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 단순한 우연일까
연방 보안관은 스스로가 법 집행 기관이다.
영장과 소환장을 직접 작성해, 수사와 체포, 상황에 따라선 즉결 심판도 가능했다.
미국이 독립한 이래 13명으로 출발한 연방 보안관은 새로 생겨난 주만큼이나 숫자가 늘었지만, 광범위한 활동에 비해선 턱없이 부족했다.
주를 넘나드는 무법자들은 더 넓어진 서부 영토만큼 멀리 도망갈 수 있었고, 남북 전쟁이 끝난 남부는 그야말로 무정부상태나 마찬가지였다.
현재 미연방의 법 집행 기관이라고 해봐야 미국 관세청, 공원 경찰(USPP), 우체국(USPS), 연방 보안관(US Marshals) 정도.
가장 임무가 광범위한 연방 보안관은 범죄 수사와 영장 강제 집행, 치안 유지 및 범죄 연류 자산 관리까지 도맡아 했고. 얼마 전까진 위조지폐 수사를 담당하기도 했다.
위조지폐는 전쟁 자금 마련을 위해 4억 달러에 달하는 그린백을 발행한 게 원인이었는데.
임기 시작했을 때 링컨은 시장에 유통되는 3분의 1의 그린백이 위조지폐라는 충격적인 보고를 들었다.
- 무슨 대책을 마련해야지 않겠습니까?
해서 링컨은 미국 비밀경호국(USSS)을 설립해 위조지폐 수사를 맡게 했다.
이 조직의 전신은 SFBC 대원 터커와 피치가 몸담았던 국립 탐정 경찰국.
현재 터커는 비밀경호국 국장으로 이전의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조직이 만들어질 때마다 SFBC가 비집고 들어가는 거지.’
먼 미래에 만들어질 조직, 이를테면 FBI와 CIA 창설을 앞당기는 것도 가능하다.
연방 보안관인 대원들을 그곳으로 돌리고, 외부적으론 핑커톤을 흡수해 PMC를 완성하는 그림.
막스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그림이었다.
“자네 제안이 뜻밖이긴 했지만, 내 입장에선 고마운 일이었네. 전쟁이 끝나고 연방 보안관의 할 일이 더 많아졌으니 말일세.”
“앞으로 더 심해질 겁니다. 남부 치안을 유지하고, 서쪽 개척마을도 신경 써야 하니까요.”
게다가 대륙횡단철도를 위협하는 무법자들과 갱단들도 난립하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진정한 서부 개척 시대, 그 혼돈의 카오스를 이미 실력이 입증된 특수부대원들이 맡아 준다는데 누가 거절하겠는가.
“오히려 총사령관을 연방 보안관으로 좌천시킨 게 아니냐며 관료들이 걱정하더군. 그랜트와 셔먼 이 친구들은 내가 그런 줄 알고 어찌나 화를 내던지. 자네가 꼭 진실을 말해주게.”
링컨은 억울하다며 누명을 벗겨달라 했다.
연방 보안관 일을 매듭짓고, 화제는 알래스카로 넘어갔다. 링컨은 부통령 시절부터 막스의 의도를 알고 있어 결론은 쉽게 날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 제안한 시일에 맞춰 성사시키도록 하겠네. 자넨 자금만 신경 써주게.”
“그럼 자금과 컨소시엄은 구성하는 대로 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게 하기로 하고. 언제 워싱턴을 떠날 생각인가? 사절단과 같이 움직이진 않을 것 같은데.”
링컨 말마따나 막스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사절단은 워싱턴에서 이틀을 머문 뒤, 기차를 타고 펜실베이니아로 향할 것이다.
피츠버그에서 스미스앤 웨슨 무기 공장도 둘러보고, 계속해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루트였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선 정유소를 견학하고,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를 거쳐 캔자스와 콜로라도의 요새도 들르게 되는데, 사절단의 최종 종착지는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그곳에서 배를 타 미방문 일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워싱턴 이후 사절단과 기자단을 보호하는 건 미국 비밀경호국에서 맡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이브 때까진 여기에 머무는 건 어떤가? 총사령관직 인계도 해야 하고, 이래저래 자네와 할 말이 많네.”
