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1화 (271/360)

#271 링컨 암살과 KKK단

쿠 클럭스 클랜이 결성식이 있는 곳은 테네시 풀라스키.

“이번 일에 테네시에 있는 핑커톤 탐정들이 투입될 겁니다. SFBC가 개입하기엔 시간이 촉박하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가는 거리만 1천km.

기차만 족히 네 번은 갈아타야 했다.

지금 출발한다 해도 크리스마스이브 전에 도착하긴 힘든 거리다. 이걸 알고 있던 앨런 핑커톤이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대통령 암살 시도와 KKK단의 결성.

이들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막는 게 시급한 문제였다.

“앨런에게 전하세요. 놈들이 과격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조용히 관찰 정도로 끝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워싱턴의 움직임도 수상합니다. 두 사건이 연결되어 있고, 사전에 철저하게 계획된 일이라면 분명 무슨 준비를 해두었을 지도요.”

“함정일 수도 있다, 이 말씀이군요.”

“괜한 걱정일 수도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죠. 그들이 남부 장교들이라고 했으니 매복과 습격에도 능할 겁니다.”

“흠. 그럼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고개를 까딱거린 핑커톤 탐정이 몸을 돌렸다.

그가 로비를 벗어난 직후, 막스는 SFBC 대원들을 소집했다.

크리스마스이브라고 해봐야 고작 사흘 밖에 남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비상사태에 대원들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막스는 이해가 안 간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크리스마스이브 때 계획이 있던 거야? 솔로 새끼들이?”

“와 씨, 우린 뭐 계획 있으면 안 됩니까!?”

“혼자 결혼했다고 잘난 척하는 것 봐.”

“피치 아니었으면 솔직히. 에혀, 말을 말아야지.”

“뭐? 피치 아니었으면 뭐?”

막스와 대원들이 티격대는 때, 대통령을 경호하던 콜린이 팀원들과 회의실로 들어왔다.

상황을 모르고 있던 그들은 뭔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연방 보안관 배지를 받은 그들은 경호 임무를 비밀경호국(USSS)으로 이관하고 오는 길이었다.

“전부 모였으니까, 회의 시작합시다.”

이번 일은 연방 보안관이 된 직후 맡게 된 첫 사건이다.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SFBC 앞길에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막스는 우선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들을 풀어냈다.

쿠 클럭스 클랜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집단은 그렇다 치고.

대통령 암살 시도 얘기에는 SFBC 대원들의 귀가 쫑긋했다.

“대통령 옆엔 나랑 피치가 있을 테니까 넘어가고. 중요한 건 다른 인물들이야.”

원 역사대로라면 링컨 암살범에겐 다수의 공범자가 있다. 그 때문에 암살 대상 역시 링컨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들은 국가의 핵심 관료들을 동시에 제거하려 했다.

막스는 그 인물들을 열거하며 대원들에게 경호를 지시했다. 그리고 산초와 대원 두 명에게 부스 감시를 붙였다.

회의가 끝난 뒤엔 콜린, 피치와 머리를 맞대어 별도의 대응책을 마련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극장 안에서 무모하게 총을 들고 덤빈다고?”

“지금까지 그런 놈들 한두 번 봐요? 영웅이 되고 싶은데, 뭔들 못하겠습니까.”

“하여간 미친 새끼들 참 많아.”

막스는 비밀경호국장 터커에게 받은 극장 내부 도면을 펼쳤다.

“나와 피치는 아마 이곳에서 대통령 부부와 함께 있을 거고. 콜린은 초대받은 다른 사람들을 경호해줘요. 미리 폭발물도 찾아 보고.”

“참, 율리시스 그랜트 총사령관은 초대를 거절했던데. 알아?”

“아뇨, 무슨 일 있어요?”

“부인들끼리 사이가 나쁘데.”

“......”

그랜트 부인은 히스테리가 심한 링컨 부인과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콜린이 말하길 그녀뿐 아니라, 다른 곳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했다.

초대를 수락한 이들은 막스와 그나마 링컨 부인과 친한 해리스 부인 정도였다.

피치를 힐끔 쳐다봤다. 마침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자 막스가 움찔했다.

“난 신경 쓰지 마. 설마 영부인이 나한테 뭐라 하겠어?”

“만약 뭐라고 하면?”

“일단 총부터 뽑아야지. 뭘 말로 해.”

“영부인을!?”

“농담이야.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어차피 그날만 보고 말 사인데 뭘.”

피치 역시 영부인의 소문을 익히 알고 있었다.

백악관 예산을 추가로 편성해야 할 만큼 사치와 허영심이 가득하고. 조울증처럼 기분 변화가 심각하다는 소문이 워싱턴에 퍼져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피치가 인상 쓴 건, 총을 숨길 수 있는 예쁜 드레스가 마땅히 없어서였다.

‘마음 같아선 전투복을 입고 싶은데.’

남편의 체면을 생각하면 나름 드레스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어찌 됐든 연방 보안관이 된 피치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벌어질 테러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

1865년 12월 23일.

대통령의 연극 관람에 관한 기사가 신문을 장식했다.

