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4화 (254/360)

#254 지금이 적기인가

조선에 가기 전.

막스는 주변 정세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유럽 열강, 영국과 프랑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뉴욕 처가에 잠깐 들른 막스는 곧바로 매그를 찾아갔다.

로잔나 피어스 빌딩.

1층 ‘로잔나 레스트랑’ 옆 계단을 오르자, 사무실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RP research company.

회사 CEO는 본래 건물 주인이었던 갈루스 매그.

주 업무는 국내외 정보 수집으로 뉴욕에 거미줄처럼 퍼진 전신망이 이곳 빌딩과 연결되어 있었다.

범법자들이 머물던 악명높은 여관이 리모델링을 거쳐 완벽한 회사로 탈바꿈한 것이다.

문을 열자 막스를 발견한 직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엇, 총사령관님!”

“여행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덕분에요. 전 신경 쓰지 마시고 하던 일 하십시오.”

막스가 입구에 놓인 ‘RP 매거진’ 10월호를 집어 들었다.

표지는 링컨과 존 기어리의 얼굴이 박혀 있었다.

잡지를 챙긴 막스는 미소를 지으며 직원들을 지나쳤다. 이때 안쪽 사무실 문이 열리며 매그가 나타났다. 그녀가 막스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허니문이 벌써 끝났나요?”

“시간이 총알 같더라고.”

*

제네럴셔먼호는 사건 발생한 지 한 달이 되어서야 미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정보의 출처는 영국.

이 시기 세계에서 가장 정보가 빠른 국가는 단연코 영국이었다.

인도와의 송신이 무려 40일이나 걸렸기 때문에 영국은 전신이 발명되자마자, 그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다.

그 때문에 영국은 유럽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시아 쪽에 전신망을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었다.

조선과 일본에서 벌어진 일들이 중국 상해에 보고되고, 이런 정보들은 전신망을 통해 빠르게 영국으로 수집되었다.

RP 리서치 컴파니는 영국령인 캐나다 쪽 전신망을 수시로 활용하고 있었다.

여전히 느린 속도지만 그나마 미국 내에선 빠른 축에 속했다.

“조선에 관한 건 신문 기사가 전부에요. 워낙 폐쇄된 나라라 영국도 별수 없더라고요.”

“일본은?”

“두 달 전, 일본 해협에서 전투가 벌어졌대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우리 미국 함선들이 쑥대밭은 만들었다더군요.”

시모노세키 2차 전투.

일년 전, 일본 조슈 번이 마구잡이로 유럽 상선들을 공격했다. 그 대가로 미국 USS 와이오밍호에게 얻어터지더니, 이번엔 집단 린치를 당한 셈이었다.

“매그, 조만간 내가 조선을 가거든. 그 전에 중국과 일본에 열강들이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조약을 맺었는지 정보 좀 수집해 줘.”

“조선을 직접 간다고요?”

“그렇게 됐어. 여기 있어 봐야 공격만 당할 테니까.”

“대선 끝나면 잠잠해질 텐데. 고작 한 달이라구요.”

과연 그 한 달로 끝이 날까.

막스는 고개를 저었다.

“선거가 끝나도 남부인들은 여전히 날 증오해. 그리고 워싱턴엔 그들과 동조한 정치인들이 수두룩하다고.”

그들에게 막스란? 보이면 짜증나고 건들고 싶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가능한 안 보이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이는 작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상 막스가 조선을 가는 건, 지금의 직위. 총사령관의 권한을 쥔 상태에서 조선과 일본을 움직이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조선의 왕이 나를 만날 이유가 없지.’

*

뉴욕 이스트만 하버의 사우스 스트리트.

이곳에는 막스가 지은 의류, 공산품 제조 공장이 들어서 있고 중심에는 7층짜리 SFBC 대원들의 숙소가 있었다.

콜린은 술집 바운서처럼 흔들 의자에 앉아 시가를 물고 있었다.

“신혼여행은 잘 다녀왔어?”

“그럭저럭요. 그나저나, 애들이 하나도 안 보이네. 다들 어디 갔어요?”

“미팅갔어.”

“미팅? 누구랑 뭔 미팅을 해요?”

“여자랑, 결혼하려고. 다들 필사적이야.”

“······”

막스는 할 말을 잊은 듯 잠시 하늘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조선인들은 어딨어요?”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 마침 점심시간이네. 가 보자고.”

콜린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둘은 동쪽에 있는 공산품 제조 공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니까 총사령관이 여기 무뢰배들을 작살냈다는 거야?”

“말도 마. 파이브 포인츠에 있는 갱단 대부분이 사라졌으니까.”

조선인과 중국인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복장은 여느 노동자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세 명의 조선인 중 한 명만 어설프게나마 중국어를 했고, 나머지 둘은 빵과 수프를 먹는 데만 열중했다.

“그나저나, 너넨 좋겠다. 동족이 총사령관이라 많이 챙겨줄 거 아냐?”

“글쎄, 아직 한 번도 못 봤어.”

