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 신혼여행의 끝에서
- 피치, 우리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까?
-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한 달의 휴가를 조금 더 늘렸지만, 그렇다고 일정이 여유롭진 않았다.
남북전쟁 종식은 되지 않았고, 여전히 소규모 게릴라 전투가 국지적으로 일어났다.
그런 이유로 거리가 먼 유럽은 불가능하고, 미국 내 지역으로 좁혀졌다.
그렇게 결정한 곳은 캐나다 국경과 맞닿은 미국 북동부의 미시간주. 5대호라 불리는 바다처럼 넓은 강이 있는 곳이었다.
여행지는 만약을 대비해 극소수에게만 알려주었다.
출발은 결혼식이 끝난 다음 날.
사흘에 걸쳐 기차를 타고 펜실베이니아를 지나 오하이오주의 클리블랜드에 도착.
둘은 드넓은 이리호를 보며 하루를 보냈다.
“여름에 오면 호수에서 수영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도 가능해. 우리가 누구?”
“SFBC!”
피치가 소리치며 스스럼없이 옷을 벗는다. 그리고는 10월의 차가운 물 속에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그냥 한 말인데, 저렇게 행동이 빠를 줄이야.
‘가끔은 사이코 같단 말야.’
막스도 마지못해 강으로 뛰어들었다.
곧이어 서로 물장구를 치며 깔깔거리는 웃음이 이리호에 퍼졌다.
신혼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타닥, 타닥.
모닥불 앞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홀짝였다. 감성이 충만해진 피치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너무 행복해. 꿈도 이렇게는 못 꿀 꺼야.”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전부 포기하고, 지금 벌어놓은 돈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결심은 쉽지 않았다.
“이런 행복도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안 오겠지?”
“그건 너무 비관적인데.”
막스의 말에 피치는 고개를 저었다.
“비관적인 게 아니라, 현실적인 거야. 그러게 왜 나를 이렇게 늦게 데려갔어. 나이 먹어서 그렇잖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니까. 지금도 로렌스에 있을 때랑 똑같아. 아니, 더 아름다워.”
“체, 어디서 달콤한 말만 배워왔네.”
피치가 몸을 파고들며 말을 이었다.
“내 의미는, 이 이상 바라지 않는다는 거야.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변하는데, 그걸 인정해야 한다는 거지. 나는 너한테 바라는 거 없어. 아니, 딱 하나 있구나.”
“뭔데?”
“나보다 늦게 죽어. 그럼 돼.”
“그건 내가 할 소린데.”
피치는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단 일 분이라도 내가 먼저 죽을 거야. 난 너 없인 절대 혼자 못사니까!”
“...... 생각해 볼게.”
“이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니야. 아무튼, 네가 위험하면 내가 몸을 날리겠어.”
막스는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뭔가 반대가 된 것 같냐.”
“이 세상은 나보다 네가 더 필요해. 아이를 키워도, 네가 더 나을걸? 그런 의미에서, 아이 만들러 가자!”
벌떡 일어난 피치가 막스의 손목을 붙잡았다.
역시 신혼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
오하이오주에서 며칠간 머물고 목적지인 미시간주로 향했다.
가장 큰 도시인 디트로이트에서 하루를 보내고, 휴런호를 보기 위해 또다시 이동했다.
디트로이트에서 포트 휴런으로 향하는 기차는 하루 두 분. 둘은 그랜드 트렁크 노선 기차에 몸을 실었다.
맨 앞에 앉은 둘은 풍경을 감상하는 대신, 여느 때처럼 꽁냥대며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들 눈을 의식하지 않았다.
“막스, 네가 왜 스카프를 두르는 지 알겠어.”
여행 내내 피치도 스카프를 둘렀다.
아무도 둘의 정체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 스킨쉽의 농도는 진해졌다. 커다란 장점이었다.
덜컥.
문이 열리고 한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엉겨있던 둘의 몸이 재빨리 떨어졌다.
