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 결혼식
뉴욕 월스트리트의 한 건물.
한 젊은 남자가 각진 트렁크를 힘겹게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내가 미국까지 오게 될 줄이야.’
3층에 올라서자 문 위에는 <프리덤 에코 뉴욕지부>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땀을 닦은 뒤 문을 열려 할 때였다.
문이 저절로 열리더니, 안에서 사진 장비를 짊어진 기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들 뒤로 누군가 소리쳤다.
“하나도 빠짐없이 현장 스케치해! 내가 갔는데 농땡이 부리고 있으면 각오들 하라고!”
“예예! 알았습니다요!”
기자들은 입구에 서 있는 남자는 신경도 안 보고 우르르 계단을 내려갔다.
‘뭔 사건이라도 터졌나.’
고개를 갸웃한 남자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여직원이 맞이했다.
그녀는 위아래로 남자의 행색을 훑어내렸다.
이윽고 트렁크에 시선을 멈춘 채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 제가 사람을 찾아왔거든요. 여기오면 볼 수 있다고 해서요.”
“이름이 뭔데요?”
“막스 조요.”
“!”
여직원의 눈이 커질 때, 사무실 끝 어딘가에서 문이 벌컥 열렸다. 이내 한 남자가 머리를 휘날리며 튀어나왔다.
그는 허겁지겁 달려와 손부터 내밀었다.
“모리스 디캠입니다. 총사령관님 손님이셨군요!”
“총사령관이요?”
젊은 남자가 눈을 껌뻑거렸다.
그동안 받은 편지에선 그런 내용이 전혀 없었다. 솔직히 총사령관이 뭘 말하는 건지도 헷갈렸다.
“저기, 제가 아는 사람은 콜로라도 과학잔데요.”
“어, 음. 그분이 좀 하는 일이 많긴 하죠. 아무튼, 성함이?”
“알프레드 노벨입니다.”
모리스 디캠이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막스의 ‘프리덤 에코’ 활용법은 다양하다.
기업 정보 습득부터 시작해서, 자신을 연결하는 창구로도 사용하고 있었다.
“말씀은 들었습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왔죠?”
“맞습니다. 제가 제대로 찾아왔군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노벨이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타이밍이 기가 막히네요. 오늘 그분 결혼식이거든요.”
“예에?”
노벨이 눈을 크게 뜨자 디캠은 자신의 역할을 찾은 듯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안내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요.”
사무실로 뛰어간 디캠이 모자와 코트를 걸치고 다시 나타났다.
“트렁크는 저 주십시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보기보다 무겁거든요.”
“밥값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서글서글하게 웃던 디캠이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젠장, 트렁크에 철을 넣었나.’
“하하, 생각보다 조금 무겁긴 하네요. 일단 내려가시죠.”
“굳이 안 그러셔도 되는데.”
노벨은 미안한 표정으로 디캠의 뒤를 따라갔다.
1층으로 내려온 디캠은 건물 앞에서 지나가는 빈 마차를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더럽게 무거운 트렁크를 보며 디캠이 물었다.
“이렇게 각지고 평평한 트렁크는 처음 보네요. 유럽에서 유행하는 건가요?”
“작년 파리에 갔을 때 샀습니다. 재질도 튼튼하고, 비가 안 새더라고요.”
“그래서 무거운 거군요.”
“그건 아닙니다. 그냥 안에 든 연구자료와 실험 기구가 좀 무거워서 그래요.”
“그렇군요. 그나저나, 오늘따라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빈 마차가 안 보이네요.”
디캠은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고급스러운 장식이 박힌 마차가 다가오더니, 둘 앞에 멈춰 섰다.
창문으로 쓰윽 노신사가 얼굴을 내밀었다.
“결혼식 가는 길이면 타게.”
“감사합니다만, 이분도 함께 가는 길이라서요.”
“보기보다 마차가 크네. 둘 정도야.”
사실 그냥 보기에도 커 보인다.
다른 사람도 아닌 미국 최고의 갑부는 마차 또한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노인이 손으로 마차를 두드리자, 마부가 내려 노벨의 트렁크를 들었다.
그리고는 짐을 마차 위에 올려 고정했다.
덕분에 디캠과 노벨은 편하게 결혼식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가는 도중, 노벨은 노신사가 그 유명한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임을 알 수 있었다.
왕과 귀족이 부의 대부분을 독식하던 시대가 저물고, 평범한 인물이 부자가 될 수 있는 산업혁명의 시대.
그 증거가 바로 밴더빌트였다.
네덜란드의 소작농 아들, 코넬리우스 밴더빌트가 부를 축적한 과정은 유럽 젊은이들에겐 곧 꿈과 희망이었다.