“곧 보겠지. 솔직히 나도 멀리서만 봤어. 총사령관 보기가 어디 쉽나. 아무튼, 우리끼리라도 잘 뭉쳐야 해. 그래야 이 땅에서 우릴 우습게···.”

중국인이 입을 쩍 벌린 채 말이 없다. 그 시선을 따라 조선인도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말쑥한 차림의 동양인, 아니 조선인이 서 있었다.

‘저자가 미국의 대장군!’

담담하지만 깊이 가라앉은 눈빛.

굳게 다문 입이 열릴 땐, 중국어가 흘러나왔다.

“你觉得聚在一起就不会小看了吗(뭉치면 우습게 안 볼 것 같아)?”

“······.”

막스는 중국인에게 미국에 언제, 누구와 왔는지 영어로 물었다.

알아듣지 못한 중국인이 멍한 눈으로 대답하지 못했다.

중국어로 다시 묻자, 그제야 웃으며 3년 되었다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막스는 조선인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엔 그의 입에서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예, 예!”

셋은 튕기듯 일어나 막스의 뒤를 따라갔다. 중국인들은 부러운 듯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공장 회의실.

탁자에 앉은 셋은 신기한 듯 막스를 쳐다봤다. 중국인들에게 들은 전설 같은 이야기가 더해져, 어쩐지 등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막스 조다.”

백인들 틈에서 대장군이 된 막스 조.

그 전설이 눈앞에 앉아 있다.

세 명은 눈을 반짝이며 막스를 쳐다봤다.

막스는 그들의 신상을 물었다.

“진주에서 온 유정석입니다. 25이구요.”

“부안에서 온 이장열, 23입니다.”

“제주 서귀포 이공윤. 22입니다.”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국에 온 이유를 물었다. 맥두걸 대령에게 들은 것과 같았다.

농민 반란에 휘말려 부모가 죽고, 겨우 목숨만 건져 중국으로 도망쳐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그러다 상해의 미국 총영사관이 이들을 맥두걸에게 소개해주었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이들은 성공과 실패가 막스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시키는 일은 뭐든 잘할 자신 있습니다!”

“맡겨만 주시옵소서, 대장군!”

“대장군은 무슨.”

막스는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셋이 알아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거다. 그럼 앞으로 나를 만날 일은 없겠지.”

“그건 아니되옵니다, 대장군!”

막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 두 번째. 지금처럼 내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거야. 단, 셋이 떨어져서 생활해야 한다.”

“굳이 그래야 합니까?”

막스는 당연하다는 말을 이었다.

“뭉치면 힘이 되는 게 아니라, 아는 게 힘이다. 이 나라에서 살 생각을 했으면, 이 나라에 스며들어야지. 참고로 아까 중국인은 여기 온 지 3년이나 됐어.”

그런데도 영어를 못 알아듣는다.

“집단에 속하면 마음이야 편하겠지. 단, 발전은 없고 익숙한 것만 추구하게 된다. 가장 쉽고 빠르게 성공하는 방법이 뭔지 알아?”

“······.”

“고향에서 했던 아편, 매춘, 도박장을 차려 타지에서 동족을 등쳐먹는 일이다. 지금 중국인들이 하는 짓이야.”

그렇게 만들어진 차이나타운은 사실상 다른 나라에 세운 소(小) 중국 자체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세 번째 선택지는. 앞으로 이곳에 올 조선인들을 위해 기틀을 만드는 일이야.”

“기틀이요?”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언어는 물론 생활할 수 있는 지식을 알려주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 너희들이 그 일을 맡는 거야. 능력이 되는 한 내가 밀어줄 생각이다.”

유정석, 이장열, 이공윤.

이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목표가 생겨버렸다. 총사령관이 돕는다면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를 벗어나 인생을 걸어볼 만한 일이었다.

“하겠습니다!”

“몇 번째를?”

“세 번째요! 동족인 조선인들을 위해 배우고 지식을 쌓겠습니다!”

“일도 해야지. 세상엔 공짜가 없으니까. 주경야독.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죽도록 공부해서 영어부터 습득해. 그게 당장 할 일이다.”

조선의 농사꾼 자식들이 어디 제대로 된 교육이라도 받았겠는가. 배움의 갈증조차 사그라질 때, 낯선 땅에서 그 갈증을 채우게 됐으니.

‘반드시 해내고 만다!’

셋은 비장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막스는 내심 흡족해하며 화제를 바꾸어 물었다.

“지금 조선의 상황이 궁금한데. 아는 사람?”

가장 나이 많은 유정석이 입을 열었다.

“일단 개판입니다.”

“그건 나도 알아. 구체적으로?”

“탐관오리는 득실거리고 심지어 죽은 자에게까지 세금을 징수하니. 단언컨데, 조선은 망국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동감이다. 민생은 그렇다 치고. 왕은?”

“선왕께서 붕어하시고, 흥선군 이하응의 차남 익성군이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익성군이 고종이고 나이는 불과 12살.