소년은 입술 한쪽이 슬쩍 올라가더니, 이내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인생 경험이 풍부해 보이는 소년이 객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삶은 달걀, 과일, 땅콩, 샌드위치가 왔어요!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신문도 왔습니다!”
‘하여간 입만 열면 거짓말은.’
따끈따끈하기는커녕, 때 지난 신문을 팔 게 뻔했으니 말이다.
단체로 교육하는 곳이라도 있는 건지, 열차 판매원들의 멘트는 어딜 가나 똑같았다.
막스는 지나치려 했지만, 피치가 소년을 멈춰 세웠다.
“땅콩하고 샌드위치 하나씩 줄래? 당신은 뭐 먹을래요?”
“응? 나야 뭐.”
딱히 먹고 싶은 건 없었다.
“거기 있는 따끈따끈한 신문 좀 줄래?”
소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신문 한 장을 내밀었다. 크게 인쇄된 종이를 반으로 접은 신문이었다.
막스는 다른 건 제쳐두고 날짜부터 확인했다.
사흘 혹은 일주일이나 차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런데.
‘응?’
인쇄된 날짜는 바로 오늘.
“아침에 인쇄한 거예요.”
“흠.”
‘내가 바보로 보이나. 어디서 사기를.’
막스가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문득, 전생의 기억 깊숙한 곳에서 한 인물이 불쑥 튀어나왔다.
역마다 이어진 전신주로 정보를 수합하고, 이를 기차에서 직접 인쇄해 신문을 팔던 소년.
정보를 이용해 금 시세와 지역 간 물가 차이를 이용해 사업을 했던 소년.
막스는 눈앞에 있는 그 소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자 위협으로 느낀 소년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실수를 깨달은 막스가 상냥하게 물었다.
“우리 친구, 이름이 뭘까?”
대답 대신, 소년은 눈알을 굴려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려 했다.
“신문을 직접 인쇄한 것 같아서 물어본 거야. 역마다 모스 부호로 정보를 취합했을 텐데, 대단하네.”
‘이 사람 뭐야?’
소년의 눈이 커지더니 동공이 흔들린다.
상대가 어떻게 알았는지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어쩌면 자신의 사업을 빼앗기진 않을까도 고민하는 것 같았다.
소년은 눈치도 빠르고, 머리가 비상하고, 신중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름이?”
막스는 소년을 빤히 쳐다보며 집요하게 물었다.
마지 못해 소년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토마스 앨바 에디슨이요.”
*
미시간주에서 남북전쟁 전투는 단 한 차례도 벌어지지 않았다.
물론 전쟁의 여파는 있었다.
징병제로 끌려간 젊은이들이 돌아오지 않아 가족들은 언제나 전쟁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신문은 그들에게 기다림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그때 전 정보의 힘을 깨달았죠.”
에디슨은 막스를 경계하지 않았다.
피치가 물건 절반을 사준 영향이 컸다.
게다가 에디슨은 자신의 사업을 알아봐 준 막스에게 자랑을 늘어놓고 싶었다.
“모스 부호는 언제 배웠어?”
“5년 전, 이 기차를 처음 탔을 때요. 역마다 전신주가 있는데, 그걸 통해서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걸 보고, 와 이게 혁명이구나 싶었다니까요.”
당시 태어나서 처음 기차를 본 에디슨은 그걸 타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해서 판매원에 지원했고, 이를 통해 신문과 정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제가 역에 있는 전신사들과 엄청 친하거든요. 그래서 정보를 받아서 이틀에 한 번씩 신문을 찍어내요.”
놀라운 비즈니스 감각이다.
에디슨은 금, 주식, 전쟁 관련 기사들만 실었다.
기차를 타는 어른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분야만 집중적으로 다룬 것이다.
