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2화 (262/360)

#262 메이지 유신을 저지하라

“흠. 이 자들이 총사령관님을 암살하려 했다, 이거죠?”

에도에서 요코하마로 막 돌아온 주일 총영사관 로버트 프루인. 남북전쟁 영웅 막스 조 총사령관의 감격스러운 만남도 잠시, 사무실 앞에 무릎꿇고 있는 사무라이들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총사령관님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시길 바라십니까?”

“제가 여기 온 목적은 영사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가능한 무기를 비싼 값에 팔아 치우고 싶습니다.”

막스가 넌지시 말하자 프루인 영사는 나름 머리를 굴려 입을 열었다.

“막부 관료와 협상해보도록 하죠. 마침 근처에 군함봉행 가쓰 가이슈라는 자가 있습니다. ”

“군함봉행?”

“사절단으로 미국까지 방문했던 인물입니다. 일본 해군을 총괄하는 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상대할 만하군요. 어디 한번 만나봅시다.”

프루인 총영사가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히콕은 막스에게 몇 가지 정보를 건넸다. 가쓰 가이슈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여기 있었을 때, 이야기를 나눠봤거든. 몇 년 전에 암살을 당할 뻔했는데, 그 자객이 글쎄 대장이 알아보라고 했던 사카모토 료마였더라고. ”

“료마?”

메이지 유신의 풍운아.

서양 문물에 깊이 빠져든 그는, 현재 막부가 가진 권한을 왕에게 넘겨야 한다는 대정봉환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건, 존왕양이를 주창하면서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열성인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막스가 일본과 조선의 차이점을 느낀 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존왕양이는 왕을 받들고 서양 오랑캐를 몰아내자는 건데, 조선이 외치는 위정척사와 쇄국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발전된 문물을 받아들여 서양만큼 힘을 키우자. 그런 다음 오랑캐를 몰아내자는게 깨어있는 자들의 생각이었다.

사무라이 낭인 출신이었던 사카모토 료마 역시 그런 인물이었다.

히콕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 료마라는 자가 암살하러 왔다가, 오히려 가이슈의 사상에 감동을 받아서서 제자가 되었다더라고.”

막부의 군함봉행을 죽이려 했는데 오히려 제자가 되었다?

더욱이 가이슈는 료마에게 항해술과 해군 전반에 걸친 지식을 전수했다고 했다.

“편은 다르지만, 생각은 비슷하다 이건가?”

“가쓰 가이슈라는 자와 말해보면 알겠지만, 미국을 상당히 높이 평가하고 있어. 특히 정치 시스템.”

“정치에 관심이 많다 이거지.”

“어. 근데 솔직히 내가 정치를 알겠어? 뭔 이런 저런 어려운 말을 많이 하는데, 쓰벌 한 마디도 못 하겠더라고.”

히콕은 가이슈와 정치 토론을 하면서 시종일관 입을 닫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총이나 쏠 줄 알았지, 정치, 경제, 문화 같은 부분은 히콕과 거리가 멀었다.

미국 대통령까지 쥐락펴락하는 막스라면 어디가서 빠지진 않을 터. 히콕은 그날 입 한번 뻥끗하지 못한 설움을 막스가 대신 해주길 바랬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대신 넌 술이나 깨.”

“어, 음. 근데, 저 꼬맹이는 어떻게 할 거야?”

히콕이 오동패를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여전히 밧줄에 묶인 채, 사무라이들 틈에 섞여 있었다.

“총사령관 암살범이니까, 협상에 써먹어야지.”

“저러다 우리가 가면 죽는 거 아냐?”

“그건 쟤 사정이고. 그나저나, 코디는 어딨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을 유곽에 데려갈 순 없잖아. 지금 조선인 꼬맹이랑 있을걸?”

고유지를 직접 데려와서인지, 코디는 직접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말은 안 통해도 음식을 주며 바디랭귀지로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막스는 함선이 있는 항구로 고개를 돌렸다.

배에서 내리지 않은 조선인 사절단을 생각해서라도 일을 빨리 마무리 짓고 싶었다.

그런데 가쓰 가이슈와 사카모토 료마의 관계를 들은 막스는 고민이 많아졌다.

정확히는 막부에 몸담았지만, 딱히 색깔이 없는 일본 자체를 생각하는 자들이 발목을 붙잡았다.

가쓰 가이슈가 총영사를 찾아온 건 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40대 초반의 가이슈는 복잡한 눈빛으로 막스를 바라봤다.

미국 군인들의 정점에 선 인물. 게다가 남북전쟁을 종식시킨 영웅이라는 소리는 미 총영사 프루인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었었다.

‘며칠 전엔 조선까지 강제 개항시키기까지 했지.’

이를 두고 일본 지식인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복합적인 의미가 있지만, 그중엔 분명 조선이 우물 안 개구리로 남길 바라는 자들도 있었다.

