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6화 (256/360)

#256 을축양요 사건

[제너럴막스조호의 선장과 승무원은 우리 미국의 시민이요, 배에는 영국의 선교사께서 승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당신들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었으니, 무슨 이유로 그분들을 죽였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들은 아마 통상에 거절하거나, 법률을 어겼기 때문에 공격했다고 말씀하시겠지요.

하지만 당신들은 중국과 일본의 배가 들어왔을 땐 감히 그들을 공격하기보단 본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나라 상선을 그들처럼 대우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우리나라 상선이 성조기를 내걸었음에도, 우리는 이 사실을 중국으로부터 듣게 되었습니다.

당신들이 이 사건을 은폐하려 한 점은 전혀 이해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 해역에서 당신들의 배가 침몰했다면, 실수든 고의든 이 사실을 즉시 알렸을 것입니다.

추가로 ‘막스 조’는 우리나라의 총사령관이자 전쟁 영웅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새겨진 배를 침몰시킨 건 중대한 모욕이자 우리를 조롱거리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본 함장은 제네럴막스조호 침몰 사건의 진상 조사와 그들이 이루지 못한 조선과의 통상을 이루고자 하니 끈기 있게 답변을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막스가 작성했지만, 대니얼 비 리지리 함장 이름으로 보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장에서 조선 조정은 분명한 입장을 적어 보내왔다.

[갑자년에 당신들 나라의 상선 두 척이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부까지 올라와 통상을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난파되거나 조난당한 배를 모른 척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들 나라의 상선은 평양에서 우리 백성을 공격하고 납치하고 약탈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나라가 있다는 것은 법이 있다는 것이고, 이는 백성들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원칙대로 그들을 제지했고, 이 과정에서 당신들의 상선이 침몰한 건 백성들의 분노가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되려 우리는 유유히 바다를 빠져나간 또 다른 배 한 척을 격퇴하지 못한 게 한스러울 뿐입니다.

통상의 경우, 우리나라가 바닷가의 한구석에 있는 작은 나라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일입니다.

백성들은 가난하고 물건은 변변치 못합니다.

금, 은, 주옥은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국내 소비조차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조차 당신들 나라와 유통하여 자원을 고갈시킨다면 이 조그마한 강토는 위기에 빠져 보존되지 못할 것입니다.

더구나 나라의 풍속이 검박하고 기술이 조잡하여 한 가지 물건도 당신들 나라와 교역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통상을 요구하는 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막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있던 피치가 옆구리를 찌르며 속삭였다.

- 여기서 수긍하면 안 되잖아.

- 어? 어. 그렇지.

막스는 헛기침하며 편지를 내려놨다.

주위엔 중국 주재 총영사 앤슨 벌링게임과 와이오밍 함장 맥두걸도 있었다.

“맥두걸 대령, 편지에서 언급한 또 다른 상선이 남부 연합의 배가 맞습니까?”

“섀넌도어호가 맞습니다. 제임스 와델 선장이 제너럴막스조호 선장과 중국에서 접촉했고, 동시에 출항한 것도 확인했습니다.”

“그 배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아프리카에서 우리 연방군이 추적 중입니다.”

막스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남부 연합이 막스에게 빅엿을 선물한 게 사실로 밝혀졌다.

“제너럴막스조호도 무장한 상선인데, 섀넌도어호까지 거들었으니 자신감이 넘쳤겠지요. 아마 안하무인으로 행동했을 겁니다.”

‘그럼 내 이름이나 내걸지 말던가.’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답장대로라면 조선은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억울한 거 따지면 한도 끝도 없지.’

어차피 예상은 하고 왔다.

사건의 진상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계획대로 갑시다.”

“옙!”

처음에 결사반대했던 중국 총영사 앤슨 벌링게임은 담담한 얼굴이었다.

그는 현재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제국주의적 무력 정책을 좋아하지 않는 인물이다.

중국 아편전쟁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며, 앤슨은 나름의 외교 정책을 확고히 설정했다.

협력적 정책으로 상대국의 개혁을 돕고, 내정은 일체 간섭하지 않는 신뢰의 관계로 발전시키는 방법을 선호했다.

그 때문에 처음 총사령관의 계획을 들었을 때, 앤슨은 무력을 사용한 조선의 강제 개항을 반대했다.

그런데 막스가 답하길.