“이건 비밀인데. 디트로이트와 휴런의 물가가 좀 차이가 있어요. 특히 베리류 과일, 버터 종류는 휴런이 비싸죠. 이걸 주부들에게 팔면 꽤 짭짤해요.”
“너 천재구나?”
피치도 감탄하며 에디슨을 바라봤다.
17살이면 물론 어린 나이는 아니다.
다만 그 나이 때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떠올려보면, 에디슨의 사고방식이 남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까.’
비슷한 사람이 있다.
피치의 시선이 막스를 향했다.
처음 로렌스에 봤을 때 막스가 18살, 피치가 20살이었다.
당시 보더 러피안을 죽이고, 여러 사업들을 성공시켰던 걸 생각하면.
‘우리 남편도 천재!’
역시 천재와 천재는 서로를 알아보는구나.
피치가 반달눈으로 막스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 촉촉한 눈빛을 받은 막스는 내심 뜨끔했다.
‘피치도 두 번 살면 그렇게 돼.’
허탈한 표정을 감춘 막스가 에디슨을 쳐다봤다.
두 번 살아야 따라잡을 만큼 에디슨은 천재다.
그런 천재를 어떤 방법으로 영입할 수 있을까?
“에디슨, 기차 판매원은 언제까지 할 거야?”
“왜요?”
“요즘 벌이가 시원치 않을 것 같아서 그래.”
“...... 어떻게 알았어요?”
“남부 연합이 항복한 이후로 이렇다 할 기사가 없잖아. 특히 전쟁 부분에선.”
에디슨은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전쟁이 끝나가자 부쩍 신문을 사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제가 화학실험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걸 만들 때까지는 거기에 매달릴 생각이에요.”
‘화학실험이라.’
에디슨은 기차에 인쇄기와 화학실험 장비까지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좋든 싫든 판매원은 그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화학 약품 때문에 기차에 불이 붙어 홀라당 타버릴 테니까.
막스가 뭐라 말하려던 때 승객 중 누군가가 불만을 터트렸다.
“나도 땅콩 좀 먹자! 그쪽만 손님이냐!?”
“죄, 죄송합니다!”
에디슨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승객들의 눈총이 따가웠다.
“저,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미안, 너무 오래 붙잡았구나.”
에디슨은 다시 카트를 밀며 통로를 지나갔다.
피치는 그 뒷모습을 힐끔 쳐다보며 흥미로운 듯 물었다.
“네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누가 제일 천재야?”
막스는 노벨과 개틀링 등을 떠올린 끝에 말했다.
“당연히 나지.”
“······ 재수없는데, 남편이라 참을게.”
기차는 두 시간을 더 가서야 포트 휴런 역에 도착했다.
내리기 전, 막스는 에디슨을 찾아갔다.
카트를 정리하던 그에게 막스는 총알을 건넸다.
탄두에 MJ라 새겨있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걸 들고 뉴욕을 찾아 와.”
“뉴욕이요?”
막스는 미소를 지었다.
“마음 놓고 연구하고 싶다면, 뉴욕 ‘프리덤 에코’ 신문사에서 막스 조를 찾아.”
“에밀리에 조를 찾아도 돼!”
피치가 스카프 위로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한테 연구비와 생활비를 대준다는 말인가?’
에디슨으로선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혈기 왕성한 소년이었다. 게다가 처음 본 사람을 믿을 만큼 어리석지 않았고.
에디슨은 총알을 살피던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저한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차에서 내린 부부는 플랫폼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에디슨도 어색하게 손을 들었다.
‘막스 조라 그랬지.’
느릿느릿 카트를 밀고 가던 때.
에디슨은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설마, 그 막스 조?’
문득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올랐다.
에디슨은 카트를 끌고 기차 꼬리 칸에 있는 작업실로 향했다.
인쇄기와 화학 실험기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속. 어딘가에서 며칠 전 신문을 찾아냈다.
[연방 총사령관 막스 조, 뉴욕에서 결혼식을 올리다.]