지금껏 대륙의 문물은 조선을 통해 일본으로 들어왔다. 항해 기술이 발달하고 서양에 문을 개방했지만, 여전히 대륙 진출을 위해 조선은 일본에게 매우 중요한 나라였다.

‘그나마 일본이 조선보다 개항이 빨라 다행이야.’

힘의 균형추는 이미 기울어졌다.

뒤늦게 개항한 만큼 그 차이를 극복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국내 정세가 혼란스러운 게 불안 요소였다.

“미국 총사령관께서 조선인이라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보니 말이 안 나올 정도군요.”

“미국은 자유주의 국가 아닙니까.”

“과연. 총사령관님을 보니 그 말이 실감 나는군요.”

부러움과 감탄, 반대로 막스가 일본인이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도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 일은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가 알아본 봐, 저들이 총사령관을 노린 건 아니었더군요.”

이곳에 오기 전, 사건부터 파악한 모양이다.

상대를 만나기 전, 상황부터 알아보는 건 당연한 일. 이것조차 안 하는 자들이 널렸기에, 비교적 꼼꼼한 성격이라 할 수 있었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소리요? 내가 암살 위협을 느꼈는데 이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음. 정 그러시다면 암살을 시도한 아이는 처형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이슈는 ‘조센징 꼬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를 순화하여 말했다. 그러나 말속엔 막스를 떠보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같은 조선인이니 적당히 하라는 윽박도 섞여 있었다.

막스는 코웃음 치며 대꾸했다.

“고작 꼬맹이 하나 처리해서 이 일을 덮을 생각이오?”

“······ 하면 어떻게 일을 처리했으면 좋겠습니까?”

“성의를 보여 주셔야지.”

‘성의라.’

가이슈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일 년 전이었다면, 큰 사건을 저지른 낭인들의 목숨 따윈 가차 없이 날렸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현재 막부는 번들의 반란을 억제하기 위해 사무라이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들의 목을 치기라도 한다면, 그들이 막부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막스는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아니까 이 정도에서 그친 거지. 죽은 자들이야 직접적으로 내게 칼을 뽑아 어쩔 수 없는 거고. 나머지는 멀쩡하지 않습니까?”

‘어딜 봐서 멀쩡한거냐.’

가이슈는 속이 뒤틀렸지만, 이를 참으며 말을 이었다.

“저들의 처분을 우리에게 맡긴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럼 아이는 확실히 처형하도록 하겠습니다. 감히 총사령관님에게 칼을 내밀었으니까요.”

막스는 알 바 아니라며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가이슈는 머리를 굴린 끝에 물었다.

“무기를 처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내전이 끝나서, 성능은 좋지만 쓸 일이 없는 무기들이 잔뜩 쌓였소.”

“그럼 그 부분에서 성의를 보일 수도 있겠군요.”

막스는 구체적인 가격을 제시했다.

구식 머스킷 소총은 정당 $20, 브리치 로딩 라이플과 카빈 라이플, 스프링필드, 샤프, 헨리 등과 같은 비교적 최신형은 $35달러를 제안했다.

“프랑스에서 사들이는 것과 큰 차이가 없군요. 더구나 중고 가격인데···.”

지금 막부와 가장 가까운 열강은 프랑스다. 심지어 그들로부터 군사 훈련을 받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미국의 무기를 비싼 값에 사들일 필요가 있을까.

가이슈는 말도 안 된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사실상 강매다. 아무리 사무라이들이 사고를 쳤다 해도, 적정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쇼군께서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적들은 영국의 무기를 사고 있다 들었습니다만.”

“그래 봐야 얼마나 사겠습니까.”

물론 가이슈는 자신의 대답이 궁색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막부와 대척점에 있는 조슈와 사쓰마, 도사 번은 밀무역과 대규모 개간으로 막부에 견줄 만한 경제력을 갖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상대와의 협상을 위해 여유로운 척 할 뿐이었다.

이를 알든 모르든, 막스는 가이슈의 안일한 대답을 비꼬았다.

“신식 무기로 무장한 번들을 사무라이 칼과 낡은 무기로 상대하겠다? 이거 답이 없구만.”

“막부도 나름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전장식에 낡은 무기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같은 자국민끼리 군비경쟁 해서 얻을 게 무엇이겠습니까. 피만 더 흘릴 뿐이지요.”

눈앞의 가이슈도 그렇고, 생각처럼 일본을 혼란으로 몰고 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러면 나가린데.’

막스는 무기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향후 미국 총사령관 암살 시도를 문제 삼지 않겠다는데. 거절하면 어쩔 수 없지요.”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가이슈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 상황에서도 그는 거래를 해왔다.

“개틀링 기관총을 저희에게 판매하시지요. 듣기로 총사령관님이 권한을 갖고 있다 들었습니다.”

