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패배한 남부 연합의 망령
뉴욕 맨해튼의 한 양장점.
홀리데이가 답답한 얼굴로 막스에게 물었다.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가는 이유가 뭐야?”
막스는 코웃음을 쳤다.
“나랑 로렌스에 있을 때, 부인에게 편지 오지게 썼으면서. 그건 다 뭡니까?”
“하.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좋지만 딱히 좋지 않은 그 오묘하고 애매한 느낌. 행복하지만 뭔가 강요되고 조작된 상당히 인위적인 그 무언가가 있거든.”
언어의 한계를 느낀 홀리데이는 이마를 감싸며 괴로워했다.
“그건 그렇고. 센트럴 퍼시픽 철도 공사는 어떻게 되고 있어요?”
“시공사들과 협의 중이야. 인부들 고용 문제 때문에 말이 많거든.”
센트럴 퍼시픽 철도의 공사 시작점은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그런데 일할 사람들이 전쟁터로 끌려가는 바람에 인부들이 부족했다.
“중국인을 고용할 수밖에 없겠네요.”
“안 그래도 지금 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어. 근데 언어도 안 통하고, 더럽고, 문화도 안···.”
“말 편하게 해요.”
홀리데이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내 생각엔 처음 공사할 때 중국인 일부를 고용해보고 판단해도 될 것 같거든.”
“아무래도 그게 낫겠죠.”
원 역사에선 대규모의 중국인 노동자가 철도 건설에 투입되었다.
문화차이와 위생 여부를 떠나, 중국인들의 인건비는 아일랜드 노동자보다 쌌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었다.
징병이 해제된 백인이 캘리포니아로 돌아간다 해도, 시공사 입장에선 값싼 중국인을 고용하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그나저나, 이 사람은 아직도 연락이 없네.’
철도 공사가 시작되면 반드시 필요한 물건.
암벽과 산을 뚫는 폭발물이다.
그런데 아직도 노벨은 연락이 없다.
‘올해가 지나도 응답이 없으면···.’
혼자서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야겠다.
당연히 특허와 모든 권리도 막스의 것이다.
이렇듯 서두르는 건, 이 시대의 폭파 방법으론 화강암으로 된 암벽을 뚫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산맥의 터널을 뚫기 위해, 인부는 산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 암벽에 구멍을 뚫어 그 안에 화약을 장전한다. 그리고 폭발하기 직전에는 산 위에 있는 동료가 밧줄로 끌어 올려야 했다.
그런데 산 위에서 절벽에 내려간 동료가 보이기나 할까. 신호를 못 맞추면 폭발에 휘말려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원 역사에선 극강의 난이도 시에라네바다 산맥 터널을 뚫다 중국인 노동자 4분 1이 목숨을 잃는다.
다이너마이트가 개발되었다면, 운반도 안정적이고 길게 연결된 도화선에 불을 붙여 시간을 조절할 수 있었다.
위험이 줄어드는 것이다.
하지만 막스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다이너마이트 이후 노벨이 만든 다이너마이트 껌, 일명 ‘폭파 젤라틴(Blasting gelatin)’ 개발을 앞당기는 일이었다.
미래에서도 사용되는 투명하고 고무 형태의 폭발물. 폭파 젤라틴이야말로 광물 자원 채굴과 토목 건설을 혁명적으로 발전시킬 대단한 발명품이었다.
“결혼 예복으로 요즘 인기가 좋은 슈트인데. 너무 잘 어울리시네요. 치수 좀 잴게요.”
젊은 여직원이 막스의 어깨와 허리둘레를 쟀다.
그러면서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막스를 힐끔거린다.
‘얼굴에 상처가 있나. 아니면 화상?’
훤칠한 키에 단단한 근육을 생각하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내심 측은한 마음이 들던 때, 가게 문이 열리고 두 여인이 들어왔다.
치수를 재던 여직원의 눈이 커졌다.
“에일린? 에밀리 언니?”
“오랜만이네, 칼리. 잘 지냈어?”
피치가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다들 파이브 포인츠에서 자라나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저야 항상 똑같죠.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에요?”
“어쩐 일이긴. 내 신랑 보러 왔지.”
로즈가 눈을 껌뻑거리며 막스를 쳐다봤다.
“어머, 언니 신랑이셨구나.”
“근데 우리 형부! 수트가 이렇게 잘 어울렸어요? 너무 멋져요!”
에밀리의 감탄에 막스가 어깨를 으쓱하고 스카프 속 입꼬리는 하늘로 치솟았다.
‘좋댄다.’
홀리데이는 한심한 듯 팔짱을 낀 채 천장을 바라봤다.
이때 피치가 웃으며 옆에 앉았다.
“바쁘실 텐데, 옷까지 봐주시고. 고마워요.”
“별말씀을.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
“훗. 피치가 몰라서 그래. 저 양반, 옷 봐주러 온 거 아니야. 나한테 결혼에 대해 조언하려고 따라온···.”
“워워!”
막스의 말에 홀리데이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난 결혼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해.”
