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 흥선대원군
‘조선인이 어찌 미리견의 총사령관이란 말인가!’
나이도 기껏해야 서른 될까 말까.
흥선대원군과 영의정 김병학, 심지어 프랑스 주교들과 병사들까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이 상당했다.
이때 앤슨은 잔뜩 이마를 찡그리고 있었다.
조선말은 몰라도 영의정 김병학의 표정과 억양만 봐도 욕이라는 걸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총사령관님, 방금 저자가 뭐라고 한 겁니까?”
앤슨의 물음에 막스가 턱을 긁적거렸다.
“선 오브 비치. 요 머더 뻐커. 뭐, 대충 이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
“초, 총사령관님한테요!?”
막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흥분한 앤슨이 앞으로 발을 내디디며 소리쳤다.
“중국 주재 총영사 앤슨 벌링게임이오! 방금 당신이 우리 미국의 총사령관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으니,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소!”
앤슨의 말은 주교인 베르뇌의 입을 통해 전달되었다.
이에 사색이 된 김병학의 얼굴이 푸들거렸다. 어째선지 총사령관보다 총영사라는 이름이 더 크고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스스로 백인을 높이고 조선인을 낮춰봤기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앤슨의 목소리가 망원정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방금 당신이 한 말이 다른 나라에 퍼지게 될 것이고, 그 순간 미국은 조롱거리가 될 것이오! 반드시 그 죄를 물을 테니 각오하셔야 할 거요!”
“보, 본인은 저자가 총사령관인 줄 모르고 단순히 길잡인 줄 알았소.”
김병학이 한 말이 다시 베르뇌의 입을 통해 앤슨에게 전달되었다.
“변명 같지도 않은 말 마시오! 오늘 같은 날, 이 자리에 누가 있든 당신이 얼굴까지 붉히며 욕할 사람이 어디 있소!? 실로 경솔하고 예의 없고 무례한 행동이오!”
“······”
당장이라도 총영사의 입에서 조선을 공격하라는 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함선에서 포격이 가해지고, 상륙한 군대가 도성으로 향하면 막을 수나 있을까.
김병학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반면 앤슨이 날뛰는 동안 막스는 말없이 흥선대원군을 쳐다봤다.
서로 눈빛이 오가던 중, 갑자기 흥선대원군이 눈을 감는다.
득도한 고승 같지만, 머릿속엔 복잡한 셈을 하고 있었다.
조선인이 총사령관이라는 사실이 경악스럽지만, 놀라움은 어느 정도 가신 뒤다.
‘총사령관이 직접 온 이유가 있었군.’
통상을 위해선 보통 해군 제독이 찾아온다 했다. 그런데 눈앞의 상대는 미국 총사령관. 그것도 조선인이다.
‘이러면 더더욱 대화에 응해야지.’
비록 서양 오랑캐에 몸담았으나 엄연한 조선의 아들. 잘만 구워삶으면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었다.
결정을 내린 흥선대원군이 영의정 김병학에게 말을 건넸다.
“괜히 저들에게 공격할 빌미만 주었구려.”
“제가 경솔했습니다.”
“대감은 빠지시고, 내 총사령관과 담판을 짓도록 하겠소이다.”
흥선대원군은 영의정 김병학이 오늘따라 거추장스러워 보였다.
아무리 놀랍고 당황스러워도 미리견의 총사령관을 욕해선 안 되었다.
하물며 그의 신분이 통역에 그치더라도 오늘은 표정을 감추고 저들의 농간에 놀아나선 안 되었다.
하지만 이미 쏟아진 물.
흥선대원군은 이를 담기 위해 총사령관과 독대를 청하고자 했다.
앤슨 총영사를 향해 입을 뗐다.
“영의정을 대신해 사과하겠소. 귀하께서 하신 말씀을 전적으로 이해할뿐더러, 조선은 미국의 총사령관을 욕보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음을 알아주시오.”
“그냥 말로 넘어갈 생각은 마십시오.”
“일단 그건 추후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흥선대원군의 시선이 총사령관에게로 옮겨졌다.
“독대를 청하고 싶소만.”
‘독대라.’
막스 또한 바라는 바였다.
거추장스러운 인물들은 배제한 채, 흥선대원군과의 대화를 원했었다.
그리고 이 결과에 따라 영의정 김병학은 우국 충신이 될 수도 있었다.
흥선대원군과 총사령관은 대화를 듣지 못하도록 수하들을 뒤로 물리고.
돌발적인 영의정의 선 넘은 행동을 협상 카드로 챙긴 채, 흥선대원군을 따라 정자로 자리를 옮겼다.
*
“조선인이 조선을 향해 총과 대포를 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앉자마자 흥선대원군이 질문을 던졌다.