- 여는 건 무력의 힘이지만, 통상조약은 앤슨 영사관이 작성하면 됩니다. 미국과 조선이 우호 관계를 맺고 발전을 이룩한다면 시작은 삐걱거려도 해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막스는 별도의 서류를 앤슨 총영사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몇 번을 확인한 끝에 막스에게 물었다.

-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조선 왕실이 거절할 이유가 없겠군요.

- 중요한 건 그 내용을 전달하기까지 과정이지요.

-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최상의 권력자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요.

해서 현재 벌어지는 일들은 조선 최고 권력자를 만나기 위해 길을 트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답신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막스는 조선을 공격하기로 했다.

선발대로 갔던 USS 콜로라도호 함장 에드워드 바렛 소령이 지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총사령관님 말씀대로, 이곳 세 군데에 조선군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도성으로 가는 수로는 수심이 낮은 곳만 피하면 충분히 갈 수 있습니다.”

“그럼 바렛 소령은 함선 다섯 척을 이끌고 도성으로 향하십시오. 그들이 묻거든 조선 구경 왔다고 하십시오.”

“어, 음. 그게 통할까요?”

막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조선이라면 충분할 겁니다.”

“······ 알겠습니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가 그렇게 함선을 이끌고 도성인 한양까지 올라갔다.

외인을 막아야 할 관료들이 수수방관하여 길을 터주니 도성까지 쉽게 진입할 수 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일이 벌어졌다.

미국 함선 다섯 척이 영종도에 들어서자 화들짝 놀란 김포 군수가 목적을 물었다.

바렛 소령은 ‘조선을 구경하러 왔다’고 대답했다. 더불어 식료품이 필요하다며 구매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그러자 조선 관리들의 노력으로 소, 닭, 달걀 등을 김포와 부평에서 전달받을 수 있었다.

‘······.’

바렛 소령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강가에 구경꾼들이 몰려들고 적개심이 아닌 호의적인 태도로 손을 흔들기까지 했다.

‘······ 쇄국은 정치인들의 뜻인가.’

바렛이 도성으로 향하는 동안, 막스는 본격적인 공격에 들어갔다.

“도성으로 향하는 출입로만 확보하면, 일단 물리적인 문은 여는 셈입니다. 그러니 이곳부터 점령합시다.”

강화도 방어진중 하나, 영종진이 1차 타겟이다.

리지리와 맥두걸 대령은 함선들을을 이끌고 영종진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콰아앙!

영종진 성곽과 관아에 포탄 세례를 쏟아부었다.

때는 1865년 5월 12일.

조선 역사를 뒤흔든 을축년에 벌어진 을축양요의 시작이었다.

조선군의 방어를 무력화한 뒤, 함선 세 척에서 해병들이 상륙. 그 수가 1천 5백이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가 이백 명을 상륙시켜 점령한 것에 비하면 무려 4배가 넘는 병력이다.

조선으로선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남북전쟁으로 다져진 군인들은 총검을 앞세워 성곽으로 돌진했다.

강화도는 위치가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전장식 소총인 화승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있었다.

사실 화승총도 성능이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상대는 운 나쁘게도 후장식에 볼트액션 라이플로 무장한 미군이었다. 전장식에 뇌관만 채택한 프랑스의 소총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성곽과 포대가 무너졌다!”

“적 지휘부까지 진입하라!”

미군은 단숨에 지휘 본부인 태평루까지 장악해 영종도 일대를 무력화했다.

“다음은 강화도다! 1대대는 이곳을 사수할 수 있도록!”

함선에서 내린 개틀링 기관총 3문이 성곽에 배치되고, 이를 이 백여 명이 지키게 되었다.

곧이어 함선은 강화도 초지리로 진입.

또다시 성벽을 함포 사격으로 초토화했다.

엄청난 화력을 퍼붓자 조선군은 놀라 도망가고, 미군은 어렵지 않게 강화도에 상륙할 수 있었다.

“나머지는 강화해협을 타고 다음 목표물을 제거한다!”

소수 병력을 상륙시킨 뒤, 해협을 타고 향한 곳은 갑곶진.

이곳 역시 성벽에 화력을 퍼부으니 변변한 저항도 못 한 채 강화성과 문수산성까지 점령할 수 있었다.

“강화도는 주요 거점지역이다! 이곳을 사수할 수 있도록!”