물론 긍정이 있으면 반대도 있게 마련이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부의 쏠림이 결국 노동자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며, 지식인들은 그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외치기 시작했으니까.
공학도인 노벨조차 푸리에,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최근엔 로버트 오웬의 책을 읽어봤을 정도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 때문에 노벨 역시 두 가지의 가치관에서 혼란을 겪고 있었다.
‘밴더빌트를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라니.’
그럴 시간에 차라리 연구를 고민하지.
노벨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들을 밀어두었다. 그러자 이번엔 막스 조에 관한 호기심이 꿈틀거린다.
콜로라도 과학자라고 편지를 쓴 인물이 연방 총사령관이고 밴더빌트가 결혼식까지 참석할 엄청난 존재였으니 말이다.
맨해튼 남동쪽 해안가의 엘드릿지 호텔.
12층짜리 건물을 중심으로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막스는 애초에 조촐한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었다.
뉴욕에 있는 지인들만 초청하려했다.
그런데 점점 그 인원이 늘어나고, 소문이 퍼지면서 오늘처럼 일이 커져버렸다.
만약 기사라도 터졌으면, 더 많은 인파가 몰렸을 터였다.
밴더빌트와 헤어진 디캠은 노벨과 함께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와중에 디캠은 주변을 쉴 새 없이 탐색하며 중얼거렸다.
“뉴욕 주지사와 시장. 저쪽은 NYPD 총국장이고, 오우 대통령 후보와 러닝메이트도 왔네.”
“······.”
신문사 편집장답게 디캠은 걸어 다니는 인물 백과사전이었다.
노벨이 보기에 이곳 뉴욕에서 디캠이 모르는 인물은 없어 보였다.
정치인, 사업가, 고위 관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알수록 막스 조의 신비감은 더해갔다.
트렁크를 낑낑거리며 건물로 다가가자 잔뜩 무장한 자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노벨이 흠칫하자 디캠은 괜찮다며 앞으로 나섰다.
“프리덤 에코 뉴욕지부 편집장, 모리스 디캠입니다. 이렇게 SFBC 대원분들을 만나 영광입니다!”
힘차게 인사한 것과 달리 대원들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래서 어쩌라는 표정이었다.
당황한 디캠이 머리를 긁적거릴 때, 보기에도 위협적인 대원이 앞으로 나섰다.
옷이 터질듯한 근육질의 네이선 로어였다. 그는 못마땅한 눈으로 대원들을 쳐다봤다.
“좀 웃어, 새끼들아. 여기가 전쟁터냐?”
“오늘 같은 날 피 보면 안 되니까 그렇지.”
“그런 얼굴로 있으니까 피를 보는 거야. 다 같이 스마일.”
로어는 인위적인 미소를 지으며 디캠을 바라봤다.
솔직히 대원중 제일 무서웠다.
“저 알죠? 로어.”
“무, 물론입니다. 세븐스트롱 중 한 분이시죠!”
“이젠 아닙니다. 배신자들은 제명했거든요. 앞으론 이글 파이브로 불러 주세요. 아무튼, 옆에 분은요?”
“알프레드 노벨입니다.”
“노벨?”
로어는 유레카를 외치듯 손가락을 튕겼다.
“드디어 왔군요. 우리 보스가 노벨씨를 많이 기다렸습니다. 저랑 들어가시죠.”
‘이젠 또 보스네.’
밴더빌트와 같은 사업가에서 이제는 무장한 자들의 보스다. 과학자에서 시작한 막스 조의 신분은 실시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노벨은 커다란 로어의 등을 보며 건물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결혼식장은 호텔 1층의 대형 컨벤션 홀.
그런데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번쩍거리는 샹들리에와 멋지게 장식된 테이블과 의자. 아름다운 꽃과 화환들이 곁들어진 인테리어는 고급스러움의 절정이었다.
‘왕족 결혼식보다 더하네.’
노벨은 시선을 힐끔거리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렇게 컨벤션 홀을 가로질러 복도에 들어서자, 로어가 활짝 열린 문으로 안내했다.
방 안에는 무장한 대원이 여럿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 말쑥한 턱시도를 입은 남자가 등을 보이며 서 있었다.
“나 괜찮냐?”
“자꾸 물어보지 마요. 귀찮게.”
“이것들이 진짜. 그렇게 꼬우면 니들도 결혼하면 되잖아!”
“누구랑요? 에? 납치라도 할까요?”
“에혀, 능력 없는 새끼들.”
로어가 다가가 그에게 귓말로 속닥거리자 막스 조가 천천히 등을 돌렸다.
‘...... 저자가 막스 조.’
