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 막스를 위협하는 조직
‘막스톤?’
일단 이름부터 구리다.
SFBC에 비하면 촌스럽고 유치하지 않은가.
앨런의 작명 센스가 바닥이라며 막스는 혀를 끌끌 찼다.
아무튼, 핑커톤에 자신의 모든 걸 갈아 넣은 앨런은 이름까지 바꾸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핑커톤과 SFBC의 병합이라.’
두 조직의 미래를 생각하면 나쁜 조합은 아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막스는 핑커톤을 어떻게 집어삼킬까 고민했으니까.
수장인 앨런 핑커의 죽음 이후, 강도 남작과 결탁해 노동자를 탄압하고 각종 이권에 개입한다.
스코틀랜드 노동자 출신으로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탈출한 앨런도 이런 결과를 예상했을까? 아니면, 죽기 전 이미 앨런 스스로가 자본가와 어울리면서 변질된 걸까?
문득 핑커톤과 맞물려 SFBC 앞날도 걱정된다.
‘과연 SFBC는 다를까.’
막스 역시 스스로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대해진 조직은 스스로 부패하기 마련이다.
온갖 시스템을 만들어 방지하려 해도, 조직은 움직이는 근본적인 건 탐욕스러운 인간이 주체였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죽으면 SFBC도 핑커톤과 같은 길을 걷진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을까. 핑커톤보다 더한 재앙 덩어리가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조직을 촘촘히 설계할 필요가 있겠어.’
일단 그건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고.
막스는 단상에 서 있는 사절단을 응시하며 앨런에게 물었다.
“갑자기 왜 이런 제안을 하는 겁니까?”
“이 방법이 최선이거든. 총사령관의 자본과 무력, 인맥, 지위. 그거라면 핑커톤의 미래를 걸만 하지 않겠나?”
아직도 채굴 중인 콜로라도 금광, 뉴욕의 공장에서 찍어내는 족족 팔려나가는 물건들. 각종 철도 사업과 오일 업체에 투자한 자금과 다이나마이트의 특허와 제조, 판매권.
앨런이 아는 것만 이 정도다.
앞으로 막스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일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돈이 막스의 강력한 무기일까.
‘돈이 없을 때도 무서운 자다.’
동양인이라는 약점도 막스에겐 적용되지 않았다. 그동안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면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했다.
앨런은 그런 막스가 두려웠다.
최악의 미래를 가정하면 핑커톤과 SFBC가 서로를 공격하는 경우다.
앨런이 피하려 해도 사업 분야가 비슷하기에 언제 부딪혀도 이상하지 않았다.
만약 그런 사태가 온다면, 자본과 무력을 동시에 지닌 막스를 상대로 이길 자신이 없었다.
‘조직이 도중에 꺾어지지 않고,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하는 방법.’
SFBC와의 공조만으론 부족하다.
병합만이 두 조직의 발전을 이끌 수 있었다.
“적어도 10년 동안은 SFBC가 미국에서 활동하긴 힘들 걸세. 내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남부 패잔병들은 그냥 잔챙이들이고. 진짜 총사령관을 위협하는 자들은 따로 있네.”
“그건 여기서 할 이야긴 아닌 것 같네요.”
막스가 슬쩍 앨런을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따로 대화하자며 입을 닫았다.
‘나를 위협하는 자들이라.’
막스는 눈을 가늘게 떠 단상을 응시했다.
마침 조선과의 무역과 교류를 환영한다며 희망찬 비전까지 담아낸 뉴욕 주지사의 긴 연설이 끝났다.
그런데 갑자기 주지사 루벤 펜턴의 시선이 막스를 향한다.
그리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뗐다.
“양국의 교류를 위해 총사령관님께서 수고를 해주셨는데, 한 말씀 들어야지 않겠습니까!”
“오오!”
‘굳이 안 들어도 되는데.’
행사장에 참여한 이들은 뉴욕을 지배하는 핵심 인사들. 대부분 조선 사절단보다 막스를 보기 위해 모인 자들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막스가 몸을 일으켰다.
“잘 다녀오게.”
앨런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막스가 단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내디딜 때, 진행자가 외쳤다.
"모두 박수로 환영해 주길 바랍니다. 총사령관 막스 조 중장님입니다!”
전쟁을 종식 시킨 영웅. 하지만 연방에서 개최한 각종 행사에 총사령관은 참석하지 않았다. 남부 연합의 항복만 받아낸 채 조선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행동은 의도치 않게 막스의 신비감을 더하고 몸값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이 일어나 손뼉 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저들이 누구인가.
뉴욕을 움직이는 거물들이다.
