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5화 (275/360)

#275 콜로라도로 향하는 일행들

척이 선사한 충격적인 스테이크의 맛.

이는 우연하게도 햄버거로 이어져, 막스에게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 주었다.

햄버거에 들어가는 패티는 고기와 야채를 다져 만든다.

문제는 보관할 냉장고가 없다는 거.

공장용 제빙기와 냉장고는 몇 년 전 개발되었지만, 비용과 관리가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고 아이스박스가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스티로폼은커녕 플라스틱도 없어, 열을 차단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생각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현지에서 햄버거를 직접 만들어 팔기 위해.

으깬 고기를 통조림으로 만들면?!

‘그거 스팸인데···.’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전투 식량으로 쓰기 위해 상금을 내건 발명품이 통조림. 당시엔 유리병이었지만, 십수 년 전 주석으로 만든 캔이 영국에서 개발되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끝에.

‘스팸 버거’라는 샌드위치 형태도 떠올렸다.

여기에 더해 독일 이주자들이 전파한 프랑크푸르트 소시지 역시 핫도그 형태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도 싶다. 아직 소시지를 덮을만한 빵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일단 현지에서 만들 햄버거에 집중하자.’

그다음 하나둘 만들어가면 될 일이다.

대충 그림이 완성되자 막스는 의욕적으로 입을 오물거렸다.

“아니, 왜 남의 감자튀김을 먹고 그래?”

“바꿔 먹어요. 스테이크가 더 비싸잖아요.”

“그래도 난 싫어. 차라리 하나 더 시키던지.”

막스는 척에게 스테이크 접시를 내밀며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스테이크에 이상한 소스 뿌리지 마, 척. 정 뿌리고 싶으면 소금하고 후추 정도만 넣던가.”

“그럼 좀 밋밋···.”

“아니야. 그게 제일 맛있는 거야.”

“...... 어, 매제.”

척이 슬그머니 주방으로 사라졌다.

 홀리데이는 막스에게 빼앗길까, 감자튀김을 두 개씩 입에 넣으며 화제를 돌렸다.

“며칠 전에 앨런 핑커톤을 만났는데. 하필 그 사건이 터졌더라.”

“KKK단이요?”

“어. 철도 공사 경비 때문에 앨런과 미팅을 많이 했거든. 그런데 직원들이 처형됐다는 기사를 보자마자 안색이 그냥 무섭게 변하더라.”

“앨런이 왜 뉴욕에 있나 했었는데, 철도 경비 때문이었군요.”

핑커톤 본부는 일리노이주의 시카고.

앨런은 고객 유치를 위해 뉴욕에 머물고 있었던 모양이다.

“근데 KKK단 걔들 정체가 뭐야? 워싱턴에서 한 짓 보면 그냥 병신들이던데?”

“잘 봤네요, 진짜 병신들 맞습니다.”

막스는 홀리데이의 반응이 만족스러웠다.

조롱을 넘어 KKK단을 병신 취급했으니 뿌듯하기까지 했다. 대중들이 홀리데이와 같은 생각이라면 계획은 성공한 거다.

“조만간 콜로라도 갈 건데, 같이 안 갈래요?”

“장난해? 일거리 잔뜩 줘놓고, 내가 뉴욕을 어떻게 벗어나냐.”

“그럼 혼자 가야겠네.”

“혼자? 부인은 어쩌고?”

“임신했어요.”

“왓!?”

그걸 왜 이제 말하냐며 홀리데이가 부산을 떨었다. 축하는 물론 아기에게 필요한 용품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그런 건 말하지 말고 그냥 가져와도 돼요.”

“어, 그래. 그럼 피치는 뉴욕에 계속 머물겠네?”

“움직이기 힘드니까요.”

“잘 됐다. 메리 보고 가보라고 해야겠네.”

홀리데이는 가족을 뉴욕에 이주시켰다.

그리고 부인 메리는 재봉 기술과 패션 감각이 있어 막스의 의류 회사에서 디자이너 일을 하고 있었다.

막스는 이참에 맨해튼 브룩클린 쪽에 집을 짓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홀리데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뉴욕에 있을지 몰라 맨션을 임대해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뉴욕은 수시로 오게 될 테니까,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

콜로라도, 토피카, 로렌스, 거기에다 뉴욕 맨해튼까지. 어디서든 막스 이웃이라는 게 마음에 쏙 들었다.

미소를 머금던 홀리데이는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

“참, 콜로라도에 간 김에 솔트레이크시티에 들릴 수 있어?”

“유타엔 왜요?”

“브리검 영이 미팅을 하자고 난리거든.”

“몰몬교 회장이?”

대륙횡단 열차는 유타를 지나간다.

그 때문에 브리검 영은 UPRR(유니온 퍼시픽 레일로드) 핵심 관계자를 만나고자 했다.

“노선에 불만이 있대요?”

“뭐, 이미 확정된 상황인데 불만 가져 봤자지. 아마 노동자 고용 문제 때문일 거야.”

“유타 지역 공사엔 몰몬교 성도들을 고용해달라는 얘기겠군요.”

“내 생각도 그래. 브리검 영도 UPRR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건 알지?”

