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 이름이 마음에 안 들면?
뉴욕 항구가 떠들썩하다.
입항 절차를 하는 동안 소문이 돌았는지, 항구에 기자들과 민간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막스는 일본을 떠나기 전, 총영사을 통해 조선 사절단과 선교사 부부, 아이들에 관한 내용을 워싱턴에 보고하도록 요청했다.
중국 상해에 전해지면 영국이 깔아둔 전신으로 몇 개국에 걸쳐 미국 영사가 있는 곳을 통했다. 그렇게 영국 영사까지 도착한 뒤에야 비로소 배로 워싱턴에 전달되었는데, 과정이 복잡하긴 해도 이 시기엔 최선의 방법이었다.
막스가 뉴욕에 도착하기 석 달 전, 이미 워싱턴에 내용이 전해졌으니 말이다.
“총사령관님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조선에서 오신 사절단분들을 환영합니다!”
사절단의 공식 명칭은 외국에 우호, 친선 및 교섭을 위한 보빙사(報聘使). 이들은 몰려드는 사람들과 이색적인 풍경에 바쁘게 시선을 움직였다.
책임자이자 가장 연장자인 박규수는 내심 감탄을 쏟아내며 풍광을 눈에 담아 두었다.
‘조선과 어찌 이리도 다르단 말인가.’
항구는 증기선들로 가득하고, 선착장은 모래와 자갈이 아닌 평평한 돌로 되어 있다. 사방에 널려있는 쇳덩이들은 조선 팔도에서 긁어모아도 더 많아 보인다.
그나마 중국이라도 가봤던 박규수와 오경석은 나름 분석도 하며 관찰할 수 있었지. 평생을 조선 밖으로 나가보지 않은 이들은 보는 족족 탄성을 터트려댔다.
원 역사에서 조선이 보빙사를 꾸려 해외로 나간 시점은 지금보다 18년이나 늦은 1883년. 너무 빠른 만큼 충격은 더 크게 다가왔다.
문득 박규수는 마냥 신기해하는 모습들이 우습게 보일까 걱정이 되었다.
배에서도 후배들에게 몇 번을 당부했거늘, 정작 자신도 입을 벌린 채 체통을 잃고 말았으니 말이다.
‘타국에 와서 흠을 보여서야 되겠는가.’
박규수는 갓을 고쳐 쓰고,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오경석과 후배들이 곧장 자신들의 행색을 다듬었다. 그렇게 평온한 얼굴로 장내를 훑어볼 때 총사령관이 다가와 박규수에게 말을 건넸다.
“뉴욕에서 사흘을 머물게 될 겁니다. 숙소와 환영 행사를 준비했으니 그리로 이동하시지요.”
인파를 뚫고 항구를 벗어나자마자 사두마차 행렬이 다가왔다. 그 안에서 남자들과 여인들이 뒤섞여 내리는데. 막스의 처가 식구들이었다.
“사위 왔는가!”
“처남!”
다들 피치는 살아있는지 확인만 하고, 막스를 더 반겼다. 그런데 이 와중에.
“우우욱.”
“!”
일제히 시선이 피치에게 쏠렸다.
“설마, 에밀리 너!”
“둘이 가서 셋이 돌아왔다는!?”
“배멀미거든?”
“아하.”
다들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SFBC 대원들은 조선과 일본에서 온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로잔나 피어스로 향했다.
호텔로 가는 길.
피치와 오붓하게 마차를 탄 막스가 물었다.
“진짜 배멀미야?”
“왜에? 아기라도 생겼을까 봐?”
고개를 끄덕거리자 피치가 피식한다.
“사실 나도 몰라. 시간이 지나면 알겠지, 뭐.”
“되게 담담하네.”
“기대했는데, 아니면 어떻게 해. 내 나이가 좀 많아야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니까 그러네. 아기가 있든 없든 상관없으니까,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뉴욕 맨해튼의 엘드릿지 호텔.
그 앞에 도착하자 바닥에 깔린 레드카펫을 볼 수 있었다.