“오묘하고 애매한 그 뭔가라면서요.”
“말로는 기쁨을 표현하기 힘들다는 얘기였지!”
“왜 화를 내요.”
정장 색과 디자인, 치수까지 끝내고. 일행은 다음 쇼핑을 하기 위해 정장 가게를 나섰다.
그런데 칼리가 처제 에일린의 팔을 붙잡으며 속삭였다.
“네 형부 뭐 하는 분이야?”
“음. 군인?”
“그렇구나. 혹시 전쟁터에서 얼굴을 다친 거야?”
“응?”
문득 에일린은 습관처럼 얼굴을 가린 스카프가 떠올렸다. 웃음을 터트린 에일린은 이내 낮게 속삭였다.
“형부가 너무 잘생겨서 그래. 언니가 감추고 다니라 그랬거든.”
“..... 역시. 에밀리 언니답네.”
칼리는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근데 결혼식은 언제 어디서 하는 거야?”
“날짜는 아직이고, 장소는 엘드릿지 호텔.”
“근데 왜 날짜를 못 정했어?”
“형부 동료가 언제 올지 몰라서.”
칼리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
“드디어, 우리가 돌아왔노라!”
“남군 박멸!”
뉴욕항.
펨브로크 상선과 USS 와이오밍호가 동시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SFBC 대원들이 육지에 발을 내딛었다. 그리곤 땅에 키스하고,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다들 뭘 해도 오바스럽다니까.”
프란시스 홀과 조셉 헤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배에 실린 일본산 차와 실크, 도자기 등을 내리고, 프란시스 홀은 입항 신고를 했다.
그러는 동안 일행들은 한 가지 경악할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로버트 리가 항복했다고!?”
“와씨, 전쟁이 끝났어?”
“다들 일본에서 농땡이만 피우다 온 모양이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대원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시가 연기를 뿜어대며 콜린이 낄낄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SFBC 대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와, 이게 다 어쩐 일이래.”
콜로라도와 캔자스에 있어야 할 대원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우리도 며칠 전에 왔어. 아무튼, 고생했다.”
감격의 재회를 하는 동안, 로버트 리의 항복보다 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히콕은 파르르 입꼬리까지 떨었다.
“보, 보스가 결혼한다고?”
“어.”
“누, 누구랑?”
“일본에 뇌를 두고 왔냐? 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질문을 하고 있어.”
“보스 좋아하는 여자가 피치밖에 더 있어?”
“젠장. 보스도 짝이 있는데.”
히콕과 코디, 대원들은 하늘을 향해 탄성을 내뱉었다.
솔로 포스는 깨졌다.
힘을 잃은 조직에게 과연 미래는 있을까 싶다.
SFBC에서 둘의 결혼을 기뻐하는 건 당사자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 당사자들이 찾아온 건, 배에서 모든 선적이 끝나고 입항 수속을 끝냈을 때였다.
커플을 보자마자 히콕과 코디, 대원들이 소리쳤다.
“배신자다!”
“닥쳐.”
피치가 생글거리며 말했다.
이를 본 히콕이 중얼거렸다.
“이럴 거였으면, 히요코를 데려올걸.”
“히요코는 누군데?”
막스가 물었다.
“······ 게이샤.”
“미친, 니들 가서 관광하고 왔냐?”
막스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던 때.
갑자기 눈에 허연게 아른거렸다.
고개를 돌려 그곳을 응시했다.
‘저자들은···.’
흰색 한복을 입고 머리에 띠를 두른, 항구를 둘러보며 감탄하고 있는 세 남자.
한눈에 봐도 조선인들이 분명했다.
순간 막스의 가슴이 찌릿해졌다.
손은 저절로 입가에 옮겨져 입과 턱을 함께 훔쳤다. 그리곤 숨을 들이마신 뒤 히콕에게 물었다.
“어떻게 데려왔어?”
“중국에서 꼬셔왔어.”
“중국?”
“일본에선 도저히 안 넘어오더라고. 그래서 와이오밍 함장 맥두걸 대령에게 말했더니, 저렇게 데려왔더라고. 지금 중국에서 보스 이름을 내건 상선도 있대.”
‘제너럴막스조?’
막스의 고개가 살짝 틀어졌다.
만약 제너럴셔먼호가 막스 조로 둔갑했다면?
원 역사에선 제너럴셔먼호가 조선을 선제공격하다 침몰했다. 이는 신미양요의 발단이 된 사건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생각을 끝낸 막스가 물었다.
“와이오밍 함장도 같이 왔어?”
“저쪽에 보이는 게 와이오밍 함선이야. 그렇지 않아도, 총사령관 만나고 싶다고 난리였는데. 만나 볼래?”
“가자.”
조선인들과 만나기 전, 몇 가지 정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막스는 히콕과 함께 와이오밍 함선으로 향했다.
*
맥두걸은 오자마자 남북 전쟁 소식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로버트 리의 항복과 현재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대단한 사람이야.’
서부 사령관 시절부터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총사령관은 전쟁마저 끝내버렸다.
