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7화 (257/360)

#257 이노오옴!

미군은 덕진진, 초지진, 용해진, 문수산성, 광성보와 같이 강화해협을 지키는 강화도 요새들을 함락했다.

막스는 그중 광성보에 머물며 흥선대원군의 답신을 기다렸다.

“앤슨 영사께서는 조선을 어찌 생각합니까?”

성곽 위, 바다 건너를 응시하며 막스가 물었다.

중국 총영사 앤슨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다 입을 뗐다.

“미래를 내다보면 분명 가치는 있습니다. 열강들이 아시아 시장을 넓히는 동안 우린 이렇다 할 독점 시장이 없으니까요.”

“조선은 가난하여 우리가 교역으로 얻을 게 없지 않습니까?”

“물질적으로 보면 그렇죠. 다만 지리적인 이점은 분명 있습니다. 특히 아편전쟁 이후로 이 지역 판세가 변했거든요.”

청나라는 영국에게 홍콩섬을 넘겨주고 제2차 아편전쟁까지 밀리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청은 러시아를 끌어들였습니다. 사실상 조선으로선 최악의 상황이나 마찬가지죠.”

청은 영국과 프랑스의 공격을 막기 위해 러시아에 중재를 요청했다.

그 결과 1860년, 청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베이징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아편전쟁은 끝이 났다.

문제는 전쟁을 중재한 대가로 청이 러시아에 준 땅이었다.

청은 조선의 북쪽과 맞닿은 연해주를 러시아에게 넘겨줬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과 러시아와 국경이 맞붙는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영국과 러시아는 아시아는 물론, 유라시아 전영의 패권을 두고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이미 영국과 통상 조약을 맺었으니,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있어 조선은 꽤 중요한 위치인 셈이지요.”

“날카로운 분석이군요.”

“중국에서 놀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앤슨은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지었다. 막스는 로잔나 피어스의 매그로부터 현재 국제적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고 받은 바 있었다.

조선으로 오는 동안 이를 수없이 읽으며 전생의 기억을 조합하며 방향을 정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둔 것들이 앤슨을 만나 좀 더 구체화 되고 있었다.

앤슨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처음엔 총사령관님을 오해했습니다. 같은 조선인이라 제너럴막스조호 사건을 무마하러 왔나 했거든요.”

앤슨 총영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제 착각이었습니다. 이번 일이 잘되면 우리 미국에게 상당한 이익이 될 테니까요. 조선을 통해 중국, 일본, 러시아까지 견제할 수 있으니, 저는 그걸 내다보신 거라 믿고 있습니다. 다만,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는 여전히 강력합니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조선에 개입한다면 우리 영향력은 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글쎄요. 난 미국이 머지않아 그들 국가를 능가할 거라 보고 있습니다만.”

팔짱을 낀 앤슨이 턱을 쓰다듬었다.

수긍하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그러기엔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내전으로 남부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주 수입원 면화 수출이었는데, 전쟁하는 사이 그 시장을 이집트가 가져가 버렸습니다. 유럽이 더는 남부 면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노예제가 폐지된 이상, 어차피 면화 사업은 끝났습니다. 남부 재건을 위해선 새로운 걸 찾아야 합니다.”

“저도 그걸 바라지만. 그게 과연 쉬울까 싶습니다.”

셔먼이 철저하게 짓밟고 무너트린 남부.

그런데 그 재건을 앞당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텍사스 오일.'

바야흐로 석유의 시대가 곧 도래한다.

막스가 투자한 '컬럼비아 오일 컴파니'가 예상치를 훌쩍 넘어 막대한 이익을 거둔 것이 그 증거였다.

‘뭐, 지금 그걸 말해봐야 뜬구름처럼 보이겠지.’

막스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긍정적인 말로 끝을 맺었다.

“노예 문제가 해결된 이상 미국은 다른 국가보다 빠르게 발전할 겁니다. 더욱이 정권도 그대로 이어가고 있으니 급격히 정치 노선이 바뀌진 않을 겁니다.”

“그건 분명 기대해볼 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막스는 중국 총영사 앤슨으로부터 지난 대선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예상대로 링컨은 맥클레란을 큰 표차이로 따돌리고 미국의 17대 대통령이 되었다.

링컨이 이상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수십 년을 노예제로 양분된 갈등과 분열이 봉합된 지금. 미국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조선 역시 미국과의 우호 속에 개혁과 변화를 시도한다면 미래는 충분히 긍정적이었다.

물론 흥선대원군과 고종이 막스의 의도대로 움직인다는 가정하에서였다.

쇄국을 고수하거나, 다른 국가를 끌어들이려 한다면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그나저나 흥선대원군이 과연 총사령관님의 만남을 수락할까요? 일본과는 확실히 달라 보입니다.”

"좋게 말하면 기개가 있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고집과 아집이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선은 아예 눈을 감아버렸으니까요.”

막스는 흥선대원군의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앤슨과 통상 조약을 작성했다.

그러던 중 흥선대원군이 답신을 보내왔는데, 예상대로 거절이었다.