본적 없이 편지만 주고받은 상대와의 첫 만남.
노벨의 심장 박동이 점차 빨라졌다.
미국 내전을 종식 시킨 연방 총사령관.
밴더빌트의 사업 파트너.
그리고 젊은···.
‘동양인!?’
노벨의 눈은 커지고 동공이 크게 출렁거렸다.
그걸 본 막스가 미소를 머금으며 물었다.
“예상했던 것과 다릅니까?”
유럽에서 배로 오는 동안.
노벨은 줄곧 콜로라도에 연구실에 처박힌 백인 과학자를 상상했다.
그런데 뉴욕에 오고부터 예상들이 하나둘 깨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인종까지도.
“솔직히···. 성별 빼곤 맞춘 게 없습니다.”
“내가 여자였으면 완벽했겠군요.”
막스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당당한 눈빛, 자신을 압도하는 거칠 것 없는 태도가 꽤 자연스러웠다.
말 그대로 미연방 총사령관다웠다.
그런 상대의 분위기에 눌려서일까.
인종에 관한 판단을 내릴 틈도 없이, 노벨은 이끌리듯 손을 맞잡았다.
*
“편지에서 언급한 총알입니다. 탄피 안을 흑색화약이 아니라 무연화약으로 채웠죠.”
막스는 직접 총알 하나를 노벨에게 건네줬다.
결혼식장에서 이런 대화를 하는 것도 이상하고, 턱시도 안에서 리볼버가 튀어나온 것도 이상하다.
물론 노벨 역시 평범하진 않았다.
막스가 총알에 이어 작은 유리병에 담긴 무연화약 파우더를 내밀자 온 정신이 그곳에 쏠렸다.
뚜껑을 열고 흑색 파우더를 부어 관찰하려다 슬쩍 막스를 쳐다봤다.
“······ 아무래도 여긴 좀 그렇죠?”
“시간은 많습니다. 내가 올 때까지 이 호텔에 머물고 있으세요, 노벨.”
“아, 신혼여행을 가는군요?”
“멀리는 안 갑니다.”
“근데, 호텔이 상당히 비싸 보이던데. 괜찮을까요?”
“물론 괜찮지요.”
한 인물이 불쑥 나타나며 미소를 지었다.
캔자스 로렌스의 첫 호텔 주인이자, 이 호텔 이름과 같은 셸라 엘드릿지였다.
“총사령관님 손님이라면 일 년 내내 머물러도 됩니다.”
주인은 엘드릿지지만, 막스 역시 절반의 지분을 보유. 사실상 공동 대표였다.
막스는 엘드릿지에게 호텔 체인을 확장하자고 제안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이곳. 맨해튼의 중심이자 훗날 타임스퀘어가 될 곳이었다.
그리고 마침, 얼마 전까지 이곳 땅 주인이었던 자도 모습을 드러냈다.
뉴욕의 부동산 재벌이자 막스에게 관리를 맡긴 토마스 데이비스였다.
일 년 전 유럽으로 이주한다더니 갑자기 뉴욕에 나타난 것이다. 막스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뉴욕은 언제 오셨습니까?”
“며칠 됐네. 자네 결혼식인데 빠지면 되겠나. 그리고 이건 내 선물이네.”
토마스 데이비스가 손짓하자 남자 둘이 가져온 것들을 내려놓았다.
눈에 띄는 건 말을 탈 때 사용하는 마구와 트렁크 가방이었다.
“프랑스에서 자네 부부에게 뭘 줄까 고민하다, 이것저것 사 왔네. 트렁크는 군장 메고 신혼여행 간다는 소문이 돌아서 사 왔네만, 저 친구와 똑같은 거군.”
순간 무연화약 파우더와 총알을 트렁크에 넣던 노벨에게 시선이 쏠렸다.
공교롭게도 토마스 데이비스가 선물한 것과 똑같은 루이비통이었다.
‘트렁크가 진화하면 명품백이 되는 구나.’
트렁크에 이어, 토마스 데이비스가 선물한 마구 역시 범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최근 유럽 귀족들이 사용한다는 티에리 에르메스가 만든 마구였다.
‘명품의 시작이 마구 제작이었다니.’
토마스 데이비스가 준 선물뿐만이 아니다.
며칠 전 밴더빌트가 선물한 피치 머리에 쓰일 티아라는 보석 세공사로 이름을 날린 루이 까르티에가 만든 것이었다.
막스는 눈을 반짝이며 마구와 트렁크를 바라봤다.
명품에는 관심 없지만, 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더욱이 이 시대의 거추장스러운 패션을 탈피하려면 세상이 빠르게 변할 필요도 있었다.