일년 전, 히콕이 일본에 가져 온 개틀링 기관총의 위력은 막부 관료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막스의 의도대로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 역시 개틀링 기관총에 흥미를 느껴 이를 구매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히콕은 권한이 없다며 거절했다. 잔뜩 꼬셔놓고 정작 판매하지 않아 아쉬움만 남긴 셈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막스는 슬쩍 판을 깔아 둔 뒤 개틀링을 막부에게 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직접 오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가쓰 가이슈를 본 순간 막부의 패배가 무기와는 별개의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개틀링 기관총은 팔 생각이 없고. 그나저나, 내 조건에 다른 걸 붙일 생각을 하다니. 나를 우습게 보는 거요?”

막스가 미간을 찡그리자, 가이슈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오, 오해십니다. 쇼군께 말씀하신 조건을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이틀의 시간을 주십시오.”

“딱 이틀이오.”

막스는 선심쓰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끝낸 가이슈는 한쪽 입술을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서는 오동패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이는 바로 처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안 될 말이지. 일이 일단락될 때까지 증인들은 우리가 맡아야지 않겠소?”

가쓰 가이슈는 탄식을 내뱉으며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그길로 쇼군을 만나기 위해 에도를 향했다.

그 뒷모습을 보며 막스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내 의도대로 굴러가긴 힘들겠군.’

막스는 일본의 내란이 미국 남북전쟁만큼 오래가길 바랬다.

하지만 원 역사대로 흘러가면, 보신 전쟁은 2년도 못 가 싱겁게 끝나버린다.

그렇다면 그 원인을 비틀 필요가 있었다.

보신 전쟁에서 막부가 패한 건 무기차이 때문 만은 아니다.

가쓰 가이슈와 같이 어정쩡하게 있는 인물이 많아서였다.

궁극적으로 일본이 내란에 휩싸이는 걸 원치 않는 인물들.

그들은 서양에게 집어 삼킬 걸 우려했고, 심지어 막부의 수장 쇼군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때문에 조슈, 사쓰마 번이 쿠데타를 일으킬 때까지 막부는 좋게 좋게 해결하려 했던 게 패배의 원인이었다.

에도를 무혈 입성하게 하고, 일찌감치 전쟁을 포기한 쇼군 대신 끝까지 결사항전을 한 건 막부를 지탱했던 번들이었다. 패색이 짙은 그들이 자결하고 남은 자들은 후대에까지 고통받는 삶을 살게 된다.

그들이 메이지 유신의 가장 큰 희생자였다.

어찌 됐든, 일본의 내란이 일찍 종식된 건 막강한 힘을 지녔음에도 쇼군의 저항 의지가 약했기 때문이었다.

무기를 줘 봐야, 싸울 생각이 없으면 무용지물 아닌가.

이래서는 원 역사대로 일본이 제국주의로 흘러갈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이는 총영사 프루인과 대화를 통해 더욱 확실해졌다.

“막부는 방향이 뚜렷하지가 않습니다. 교토의 덴노(일왕)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세력을 어떻게 할 지 갈피를 못 잡고 있거든요.”

쇼군(막부 수장)의 태도를 보면, 덴노의 명령에 따라 양이(오랑캐 배척)를 천명하긴 했지만 실제론 프랑스 왕과도 각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막스가 의아하여 물었다.

“쇼군이 나폴레옹 3세와 친분이 있다고요?”

“프랑스에 누에 전염병이 돌아 양잠산업이 파멸 직전이었는데, 얼마전 이에모치 쇼군이 일본 누에를 기증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프랑스에선 일본 누에로 전염병을 연구하고 품종 개량까지 하고 있다더군요.”

이 연구를 주도하는 인물이 바로 백신 접종 , 미생물 발효 및 저온 살균 원리를 발견한 루이 파스퇴르였다.

어찌 됐든, 프루인 총영사의 말처럼 막부는 이 시국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왕의 권한을 가지고도 왕의 눈치를 보는 게 현재 막부의 현실이었다.

“막부가 무너지면. 일본은 왕을 중심으로 빠르게 결집할 겁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겠죠.”

“반대로 왕이 무너지면?”

“혼란이 계속 되겠죠. 하지만 결국 막부는 버틸 수 없을 겁니다. 상대는 왕권과 양이라는 두 가지 명분이 있거든요. 더구나, 내란이 길어지면 결국 외세가 침입할 거라는 공포심 때문에 전쟁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프루인 총영사는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막스가 아무리 개수작을 부려도 내란이 길어질 일은 없다는 말이었다.

‘이렇게 되면 미리 뇌관을 터트리는 수밖에.’

개수작을 넘어 경악할 일을 만들어야 한다.

그날 밤. 막스는 히콕과 머리를 맞대고 이 일을 논의했다.

그런 끝에 내린 결론은.

“그래서 누구를 암살하는 거야,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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