[나 흥선군은 아무런 직책도 권한도 없는바, 미리견의 총사령관과 대화를 나눌 명분도 없소이다.

더욱이 총과 대포를 앞세워 대화를 요청하는 건 조선을 겁박하고 원하는 걸 취하려는 시커먼 속내가 아니겠소.

대화에 응하는 것 자체가 모욕이며 빌미를 주는 것이니 응당 거절하는 것이 마땅하오.

대관절 대국의 옆 자락에 붙어있는 조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우리를 괴롭힌단 말이오.

부디 지금이라도 군대를 물려 본국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바요.]

흥선대원군은 짧지만 명백한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막스는 이를 달리 해석했다.

첫 번째 문장, 즉 직책도 권한도 없는 흥선대원군 자신에게 좀 더 그럴듯한 명분을 달라는 뜻으로 보였다. 혹은 대신들과 사대부들의 눈치를 보느라 거절한 것일 수도 있고.

어찌 됐든 단번에 요청을 수락하는 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막스는 다시금 펜에 잉크를 묻혀 편지를 작성했다.

[대원군께선 제 입장도 헤아려주시길 바랍니다.

총과 대포를 앞세운 건 떳떳하지 못한 일이나, 대화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그걸 택했겠지요.

또한 제가 대원군을 만나고자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없습니다. 단순합니다.

제가 왕께 알현을 요청하면 들어주시겠습니까?

반면 대원군께선 직책이 없다 하시니 만남을 청함에 예의에 어긋나지 않고, 의사결정은 신속하니 저로선 다른 분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이번 일에 선교사를 대동하지 않았습니다. 제겐 제너럴막스조호 침몰과 통상 말고도 대원군께서 고민하는 걸 해결해줄 방도가 있습니다.

이를 듣고 가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조차 거부하신다면 제겐 방도가 없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가 도성 중심으로 진격하지 않은 건 그들에게 간곡히 시간을 달라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그들 위에 있지 않으니, 시간을 지연하는 건 어렵겠지요. 이걸 협박으로 여기신다면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생각하시는 게 맞을 테니까요.

조선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군요. 내일 정오까지 답신을 기다리겠습니다.]

*

흥선대원군의 거처 운현궁.

이곳에 두 명의 프랑스 주교가 찾아왔다.

물론 흥선대원군의 요청에 의한 방문이었다.

“베르뇌 주교. 그동안 몇 번이나 그대를 만나고자 했는데, 이제야 내 청을 들어주는구려.”

“제가 감히 대감의 청을 거절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정치와 무관하여 대감께 도움을 드리지 못하여 죄송스러운 마음뿐입니다.”

시메옹프랑스와 베르뇌는 전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가 죽으면서 제4대 교구장이 된 인물로 조선 이름은 장경일이다.

그는 새로 즉위한 왕에게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있었다.

고종의 유모 박 마르타가 천주교도이고, 그녀로 인해 어머니이자 흥선대원군의 부인 여흥부대부인 역시 천주교 미사를 봉헌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흥선대원군은 베르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 프랑스가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아주면 신앙의 자유를 주겠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베르뇌는 그걸 추진할 권한도 없을뿐더러, 정치에도 관심이 없었다.

해서 만남을 몇 번 거부했으나, 상황이 급변했다. 프랑스가 조선에 포격을 가한 이상 천주교도들을 위해서라도 찾아와야 했다.

“내 오늘 다른 말은 안 하겠소. 그대를 부른 건 미리견에 관해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요.”

“아무래도 그러실 것 같아 오트메르 주교를 데려왔습니다. 비교적 최근까지 본국에서 생활해 저보다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베르뇌 옆에 있는 오트메르는 2년 전 조선에 입국한 프랑스 선교사다.

흥선대원군이 그에게 물었다.

“대관절 미리견은 어떤 나라요?”

조선말이 서투른 오트메르의 통역을 베르뇌가 자처했다. 그의 입을 빌리면.

“미리견은 영길리(영국)로부터 독립한 국가입니다. 영토는 청나라와 비견되고, 왕이 아닌 백성들이 선출한 자가 국가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허허.”

흥선대원군의 입에서 어이없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백성들이 왕을 마음대로 뽑는다니.

과연 멀리해야 할 나라였다.

“법국(프랑스)과 비교하면 어떻소?”

“비교하기 힘듭니다만. 그들의 무기가 어지간한 국가들보다 앞서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침몰한 제네럴막스조호의 증기기관 엔진을 건져내 이를 복제하려 했다.

하지만 복잡한 기관과 구조가 감탄을 낼 정도였으니, 기술력이 조선보다 뛰어나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가히 두려워할 만한 나라였다.

“그럼 총사령관이라는 직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거요?”

조선에는 대장군이 없는 대신 정1품 도제조, 종1품 제조, 정2품 도총관 등의 품계로 직위를 구분했다.

또한 정1품에 해당하는 최고위직은 문관이 독식했기 때문에 총사령관의 구체적인 권한이 모호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군인의 수장이옵니다. 이 나라로 치면 무과에 급제해 전쟁을 총괄 지휘하는 자리로 볼 수 있지요.”

