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워싱턴 기차역.
기차 서기도 전, 플랫폼에서부터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온갖 문구가 뒤섞였는데, 유독 튀는 문구가 있었다.
“제네럴 조! 제네럴 조!”
‘역시 인생은 두 번 살아야 하는 건가.’
미국에서 이런 대접을 받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기분은 좋지만 막스는 이런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았다. 더욱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이런 유명세가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었다.
막스는 스카프로 더욱 얼굴을 가리고 모자를 눌러 썼다.
옆에 앉은 율리시스 그랜트는 이해할 수 없다며 말을 건넸다.
“이미 얼굴 다 팔렸는데, 뭘 그렇게 꽁꽁 싸매나.”
“신문은 죄다 멀리서 찍혔던데요.”
“안 그런척 하면서 다 확인해봤구만. 아무튼 생각이 독특하다니···.”
그랜트는 말을 멈춘 채 건너편에 있는 셔먼을 쳐다봤다.
막스처럼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셔먼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전 살기위해서 하는 겁니다.”
“······ 어, 음. 셔먼 장군은 더 가리세요.”
남부인들이 가장 증오하는 셔먼. 사실 막스도 막상막하다.
그래서인지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아무도 모를 거라며 흡족해했다.
잠시 후.
기차가 완전히 멈추고, 안에서 푸른 군복에 별들이 박힌 장군들이 하나둘 내려섰다.
“연방의 영웅들을 맞이하라!”
사람들이 모여들며 손을 흔들고 소리쳤다. 장군들은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며 각자 스타일에 맞게 화답했다.
막스와 셔먼은 특수부대원들에게 파묻혀 소리소문없이 플랫폼을 벗어나려 했다.
그런데 스카프를 가린 게 오히려 둘을 더 돋보이게 했다.
“설마 총사령관?”
“옆엔 셔먼 장군인가!?”
“틀림없어! 둘이 나란히 있는 것 봐!”
“남군이 공격하면, 이번엔 우리가 지켜줄게요!”
‘······’
막스는 셔먼과 자연스레 거리를 두었지만, 결국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야 했다.
뒤에서 지켜보던 조 짐 주니어가 혀를 차며 산초에게 말했다.
“보스는 흑인 위장을 했어야지. 거기에 최적화됐거든.”
“흑인이면 절대 안 걸리지. 근데 난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어떻게 보스는 혼자서 온몸을 검게 칠할 수가 있는 거야?”
산초가 등 뒤로 손을 뻗어봤다. 아무리 해도 날개 쭉지 밑으로 안 닿는 부분이 더 많았다.
둘은 뉴튼 나이트와 남부를 휘저을 때, 흑인으로 위장한 적이 있었다. 그때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을 서로 발라줬는데, 막스는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했었다.
“나중에 물어봐야겠어.”
“과연 그냥 알려줄까? 대가가 필요해.”
“젠장, 그런 것도 딜을 해야 하다니.”
산초는 쉬운 게 없다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역 밖으로 나온 순간 눈을 크게 떴다.
길 양옆에 늘어선 수많은 군중.
그들이 열렬히 군인들을 환영했다.
그런데 그중 대원들의 가슴을 울컥하게 하는 말이 있었다.
“특수부대가 없었다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들이 진정한 영웅이에요!”
남북 전쟁 내내 그림자처럼 활동했지만, 누군가는 기억해주는 모양이다. 아니, 대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특수부대를 동경했다.
동부 젊은이들이 서부 개척자 키트 카슨을 흠모하고 동경했던 것처럼, 이제는 특수부대가 그를 대신했다.
막스는 힐끔 뒤를 돌아봤다.
그들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들이 막스를 미소 짓게 했다.
제네럴 조 백 번을 듣느니, 동료들을 인정해주는 말 한마디가 막스의 가슴을 울컥하게 했다.
‘이번엔 보너스를 두둑히 줘야겠어.’
전쟁 기간, 한쪽에선 금을 캐고 무기와 위장 슈트를 군에 납품했다.
그 결과 최근 막스의 재산이 7백만 달러를 넘어섰다.
알래스카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리바이 스트라우스와 스미스 앤 웨슨, 그 외 여기저기 투자한 곳에서 나온 배당금이 상당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덩어리 큰 게 남아 있었는데, 앤드류 카네기도 투자한 컬럼비아 오일. 그 배당금이 내년 초 지급된다.
카네기는 이 배당금을 밑천으로 철강 회사를 인수하고, 사업을 확장했다. 그리고 막스는 카네기보다 세 배 이상 투자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버는 족족 여기저기 투자하느라 현금 거지였지만, 전쟁은 막스로 하여금 강제로 저축할 시간을 가져다주었다.
‘모였으면, 풀어야지.’
돈은 생물이다.
겨울잠을 끝내고, 이제는 세상 밖으로 나와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쳐야 할 때였다.