입구엔 사장 셸라 엘드릿지가 직접 마중 나와 있었다.
그는 막스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격하게 포옹을 해왔다.
“무사히 다녀와서 다행일세. 혹시나 어떻게 되었을까 봐 얼마나 걱정했다고.”
“다행히 폭풍도 없었고, 허리케인도 비껴갔습니다.”
“하늘이 도왔구만.”
막스가 조선에 가 있는 동안, 미국에서만 1865년에만 2,300명의 승객을 태운 증기선이 미시시피강에서 폭발하여 침몰.
캘리포니아에선 225명이 목숨을 잃었고 조지아 앞바다에서는 40만 달러의 화물이 실린 배가 침몰하는 사건도 있었다.
셸라 엘드릿지가 괜히 한 말이 아니었다. 그는 피치에게 안부를 묻고, 사절단에게도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지내시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통역사 밸라 부인이 이를 박규수에게 전달했다.
“행여나 누를 끼치진 않을까 걱정부터 앞서는군요. 이렇게 저희를 환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절단이 숙소에서 여독을 푸는 동안, 막스는 오래된 신문까지 챙긴 뒤 피치와 숙소로 올라갔다.
*
“여보 같이 씻자!”
“······ 난 이것부터 좀 읽고.”
“쳇.”
쏴아아아.
“이게 대체 얼마만이냐아아! 유후~! “
욕실에 피치의 흥얼거림을 들으며 막스는 소파에 앉아 신문을 펼쳤다. 빠르게 내용을 훑어나가며 그동안에 벌어진 상황을 파악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고뇌가 깊었던 존 브라운 대통령, 눈물의 퇴임사를 끝으로 임기를 마치다]
급격히 나빠진 몸을 이끌고, 존 브라운은 5분간의 짧은 스피치를 마쳤다. 노예 해방을 선언하고 이를 담은 수정 헌법 13조가 가까스로 하원에 통과했음을 말할 때 눈물을 떨구었다고 한다.
평생을 염원하던 노예 폐지를 목전에 둔 기쁨일까. 아니면 이 결과를 쟁취하기 위해 희생된 이들을 위한 눈물이었을까.
신문은 감성적인 문구로 미국 최악의 전쟁, 그 선봉에 선 대통령의 끝을 담아냈다.
잠시 천장을 바라본 막스는 이내 다른 신물을 펼쳐 들었다.
[미국 17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취임식, 성황리에 마쳐]
링컨은 취임식에서 전쟁 영웅과 희생자들을 기리는 동시에 아직 저항을 포기하지 않은 남부 저항군에게 항복의 메시지를 남겼다.
‘이게 올해 3월.’
뒤이어 4월 14일 자 신문에는 ‘전쟁 종식 선언’이 헤드라인에 걸렸다.
실질적인 종전은 로버트 리의 항복 선언이 기점이었지만, 일부 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종전 선언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제네럴막스조호와 함께 조선에 깽판을 친. 남부의 해적선 섀넌도어 선장 워델이 영국에 망명 의사를 전한 뒤였다.
막스는 남북전쟁의 종식을 1년 앞당겼다.
그뿐 아니라, 원 역사에선 암살당했어야 할 링컨이 멀쩡히 살아 미국을 움직이고 있었다.
남부 재건의 시대, 링컨은 황폐하고 피폐한 남부 경제를 부활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을 천명했다.
신문을 넘기던 중 막스는 한 광고 문구를 발견했다.
‘We never sleep(우리는 절대 자지 않는다)!’는 모토로 핑커톤이 탐정을 모집하는 구인 광고였다.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려 나갈 생각이군.”
남북 전쟁에 참여한 군인 중엔 자신의 전투 본능을 깨달은 자들도 있다.
총을 사랑하고 쫄깃쫄깃한 긴장감에 오히려 중독된 자들.
그들에게 핑커톤은 훌륭한 대안이었다.
광고를 본 막스는 SFBC의 현재와 미래를 떠올렸다.
현재 대원의 수는 273명.
