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 아이즈번 번주와 막부의 미래
‘내가, 신선조 부장인 내가···.’
단 한 수에 무너졌다.
꿈이라면 악몽이요, 현실이라면 자결이라도 해야지 않을까.
충격을 받은 사이토는 실실 웃음을 흘리며 하늘을 쳐다봤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도전해도 이길 자신이 없었다.
생각을 갈무리한 사이토가 몸을 일으켰다.
구차하게 ‘한 판 더!’를 외치진 않았다.
말투도 조금 공손해졌다.
“약속대로 번주님과의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하나 더 있을 텐데?”
대결에서 진 사이토는 막스의 부탁 한 가지를 더 들어줘야 한다. 치욕스럽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원하는 걸 말해보십시오.”
“그건 추후 자네 번주의 입을 통해 듣게 될 거야.”
“......”
오른뺨이 퉁퉁 부어오른 사이토는 그길로 부하들을 이끌고 번주를 찾아갔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건 그로부터 두 시간이 지나서였다.
“번주께선 렌카 유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유곽?”
- 유곽?
- 준비 해.
히콕과 대원들은 경호가 필요하다며 막스를 둘러쌌다.
“니들은 경호가 목적이냐, 게이샤가 목적이냐?”
“당연히 총사령관님의 경호가 목적이지 말입니다!”
“그림자도 못 밟게 하겠습니다!”
“지금 니들이 밟고 있다.”
*
요코하마의 한 유곽.
피치의 따가운 눈총을 뚫고 막스는 과감하게 이곳에 발을 들였다.
그렇게 해서 마주 앉은 인물은 막스와 동갑내기인 아이즈번의 9대 번주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였다.
- 총영사께선 따라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 통역은요?
- 그쪽에서 준비할 겁니다. 이번 건은 제 개인적인 일이라, 굳이 오셔서 수고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번주와 막스 사이엔 아이즈번에서 고용한 통역관만 있었다.
“사이토를 단 한 수에 쓰러트렸다고요.”
“운이 좋았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만, 사이토가 말하길 총사령관님의 실력이 놀랍다고 하더군요. 칭찬에 인색한 자가 그랬다면 분명 사실이겠지요.”
카타모리는 담담하게 말하지만, 눈빛은 막스를 탐색하고 있었다. 겉과 속 모두를.
“그런데 제게 독대를 청한 이유가 무엇인지요?”
“우선, 통역관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통역관을 바라보며 묻는 말이 괴이하다.
얼빠진 표정을 한 통역관은 이내 침착한 얼굴로 번주에게 이 말을 전했다. 그리고 다시 번주의 말을 막스에게 전할 땐 얼굴이 다소 창백해져 있었다.
“오늘 이야기가 새어 나가면···. 제 일족은 멸문당할 것입니다. 번주님을 욕보인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참고로 제 일족은 대대로 마츠다이라가의 가신으로서 충성을 다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전부터 지금까지 그 충성은 변함없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도구카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세운 전투다. 즉, 3백 년 가까이 가신으로서 번주를 모셨다는 말이었다.
막스가 이렇듯 신중함을 보이자 번주는 더더욱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미국 총사령관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기대감마저 들었다.
“거두절미하고. 오늘 자리는 총사령관이 아닌 사업가로 찾아온 겁니다. 자고로 이득이 없는 곳은 일찌감치 손을 떼야 하는 법. 도막파와 좌막파 중 하나를 선택해야겠더군요.”
번주가 미간을 찡그렸다.
막부는 여전히 건재하다. 더욱이 좌막파 기둥 아이즈번의 번주를 눈앞에 두고 도막파와 비교하는 건 무례한 행동이었다.
“저울질할 만큼, 막부의 힘은 약하지 않습니다. 귀하께선 조슈번을 너무 높게 평가하는군요.”
“조슈번 혼자라면야 그렇게까지 생각했겠습니까.”
막스는 다른 번과의 동맹 가능성을 언급했다.
같은 말을 가쓰 가오슈에게도 했었다. 그는 설마 그러겠냐며 고개를 저었었다.
반면 마츠다이라 번주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최근 조슈번이 다른 번과 접촉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터라 흘려들을 수 없었다.
“정보의 출처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안 될 건 없죠. 영국입니다.”
사실상 막스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지만 번주는 의심하지 않았다. 시모노세키항이 조슈번에 속해있고, 영국이 그곳을 들락거렸으니까.
아마도 프랑스, 네덜란드 어디를 둘러대도 번주는 믿었을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도 알고 있습니까?”
“내가 번주를 만나고자 한 이유가 뭐겠습니까.”