전쟁 영웅을 위한 행사는 백악관 앞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막스는 게티즈버그 승리와 로버트 리에게 항복을 받은 공로로 금 1파운드(120돈)짜리 골든메달을 받았다.
메달 앞면에는 ‘Lieutenant General Max Jo.’와 막스의 흉상이 양각되었고.
뒷면에는 ‘의회의 공동 결의안’이라는 문구와 13개의 별과 화려한 화환, 그리고 로버트 리의 항복 날짜인 1864년 6월 1이 새겨져 있었다.
골든 메달이 담긴 목함도 범상치 않았다. 윗면에는 금으로 장식된 독수리가, 상자 둘레 역시 금으로 만든 별과 월계관이 장식되어 있었다.
피치가 눈을 반짝거리며 보려하자, 막스가 재빨리 품속에 집어 넣었다.
“뭐야, 그 시츄에이션은? 누가 뺏어가?”
“원래 이런 건 보여주는 거 아냐.”
“저기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 안 보여?”
빅스버그를 승리로 이끈 공로로 그랜트 장군도 메달을 받았다. 그리고 그 메달이 지금은 사람들 손에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피치가 옆에서 투덜거릴 때, 막스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 메달을 똑같이 만들었을까.’
자신이 받은 것과 그랜트의 메달은 모양과 중량이 똑같다.
물론 이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 의도가 너무 빤한 게 문제였다.
존 브라운 대통령이었다면, 분명 차등을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메달의 발행 주체는 북부 13개 주 의회 구성원들이다.
직급과 기여도를 떠나, 그들은 동양인과 백인을 최소한 동급으로 두길 원했던 게 분명했다.
“저 메달만 팔아도 몇 년은 거뜬히 살겠네.”
“저걸 파는 순간, 사업에서 쫄딱 망했다는 거겠지.”
“그게 그렇게 되네.”
막스와 피치가 대화하는 사이, 공로자에 대한 수여식은 계속되었다.
군단장들에 이어 지금은 해리엇 터브먼과 유색 부대에 속한 흑인 병사 세 명이 대통령에게 상패를 받고 있었다.
원 역사에서 해리엇 터브먼은 공로는커녕, 몇 번을 요청해서야 겨우 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액수가 쥐꼬리만 해 평생을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자, 막스 주변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매나사스에서 만났던 프레드릭 더글라스는 더 많은 사회운동가를 막스에게 소개해주었다.
정치인과 사업가들도 안면을 트려 끊임없이 찾아와 악수를 요청했다. 대선을 3개월 앞둔 링컨도 있었다.
“앞으로 더 바빠지시겠군요.”
“총사령관이 판을 다 깔아줬는데, 나는 몸이라도 바쁘게 움직여야지.”
링컨이 미소를 머금자, 막스는 진지한 얼굴로 말을 건넸다.
“전쟁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부인들이 아직 많습니다. 항상 조심하셔야 합니다.”
“유념하도록 하겠네.”
막스는 본격적인 유세가 시작되면 SFBC 대원 열 명을 링컨에게 붙여주기로 했다.
존 브라운과 마찬가지로, 링컨은 핑커톤과 SFBC 양쪽에서 도움을 받으며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
백악관 2층 대통령 집무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존 브라운이 막스와 독대를 청했다. 그는 소파에 앉자마자 메달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은 총사령관인 자네에게만 메달을 수여할 생각이었네. 그런데 의원들은 빅스버그 전투가 결정적이었다며 율리시스 그랜트를 포함하자더군.”
존 브라운은 당연히 반대했다. 그럴 거면 메달의 모양도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군. 자네라면 이 메달을 보고 상황을 파악할 거라고 말일세.”
“전쟁의 영광은 얼마 가지 않는다. 이런 깨달음 말입니까?”
“안타깝지만, 그렇네. 의원들의 머릿속은 이미 올해 대선으로 가득하거든.”
자그마한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상대 후보 표를 갉아먹는 전략. 선거판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들이다.
“게다가 자네가 민주당과 공화당에 빅엿을 선사하지 않았나. 다들 이를 갈고 있을 거야.”
막스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당대회가 끝난 뒤 리치먼드에 총공세를 가했다.
다분히 의도적이었고 바보가 아니라면 눈치를 챘을 것이다.
동양인 총사령관이 갑자기 전쟁 종식을 앞당겨 판을 송두리째 엎었으니, 대선 승리를 위해 공격하는 건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민주당과 공화당에서 자네 뒷조사를 벌이고 있네.”
“뭐가 튀어나오든,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지겠군요.”
“그게 진짜든 아니든. 마구잡이로 던지겠지.”
맥클레란과 존 프레몬트는 얼마 전까지 전쟁터를 지휘하던 정치군인들. 전쟁은 무능했지만 정치는 또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다고 그들이 선거에서 이길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링컨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연방의 부통령. 선거에서 가장 유리한 타이틀과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맥클레란과 존 프레몬트가 아무리 프레임을 짜고 막스를 공격해도 대중을 세뇌하기엔 시간이 짧았다.