브리검 영은 대륙횡단 철도 기획안이 나올 때부터 관심을 보였다.

성도들이 오레곤 트레일을 수레로 이동하는 험난하고 위험한 여정이었으니. 몰몬교에겐 대륙횡단 철도가 숙원 사업이나 마찬가지였다.

“막스 네가 브리검 영과 의논해서 결정해.”

“무리한 요구만 아니라면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 이거죠?”

홀리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UPRR 사장은 홀리데이, 부사장은 토마스 듀란트다.

홀리데이는 캘리포니아에서 시작하는 CPRR(센트런 퍼시픽 레일로드)와 UPRR 양쪽에 걸쳐있는 유일한 인물.

막스와 존 브라운이 만들어낸 합작품으로, 홀리데이에게 대륙횡단 철도 사업의 막강한 권한을 주기 위함이었다.

새로 추가된 감자튀김을 다 먹자, 홀리데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도 이사회 회의가 있어서 먼저 가볼게.”

“수고해요.”

홀리데이가 레스토랑을 벗어나자, 막스는 주방으로 어슬렁 발걸음을 옮겼다.

“척, 우리 새로운 거 한 번 해보자.”

“새로운 거?”

“일단 고기 좀 줘봐.”

의기소침해진 척의 어깨를 다독이며.

막스는 굳이 식칼이 아닌 보위 나이프를 꺼내 고기를 다지기 시작했다.

“항상 날을 가는 거야? 식칼보다 더 잘 드네···.”

“뼈까지 자를 때가 있거든.”

“!”

다다다다다다.

“양파.”

“어, 매제···.”

다다다다다다.

그렇게 고기와 야채를 다지고, 다시 으깨기 시작했다. 감자의 전분이 섞이며 점도가 생겨나고, 후추와 소금으로 간을 살짝.

그런 다음 동그랗게 모양을 만든 뒤 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굽기 시작했다.

치지지지직.

“듣기만 해도 맛있어 보이지, 척?”

“...... 나도 그런 소리는 났어.”

막스는 코웃음 치며 고기가 익는 동안 바게트 빵을 일정한 크기로 잘랐다.

한쪽 면을 놓고 그 위에 양배추와 버섯 치즈, 마요네즈를 듬뿍 뿌렸다.

그런데.

‘케찹이 없네.’

인상을 찌푸린 막스는 로렌스에서 메리에게 배운 레시피를 떠올리고. 즉석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은 다른 사람한테 넘기자, 척.”

“여기에 내 전 재산 투자했는데···?”

“이 상태론 어차피 계속 적자야. 가족들한테도 돈 빌렸다며. 갚을 수 있어?”

시무룩해진 척이 고기를 다지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레스토랑 넘기라면서 음식은 왜 만드는 걸까.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팔려고. 예전에 갱단 애들 있지? 내일 가게 문 닫고 좀 모아 봐. 앞으로 같이 일할 애들로.”

“일? 어디서?”

“철도 공사 현장.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야.”

“이걸 판다고?”

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케첩 소스가 완성되었다.

마요네즈와 같이 뿌린 다음, 노릇노릇하게 구운 고기 패티를 얹었다. 그리고 그 위를 두툼하게 잘라낸 바게트 빵으로 덮었다.

완성된 햄버거를 네 등분 한 막스는 한가하게 있던 여직원들을 불러 시식을 했다.

“오오오!”

“이게 뭐예요!?”

여직원들이 탄성을 내지를 때, 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본 막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문제는 혀구나. 혀를 교체해하자, 척.”

척이 재빨리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그날 막스는 척이 눈 감고도 만들 수 있도록 반복 작업을 시켰다.

그렇게 30개가 넘는 햄버거가 완성되었다.

“집에 가자, 척.”

종이봉투를 한 아름 끌어 앉고. 둘은 집으로 돌아갔다.

“어이구, 뭘 그렇게 많이 들고 와?”

거구의 장인 어르신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둘을 맞이한다. 척이 만들었다고 다들 먹어 보라고 권유했더니, 다들 똥 씹은 얼굴이다.

“..... 배부른데.”

그냥 먹고 싶지 않은 거겠지.

그런데 장모님은 측은한 마음이 들었는지, 종이 포장을 열어 햄버거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입에 넣었다.

“!”

장모님이 왜 맛있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반응에 가족들도 하나둘 달려들고, 다들 같은 반응을 보인다.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인 건, 처제였다.

“말도 안 돼! 이걸 진짜 오빠가 만들었다고?”

막스는 조용히 햄버거를 들고 피치를 찾아갔다. 입맛이 없다던 피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탄성을 내뱉었다.

“와, 이건 또 새로운 맛이네.”

“맛있어?”

피치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를 물끄러미 보던 막스가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었다.

“뭐, 뭐야. 갑자기.”

“입술에 피치 케찹이 묻어서.”

“웁웁.”

이날 밤, 척의 새로운 도전을 들은 피치는 말없이 막스를 쳐다봤다.

큰오빠인 마틴은 일머리가 있어 막스가 맡긴 공장 관리를 잘하고 있다.