번주는 갈증나는 표정으로 막스를 응시했다.
“조슈번이 동맹을 맺으려는 번은 사쓰마번입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사쓰마번은 아이즈번과 손잡고 조슈번의 반란을 제압했었다.
그런데 둘이 동맹을 한다?
번주가 침음을 흘렸다.
“이 정보는 도저히 믿을 수 없군요.”
“당장은 내 말을 믿지 못하겠죠. 또 다른 정보를 주겠습니다.”
막스가 목소리를 낮췄다.
“사쓰마번과 조슈번. 이 동맹의 가교역할을 사카모토 료마가 한다더군요.”
“사카모토 료마?”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번주는 고개를 가로 가로저었다.
“도사 번 출신의 낭인 무사가 무슨 권한으로 그 일을 추진한단 말입니까?”
“그야 사카모토 료마의 뒷배를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요.”
“뒷배라 하면···.”
“영국의 무기 상인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 그자가 뒤를 받쳐주고 있습니다.”
막스는 앞으로 펼쳐질 그림을 마츠다이라 번주에게 설명했다.
“막부가 조슈번의 해상 무역을 막는 바람에 그들은 무기를 구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그 무기를 사카모토 료마가 준다, 이 말씀입니까?”
“정확히는 사쓰마번이 무기를 사들여 조슈번에게 넘길 겁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사쓰마번은 무슨 얻는 걸까.
이에 막스가 짧게 대답했다.
“군량미지요.”
번주의 눈이 커졌다.
막부와 전쟁을 치르려면 사쓰마번은 대량의 군량미가 필요하다. 조슈번이 이를 무기와 거래한다는 소리였다.
“동맹은 그렇게 시작되는 겁니다. 더구나 사쓰마번은 조슈번이 무너지면 다음은 자신들 차례라고 생각하겠지요. 존왕양이를 주장하는 사무라이는 갈수록 늘어나고, 내부에서도 갈등이 심해지니 동맹은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번주는 굳은 얼굴로 찻잔을 응시했다. 머릿속은 막스의 말을 곱씹으며 타당성을 따져봤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사카모토 료마부터 잡아들여야겠군요.”
“그 전에 내부부터 정리해야지 않겠습니까?”
“밀정을 색출하고 제거하는 일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도 가쓰 봉함이 용케도 살아 있더군요.”
번주의 눈이 가늘어지자 막스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가쓰 봉함은 사카모토 료마를 가르쳤습니다. 언제라도 막부에 등을 돌릴 사람이지요. 전쟁이 벌어지면 조슈번에게 에도의 문을 열어 줄지 누가 알겠습니까.”
“총사령관께서 가쓰 봉함에게 맺힌 게 있었던 모양이군요.”
“이걸 이간질이라고 생각하면, 굳이 설득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내가 개틀링 기관총을 팔지 않은 건, 가쓰 봉함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막부를 지켜야 할 무기가 적들에게 넘어가면, 번주께선 감당할 수 있습니까?”
“...... 설마 그렇게까지야 하겠습니까.”
“나라를 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요, 저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어찌 됐든, 사이토와 내기에서 이겼으니 나는 그에게 가쓰 봉함 암살을 요구할 생각입니다.”
“!”
통역관이 멍하니 막스를 쳐다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도리질 치며 번주에게 말을 전했다.
그러자 이번엔 번주가 입을 쩍 벌린 채 막스를 쳐다본다.
“진심입니까?”
“농담 따먹으려고 여길 왔겠습니까. 아무튼 말이 길어졌으니, 슬슬 정리해야겠군요.”
막스는 비밀 회담의 마무리로 자신이 번주를 독대한 진짜 목적을 밝혔다.
“미국 내전에서 북부가 남부를 이긴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물론 내가 총사령관이라서도 있겠지만.”
“......”
“핵심은 명분과 자금입니다.”
“명분과 자금?”
“일본으로 비교해볼까요?”
남부는 교토의 덴노를 중심으로 조슈, 사쓰마, 도사 번이 존왕양이의 기치를 내걸며 결집하고. 북부는 에도 막부를 중심으로 아이즈번, 미토번, 오우에쓰열번 등이 좌막을 외치며 버티고 있다.
“여기서 명분은 존왕을 외치는 남부가 갖습니다. 그럼 자금은 어떻습니까? 조슈와 사쓰마번은 서양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심지어 막부를 뛰어넘을지도 모르죠.”
공교롭게도 가장 활발하게 무역이 이루어지는 항구가 조슈번의 시모노세키항, 사쓰마번의 나가사키항이다.