“그럼 그렇게 하죠.”
대화를 끝내고 집무실을 나오자, 반가운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은 어땠어, 보스?”
“다음엔 꼭 같이 가요, 콜린. 엄청 좋았어요.”
“다들 그 소리네. 조선이 엄청나다는 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웃음을 흘리며 막스는 콜린과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문제는 없었어요?”
“뭐, 백악관하고 의회만 왔다 갔다 하느라 위험할 틈도 없었지. 다만.”
“다만?”
“크리스마스이브만큼은 나들이를 가고 싶대.”
“대통령이요?”
콜린이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아니, 퍼스트레이디께서 답답하시대.”
영부인 메리 토드 링컨.
그녀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신랄하다.
켄터키에서 부유하게 자라나 경제 관념이 없고, 신경질적이며 질투심이 많다는 게 주였다.
가정부였던 존 브라운의 부인이 존재감 없이 백악관에서 유유자적하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그래서 나들이는 어디로 간답니까?”
“아직 정해진 건 없어.”
“나한테 이브 때까지 있으라는 걸 보면 나들이에 초대할 생각인 것 같은데. 맞아요?”
“왜 아니겠어. 그랜트 장군도 초대한다더라고.”
막스는 찜찜한 기분부터 들었다.
미국 역사에 관심이 없어도 링컨이 암살당했다는 건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
그만큼 유명한 사건이었다.
그래서일까. 역사는 뒤틀렸으나 은연중 그 사건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하지만 연회장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를 하는 통에 생각은 접어둬야 했다.
“이렇게 마주 서서 이야기 나누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요, 총사령관님!”
“그러게요. 셔먼 장군과는 언제 날 잡아서 술이라도 기울이고 싶네요.”
“당장 오늘 하시죠! 할 이야기가 산더미라 밤새 이야기해도 부족합니다!”
철로로 어떻게 셔먼 넥타이를 만들었는지 일단 들어는 봐야겠다. 둘이 대화하는 틈에 그랜트가 은근슬쩍 끼어들었다.
“나는 술주정뱅이라고 안 끼워줄 셈인가?”
“그럴 리가요. 제가 장소를 잡을 테니, 오늘 다 함께 가시죠!”
남북 전쟁 내내 술주정뱅이라며 공격받더니, 이제는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그랜트는 웃음을 지으며 대화에 적극적이었다.
북군 삼 대장이 모인 모습이 어디 흔한 일인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기자들은 사절단보다 이 모습을 담느라 분주하게 손을 놀렸다.
“별 한 개가 아쉽네.”
“뭐가?”
“열 개에서 한 개가 빠지잖아.”
셋이 모여 별이 아홉 개.
전쟁 이후 전공에 따라 그랜트와 셔먼은 중장으로 진급했다. 당시 막스를 별 네 개인 대장으로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패전 장군인 로버트 리도 하물며 별이 네 개인데, 승리한 북군 총사령관은 여전히 세 개라는 게 말이 되나. 막스가 진급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더는 동양인이 전설을 써 내려가는 걸 원치 않았는지, 의회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다음 총사령관으로 내정된 율리시스 그랜트는 이미 대장으로 진급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날 밤 술자리에서, 율리시스는 막스의 팔을 붙잡고 미안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셔먼은 의회가 썩었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냥 의회로 진군해서, 썅 기둥을 확 뽑아버릴까요!?”
“미안하네, 총사령관.”
“알았으니까 그만 좀 해요.”
“아니야. 내가 진짜 미안해서 그래.”
“의회 밀어버릴까요!”
“..... 제발 했던 말 좀 그만해요.”
“내가 미안해, 총사령관.”
“의회 기둥을 그냥 확 뽑아버릴까요!”
‘이거 무슨 타임 루프도 아니고.’
그날 새벽이 되어서야 막스는 슬그머니 호텔 방으로 돌아와 피치 옆에 누웠다.