“그 나이에 나라를 어찌 이끌겠습니까. 사실상 조정의 실세는 흥선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민비는?”

“민비요? 그게 누굽니까?”

‘민비를 몰라?’

“고종의 즉위가 언제였지?”

"고종이요?"

"아니, 그 익성군 말이다."

“작년입니다.”

“!”

민비가 왕비로 간택되기 전이었다.

‘미국보다 조선 역사를 더 모르다니.’

사실 죽은 동료 에릭이 아니었다면, 미국 역사 덕후가 될 일도 없었다.

만약 아무것도 모른 채 서부로 떨어졌다면 시작점은 캔자스가 아닌 캘리포니아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민비는 없고, 고종은 이제 즉위한 지 일 년 된 13살 소년.

‘지금이 가장 좋은 때인 것 같은데.’

그날 저녁.

막스는 SFBC 대원을 집결시켰다.

피치도 예외는 아니었다.

본격적인 말을 꺼내기에 앞서.

네이선 로어가 인원 보고를 시작했다.

“총원 275. 사고 2, 열외 무! 현재원 273명. 이상 인원보고 끝!”

“쉬어.”

사고 2는 전쟁 초반 죽은 윌리엄 던킨과 찰스 에버튼. SFBC가 그들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단상에 선 막스는 대원들을 훑어보며 입을 뗐다.

“늦었지만, 그동안 다들 고생했다. 무리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나를 믿고 따라줘서,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전쟁 얘기야, 결혼식 얘기야?

- 무리한 지시라는 걸 보면, 프러포즈 아냐? 열기구로 쌩쑈 했잖아.

막스는 대원들의 다채로운 표정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전쟁은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에 불과하다. 더 위험할 수도 있고, 어쩌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더 빠르고, 더 교활하고, 더 강력한 총잡이들의 등장. 그런 무법자들이야 말로 SFBC의 가장 큰 위협었으니.

“지금보다 우린 더 강해져야 한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뒤죽박죽된 광기의 시대에, 믿을 건 나와 동료, 그리고 가족밖에 없다.”

막스는 눈에 잔뜩 힘을 주어 대원들을 바라봤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내겐 SFBC 대원들이 곧 가족이다. 그리고 가족이라면 어디든 함께 해야겠지.”

- 겁나 뜬금없네.

- 뭔가 밑밥까는 것 같은데.

“······ 조용. 아무튼, 조만간 내가 가야 할 곳이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가족 전부를 데려가진 못한다.”

- 난 무조건 빠진다.

- 조선이야, 조선. 백 프로라고!

“일단 선착순 백 명···.”

“전 가겠습니닷!”

말이 끝나기도 전, 피치가 총알같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 어우, 눈꼴시려.

- 제발 둘이 가라고!

- 짜고 치는 거야. 빤해.

다들 꿈쩍도 하지 않자, 막스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착순 백명을 받을 생각이었지만, 과열 경쟁을 우려해 미리 리스트를 작성해 두었다. 내일 오전에 1층 로비에 붙여둘 테니, 준비할 수 있도록.”

장내에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다음날, 명단을 확인한 히콕과 코디 그리고 일부 대원들이 몸을 부들거렸다. 그들은 갔다온 지 한 달 만에 또다시 태평양을 떠다녀야 했다.

뉴욕항에 속속들이 함선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남군에게 압수한 무기들이 배에 실리고, 막스는 함장들과 연일 회의를 열어 무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막스는 틈틈이 알프레드 노벨과 다이너마이트 개발에도 속도를 올렸다. 사실상 머릿속 지식을 조금씩 풀어 결과치를 만들어내면 되는 일이었다.

- 총사령관님은 진정 천재로군요.

그동안 노벨을 괴롭혔던 온갖 난제들을 막스가 해결해주니, 일주일 만에 특허신청을 할 수 있었다.

- 내가 없는 동안 콜린이 도와줄 겁니다.

- 부디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콜린은 대원 백명과 뉴욕에 남고, 네이선 로어는 대원 70명을 이끌고 링컨과 존 기어리 경호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대선 사흘 전.

나머지 SFBC 대원이 막스와 함께 함선 열 척에 올라탔다.

이 소식이 일제히 언론에 보도되어 대선판이 요동쳤다.

[총사령관, 함선 열 척을 이끌고 조선으로 진격!]

총사령관의 의도가 무엇이든.

조국을 향해 칼을 겨눈 막스의 결기가 대중에게 전해졌다.

비난과 비판, 의혹을 쏟아 붓던 기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동안 신나게 떠들던 맥클레란도 연설 도중 잠시 침묵을 했을 정도였다.

끼룩, 끼룩.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석양.

갑판 앞에서 이를 넋놓고 바라보던 피치.

그 뒤에서 슬며시 껴앉는 막스.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려 봐.”

대원들의 욕이 들려와도 둘은 꿋꿋이 허니문을 이어갔다.

그렇게 육 개월을 남아메리카를 돌아 태평양을 건너 마침내.

"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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