문제는 둘째 오빠 척이다.

고집만 있지, 딱히 능력이 없어서 집안의 고민거리였다. 덕분에 척의 부인은 눈치만 보며 한숨만 쉬는 게 일상이었다.

“누가 알아. 가족 중에 척이 제일 부자가 될지. 물론 우리 빼고.”

막스의 말에 피치가 미소를 지었다.

척까지 신경 써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햄버거를 오물거리던 피치가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켰다. 엄청 많이 묻어 있었다.

*

뉴욕에 머무는 동안 사업 말고도 신경 쓸 건 또 있었다.

조선과 일본에서 데려온 아이들은 지금껏 공장 옆 숙소에서 머물고 있었다.

막스는 아이들보다 먼저 미국 땅을 밟은 조선인 셋과 일본인 조셉 헤코를 따로 불렀다.

프란시스 홀과 함께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무역을 했던 헤코는 일본인 아이들을 돌보기에 최적화된 인물이었다.

“헤코. 당분간 콜로라도에 있으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어때? 딱 일 년만 하면 지금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막스는 일본 상황을 알려주며, 조셉 헤코에게 더 큰 비전을 제시했다.

프란시스 홀과 함께 움직였던 헤코는 이미 막스의 능력을 충분히 지켜 봐온 터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음은 조선인 유정석, 이장열, 이공윤.

그동안 제법 영어를 배운 탓에 막스는 조선말이 아닌 영어로 말을 건넸다.

“너희들도 나와 함께 콜로라도로 간다. 아이들과 함께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야.”

농민 반란에 가담해 부모를 잃고 헬조선을 탈출한 청년들. 그런 이들이 근 일 년 동안 뉴욕에서 자유와 자본주의를 체감했다.

능력과 노력만 받쳐 준다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꿈이 자리 잡고, 막스와 함께 성공하고 싶은 열망이 확고히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콜로라도든 어디든. 열심히 배우고 일하겠습니다!”

막스는 자잘한 일들을 정리하면서, 뉴욕의 사업을 피치에게 일임했다. 그리고 그녀를 도울 수 있도록 여러 장치를 마련해 둔 뒤 뉴욕의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

뉴욕 맨해튼의 기차역.

콜로라도로 향하는 여정은 나름 대규모였다.

척과 함바집(?)을 하기 위해 따라나선 전직 갱단원이 열이나 되었다.

“햄버거를 먹고 꿈이 생겼습니다!”

“여기에 제 인생을 걸려구요!”

“좋은 다짐이다.”

막스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인원도 확인했다.

조선인 성인 셋과 아이가 둘.

일본인은 조셉 헤코를 필두로 여자아이가 둘에 사내아이가 넷이다.

“몸조심하고, 잘 다녀와.”

피치와 아쉬운 작별을 한 막스가 기차에 올라타려 할 때였다.

인파를 뚫고 한 아이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드, 드디어 만나네요!”

숨을 거칠게 몰아쉰 아이는 다름 아닌 에디슨이었다.

원 역사에서처럼 에디슨은 열차 칸에서 화학 실험하다 홀라당 태워 먹고 쫓겨났다.

매질도 당하고, 여기저기 방황하던 끝에 뉴욕까지 막스를 찾아오게 된 것이다.

“프리덤 에코 편집장님이 여기 오면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진짜였네요.”

에디슨을 멍하니 쳐다보던 막스. 이내 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표 끊어 줄 테니까 올라타.”

“..... 어디로 가는데요?”

“콜로라도. 거기라면 마음껏 연구할 수 있을 거야.”

짐이라고 해봐야 등에 멘 가방이 전부.

돈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실험 장비와 재료만 있다면. 거기가 어디든 에디슨은 갈 준비가 되었다.

기차에 올라탄 에디슨은 자연스레 조선인과 일본인 아이들에 섞였다.

서로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 오고 갔다.

한 백인 아이가 그런 아이들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헨리. 그렇게 노골적으로 보면 실례야.”

의자에 턱을 괴고 있던 아이를 어머니가 자리에 앉혔다.

“전부 동양인이던데, 엄만 안 신기해요?”

“신기해도 그렇게 보면 못 써.”

사소한 시비로 목숨이 오가는 시대. 어머니는 이를 두려워했지만, 일곱 살 헨리는 여전히 동양인 아이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실제로 어머니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비록 다른쪽이었지만.

빌어먹을 동양인들이 왜 여기에 탔냐며 백인 남자 둘이 소리를 질렀다.

이때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등장.

몇 마디를 던지자 백인 둘이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우리보고 닥치라고? 이 새끼가 미쳤나! 우리가 누군지 알아? 게티즈버그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야!”

“우리 손으로 죽은 남군이 자그마치 열 명이다, 새끼야!”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남자는 팔짱을 낀 채 한 손으로 귀를 후벼파고 있었다.

살벌한 두 백인 남자를 상대로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와... 저 아저씨 장난 아니네.’

헨리 메카티.

원 역사에서 전설적인 총잡이로 이름을 남긴 빌리 더 키드. 더 큰 전설을 마주한 아이의 가슴이 미친 듯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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