사카모토 료마는 그중 나가사키항에서 활동하며 영국 무기 상인과 교류를 맺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막부는 명분에서 밀립니다. 여기에 더해 덴노가 막부를 역적으로 몰아세우면 어쩌겠습니까?”
실제 원 역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보신 전쟁 당시 교토의 덴노는 조슈, 사쓰마번을 등에 업고 막부를 반란군으로 몰아세웠다.
이에 당황한 쇼군은 전쟁 의지를 꺾고, 막부 관료들도 같은 길은 걸었다.
하지만 끝까지 항전한 아이즈번은 전쟁에서 패한 대가로 숙청되고. 목숨을 부지한 번주는 핍박받는 부하들과 죽은 신선조를 기리며 여생을 쓸쓸하게 살다 죽는다.
막스는 애잔한 눈으로 번주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도막 파와 맞서려면 존왕양이에 맞설만한 기치를 내걸어야 하는데. 그런 게 있을 리가요.”
막부 태생 자체가 왕권을 빼앗아 생긴 권력 집단이다.
명분이라고 해봐야 그동안 일본에 평화를 가져왔다는 점인데. 이마저도 서양 오랑캐의 등장으로 깨지고 말았다.
막부는 강제 개항 이후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었다.
막스가 한 가지 제안을 꺼내 들었다.
“명분에서 밀리면 자금에서라도 이겨야지 않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미국은 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차관이라도 빌리란 말입니까?”
“요청하면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그 정도 영향력은 있으니까.”
막스의 말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동양인이 미국에 영향력을?
과연 이런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상대는 국가 내전 중 임명된 총사령관.
모든 의심을 걷어낼 정도로 대단한 자리였다.
다만,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일본을 생각한다면 거절해야 마땅했다.
“솔직히 일본 내정에 외세를 끌어들이는 건 달갑지 않은 일입니다.”
“도쿠가와에 패배한 도요토미 일족을 잊었습니까? 전쟁의 패배는 가문의 처참한 몰락입니다. 그깟 차관이야 전쟁에서 진 조슈와 사쓰마번이 감당할 일이지요. 그대의 쇼군에게 전하십시오. 막부의 존폐가 걸린 일이라고.”
하필 자신의 대에 가문이 몰락하는 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한 도요토미 일족과 휘하의 번들은 살벌한 숙청 속에 몰락의 길을 걸었다. 어디 그뿐인가. 잘못 된 선택으로 몰락한 선례들은 무수히 많았다.
무릇 일족의 수장이라면 행동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번주의 미간이 좁아졌다.
분명 막부가 쇠퇴기에 접어들었음은 자신도 실감하고 있었다.
‘존왕양이는 잡초와 같다.’
제아무리 밟아도 싹을 틔우고, 오히려 영역을 확장해갔다.
막스 말마따나 강력한 명분이 그들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날 비밀 회담을 끝낸 번주는 교토가 아닌 에도로 발길을 틀었다.
가는 길에 사이토에게 물었다.
“총사령관의 요구는 어떻게 하기로 했지?”
“요구요? 저한테 말하길, 번주님께 직접 들으라 했습니다.”
“나에게?”
총사령관의 의중을 파악하려 한참을 고민했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결과 없이 끝난 회담이기에 총사령관은 대답을 요구한 것이다.
막부의 선택은 무엇인지, 아이즈번의 번주는 어떤 생각인지.
그 대답을 가쓰 봉함의 처형으로 보여달라는 뜻이 분명했다.
“사이토. 사흘 안으로 가쓰 봉함의 집을 수색해서 막부에 반하는 증거를 찾아내라.”
“하잇!”
*
비밀 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막스는 프루인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구체적인 내용은 감추고, 차관에 관해선 미리 언급할 필요가 있었다.
“차관이라. 그러다 막부가 싸움에서 패하면요?”
“신 정부에게 받아야죠.”
“걔들도 모른 척하면요?”
막스는 프루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미국에게 빌린 돈을 안 갚는다고요?”
“음. 어떻게든 주긴 주겠죠·····?”
“당연합니다. 어느 쪽이 이기든 탈탈 털어서라도 갚게 될 겁니다.”
돈이 없으면 자원이든 땅이든 어떻게 해서라도 받아낼 것이다.
그게 미합중국이다.
어찌 됐든, 막부는 시대의 흐름을 버텨낼 수 없다. 결국 개혁과 변화는 일어날 수밖에 없을 터.
그게 조슈번이 주도한 메이지 유신일 필요가 있을까.
막스의 대일본 전략은 가닥이 잡혔다.
내전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 무기와 식량을 원조해 일본에 빚을 지우는 것.