핑커톤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대원들을 마구잡이로 받아들인다? 적들의 스파이와 암살자들을 끌어들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막스와 특수부대원이 남북 전쟁 동안 좀 설쳤는가.
‘이게 가장 큰 문제야.’
총사령관과 특수부대 목을 따려는 이들을 줄 세우면 족히 수만 명은 되지 않을까.
SFBC 조직의 확장은 그만큼 위험 부담이 컸다.
더욱이 본격적으로 PMC 활동을 하기에도 이른 시간이다.
무법자가 된 남부 패잔병들의 무차별 공격 타겟이 될 게 뻔하지 않은가. 고객들을 폭풍 속으로 끌어들이는 꼴이었다.
아마 고객들도 이를 알 것이다.
실력을 떠나 일을 맡기기엔 부담스러운 존재.
이게 현재 SFBC가 처한 상황이었다.
어쩌면 막스가 남북전쟁에 전면으로 등장한 순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뒤, 또 다른 신문을 펼쳤다.
발행일은 석 달 전이지만, 헤드라인이 막스의 눈에 들어왔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 다이나마이트로 첫 폭발 시험 성공!]
이로 인해 터널 공사에 탄력이 붙고, 세계에서 다이나마이트의 화력만큼이나 폭발적인 관심을 보인다는 기사였다.
원 역사에선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터널을 뚫다 죽은 중국인 노동자가 부지기수였다.
혹독한 환경과 열악한 장비, 낮은 폭발력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다이나마이트와 도화선을 시간으로 제어하는 장치를 개발한 막스 덕분에 사망자는 단 세 명에 그쳤다. 안타까운 일이나, 죽은 이들은 산에서 다이나마이트를 암벽에 설치하다 밧줄이 끊어져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어찌 됐든, 실험까지 끝냈으면 시제품은 콜로라도와 뉴욕 공장에서 만들고 있을 것이다. 이는 세계 전역으로 팔려나가 특허가 만료되는 시점까지 막스에게 돈을 벌어다 줄 터였다.
이어서 또 다른 신문을 펼쳤다.
비교적 최근 신문에 총사령관이 언급된 기사가 실렸다.
[총사령관이 만들어낸 미조 수호 통상 조약의 가치]
거창한 제목으로 시작된 기사는, 조선인으로서 막스의 결기를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열두 척의 함선을 이끌고 강화도를 폭격, 점령한 과감성. 이후 도성까지 함선을 이끌고 가 마침내 굳게 닫힌 조선의 문을 열었다며 칭찬한 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같은 열강들을 제쳐두고 조선이 미국을 최혜국으로 대우해준 건 역시 총사령관의 업적이라 쓰여 있었다.
[변화의 비밀이 있다면, 한 번에 한 걸음씩이라는 것이리라. 총사령관은 그 비밀을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비록 그 걸음은 거칠었지만, 조선의 변화와 발전이 미국과 함께 한다면, 그 걸음은 가히 큰 족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히 공산당 수준의 찬양 기사였다.
아니나 다를까, <프리덤 에코> 신문이고 사설을 쓴 자는 마크 트웨인이었다.
막스는 낯뜨거운 기사를 피치가 볼까, 신문을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목욕을 끝내고 화장을 하고 있던 피치가 거울 속에서 막스를 힐끔 쳐다봤다.
“이제 환영식 할 시간 아니야?”
대체 언제 씻을 거냐고 채근했다.
막스는 벌떡 일어나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씻고 다시 옷을 입는 데까지 10분이면 충분했다.
그날 저녁.
환영식 행사를 위해 로비에 있던 사절단은 속속들이 도착하는 마차들을 볼 수 있었다.
마차든 말이든, 내리는 족족 발길이 총사령관에게로 향했다. 그런 다음에야 사절단을 찾아와 인사를 건넸다.
가장 바쁜 건 통역을 맡은 밸라 부부. 시종일관 상대의 신분과 말을 전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분은 뉴욕 경찰국 국장이고. 이분은 뉴욕 시의원. 그리고 철도 협회 이사진들, 공장 협회, 의류 협회. 이분은 언론사 사주인데, 엇 뉴욕 타임즈 헨리 레이몬드?”