참석자는 핸리 레스본 소령과 약혼녀 해리스 부인만 언급되었을 뿐, 막스는 그 밖의 인물로 묶여 드러나지 않았다.

포드 극장 옆 피터 탈라불의 스타 살롱.

구석진 밀실에는 콧수염을 기른 미남자가 대화를 주도했다.

그의 이름은 존 윌크스 부스.

연극배우인 그는 자신과 뜻을 같이한 동료들과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납치로는 지금 상황을 바꿀 수 없다. 그러니 다들 똑바로 들어.”

부스의 광기 섞인 눈빛이 동료들을 차례로 응시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비 맞은 개새끼처럼 축 처진 한심한 남부를 일깨우는 것. 그리고 로버트 리 장군님께 다시 힘을 모아 주는 게 우리들의 사명이다.”

각오를 다진 부스는 동료들에게 공격 타겟을 일러주었다.

부통령, 국무장관, 총사령관이 그 대상이었다.

작전 모의가 끝나고 밀실에서 나왔을 때, 누군가 부스를 알아보며 말을 건넸다.

극장 옆 살롱이라 연극에 관심있는 자들이 많았다.

“존 윌크스 부스! 자네가 맡은 역 중엔 호레이쇼가 최고였네! 다시 한번 그걸 볼 수 있다면, 내 기꺼이 표를 살 용의가 있지.”

“글쎄요. 아마 그 역할을 다시 할 일은 없을 것 같군요.”

“저런, 아쉽구만.”

호레이쇼는 햄릿에 등장하는 인물로, 부스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배역이었다.

호레이쇼는 유령을 가장 처음 목격해 햄릿을 호출하고, 햄릿이 죽은 뒤엔 그의 권력을 다른 이에게 넘겨주며 사건을 마무리 짓는 막중한 역할이었다.

그러나 부스가 셰익스피어의 모든 등장인물 중 가장 좋아하는 배역은 따로 있었다.

바로 <줄리어스 시저>에서 폭군을 죽이는 브루투스(Brutus)였다.

‘링컨과 존 브라운이야말로 폭군이지.’

남부의 재산을 멋대로 강탈한 폭군들.

놈들은 노예 해방은 물론, 이젠 하찮은 노예들에게 선거권까지 주려 한다.

‘이게 폭군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부스의 눈빛이 스산해질 때였다.

방금 말한 자의 일행이 비웃듯 입을 열었다.

“자네가 어떤 배역을 맡던, 아버지 주니어스 부스보다 유명해지진 못할 걸세. 그의 연기를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으니까.”

존 윌크스 부스의 아버지와 형 모두 연극배우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은 듣기 거북했다.

‘그깟 명성 따위.’

피식 미소를 지은 존 윌크스 부스는 자신을 비꼰 남자를 향해 말을 내뱉었다.

“내가 무대를 완전히 떠날 때. 나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돼 있을 거요.”

폭군을 처형한 브루투스.

그게 바로 자신의 역할이자 삶의 목적.

- 골든 써클 기사단이 비록 와해 될 위기에 처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의지가 꺾인 건 아닙니다. 폭력에 억눌린 남부인들이 기다리는 건 영웅. 그대를 섬겨 또 다른 영웅이 나타날 테니 실패를 두려워 마세요, 부스 형제.

존 윌크스 부스는 얼마 전 자신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곱씹으며 살롱을 벗어났다.

다음날인 1865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아침이 되자, SFBC 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극장에 오지않은 워싱턴에 머무는 핵심 인사들을 찾아갔다.

존 브라운과 링컨 내각에서 국무장관을 연임하고 있는 윌리엄 수어드.

커크우드 호텔에서 체류하고 있는 존 기어리 부통령.

그 외에 재무장관, 법무장관, 우체국장, 내무장관, 그리고 총사령관 율리시스 그랜트가 경호 대상이었다.

그날 오후.

존 윌크스 부스는 또다시 포드 극장 옆 스타 살롱을 찾아갔다. 그런데 가던 길, 연극을 함께 했던 동료 배우 존 매슈스를 마주쳤다.

그는 부스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몸이 안 좋다더니, 어찌 된 일인가?”

“사정이 좀 있었어. 그런데 어디 가는 길이야?”

“맡겨둔 옷 찾으러. 대통령이 연극을 보러 오는데, 옷이라도 깔끔해야지 않겠냐고 난리를 치더라고.”

매슈스의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부스처럼 극단적이진 않지만, 매슈스 역시 태생이 남부다.

노예제를 옹호했고, 북부를 비판했다.

그런데 매슈스는 전쟁이 끝나자 빠르게 순응하며 자신의 신념을 굽혔다. 차라리 연기에 집중한다며 정치적인 모든 이슈로부터 멀어졌다.

부스는 그런 매슈스가 실망스러웠다.

물론 그렇다고 그를 탓하진 않았다.

배우가 연기에 집중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부스 역시 연기에 대한 열정은 여전했으니 말이다.

부스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말을 건넸다.

“대통령 때문에 극장이 살벌하겠군.”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다만 미리 출연 배우 리스트도 가져가고 교체된 인원까지 파악한 걸 보면, 경호가 삼엄하긴 하겠더라.”