“그 말은 내가 타국인이라면 그래도 된다는 소리요?”
“적어도 같은 동족을 공격하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소리네. 짐승도 그렇게는 안 하거든.”
“그건 내가 짐승이 아니라 그런 거요.”
막스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걸 본 흥선대원군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 강화도에서 우리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네. 그 수가 이백에 달하고, 모두 자네와 똑같은 피가 흐르는 조선인이지.”
‘천주교도 8천 명을 죽일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쓰나.’
어찌 됐든, 동족을 운운하며 죄책감을 씌우려는 전략인 모양이다.
막스가 코웃음 치자, 흥선대원군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조선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알 순 없으나, 증오와 분노의 대상이 잘못되었네. 이곳은 자네가 태어나고 자라난 곳이거늘, 사람의 잘못을 나라 탓으로 돌려서야 되겠는가.”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조선을 증오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소.”
“하면 어째서 시종일관 비난과 조롱으로 이 나라를 대하는가.”
“밖에서 보면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드오. 중국의 속국을 자처하고, 그 나라의 유교를 근본으로 하는 조선을 그럼 어찌 봐야 한단 말이오?”
예상외로 흥선대원군은 분노하기보단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것이 자네의 자존심을 건드렸나 보군. 나 또한 조선의 현실을 생각하면 답답하기 짝이 없네. 역시 자네도 이 나라를 걱정하는 건 매한가지구만.”
“말주변이 없어 대화를 간단히 끝내려 했는데,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군요.”
막스가 엄살을 떨자, 흥선대원군은 오히려 눈을 반짝였다.
‘말주변이 없으면 더더욱 말을 길게 해야지.’
“조선의 미래가 걸린 회담인데, 상대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알아야지 않겠나?”
흥선대원군은 오히려 입꼬리를 말아 올리기까지 했다.
“아무튼, 내 자네의 불만을 이해하네. 해서 여러 개혁을 추진하고 있네만. 생각보다 이 나라가 바로 서려면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군.”
“세도 정치 세력과 사대부의 힘을 빼고, 왕실 권력을 세우려면 좀 바쁘겠습니까.”
막스의 비아냥에도 흥선대원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바로 그거지. 나는 그동안 조선을 좀먹은 것들을 모조리 제거해, 이 나라를 바로 세울 생각이네.”
서원철폐, 비변사 폐지, 부패한 관리를 내쫓아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고.
“심지어 평민들에게만 부과하던 세금을 양반들에게도 거둘 생각이네.”
일명 호포제라 불리는 조세 개혁이다.
흥선대원군이 언급한 것들은 분명 지금까지 어느 왕도 하지 못한 파격적인 개혁이었다.
“그 말을 내게 하는 이유가 뭐요?”
“총사령관이 도움을 좀 주게. 집안을 단속하고 개혁을 이룬 다음, 통상 조약을 맺어도 늦지 않네. 대관절 이 조선에 무엇이 먹을 게 있단 말인가?”
흥선대원군은 은근한 어조로 막스를 회유하려 했다. 이에 막스가 물었다.
“개혁의 방향이 잘못되었다 생각하진 않소?”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가. 백성들이 원하는 게 곧 올바른 것일 터인데?”
“열 대 맞을 거 아홉 대만 맞아도 고마워하는 게 조선의 백성들이라 들었소.”
“그건 뱃속은 기름지고 머리엔 똥만 가득찬 사대부들이나 하는 말들이고.”
“그러는 대원군은 평민 출신이오?”
“...... 나는 여느 양반들과는 다르네. 진실로 백성에게 해가 되는 거라면 비록 공자가 살아 돌아와도 용서할 수 없거든.”
“공자가 살아 돌아올 일이 없으니 말을 막 던지는구려. 결국 혀끝에 흘러나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말에 불과하오.”
‘말주변이 없다더니.’
생각보다 상대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말본새를 보면 여느 유림 못지않으니, 문득 흥선대원군은 총사령관의 과거가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조선 이름은 어찌 되는가?”
“어디 이씨 인지도 모르는 근본 없는 노비 이막산이오.”
“노, 노비 출신?”
처음으로 흥선대원군이 당황했다.
이내 얼굴이 똥 씹은 양 일그러졌다.
적어도 몰락한 양반집 자식 혹은 최소한 평민인 줄 알았다. 그런데 노비라니?
“흠. 이유야 어찌 됐든. 노비가 미국으로 건너가 총사령관이 되었다는 말인데, 어찌 그게 가능하단 말이냐?”
“어째 말투가 급 바뀌었소. 거슬러 올라가면 내 조상 중 양반 한두 분은 있을 거요. 수천 년 동안 주구장창 노비가 가당키나 하냔 말이외다.”