에디슨은 곧바로 기차에 내려 막스 조를 찾았다.
하지만 플랫폼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역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누군가 에디슨을 불러 세웠다.
“역장님이 찾는다! 당장 가봐!”
에디슨은 주머니 속 총알을 만지작거리며, 아쉬운 듯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사흘 뒤. 휴런호에서 여행을 즐긴 막스와 피치는 다시 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디트로이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사장님은 오전 기차를 탔어요.”
아쉽게도 에디슨은 만나지 못했다.
막스는 이번에도 신문을 구매했다.
그리고 펼친 순간.
입이 쩍 벌어졌다.
[미국 상선, 조선 앞바다에서 침몰!]
‘왓더!’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배 이름도 나와 있지 않았다.
하지만 막스는 직감했다.
‘제네럴 막스 호···.’
“아무래도 신혼여행을 더 길게 갔다 와야겠는데?”
“오, 진짜? 어디로?”
“...... 내 고향 조선으로.”
“!”
신문을 쳐다 본 피치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이번 사건이 막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대선이 한 달도 안 남았는데, 하필 조선에서 문제가 터져? 이건 분명 의도적인 거야.”
“나한테 홧김에 빅엿을 날린 건지. 아니면 정치적인 셈이 있었는지. 뭐가 됐든, 상황이 좋진 않을 거야.”
피치가 입술을 깨물었다.
현재 대선판의 구도는 단순 명확하다.
에이브러햄 링컨(국민연합당) VS
조지 맥클레란(민주당)
공화당은 로버트 리 항복 이후 분열하여 먼지처럼 흩어졌다. 곧 다시 모이겠지만 적어도 이번 대선에선 지리멸렬 수준이었다.
그동안 공격하고 욕했던 존 브라운이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데다, 재선을 포기하고 링컨을 정치적 동반자로 지목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화당이 선거에서 이길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정치는 생물이다.
어제까지 척지던 급진 공화당원들은 당을 박차고 국민연합당에 합세했다.
심지어 존 프레몬트 역시 후보를 사퇴하고 링컨을 지지하기로 했다.
올해 대선은 부통령 링컨과 전직 총사령관 맥클레란의 양자 대결이었다.
“민주당이 이번 사건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겠네. 맥클레란이 전쟁은 못 해도 목소리는 크잖아.”
피치의 말에 막스가 실소를 터트렸다.
사실, 문제는 맥클레란 따위가 아니다.
눈여겨볼 건 그의 뒤를 떠받치는 민주당과 남부와 연결된 커넥션.
이를테면, 골든 써클 기사단과 남부 프리메이슨.
혹은 WASP 집단들이었다.
이번 대선에 그들이 총동원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조선이 내 아킬레스건이라 이건가.’
턱을 매만지던 막스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어차피 이번 대선은 링컨이 이길 거야. 내가 적들 손에 놀아나진 않을 테니까.”
“그럼, 그럼. 우리 남편은 통수 전문가잖아.”
“······ 칭찬이지?”
“그럼, 그럼.”
해맑게 생글거리던 피치는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조선 가면 내가 인사할 사람들 있어?”
“아니, 난 고아야. 가족은 없어.”
“그렇구나. 은인은?”
“은인?”
이막산 기억 어딘가에 그런 인물이 있는 것도 같다. 아니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 어이구, 막산아, 막산아! 내 군말 말고 포졸들이 닥치기 전에 먼저 가라고 하지 않았느냐!
- 절대 혼자는 못 도망가요! 차라리 어르신과 함께 죽겠어요!
- 노비문서 다 불태웠으니까, 어서 가거라! 넌 더이상 우리 가문 사람이 아니다!
‘가라면 냅다 갈 것이지.’
이막산 기억을 뒤적이면 늘 이렇다.
고구마 몇 개는 삼킨 듯 답답함이 몰려온다.
아무튼, 이막산을 어릴 적부터 키워준 주인, 아니 그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없어. 챙길 사람도, 만날 사람도 없어.”