삐친 건지 피치가 훽 몸을 틀었다.
뒤에서 끌어안으며 앞으로 손을 뻗는 순간, 피치가 덥석 손을 붙잡았다.
“늦게 왔으면, 그냥 자시지?”
“...... 내가 미안해, 피치!”
“뭐, 뭔데.”
“진짜 미안해서 그래!”
“아이, 진짜 뭐냐고.”
“...... 내가 이런 소리를 한 시간이나 듣고 왔어.”
측은했는지 피치가 몸을 돌려 막스를 쳐다봤다.
“뭐야, 부하들이 상관을 고문했네?”
“내 말이.”
“근데···. 이건 뭐야?”
막스의 가슴을 어루만지던 피치의 손에 차갑고 딱딱한 쇠가 느껴졌다.
“연방 보안관 배지.”
“와. 직업전환이 그냥 속전속결이네.”
막스는 뉴욕을 떠나기 전 SFBC 대원에게 앞으로 갈 길을 말해주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들 특수부대원이 된 것보다 더 뿌듯해했다. 피치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우리 남편은 원하는 걸 다 하네.”
“앞으로 모래바람 맞으면서 돌아다녀야 할 텐데. 괜찮겠어?”
“너와 함께라면 어딘들. 그리고 원래 그렇게 살아왔잖아.”
술에 취한 막스는 흐흐 거리며 말을 이었다.
“참, 한 가지 더 있다? SFBC와 핑커톤, 합병하기로 했어. 당장은 아니지만.”
피치가 놀란 눈으로 막스를 쳐다봤다.
성격상 SFBC를 핑커톤에 넘기진 않았을 테고, 당연히 반대의 경우에만 벌어질 일이었다.
“예전에 내 꿈이 핑커톤 탐정이었는데···.”
“나도 기억해.”
“그런데 우리 남편은 그냥 핑커톤을 먹어버렸네.”
“먹은 건 아니야. 역할 분담만 한 거지.”
“뭐가 됐든. 존경해, 우리 남편.”
피치가 막스의 품을 더욱 파고들었다.
결혼을 이래서 하는거다.
늦은 새벽에도 대화 나눌 상대가 있다는 거.
사랑하는 여인과 살을 맞대고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그런데 문득 반대의 경우가 떠올랐다.
작가 데일 카네기가 말할 정도로 지옥 같은 결혼생활을 한 대통령.
- 에이브러햄 링컨이 암살된 것은 그의 결혼에 비교하면 비극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여기서 논란이 생긴다.
링컨은 가정이 지옥이었기 때문에 정치에 열중했을까. 아니면 링컨이 정치에 너무 열심히 했기 때문에 부인의 성격이 일그러진 것일까.
‘언제 한번 진지하게 물어봐야겠네.’
*
사절단이 워싱턴을 떠난 다음 날.
막스는 총사령관직을 율리시스에게 넘겨주었다.
빅스버그 전투를 승리로 이끈 북군의 명장.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미 육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별 네 개를 달아 역사상 최초의 미 육군 대장이 되었다.
- 와, 이게 말이 돼?
- 우리 보스는 뭔데?
SFBC 대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나마 율리시스라 잠잠했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분노가 폭발했을 것이다.
- 그랜트 장군도 우리 식구나 다름없잖아.
- 뭐, 콜로라도에서 부대낀 사이긴 하지.
- 이것도 보스의 큰 그림 중 하나일 거야. 흥분들 하지 마.
- 근데 솔직히 그랜트 장군이 뭐가 되든 상관없잖아? 우린 이제 연방 보안관인데 뭘.
남북 전쟁의 영광을 뒤로 하고, 군복도 벗었다.
며칠 뒤 특수부대원들에게 배지가 지급되었는데, 이런 신속한 업종전환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다.
남부에서 특수부대원들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굳이 정보를 줄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막스 전 총사령관과 특수부대원은 군에 잔류하는 것으로만 알려졌다.
워싱턴에 머무는 동안 막스는 링컨과 잦은 만남을 가졌다.