함선 다섯 척에서 내린 병력이 강화도를 장악. 이때가 되어서야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함선이 유유히 강화도 해협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중 프랑스 함선 한 대가 육지로 바짝 다가온다. 그리고는 백여 명의 병력이 상륙을 시도했다.

‘저 자식들이 또 뭘 훔쳐 가려고.’

세계적인 문화재 약탈꾼.

프랑스 군대는 강화도 일대를 어슬렁거리며 훔칠 것들을 탐색할 것이다.

남 좋은 일 시켜주려 벌인 일이 아니다.

막스는 곧바로 히콕을 불러들였다.

“프랑스 놈들이 선수 치기 전에, 대원들을 이끌고 고문서 서고를 찾아.”

“서고?”

“포로에게 외규장각으로 안내해달라 그래.”

“그렇게 발견하면?”

“챙겨야지. 혹시 프랑스 놈들이 민간인들을 겁탈하고 약탈하거든 합의 위반이라고 해. 함장들과는 협의가 됐으니까.”

이번 조선 정벌의 목적은 통상조약을 위한 일.

각국 제독들과 합의하길, 민간인 약탈과 살인은 금지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들이 이 말을 지킬지는 의문이었다.

히콕은 SFBC 대원들을 포함한 군인 오백과 포로 셋을 대동한 채 강화읍으로 향했다.

몇 시간 뒤.

한강으로 진입한 함선들은 수심이 얕아 더는 전진할 수가 없었다.

뒤따라오던 영국 함선이 5척, 프랑스가 3척, 네덜란드가 3척은 미국 함선을 따라 강에 멈춰선 채 포구에 포탄을 장전하기 시작했다.

도성까지는 불과 4km 지점.

리지리 대령이 소리쳤다.

“경고 사격 이후, 전 함선은 북쪽을 향해 함포 사격을 시작하라.”

강변에 구경꾼들을 내쫓기 위해 초반 몇 발은 사람들이 없는 곳을 향했다.

펑! 펑!

콰아앙!

땅에 떨어진 포탄이 물과 땅에 떨어지며 굉음을 터트렸다.

구경꾼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곧이어 그들이 있던 자리에 포탄 세례가 퍼붓기 시작했다.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퍼지기도 전, 조선 중심부에 커다란 변고가 생긴 것이다.

이날 한양에 있던 양반들은 짐을 챙겨 도망가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

조선 한양의 운현궁.

흥선대원군은 불과 보름 전 경복궁 중건 계획과 조선 팔도에 퍼진 서원 철폐로 인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서양 이앙선이 강화도에 출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더니, 이제는 맑은 하늘에 천둥이 내려치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기이하도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어찌 천둥이 치는가.”

“그러게나 말입니다. 하늘의 변덕이 심상치가 않군요, 대감.”

흥선대원군은 영의정 김병학과 한 장의 편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양인들을 돕는 걸 천주교 신부들이라 오해하고 있었다.

“이 필체를 보아하니 어설프게 우리 말을 배운 외인들이 대신 써준 듯하오.”

“이 나라에 이상한 종교를 퍼트리더니, 결국 오랑캐들과 결탁해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는군요. 반드시 이 땅에서 그들을 몰아내야 할 것입니다.”

“안 그래도 베르뇌 주교를 만나려 했으나, 감히 그자가 만남을 거부하지 않았겠소. 내 그동안 러시아 때문에 프랑스를 이용하려 했으나, 더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소.”

러시아는 영국과 경쟁하기 위해 남하 정책을 펼쳤다. 위기를 느낀 흥선대원군은 마침 국내에 머무는 천주교 신부들을 통해 프랑스의 힘을 빌리려 했다.

그런데 얼마 전 통상을 요구한 뒤로 러시아는 조선을 찾지 않았다. 흥선대원군은 그들이 조선에 흥미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최근엔 유림들이 유교를 더럽히는 천주교를 탄압하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왕권을 강화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그들의 요구에 응답할 필요가 있었다.

“미리견(미국)과 같은 서양 오랑캐가 우리 조선을 이리 업신여기니, 청과 이를 논의해야지 않겠습니까. 그들 역시 천주교 때문에 나라가 어지러우니 말입니다.”

“지난번 그들의 상선이 침몰했을 때도 편지를 보내지 않았소. 청은 우리의 입장을 이해한다 했으나, 그렇다고 어떤 해법을 줄 수는 없을 거요. 결국 우리의 힘으로 오랑캐들을 물리치는 수밖에 없다는 소리지요. 그나저나.”