‘언제쯤 츄리닝에 슬리퍼를 신고 다닐 수 있을까.’
이 상태라면 죽기 전까지는 꿈도 못 꾼다.
패션 혁명이 절실했다.
*
신부 대기실을 찾은 케이트 와너가 호들갑을 떨었다.
“내가 아는 에밀리가 맞아?”
“그 소리만 백번도 더 들었어. 내가 평소에 거지처럼 하고 다녔냐? 다들 왜 그래.”
“오늘은 더 예쁘단 소리잖아. 넌 칭찬해도 지랄이니.”
“에밀리 성격이 그렇지 뭐.”
피치 옆에 서 있는 로잔나 피어스의 매그가 입을 삐죽거렸다. 피치, 매그, 와너는 파이브 포인츠 슬럼가에서 자라났던 여인들.
다 같이 모인 건 꼬박 10년 만이었다.
케이트 와너가 피치 주변을 돌며 탄성을 내질렀다.
“근데 이 드레스, 엄청 예쁘다. 근데 너무 파격적인 거 아냐?”
“몰라. 막스가 디자인한 거야.”
“무슨 총사령관이 드레스 디자인까지 하냐?”
이 시대의 드레스는 유럽 왕실이 유행을 선도한다.
공주들이 입는 웨딩드레스가 여인들의 로망이었다. 그런데 피치는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얼마 전.
- 나 웨딩드레스 뭐 입을까?
프러포즈가 끝나고 피치가 물었다.
막스는 어이가 없었다.
- 보통 여자들은 미리 생각해둔 게 있지 않아? 결혼할 때 꼭 입어야겠다 싶은 거.
- 난 못할 줄 알았지. 그게 내 책임이야?
- ······
- 그리고 막스라면, 뭔가 새로운 게 있을 거 같아서 그래. 네가 원하는 걸 입고 싶어. 특별하게!
- 흠. 특별하고 싶다면.
‘······ 한복을 입힐까.’
대충 그려주면 누군가는 만들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막스는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한복 고유의 옷감이 있는데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그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신 전생에 남 결혼식은 많이 가봤기 때문에, 신부들이 입은 드레스는 대충 기억할 수 있었다.
- 기대해. 내가 예쁜 거 만들어 줄 테니까.
그렇게 웨딩드레스를 직접 손으로 그려 미래에도 존재하는 의류 브랜드, 브룩스 브라더스의 디자이너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림을 발로 그렸냐며 핀잔은 들었지만, 찰떡같이 알아들어 작금의 드레스를 완성했다.
그 결과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주도하던 이 시대의 스타일을 완전히 벗어났다.
과하게 부풀린 스커트 대신, 몸매의 굴곡과 어깨가 훤히 드러난 이제껏 볼 수 없던 파격적인 드레스의 탄생이었다.
와너와 매그가 드레스를 황홀하게 바라보던 때였다.
“에밀리. 이제 가자꾸나.”
레드가 들어오더니 환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단단한 아버지의 팔뚝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답지 않게 표정은 긴장으로 잔뜩 굳어 있었다.
레드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신부가 내 딸이라니. 꼭 도둑놈에게 빼앗기는 기분이구나.”
“그 도둑놈한테 전해줄게요.”
“...... 가자.”
딸의 미소를 본 아버지는 피식 웃으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문이 열리고 컨벤션 홀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둘에게 쏠렸다.
이색적인 건, SFBC 대원 전원이 웨딩홀을 채웠다는 사실이었다.
현재 경호는 핑커톤과 NYPD가 맡고 있었다.
막스는 다른 누구보다 대원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진행하고 싶었다. 그 부작용으로 웨딩홀 분위기는 방금까지 꽤 우중충했다.
하지만 피치의 아름다운 모습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보는 이들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아버지 레드의 손에서 막스의 손을 붙잡았을 땐, 환호가 터져 나왔다.
로렌스 보안관과 부보안관.
SFBC의 넘버 원과 넘버 투.
연방 총사령관과 첩보국 부국장의 결혼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돌변한 건 그로부터 30분 뒤.
막스가 아무도 원치 않는, 이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축가를 불렀을 때였다.
“새하얀 드레스~”
- 젠장, 사업하고 총 쏘고 싸움 빼면 잘하는 게 없네.
- 대체 뭔 자신감이야.
-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대.
- 허허. 저 친구에게 저런 면이.
대원들과 하객들의 숙덕거림 속에, 유일하게 미소짓는 건 피치였다.
아무리 음치라고 욕해도, 자신을 향한 사랑의 세레나데가 그렇게 달콤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제네럴 막스조' 호가 조선 앞바다에서 침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