그런데 자신의 인생 한 자락에 총사령관과 같은 공간에 있음을 자랑스러워했다. 미국 최고 갑부 밴더빌트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자리에 함께 설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총사령관님.”
“저야말로 영광이지요.”
주지사 루벤 펜턴이 손을 꽉 잡으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때마침 플래시가 터졌다.
아마 이 모습을 담은 사진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될 것이다.
정치인인 주지사에겐 더할 나위 없는 홍보 수단일 터. 막스는 얄팍한 정치인들의 셈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뭐, 이들에게 이용 가치가 있다면 나쁜 건 아니지.’
그만큼 막스의 영향력이 크다는 반증일 터.
막스는 주지사에게 담담하게 인사를 건넨 뒤 단상에 섰다.
컨벤션 홀을 가득 채웠던 박수 소리가 차츰 줄어들고, 마침내 막스가 장내를 훑어보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고요함을 뚫고 막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는 미국 시민입니다.”
그걸 누가 몰라서 하는 건가?
하지만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자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이번 조선과의 통상 조약을 두고 소설을 써댈 것이다.
같은 조선인으로서 은밀한 거래를 의심하고 작은 꼬투리를 잡아 맹렬히 물어뜯을 것이다.
막스의 첫 문장은 그들의 공격을 차단하려 꺼내든 말이었다.
“미국 시민으로서 국익이 최우선이고, 저는 그런 관점에서 조선과의 통상 조약을 이뤄냈습니다. 해서 이 자리는 총사령관이 아닌, 조선과의 통상 조약을 만든 장본인으로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
막스는 담담하지만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중국은 이미 열강들의 전쟁터가 되었고, 미국이 동북아시아에 발판을 마련하는 길은 일본과 조선을 무역 상대국으로 만드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화답하며 조선은 다른 열강을 제쳐두고 미국을 최혜국으로 삼아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 과정이 비록 무력을 바탕에 두었지만, 막스는 이를 포장하는 데에도 능숙했다.
상대국을 약탈과 수탈의 대상으로 삼는 제국주의 시대는 저물고 있으며.
열강들의 놀이터가 될 뻔한 조선이 발 빠르게 미국과 손을 잡은 것도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둥.
미국의 국익과 상호 조약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연설의 끝은.
“저는 다가올 미래는 우리가 추구하는 상호 협력적인 관계야말로 미국을 더욱 강력한 국가로 만들게 될 것임을 확신하고, 또한 그런 미국 시민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막스는 오로지 미국과 조선의 통상 조약만 언급한 채 단상을 내려왔다.
전쟁에 관한 발언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조금 실망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단상을 내려온 막스에게 관객들은 열렬한 박수로 화답했다. 일부는 자리에 걸맞는 연설이었다며 엄지를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자리에 앉으며 앨런에게 물었다.
“좀 밋밋했나요?”
“내용은 둘째치고 계산이 깔린 연설이었다는 건 확실히 알겠네.”
“계산이라니. 세상을 너무 삐딱하게 보는 거 아닙니까.”
“내가 자네를 한두 번 겪어봐?”
첫 문장부터 끝맺음까지.
막스의 연설은 관객이 아닌 정적들에게 한 말로 볼 수 있었다.
난 미국 시민이고, 너희들 때문에 조선에 갔다 왔다. 그리고 미국 국익을 생각해서 다른 열강들을 제치고 최혜국으로써 조약을 맺어왔다.
덤비려면 다른 이유를 가지고 와라.
“이게 맞지. 안 그래?”
“아무리 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기자들이 써 줍니까.”
“왜 이래, 여기 모인 기자들 다 자네 편 이잖아?”
뉴욕 타임즈, 헤럴드, 데일리 트리뷴, 심지어 막스는 프리덤 에코의 사주이기도 하다.
더욱이 하나같이 뉴욕 갱단과 타마니 홀 정치 세력에게 시달림받던 언론사들이었다.
막스가 그것들을 깡그리 청소해준 덕분에 관계가 나쁠래야 나쁠 수가 없었다.
“내일 기사는 안 봐도 뻔하지 뭐.”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막스가 너스레를 떨 때 즈음.
모든 공식 행사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사람들은 컨벤션 홀을 떠나기 전 막스에게 인사를 건넸는데, 밴더빌트는 뭔가 심통이 나 있었다.
“워싱턴에 가기 전, 나와 이야기 좀 하세.”
'이 양반은 또 왜 이래.'
“그러시죠.”
“내일 마차를 보내도록 하겠네.”
밴더빌트가 사라지고, 막스는 앨런 핑커톤과 조용한 회의실로 이동했다.
앉자마자 막스가 물었다.