막스는 지금도 자신이 노비로 보이냐며 흥선대원군을 쏘아봤다. 그 시선을 마주한 대원군의 얼굴이 또다시 일그러졌다.
비천한 노비 새끼라고 욕할 수도 없고.
‘내 괜히 출신을 물어봤구나.’
흥선대원군은 헛기침하며 말을 이었다.
“노비든 평민이든. 어쨌든 이 조선의 자식이라는 건 변함없네. 내 딱히 차별하는 건 아닐세.”
“아주 좋은 자세요.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게 미국의 기본 권리장전이오.”
“얼마 전까지 노예제로 내란이 벌어졌다 들었는데. 그게 어딜 봐서 평등한 국가인가?”
“평등을 추구했기에 전쟁이 벌어진 것이요. 노비가 총사령관이 되는 나라이니, 특히 조선에선 욕할 자격이 없소. 게다가 한 대만 맞아도 길길이 날뛰는 게 미국인들이라 잘못된 건 총을 쏴서라도 고쳐야 직성이 풀리오.”
“위험한 나라로군.”
“자유로운 나라요.”
갑자기 갈증을 느낀 흥선대원군이 저 멀리 하인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눈치 빠른 하인이 물을 들고 달려왔다.
막스도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SFBC 대원 중 하나가 리볼버와 라이플을 챙겨 달려왔다.
깜짝 놀란 조선 병사들이 소리치자, 막스가 손을 휘이 저었다.
“어, 그거 아냐. 물 가져오라고.”
“아하.”
막스는 식겁한 흥선대원군을 보며 말했다.
“미국인들이 저렇게 총을 사랑한다오.”
“......”
목을 축인 흥선대원군은 대화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일단 상대를 띄워주기로 했다.
“그나저나, 낯선 이국땅에서 백인들을 부리다니 능력이 대단하네. 내 감탄이 절로 나오지 않겠는가.”
“비결이 궁금하면 알려줄 수 있소.”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세.”
흥선대원군이 흥미로운 표정을 짓자, 막스는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첫째는 눈치. 둘째는 정보. 셋째는 욕망. 그중 어느 것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총 맞아 죽었을 거요.”
“흠.”
‘눈치, 정보, 욕망이라.’
턱을 매만지던 흥선대원군의 머릿속에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안동 김씨 세력의 견제를 피하려 ‘상갓집 개’소리를 들으며 파락호 생활을 하던 때.
그들의 눈치를 봐야 했고, 무슨 짓을 하는지 정보를 알아야 했고, 살아남아 복수하려 칼을 갈아야 했다. 이는 곧 권력을 잡으려 한 욕망으로 이어졌다.
“나와 비슷한 점이 많군.”
“그럴지도 모르오. 허나 틀린 점이 하나 있소.”
흥선대원군이 눈빛으로 물었다.
그게 뭐냐고.
막스는 작심한 듯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대원군은 원하는 걸 얻었을지 모르나, 조선은 그대로요. 세상을 등지니 정보가 있을 리 없고, 정보가 없으니 눈치마저도 없소. 더욱이 욕망이라고는 이씨 세가 권력 유지에만 집착하니 조선 어디에 희망을 찾을 수 있겠소?”
“......”
“대관절 대원군이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를 욕할 이유가 무엇이오? 그렇게 왕권을 강화한들 강화도조차 지키지 못하는 나라의 권력이 무엇이 그리도 탐나는 거요?”
흥선대원군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막스를 쳐다봤다.
누가 감히 왕의 아비에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더욱이 뼈를 때리는 말이 노비의 입에서 나왔다는 건 분명 분노할 일이었다.
당장에 목을 치고, 능지처참할 일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미국 총사령관.
강제로라도 분을 삭여야 했다.
해서 한 번 더 상대의 말을 곱씹어봤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용을 흘려듣기엔 구구절절 틀린 말이 하나 없다
어느 왕도 하지 못한 개혁을 과감히 단행했지만, 그 또한 이씨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으니.
흥분하여 울그락불그락거렸던 흥선대원군 얼굴이 착잡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자존심은 쉽게 내려놓을 수 없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네.”
“순서도 뭐를 알아야 정하는 법이오.”
“하면 자네 그 잘난 입으로 그 순서가 무엇인지 말해보게.”
막스는 어렵지 않다며 곧바로 말을 내뱉었다.
“쇄국을 고집했던 청나라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강제 개항한 일본이 왜 지식인들을 영국으로 보내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지. 그들은 이제 막 정보를 모으고 눈치를 보며 마음속엔 복수하려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소. 반면.”