흠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히콕 대령이 직접 총사령관을 모셔왔다. 맥두걸은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막스 조입니다.”
“남태평양 함대 소속, 와이오밍 함장 맥두걸 대령입니다. 이렇게 총사령관님을 만나 뵙다니, 영광입니다!”
맥두걸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막스를 바라봤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전쟁 영웅을 바라보는 눈빛은 동부의 젊은이들과 같았다.
“그런데 조선인들은 어떻게 데려온 겁니까?”
“아, 그것 때문에 오셨군요. 사실 일본에 있는 조선인들은 대부분 무역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인지 다들 먹고 살 만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정보도 없는 미국으로 갈 만큼 절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좀 다릅니다. 텐진, 상하이에 있는 조선인은 유학 온 부잣집 자식들이거나, 조선을 탈출한 노비들이었거든요.”
이막산도 그중 하나다.
골드러시라는 소문을 듣고 배를 타게 되었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조선보다 중국에서 기회를 찾으려 한 노비였다.
“그럼 이번에 데려온 자들은 노비들입니까?”
“아니요. 제가 듣기론 그 뭐더라. 민란을 일으킨 농민들의 자식들이라더군요.”
‘민란?’
막스의 머릿속에 몇 가지가 떠올랐다.
가장 유명한 동학농민혁명은 30년 뒤에나 벌어질 일. 시기상 민란이라 하면.
‘진주민란인가.’
정확히는 임술해에 벌어진 전국적인 농민 봉기.
임진왜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조정의 무능력함과 탐관오리들에 맞서 전국적으로 벌어진 농민들의 저항이었다.
그리고 이를 주도한 자들은 모조리 참수당했다.
‘그런 자들의 자식들이라면 갈구하는 욕망이 적진 않겠구나.’
납치당한 것도 아니고 이막산처럼 사기당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미국행을 선택했다.
욕망을 자극하면 막스가 원하는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을 정리한 막스가 맥두걸에게 물었다.
“조선은 어떻습니까?”
“항구를 폐쇄하는 바람에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유럽에서도 눈독은 들이는데, 당장은 일본과 중국에 집중하는 것 같더군요. 다만.”
미국과 영국의 상선이 조만간 조선을 두드리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히콕이 해준 말을 똑같이 전했다.
“총사령관님 이름을 내건 우리 미국 상선이 갈 확률이 높습니다.”
“그들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요?”
“글쎄요. 설마 조선에 대포를 쏘겠습니까? 누가 봐도 총사령관님 엿 먹이려는 행동인데요.”
막스도 같은 생각이다.
어떤 목적이 없는 한, 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그나저나, 곧 결혼하신다고요?”
“대원들이 왔으니, 다음 주에 할 생각입니다. 대령께서 참석해주신다면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어이구, 영광이라니요. 저야말로 영광이지요!”
하지만 맥두걸은 아쉬운 듯 입을 쩝쩝거렸다.
“함선 수리가 끝나는 대로 다시 바다로 돌아가야 하거든요.”
“오늘 도착하지 않았습니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하여간 잠시도 쉴 틈을 안 줍니다. CSS 섀넌도어 함선 아시죠?”
“······ 물론입니다. 제가 그 함장을 붙잡으라고 명령했죠.”
‘쉴 틈을 안 준 게 나였군.’
막스는 맥두걸의 시선을 슬쩍 흘렸다.
하지만 중요한 일이었다.
CSS 섀넌도어는 남부 연합 소속으로, 지금도 연방 함선과 상선들을 공격하고 있었으니까.
맥두걸도 그 이야길 들었는지 물어왔다.
“하여간 미친놈들이군요. 얼마 전에도 우리 상선을 탈취하고 열 척을 침몰시켰다죠?”
“맞습니다.”
원 역사에서 CSS 섀넌도어는 로버트 리 항복 이후 6개월이나 버틴 끝에 항복한다.
그런데 그들이 본격적으로 공격하고 약탈을 한 건 공교롭게도 항복 이후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의도적인 악행이었다.
맥두걸은 혀를 차며 말했다.
“놈들이 유럽에서 아프리카까지 미친 듯이 휘젓고 있으니, 완전 해적 아닙니까? 총사령관님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번에 아주 끝장을 내겠습니다!”
맥두걸은 눈에 잔뜩 힘을 주어 막스를 쳐다봤다.
비장함, 자신감. 그 속엔 왜 쉴 틈을 안 주냐는 원망도 섞여 있었다.
*
“조선인들은 히콕 네가 당분간 관리해.”
“안 만나고?”
막스는 고개를 저었다.
당장은 새로운 나라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기댈만한 동족은 마음에 위안만 줄 뿐, 그들의 행동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서, 결혼식이 끝나면 만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날이 다가올 즈음.
“자, 이번엔 조선을 두드려 보자고!”
‘제네럴 막스 조’ 상선이 중국 텐진을 떠나 조선으로 향했다.
그 뒤를 패배한 남부 연합의 망령,
바다를 휘젓는 CSS 섀넌도어가 따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