“SFBC를 위협하는 건 골든 써클 기사단입니까?”
“그 조직은 이미 기능을 상실했고. 물론 이름만 바꿔 활동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지. 하지만 총사령관이 신경 쓸 정도는 아닐 걸세. 사실상 가장 큰 위협은.”
앨런이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이듯 말했다.
“남부 프리메이슨이네. 골드 써클 기사단도 결국 그들의 가지 중 하나니까.”
막스는 다른 의미에서 놀라며 물었다.
“앨런도 프리메이슨이었습니까?”
“우리 형제님에 비하면 급 낮은 평민이지.”
“......”
“우리 형제님은 콜로라도 롯지의 그랜드 마스터. 나는 일리노이 시카고 롯지의 22도 나이트 이스트 이글.”
‘또 나왔다. 저 계급도.’
탁자 아래, 막스는 오그라드는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는 동안 앨런의 말은 계속되었다.
“사실 나는 스코틀랜드에 있을 때부터 프리메이슨이었네. 반면 동양인인 자네가 그랜드 마스터라는 걸 알았을 땐, 나도 꽤 놀랐네. 뭐, 홀리데이가 그렇게 판을 깔아줬겠지만.”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망. 그거라면 피부색도 상관없다더군요.”
“분명, 캔자스와 콜로라도는 그걸 가장 큰 가치로 여기지.”
반대로 일부는 신비주의를 고수하고 홀로 사색하며 진리를 탐구하는 데 몰두했다.
“사실상 그들은 언급할 필요가 없네.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니까. 문제는 우리와 같은 자들이지.”
사실상 자신의 관심사가 가족을 넘어서고 주변을 향할 때, 사람들은 이러한 욕구를 느끼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자들이 많이 모인 곳이 바로 프리메이슨이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알게 모르게 이 조직과 연관된 사건들이 많았다.
프랑스 혁명, 멕시코 혁명, 러시아 혁명, 미국의 독립운동까지 프리메이슨이 개입되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망이 행동으로 표출된 사례였다. 그런데 이는 양날의 검과 같다.
“굵직굵직한 사건에 끼어들면서, 착각에 빠졌네. 자신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착각.”
동시에 옳고 그름은 자신들의 입지와 출세, 자본과 연결되면서 왜곡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남부 프리메이슨이 그런 경우였다.
“그런데 프리메이슨은 점조직 아닙니까?”
“처음 시작은 그랬지. 하지만 어떤 위기가 닥치면 조직은 자연 뭉치게 되어 있네.”
“남북전쟁이 그들에겐 위기였군요.”
앨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 프리메이슨 롯지(사원)는 지역 유지들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남부의 경우 롯지를 이끄는 자들은 부유한 농장주고, 그들은 하나같이 노예를 두고 있었다.
“남부 연합의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도 마찬가지네. 골든 서클 기사단인 동시에 사실상 남부 프리메이슨을 대표했지.”
“그럼 지금 주축이 된 남부의 롯지는 어딥니까?”
“정확히는 나도 모르네. 내가 입수한 정보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그랜드 마스터들이 한 곳에 모여 회의를 했다는 사실이야.”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프리메이슨에선 드문 경우였다. 기껏해야 주의 그랜드 롯지가 하부 롯지를 관리하는 수준이었으니까.
“예상되는 공격은요?”
“짐작할 수 없네.”
과연 남부의 모든 기반이 무너진 상황에서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건 역시 암살이겠군요.”
“동시에 내부 숙청도 이어가겠지. 북부 편에 들었던 반대자들을 쳐낼 거야.”
“저뿐만 아니라, 앨런에게도 해당되겠군요.”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면 가능한 일이지. 최근 남부 장교들이 비밀리에 단체를 만든다는 정보를 입수했네. 이름도 목적도 알 순 없지만, 분명 좋은 목적은 아닐 거야.”
남북전쟁 종식 후 터커와 피치가 몸담았던 국립 탐정 경찰국은 공식적으로 해산 절차를 거쳤다.
더는 남부를 대상으로 정보 수집을 하지 않았다.
앨런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남부 패전 장교들이 모여 만든 단체라.’
남부. 골든 써클 기사단.
프리메이슨. 숙청. 노예. 흑인.
그리고 백인 우월주의···.
단어들이 조합되면서 자연스레 한 단체 이름이 떠올랐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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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핑커톤, 제퍼슨 데이비스,
조지 워싱턴, 홀리데이 등.
프리메이슨으로 밝혀진 자들입니다.
존 브라운은 잠깐 몸 담았다 빠져나온 경우고요.
어제 오늘, 내일 화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해주시고,
대화가 많더라도 이해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