‘밖은 왜 이리 소란스러운가.’

적막하기 짝이 없던 운현궁에 발소리가 어지러이 들려온다. 흥선대원군이 미간을 찌푸릴 때, 밖에서 하인이 소리쳤다.

“대감! 큰일 났사옵니다!”

“무슨 일이냐!”

“한강 위에 있던 흑선들이 우리에게 불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불?”

흥선대원군과 김병학은 사색이 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문을 박차고 하인에게 말했다.

“전하를 뵈러 가야겠다.”

“준비하겠습니다!”

흥선대원군과 김병학은 왕이 머무는 그리 멀지 않은 창덕궁으로 향했다.

어전 회의가 열린 창덕궁 흥복헌.

속속들이 들려오는 보고들은 탄식이 흘러나오는 소식들 뿐이었다.

“오랑캐들의 깃발을 보건데, 영길리(영국), 미리견(미국), 법국(프랑스), 화란(네덜란드)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사옵니다!”

“적들이 함선에서 육지로 상륙했습니다!”

“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기들로 인해 우리 병사들은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옵나이다!”

리지리 대령은 상륙하자마자 박격포와 개틀링 기관총 3문으로 접근 자체를 불허하며 오히려 진영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차라리 통상에 응해야지 않겠습니까?”

“청과 일본이 버티지 못한 것도 결국 이런 일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당치도 않은 소리요. 눈앞의 위험을 피하려 통상에 응했다간, 이 나라 온 강토가 적들의 손에 망가지고 훼손될 거라는 걸 진정 모르고 하시는 소립니까?”

“그럼 이렇게 버틴다고 될 일입니까?”

어전 회의에 참석한 흥선대원군은 동요하는 대신들처럼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였다.

더욱이 강화도까지 점령당했다는 소리에는 여느 대신들처럼 불안과 공포를 느껴야 했다.

“강화도를 빼앗겼으니, 오랑캐들에게 문을 열어준 셈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지금 의정부에서 병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며칠 있으면 병력을 무장해 그들과 일전을 벌일 수 있을 것입니다.”

“병조판서의 말대로 된다 한들, 그 며칠을 버틸 수나 있단 말입니까?”

‘이럴 때 비변사가 있었어야 했는데.’

일부 대신들이 흥선대원군을 힐끔거렸다.

비변사는 삼포왜란을 거치면서 문무 합의 기구로 조선 최고의 정무 기관이었다.

본래는 외적의 침략이 있을 시 임시로 꾸려지는 기구였으나, 언제부턴가 상설기관이 되더니 권력의 핵심 기관이 되어버렸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외척 세력이 비변사의 요직을 장악하고 국정을 제멋대로 결정하여 문제가 끊이질 않았다. 부패의 온상이 되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를 흥선대원군이 비변사를 폐지해버렸다.

무려 3백 년 만에 단행한 개혁이었다.

대신들이 의견들을 내는 동안, 어전 회의에서 흥선대원군은 딱히 나서진 않았다.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는 지금도 그대로이기 때문에, 작금의 회의를 주도하고 결정하는 건 수렴청정을 하는 신정왕후의 몫이었다.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원군의 직책.

이런 어중간한 위치 때문에 세도정치 세력을 억누르고자 했다. 더욱이 어린 전하는 입하나 뻥끗하지 못한 채 불안해하고 있으니, 저런 모습을 보면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하필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내부의 기반을 닦기도 전에 외부에서 문제가 터져버렸다. 흥선대원군으로선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이 편지를 적 함장이 전해주라 하였습니다!”

포도대장이 서찰을 가져왔다.

영의정 김병학이 읽어보니 내용은 이전과 대동소이했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건 조선의 항구를 개방하고 통상에 응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서신 말미에 적힌 문구.

그걸 본 김병학이 눈을 치켜떴다.

대신들이 그의 반응을 궁금히 여길 때.

김병학이 서찰을 흥선대원군에게 건네주었다.

“······ 미리견의 총사령관이 대원군을 만나고자 하는군요.”

“총사령관이 나를?”

대신들의 시선이 흥선대원군에게 집중되었다.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랑캐의 대장군이 왕도 아닌 나를 찾는다?’

흥선대원군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마치 누군가의 입을 통해 권력 서열을 확인받는 기분이었다.

이는 막스가 노린 바였으니, 흥선대원군에게 이 사건을 해결할 키를 건네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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