단순한 전략이지만 성장을 둔화시키고 옭아매기에 괜찮은 방법이었다.
그리고 모든 게 계획대로 된다면, 덤으로 노려볼 만한 게 있다.
류큐 왕국인 오키나와.
대만, 홍콩, 중국과 가까워 해상 교통의 요충지를 손에 넣는 것이다.
표면상 류큐 왕국이지만, 이미 수백 년 전 사쓰마번에게 점령당한 적이 있었다.
현재는 청나라에 조공을 바치며 근근이 왕국을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상 사쓰마번의 뒷주머니였다.
문제는 조슈번의 정신적 지주 요시다 쇼인이 일본의 책략 중 하나로 오키나와를 강제 병합하는 전략을 취했다는 거.
그 결과 그의 제자 이토 히로부미가 류큐 왕국 처분을 맡게 된다.
이후 일본이 패전국이 된 후엔 미국이 오키나와를 수십 년간 통치하는데, 막스는 그걸 앞으로 당겨 자신이 통제하길 원했다.
‘점점 꿈이 커지네. 큰일이야.’
하루빨리 미국으로 돌아가야겠다.
다음날.
가쓰 가이슈 봉함과 관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기들이 배에서 배로 옮겨졌다. 대금은 약속대로 금으로 받고 이를 함선에 실었다.
모든 처리가 끝나고, 일본에 온 지 닷새.
막스는 미국 본토로 출항하게 되었다.
SFBC 대원은 히콕과 코디를 필두로 열 명이 남게 되었다.
떠나기 전 막스는 몇 가지 당부를 남겼다.
- 암살은 확신이 들었을 때만 해. 일본의 미래가 어떻든, 너희들이 목숨 걸 이유는 없으니까.
- 옛 썰!
- 그리고 너희 중 누군가가 유곽에서 죽었다는 소리 들리면, 이 일을 콜로라도 로키산맥 입구에 비석으로 남길 거야. SFBC 후배들에게 좋은 교육이 되겠지.
- ......
*
태평양을 떠다니는 열 척의 함선.
그중 USS 콜로라도 함선 갑판에는 아이들이 북적거렸다. 사내아이가 넷, 여자아이가 둘.
전부 일본 아이들이었다.
짐칸에 숨어 있던 고유지와 오동패도 떳떳하게 갑판에서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둘은 바다만 보는 건 아니었다. 귀엽고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아이를 동시에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의식한 둘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또 다른 함선 USS 칼립소.
여기엔 조선인 사절단과 밸라 부부가 함께였다.
6개월의 장대한 여정을 그냥 보내는 건 시간 낭비라, 이들은 머리를 맞대어 한글 영어 교재를 만드는 데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어느 날, 막스가 밸라 부인에게 말을 건넸다.
“일본 아이들을 제가 데려가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보육원도 운영하시나요?”
밸라 부인은 농담 삼아 물었지만, 막스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콜로라도에 있습니다. 마운틴 메도우스 대학살이라고 들어봤습니까?”
“유타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 아닌가요? 몰몬교와 관련 있는?”
“맞습니다. 그때 17명의 아이가 생존했죠.”
밸라 부인은 잠시 눈을 껌뻑이더니, 손바닥을 마주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시 신문마다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큼 유명한 사건이었다.
“그러고 보니 총사령관님이 그 아이들을 구한 용병 단체 대장님이셨군요!”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그때 생존한 아이 중 가족이 없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아칸소로 돌아갔지만, 돌볼 사람이 없던 아이들이 여덟.
당시 캔자스 준주 주지사였던 존 기어리를 통해, 막스는 아이들을 콜로라도로 데려와 키웠다.
물론 막스가 직접 키운 건 아니고, 요새 안에 아이들의 거처와 생활 공간, 학교까지 만들며 그 규모를 늘려갔다.
그리고 미국을 떠나오기 직전, 아이들의 숫자는 50명까지 늘어 있었다.
“콜로라도라면 아이들도 잘 자랄 수 있을 겁니다.”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흑인, 동양인, 히스패닉, 인디언, 백인이 뒤섞인 공간.
이곳 인종의 용광로 속엔 분명 미래를 이끌어 갈 인재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미래는 미국을 넘어 조선과 일본, 중국 어느 나라든 뻗어나갈 수 있다.
재능이 있다면, 막스가 밀어줄 테니까.
“절대 이용하려는 게 아닙니다.”
“······ 아무말 안 했는데요.”
함선이 미국 본토에 도착한 건 해가 넘어가기 직전.
1865년 12월 11일이었다.
조선 사절단이 최초로 미국 땅을 밟은 역사적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