“그렇구나. 우리 남편, 외롭게 자랐네.”
“외롭긴. 어려서부터 일만 죽어라 했는데.”
“······”
조선 노비의 삶이 그렇다.
그나마 주인 잘 만나서 그렇지, 악랄한 놈이었으면 맞아 죽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고 보니까 이막산이나 흑인 노예랑 다를 게 없네.’
갑자기 피치가 말없이 꼭 안아주었다. 그리곤 등을 토닥였다.
‘뭔데, 울컥하냐.’
*
막스와 피치는 뉴욕이 아닌 워싱턴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신문을 통해 대략적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민주당 대선 후보 맥클레란, 조선 강력 규탄!]
[자국 상선이 침몰하는 동안, 총사령관 결혼식 올려.]
[총사령관은 여전히 허니문 중. 혹시 조선으로?]
민주당과 결탁한 언론은 강력한 대선 후보 링컨을 공격할 명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크든 작든, 대중에게 먹히든 말든. 그 틈을 쑤시며 연일 맹공을 퍼부었다.
워싱턴 백악관.
수척해진 존 브라운이 웃음을 지으며 막스와 피치를 맞이했다.
“결혼식에 참석 못 해 미안하네.”
“대통령께서 올 상황은 아니었죠. 선물은 잘 받았습니다.”
존 브라운은 막스와 피치 이름이 새겨진 화려한 보위 나이프를 선물했다. 둘의 취향을 고려한 선물이었다.
“이해해줘서 고맙네. 둘을 보니, 나까지 행복해지는 기분이구만.”
피치가 1층에서 커피를 마시는 동안,
존 브라운과 막스는 집무실에서 은밀한 대화를 나눴다.
“이번 사건 때문에 얼굴이 이런 건 아니네. 어차피 결과에 큰 영향은 없을 테니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만, 대선이지 않습니까. 표를 갉아먹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테니까요.”
존 브라운이 재선에 도전했다면 승리는 백 퍼센트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링컨은 상대적으로 지지기반이 탄탄하지 않았다.
“압도적으로 이기지 못하면, 전후 재건이 쉽지 않을 겁니다. 민주당은 다음 선거를 위해서라도 남부의 표를 가져오려 할 테니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워싱턴 상황은 어떻습니까?”
대답을 고민하던 존 브라운이 어렵게 입을 뗐다.
“조선에 당장 보복하라고 난리네.”
“당연히 그렇겠죠.”
제국 열강들이 판치는 시대.
힘이 곧 법인 이 시대에 대충 넘어가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 그 순간 미국의 영향은 줄어들고 다른 열강들에 밀릴 테니 말이다.
일본 시모노세키해협. 맥두걸이 USS 와이오밍 함선으로 무쌍을 찍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국 상선이 공격당했다면, 보복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막스는 존 브라운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제가 조선에 가보겠습니다.”
“총사령인 자네가 직접 말인가?”
갔다 왔다, 일 년이다.
“제가 여기 있어 봐야 말들만 무성할 겁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물고 늘어지겠죠. 그렇다고 총사령관직을 내려놓고 싶진 않습니다.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을 임시로 내세우는 건 어떻습니까?”
어차피 막스는 총사령관을 그랜트에게 넘겨줄 생각이었다.
존 브라운은 턱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자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았네. 조선과 자네를 엮는 건 억지에 불과하지 않은가? 괜히 휘둘릴 이유는 없네. 어찌 됐든, 자네 조국 아닌가?”
“휘둘리는 게 아닙니다. 또한 양 국가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막스를 바라본 존 브라운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미 생각을 끝낸 듯 확고한 표정이었다.
“내가 뭘 도와주면 되나?”
“보름 안에 함선 열 척. 무장은 제가 시키겠습니다.”
“!”
경악하는 존 브라운을 보며, 막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의 조선은 부숴야 문이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