막스는 얼굴을 가까이하며 마저 말을 내뱉었다.
“지금 조선은 심봉사요. 하루라도 빨리 눈을 떠야 살 수 있지 않겠소?”
“...... 하면 자네가 심청이다, 이건가?”
“아직 신혼이거늘, 내가 왜 인당수에 몸을 던진단 말이오. 허나, 이 나라엔 그렇게 할 인물들이 널려있소. 그들이 조선의 희망 아니겠소?”
흥선대원군은 막스를 보는 한편, 손가락으로 마룻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했다.
그리고는 잠시간의 침묵 뒤에 입을 열었다.
“다시 돌아가서 얘기해보세.”
“굳이 돌아가야 하오? 혹시 내가 지금까지 영어로 말한 거요?”
“......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겨서 그러네. 자네가 말한 그 욕망. 그게 조선과 무슨 관련이 있나? 출세를 위해 업적이 필요한가? 아니면 진심으로 이 나라를 위해서 하는 행동인가?”
“둘 다요. 정확히 말하면 출세는 이미 끝에 다다라 올라갈 곳이 없고, 원하는 건 부국강병하는 조선과 한바탕 크게 사업을 벌이는 것이오. 일본보다 동족들과 손을 잡는 게 아무래도 낫지 않겠소.”
“흠.”
톡, 톡, 톡.
손가락으로 마룻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그만큼 흥선대원군은 갈등하고 있었다.
막스는 그가 천주교를 박해하기 전까진 적어도 쇄국에 관해 꽉 막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집권 초기 여러 개혁을 추진한 인물인 만큼, 대화가 통한다 생각했다.
그런데 흥선대원군은 막스가 생각한 것 이상 복잡한 인물이었다.
“우리가 통상을 거부하면 공격한다 했지?”
“두 번 말하면 입 아프오.”
“설령 공격한다 해도. 이 나라 백성들이 보고만 있진 않을 걸세. 함포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 활과 총을 든 의병들이 싸울 걸세. 온 국토가 화마에 휩싸여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을 걸세. 이 나라는 그렇게 이어져 왔네.”
“진정 그걸 바라오?”
흥선대원군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막스를 노려봤다.
결국 조선을 함락하려면 반드시 지상군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먼 나라에서 굳이 먹을 것도 없는 조선을 위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
흥선대원군의 머릿속엔 이런 계산도 깔려 있었다.
“내가 그렇게 나오면 자넨 어쩔 생각인가?”
“지금까지 한 말들이 아까워서라도, 공격할 것이오. 다만 조선은 아니고···.”
“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며 흥선대원군은 눈을 치켜떴다.
조선이 아니면 누굴 공격한단 말인가?
막스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강화도에서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함선을 침몰시킬 생각이오. 물론 그 일은 조선이 벌인 짓이 될 거고.”
“자네···. 생각보다 더 무서운 자였군.”
물론 공갈이었지만 막스는 가소롭다는 듯 피식거렸다.
“설마하니 조선인이 노름으로 총사령관 자리를 얻었겠소? 허나 진짜 무서운 건 내가 아니라. 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기고 백성들을 사지로 내모는 무능력한 지도자요.”
흥선대원군의 얼굴이 또다시 다채로운 색으로 변했다.
강공을 펴다 보면 역효과가 생기는 법.
막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조선이 부국강병하고, 왕이 왕으로서 군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소. 내가 직접 찾아온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고.”
“내 백번 양보해서, 강화도를 점령한 것과 한강 이북에 포격을 가한 것도 이해하겠네. 하지만 외규장각의 왕실 물품과 서적들을 빼앗아간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네.”
‘마지막 거절 명분으로 외규장각을 물었구만.’
막스는 이 회담을 위해 막스는 공갈 협박, 그 외 몇 가지 협상 카드를 준비해두었다.
외규장각도 그중 하나였다.
계속해서 거절하다 보면 분명 이 문제가 거론될 거라 예상했다.
“외규장각 때문에 통상을 거부한다 이거요?”
“어찌 한 나라가 해적들과 통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백성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그런데 막스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흥선대원군을 당황하게 했다.
“내 그럴까 봐 약탈의 대명사, 루팡의 나라 프랑스로부터 외규장각을 지켰소이다.”
“음?”
“물품 하나 빠지지 않고 우리 대원이 지키고 있으니, 통상 조약에 서명하는 즉시 돌려주겠소. 먼지도 좀 털라 했으니 아주 깨끗할 거요.”
막스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자, 대원군께서 통 크게 백번을 전부 양보했으니 본론으로 들어가볼까요?”
흥선대원군은 막스가 내민 문서를 말없이 응시했다.
미조수호통상에 관한 협정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