대화의 주제는 정치, 경제, 사회는 물론 국제 관계까지 폭넓게 이루어졌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며칠 남지 않았을 때.
콜린의 말처럼 링컨이 막스를 초대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자네 부부와 함께하고 싶은데, 어떤가?”
“저야 좋지요.”
“포드 극장에서 ‘조각사의 꿈(The Marble Heart)’이라는 연극을 볼 생각인데, 꽤 재미있다더군.”
‘극장, 연극···.’
불길하기 짝지 없는 단어 조합이다.
단어들은 곧 ‘죽음, 암살’로 이어졌다.
링컨의 초청을 수락하고 집무실을 빠져나온 막스는 곧바로 미국 비밀경호국(USSS) 국장 터커를 불러들였다.
“보스, 저를 찾으셨다고요?”
“예전에 피치에게 조사해보라고 부탁한 남자 연극배우 리스트 기억해?”
“아, 국립 탐정 경찰국일 때 한 거요?”
“그 자료랑 대통령이 크리스마스이브 때 관람하기로 한 연극 출연자를 조용히 알아봐 줘.”
“그거라면 오늘 중으로 가능합니다!”
그날 오후 늦게 터커가 직접 자료를 가져왔다.
막스와 함께 있던 피치는 자신이 작성한 자료를 새삼스럽게 쳐다봤다.
“이거 조사하느라 비방디에르 30명은 동원했던 것 같은데. 하다가 조선으로 넘어갔지 아마.”
결국 완성하진 못했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막스는 자료를 훑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한 남자의 이름에 고정되었다.
‘존 윌크스 부스.’
원 역사에서 링컨에게 총을 쏜 암살자다.
피치가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부스는 남북 전쟁 직전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2년간 연극을 했다. 이후 남북 전쟁 기간에는 미국 북동부로 무대를 옮겼는데 뉴욕주 올버니에선 남부의 분리를 ‘영웅적’이라고 칭송해 현지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고 적혀 있었다.
부스는 주로 햄릿의 리처드3세 역을 맡았고, 이력은 거기서 멈춰 있었다.
막스는 터커가 가져온 또 다른 자료를 훑었다. 링컨이 보기로 한 조각사의 꿈(The Marble Heart)에 등장하는 배우 목록이었다.
그런데.
‘없네.’
존 윌크스 부스라는 이름이 없었다.
맥이 풀리지만, 찜찜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막스는 터커를 응시하며 물었다.
“출연 배우가 변경되었거나, 변화가 생겼을 가능성은?”
“글쎄요. 그것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알아봐. 다시 말하지만 은밀하게.”
“알겠습니다. 이건 내일까지 시간을 주십시오.”
막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터커는 피치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날 정오.
터커가 잔뜩 굳은 표정으로 막스를 찾아왔다.
“그리스 조각가 역할을 하는 배우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교체되었더군요.”
“이름은?”
“존 윌크스 부스요···.”
“.......”
막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피치는 다른 의미에서 탄성을 내뱉었다.
자신이 만든 자료에 있던 인물이 이런 식으로 엮인 게 놀라웠고, 막스의 추리력은 더더욱 놀라웠다.
터커도 마찬가지. 교체된 배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터커 국장은 일단 돌아가서 대기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터커가 나간 직후, 한 남자가 막스를 찾아왔다.
핑커톤의 탐정이었다.
“워싱턴 핑커톤 지부의 한스 데릴입니다. 앨런 국장님께서 이 메시지를 전해주라 하셨습니다.”
앨런이 보낸 정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장소 : 테네시주 풀라스키.
일자 : 1865년 12월 24일.
추가.
남부 패전 장교들을 주축으로 창단식 예정.
단체 이름은 Ku Klux Klan.
무슨 뜻인지는 당최 모르겠음.]
막스는 창설 일자에 주목했다.
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대통령이 연극을 보는 날과 같다 이거지.’
단순한 우연일까?
만약 뒤에서 누군가 설계했다면?
그 대상이 막스든 북부 전체든.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새로운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선전포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