명보다 못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와씨, 그건 못 참겠는데?”

자신감을 찾은 존 기어리의 입이 서서히 찢어진다. 이내 귀가에 걸리나 싶을 때, 고개를 저어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총사령관이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싫은 데 억지로 한다는 겁니까? 그럼 홀리데이에게 말해 볼까요.”

“무슨 소리. 나라를 위해 뭔들 못하겠나. 마침 전쟁이 끝나면 어떤 걸로 이 나라에 봉사할까 고민하던 참이었네.”

“아깐 사업 하자면서요?”

“그것도 나만의 봉사 중 하나였어.”

존 기어리는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막스는 매나사스에서 내렸지만, 존 기어리는 그대로 볼티모어까지 직행했다.

로버트 리가 항복한 소식은 남부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에게도 전해졌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도망치던 그는 부인이 입은 외투를 걸친 채였다. 본인은 극구 부정했지만 여자로 위장한 채 도망가려했다는 소문은 피할 수 없었다.

한편, 항복을 거부한 조셉 존스턴 장군은 남군을 이끌고 텍사스로 향했다. 그곳에서 병력을 긁어모아 다시금 전투를 치르려 했다.

그리고 항복 회의 전날, 기병대를 이끌고 몰래 도망친 젭 스튜어트 역시 서쪽으로 향했다.

신념이 꺾이지 않은 군인은 결사 항전을.

희망과 의욕이 꺾인 자들은 총을 든 채 무기력감에 빠져 지냈다.

그리고 이들은 서부로 이동해 새로운 시대.

"이제, 우리가 세상을 만든다!"

"정부? 법? 그 따위 개나 주라 그래!"

바야흐로 미국은 돈 보다 총알이 많은 무법자와 총잡이들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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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서부 총잡이 시대로의 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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