“우리를 공격하거나 철수하는 것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단 말이오?”

“그것까진 모르겠습니다만. 미국의 총사령관이 직접 왔다는 건, 확실히 놀라운 일이긴 합니다.”

“그게 놀랄 일이다?”

흥선대원군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그동안의 사례를 보면, 통상 요구는 보통 해군 제독이 찾아오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중국과 일본도 아마 그러했을 겁니다. 그런데 직접 찾아왔다는 것은···.”

“말끝을 흐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보시오.”

“...... 결과에 따라 즉각적인 조처를 하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쾅.

흥선대원군이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남의 나라에 총과 대포를 쏴대고 당장 결과를 내놓으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

분노가 치밀고 통탄할 노릇이다.

조선도 기어이 청과 일본의 뒤를 따라가게 생겼으니 말이다.

주교를 노려보던 흥선대원군은 시선을 거두고 턱을 매만졌다.

‘흥분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사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지.’

조선과 왕실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원군은 고심 끝에 베르뇌와 오트메르 주교에게 말을 건넸다.

“총사령관을 만날 생각인데, 아무래도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소.”

“우리가 과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거야, 가 보면 알겠지요.”

냉랭한 흥선대원군의 얼굴을 본 베르뇌와 오트메르 주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우리를 방패로 삼을 작정이구나.’

하지만 이들은 알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를 말살하려 했음을.

그 일이 미국 총사령관으로 인해 바뀌게 되었음을 말이다.

선교사 아홉이 죽고, 팔천여 명의 신도가 죽어 나간 병인박해. 이번 회담 결과에 따라 천주교도들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너희들은 저들이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하라.”

“알겠습니다, 대감.”

흥선대원군은 주교를 자신의 거처 운현궁에 붙잡아두고, 자신은 창덕궁으로 향했다.

어전회의가 열린 창덕궁의 흥복헌.

미국 총사령관의 답장을 두고 대신들의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조건에 응해야 한다는 측이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무리보다 목소리가 더 커졌다.

어제만 해도 압도적으로 반대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막스의 협박이 제대로 통한 것이었다.

장내를 지켜보던 흥선대원군은 결심을 굳힌 듯 입을 뗐다.

“만약 미리견만 왔다면 우리는 결사 항전을 택했을 것이나, 상대는 청 조차 굴복시킨 영길리와 법국이 포함되었소. 총사령관이 나를 만나고자 한 이유 역시 예의에 벗어남이 없으니, 전하의 눈과 귀가 되어 대신 말을 듣고자 하오.”

흥선대원군은 신정왕후가 앉아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대왕 대비마마께서 윤허해 주신다면 기꺼이 제가 그자를 만나보겠나이다.”

신정왕후의 수렴청정은 형식상에 지나지 않는다.

맡겨진 막중한 책임을 떠맡기엔 현실적인 정치력과 권력 기반이 약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해서 신정왕후는 사실상 흥선대원군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하고 있었다.

“대원군께서는 사악한 무리를 만남에 있어 각별히 조심하시어 우리 조선의 미래를 위해 애써주시길 바라오.”

“대왕 대비마마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흥선대원군은 대신들과 함께 구체적인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이를 미군에게 알렸다.

‘여기서 보겠다고?’

회담 장소와 시간을 본 막스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장소는 한강 나루터에 인접한 정자.

배에서 총을 쏴도 맞출 수 있는 거리였다.

‘도성 깊숙이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의지인가.’

서양 함선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거나, 혹은 또 다른 대책이 있거나.

‘뭐가 되었든, 내일이 기다려지는구나.’

*

한강 나루터 부근의 망원정.

양측 회담 인원과 군인들이 대치했다.

흥선대원군은 영의정 김병학과 공조판서 이경하 그리고 주교 둘이 함께였다.

그들은 미군 백여 명 앞에 우뚝 서 있는 세 명을 주의 깊게 바라봤다.

그중 군복을 입은 동양인에 시선이 고정되었는데, 마침 그가 입을 열었다.

“통역은 별도로 필요 없을 것 같아 내가 대신 하겠습니다. 저는···.”

‘조선인!?’

흥선대원군과 대신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놀라움도 잠시.

막스의 말을 자르며 김병학이 노성을 터트렸다.

“이노옴! 어찌 조선인이 나라를 핍박하는 오랑캐의 앞잡이 노릇을 한단 말이냐! 물길을 알려주었으니, 네놈 때문에 강화도가 그리 쉽게 함락되었구나! 이노오옴!”

‘......’

막스는 길길이 날뛰는 김병학을 외면한 채, 흥선대원군을 바라봤다.

“아직 대화할 준비가 안 되었나 보오. 어찌, 약속을 다시 잡으시겠소?”

“······ 자넨 누군가?”

흥선대원군의 눈이 가늘어졌다.

날카로운 눈매로 막스를 쏘아봤다.

이를 담담히 마주하며 막스가 입을 뗐다.

“내가 바로 미국 총사령관이요.”

이제 조선을 낚아볼까.

난이도는 헬. 보기만해도 숨이 턱턱 막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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