“······”
“이분은 뉴욕 무역 협회 회장이에요. 오늘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하게 될 거예요.”
배에서 오는 동안 미국의 행정 시스템과 중요한 자리는 배워 두었다. 사절단은 밸라 부인이 언급한 인물들이 꽤 높은 위치의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높은 사람들이 총사령관에게 인사를 건네고 손을 맞잡고 포옹하기까지 했으니, 새삼 막스의 위치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컨벤션 홀에서 환영식 본 행사가 열리자 뉴욕 거물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뉴욕 시장. 주지사. 그리고 저분은···.”
코넬리우스 밴더빌트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등장했다. 통역하는 밸라 부인도 그 이름을 모를 수가 없었다.
“미국 최고 갑부에요.”
“최고라면 대체 어느 정도 재산이 있단 말입니까?”
“음. 글쎄요. 그냥 부자라는 정도만 알고 있어서.”
밴더빌트는 사망 당시 2억 달러를 재산으로 남겼다.
21세기 시점으로 계산하면 대략 26억 달러. 한화로 치면 3조에 달하는 돈이다.
조선의 1년 예산보다도 많은 돈이었다.
사절단이 유명 인사들과 인사하는 동안, 막스는 측근들에 둘러싸였다.
프리덤 에코 워싱턴 지부의 윌슨 섀넌과 데이비드 러셀, 뉴욕 지부장 모리스 디캠, 로잔나 피어스의 매그, 그리고 홀리데이까지 환영식을 찾아왔다.
공식적인 건 사절단 환영식이지만, 사실상 총사령관 막스의 귀환을 축하하는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다음 조선에 갈 일 있으면 나도 데려가.”
“일해야지 어딜 갑니까.”
홀리데이의 말에 막스가 그건 안 될 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바닷바람 좀 쐬자. 이러다 과로사하게 생겼어.”
“요령껏 쉬면 되지, 하여간 엄살은. 그나저나 대륙횡단철도는 어떻게 됐어요?”
“유니온 퍼시픽은 대략 300km, 센트럴 퍼시픽은 좀 느려서 200km 구간이 조금 안 돼. 뭐, 캘리포니아에 워낙 산이 많잖아.”
막스는 측근들과 추후 이야기하기로 하고 행사에 집중했다.
환영식이 이어지고 사절단 대표 박규수가 짧은 소감을 발표할 때, 뒷문으로 낯익은 인물이 들어섰다.
핑커톤의 수장 앨런 핑커톤이었다.
그는 막스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나 보러 뉴욕까지 왔습니까?”
“당연하지. 미국 총사령관이 1년 만에 왔는데, 그냥 있을 수가 있나. 그래서 고향은 잘 다녀왔나?”
“멀어도 너무 멀더군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나야 뭐, 이래저래 몸만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
“신문에 광고가 많이 실렸던데요.”
“전쟁 경험자들을 썩힐 수가 있나. 실력이 녹슬기 전에 고용해야지.”
웃음을 머금은 앨런이 은근슬쩍 물어왔다.
“그런데 앞으론 어쩔 생각인가? 계속 군인으로 있진 않을 테고.”
“워싱턴에 가면 총사령관은 당연히 넘겨야겠죠.”
“그다음은?”
앨런은 SFBC의 다음 행보를 신경 쓰고 있었다. 탐정과 용병은 이름만 다르지, 사실상 상당 부분 활동 영역이 겹칠 수밖에 없었다.
막스는 오히려 앨런에게 물었다.
“제가 뭘 하면 좋겠습니까?”
“선의의 경쟁도 좋긴 한데. 솔직히 총사령관은 부담스러워. 그리고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총사령관도 알잖아? 지금 SFBC가 활동하면 어떻게 될지.”
앨런은 막스의 고민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짜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나와 함께 핑커톤을 키우는 건 어때? 이름이 마음에 안 들면, 충분히 바꿀 용의도 있네. 원하면 막스톤으로 하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