“...... 교체된 인원까지?”

부스의 머리카락이 쭈뼛거렸다.

일을 벌이기도 전에 불길한 기분에 휩싸였다.

손에 땀이 배고 저도 모르게 입술을 손가락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이때.

- 실패를 두려워 마세요, 부스 형제.

마술처럼 편지 내용이 떠오르며 불안감을 날려 버렸다. 매슈스는 부스의 표정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사실 극장 주인이 나한테 비밀이라고 말해 준건데. 뭐, 너도 배우니까 상관없겠지.”

매슈스의 말을 들은 부스는 잠시 고민하듯 턱을 매만졌다. 그러다 모종의 결심을 하곤 품속에 있던 편지를 매슈스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부탁 좀 할게. 내일 이 편지를 ‘내셔널 인텔리전서’를 통해 보도해줘.”

“······ 보도?”

“자세한 건 오늘 밤이 지나면 알게 될 거야.”

편지에는 암살을 계획한 부스의 행적과 신념이 담겨 있었다. 원래는 직접 신문사에 전달할 생각이었으나, 생각을 고쳐먹고 친구인 메슈스에게 건네준 것이다.

존 윌크스 부스는 발걸음을 옮겨 스타 살롱으로 향했다.

그리고 줄곧 부스를 감시한 SFBC 대원 중 한 명은 부스를, 그리고 또 다른 대원은 매슈스를 뒤쫓아갔다.

오후 8시 20분.

막스와 피치가 포드 극장 뒷문으로 은밀히 들어섰다. 피치는 어깨가 파인 벨벳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걸을 때마다 쇠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치마 안에 총을 몇 개나 숨긴 거야?”

“그런 거 묻는 거 아니야.”

“......”

막스는 혀를 차며 미리 배정된 2층 좌석으로 향했다.

자리는 생각보다 넓었다.

원래는 칸막이가 쳐져 있었지만 세 부부가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치워진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커튼이 드리워진 공간은 꽤 여유로웠다.

막스가 시계를 보는 때, 산초가 다급한 얼굴로 다가왔다.

“보스, 부스가 접촉한 인물을 잡았어.”

“무슨 소리야?”

산초가 말하길 매슈스라는 배우가 존 윌크스 부스와 접촉했다는 것이다. 이는 줄곧 부스를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자에게 추궁했더니 우리가 출연자 리스트를 가져간 것까지 말했다고 하더라고.”

“그럼 비밀이 새어 나간 거네?”

“낌새를 차렸을 수도 있지. 그런데 중요한 건 이거야.”

산초가 편지를 내밀었다.

발신은 존 윌크스 부스. 수신자는 ‘내셔널 인텔리전서’라는 신문사였다.

“매슈스를 친절하게 협박했더니 이걸 받았다고 하더라고. 내용 보면 기겁할걸?”

막스는 서둘러 산초가 건네준 편지를 훑어 내렸다.

남부를 망가트린 폭군 링컨을 성토하는 글은 빠르게 넘기고, 중요한 내용만 추리면.

“완전 자백서네.”

“그러니까. 이건 뭐 병신인지, 일도 벌이기 전에 이런 걸 친구한테 전해 줬네.”

심지어 다른 동료들이 누구를 노리고 있는지까지 쓰여 있었다.

원 역사에서 부스의 편지는 끝까지 공개되지 않는다.

링컨이 암살된 다음 날, 놀란 매슈스가 신문사에 전달하는 대신 편지를 태워버렸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편지 내용이 자백서였다는 건 어디까지나 매슈스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어찌 됐든, 이것까지 알 수 없던 막스는 고민에 빠졌다.

부스의 편지에 담긴 의도는 명백하다.

연방을 혼란에 빠트리고, 남부를 일깨워 다시금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

이는 암살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사건을 키우는 데에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 나는 이걸 철저히 부숴야겠지.’

결정을 내린 막스는 산초에게 은밀히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몇 분 뒤인 8시 30분에 링컨 부부가 극장에 도착했다.

막스와 피치가 여유 있게 둘을 맞이하는 때.

워싱턴과 멀리 떨어진 테네시에선 전쟁을 방불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탕! 탕!

핑커톤 탐정 다섯이 포위망을 뚫으려 총을 난사하지만, 결국 흰옷에 고깔모자를 얼굴까지 뒤집어쓴 놈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횃불을 든 자들이 무릎 꿇린 그들을 둘러쌌다.

“북부의 부역자 핑커톤. 그대들을 처형함으로써 온 세상이 우리의 뜻을 알리리라.”

“미친 사이코 새끼들!”

“마음껏 분노하고 증오하라. 그게 곧 우리의 마음일지니.”

곧이어 밧줄에 묶인 자들이 우르르 끌려 나왔다. 여섯 명의 흑인들이었다. 그들을 본 핑커톤 탐정들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이제 의식을 거행하지. 그래도 외롭진 않을 걸세. 운 좋으면, 누가 알겠나. 대통령도 그대들과 함께 저세상으로 갈지.”

곧이어 쿠 클럭스 클랜이 결성을 선포하고 자신들의 의의를 선전하기 위한 처형식이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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