‘그리고 어차피 총사령관에서 물러나면 그만이다.’
다만 쫓겨나듯 내려 오는 게 아니라, 가장 명예로울 때 내려올 순간만 잘 포착하면 된다.
“지금 상황과 맞물려서. 지금 남군에게 회수한 무기가 창고에 넘치도록 쌓이고 있네. 애초에 자네에게 처리를 맡기려고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
“제가 그 사업을 맡으면 또 말이 나오겠죠. 일단 그건 보류하도록 하겠습니다.”
막스는 전쟁 중에 만들어진 무기들을 개틀링 기관총과 묶어 국가 단위로 팔아치우려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연방의 입찰에 참여하고, 우선권을 얻으려 했다.
‘지금은 작은 흠이라도 만들면 안 되지.’
막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때. 존 브라운이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휴가 기간에는 어디에 머물 생각인가?”
막스는 메달과 함께 한 달의 포상 휴가를 받았다.
만약 받지 않았어도, 셀프로 쉴 생각이었다.
“뉴욕 맨해튼에 있을 겁니다.”
“사업 때문인가?”
“음.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려고요.”
“?”
*
SFBC가 머무는 워싱턴 DC 윌라드 호텔.
이곳 회의실에 때아닌 첩보 관련 회의가 열렸다.
국장 터커와 케이트 와네, 피치.
이 세 명만 참석자였다.
“일단 워싱턴에서 연극 일정이 잡힌 배우 리스트는 작성한 거지?”
“그거 며칠 전에 줬잖아. 오늘까지 이런 회의를 굳이 해야 해?”
피치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삐딱한 자세로 턱을 괴고 앉아 회의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모처럼 막스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는데, 총사령관이 더럽게 바빠서 말도 제대로 못 나눈 게 원인이었다.
게다가.
‘쳇. 그깟 메달이 뭐라고, 나한테 안 보여주냐.’
입이 툭 튀어나온 피치는 시계를 힐끔 보며 터커를 노려봤다.
“국장. 다른 대원들은 근처 레스토랑에서 저녁 먹는다고 난리던데, 우린 언제 가는 거야?”
“회의부터 끝내야 뭘 먹든 하지.”
“케이트, 너 배 안 고파?”
“전혀.”
“어우, 얄미워.”
피치가 손톱으로 책상을 긁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네이선 로어가 소리쳤다.
“보, 보스가 호텔 옥상에서 습격당했어!”
“뭐라고?”
“!”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피치는 곧바로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그리곤 빠른 속도로 옥상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은 걸 이상하게 생각했을 텐데.
피치의 눈은 붉게 충혈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 시작인데. 잔뜩 기다리고 있었는데···.’
쾅!
단숨에 옥상에 오른 피치가 발로 문을 걷어찼다.
그때, 그녀가 본 건.
거대한 풍선, 아니 열기구였다.
옥상 밖에서 막 솟아오른 열기구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Will you marry me?]
놀란 피치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이때 어느 정도 하늘로 솟아오른 열기구에서 누군가 툭 뛰어내렸다.
멋지게 착지한 막스. 허리를 편 그의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다가와 무릎 꿇고 꽃다발을 내밀고, 큼지막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줬다.
“나랑 결혼해줄래, 피치?”
“······.”
솔직한 심정으론 한 대 때리고 싶었다.
방금까지 심장이 터질 만큼 놀랐으니까.
그런데 슬픔과는 다른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내 피치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응. 당연하지.”
이때 옥상에 숨어있던 대원들이 나오며 환호했다. 전혀 생기가 없어 보였다.
“와아···.”
콜린은 구석에서 시가 연기를 탄식하듯 뿜어내고. 대원들은 포옹하는 둘을 보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 저렇게 해야 결혼하는 거라면.
- 차라리 솔로 할래.
- 그러고 보니, SFBC도 오늘이 끝이구나.
- 이제 해산인가. 즐거웠다, 짜식들.
막스와 피치의 결혼식 장소는 뉴욕 맨해튼.
여기에 참석하기 위해 콜로라도, 캔자스 그리고.
“일본에 있는 동안 너무 나태해졌다. 다들 훈련을 게을리하지 마라! 미국에 도착하는 즉시 우리가 가야할 곳은 전쟁터! 남군의 목을 따야 한다!”
히콕이 SFBC 대원들과 갑판 위를 돌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 뒤엔 조선인 셋도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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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연재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비도 오고 월말이라 일이 너무 늦게 끝났네요.
그것도 이유지만, 프로포즈를 어떻게 해야할지
수정을 여러번 했습니다.
그런 끝에, 이혼물이 트렌드인 요즘과는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즐겁게 읽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