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6화 (276/360)

#276 네 꿈을 캐스팅한거야

“이런 싸~가지없는 놈들을 봤나!”

휘이이잉.

퍽!

갑자기 객실 어디선가 한 남자가 달려들어 날라차기를 시전.

백인 한 명이 통로에 나자빠졌다.

“이것들이 감히 누구한테 시비를 걸어!”

퍽! 퍽!

척은 시비를 건 또 다른 남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둘이 통로에 쓰러지자, 이젠 발로 밟기 시작했다. 어느새 척과 함께 온 열 명의 갱단도 가세했다.

막스의 홍위병들이 따로 없었다.

“마, 게티즈버그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게 누군데!”

군대도 안 간 척이 할 소리는 아니지만, 꽤 흥분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객실에 소란이 일자 문이 열리며 무장한 남자 셋이 들어왔다.

그들은 곧바로 총을 꺼내며 외쳤다.

"열차에서 무슨 짓이야!"

"동작 그만!"

총을 겨누자 척과 갱단들이 발길질을 멈추고 막스를 쳐다봤다.

‘왜 나를 보냐, 척.’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막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무장한 남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조용히 속삭이듯 물었다.

“핑커톤 탐정들인가?”

“그러는 넌 누군데?”

“SFBC 막스 조다.”

“!”

경악한 남자들의 눈이 커졌다.

이들은 열차 경호 임무를 맡은 핑커톤 탐정들.

‘SFBC 막스 조’하면 자연스레 미국 총사령관까지 떠오르는 게 정상. 그들은 믿을 수 없다며 얼굴을 가린 스카프 위의 눈을 쳐다봤다.

백인이 아닌 동양인이 확실하다.

막스는 얼굴이 곧 신분증이었다. 적어도 이들에게만큼은.

막스는 입이 쩍 벌어진 핑커톤 탐정들에게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천천히 입을 다문 탐정들은 한심한 눈으로 바닥에 웅크린 백인 남자 둘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다가가 목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여기서 괜히 뒤지기 싫으면, 다른 칸으로 가.”

한 탐정이 낮게 으르렁거리자 그들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끌려간 그들에게 탐정들은 귓말로 ‘운 좋은 줄 알라’며 혀를 끌끌 찼다.

“무슨 일 있으면 말씀 주세요.”

막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탐정들은 소란을 일으킨 남자를 옆 칸으로 끌고 갔다.

“매제, 이런 자잘한 일은 우리에게 맡겨!”

“든든하구만.”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면 되겠는가.

척은 막스가 나서기 전에 처리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 나름 머리를 쓴 것이었다.

‘사업만 제대로 배우면 될 것 같은데.’

이상한 곳에 꽂히지 않는다면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아까 목소리 들었죠? 그냥 소름이 쫙 끼치던데요.”

대충 정리를 끝낸 한 탐정이 혀를 내둘렀다.

그는 북군 상등병으로 제대하고 얼마 전 핑커톤에 입사한 신입 탐정이었다.

“앨런 국장님이 SFBC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라고 한 거 기억하지?”

“물론이죠. 와, 근데 총사령관과 같은 열차를 탔다니 믿어지질 않네요. 제가 게티즈버그 전투 때 총사령관님을 본 적이 있었거든요. 근데 그땐 진짜 멀리에서 봤어요. 개미처럼 보일 정도로요.”

“그러니까 바짝 긴장타고 있어. 더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남북전쟁을 끝낸 북군 총사령관. 그런 동양인 막스를 증오하는 자들이 어디 한 둘인가.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이유가 있네요.”

“난 좀 없어 보이던데. 겁먹은 것도 아니고, 뭘 그렇게 감춰.”

한 탐정이 삐딱하게 말하자, 나이 많은 선임이 코웃음쳤다.

“얼굴 까놓고 다녀봐라. 벌써 시체 몇 구는 치웠을걸? 방금처럼 누가 시빌 걸면 막스 조가 굳이 참을 이유가 있어?”

“...... 없죠. 근데 총사령관 그만두고 완전히 SFBC로 복귀한 모양이네요.”

“난들 어떻게 알겠냐. 내가 SFBC도 아닌데.”

탐정들은 일반인들보단 비교적 막스에 관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 인물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

“헨리, 방금 봤지? 괜히 겉 모습이 다르다고 쳐다봤다가 저렇게 되는 거란다.”

헨리 메카티의 어머니는 몇 번의 주의를 건넨 뒤에야 말을 멈췄다.

잔소리에서 해방된 헨리는 남자의 정체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열차 경호원들이 놀라며 남자에게 깍듯하게 대한 것도 헨리의 호기심을 부채질했다.

“저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아까 갔다, 왔잖니.”

“또 마려운걸요.”

“그럼 얼른 갔다 오렴. 다른 짓 할 생각 말고.”

통로를 지나가던 헨리 메카티가 문제의 남자가 있는 곳을 지나쳤다. 그리고 이때만큼은 거북이처럼 발걸음을 옮겼다.

딴에는 자연스럽게 보였겠지만, 그게 오히려 막스의 이목을 끌었다.

시선이 마주치고, 스카프 위로 드러난 남자의 눈을 본 순간.

‘동양인이잖아!’

빌리더 키드, 아니 헨리 메카티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나이답지 않게, 퍼즐은 금방 맞춰졌다.

‘총사령관!’

경악한 헨리를 보며, 막스가 말을 건넸다.

“이름은?”

“헨리 메카티요.”

아이답지 않은 침착한 목소리.

막스가 뚫어지게 헨리를 쳐다봤다.

그런데 아무리 머릿속을 뒤적여도 매칭되는 이름이 없다.

사실 빌리 더 키드의 이름이 몇 번이나 바뀌었기에 그 이름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대신 막스는 들고 있던 옥수수빵을 건네줬다.

“출출할 때 먹어.”

“고맙습니다.”

총사령관이 건네준 빵!

속마음과 달리 표정은 담담하다.

헨리 메카티가 고개를 숙이자 막스는 다시금 옆에 앉은 에디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학교 가기 싫다고?”

“절대요!”

에디슨이 크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학교에선 저를 저능아 취급했어요. 그래서 3개월 만에 그만뒀거든요."

물론 어린 에디슨이 자발적으로 그만둔 건 아니다. 선생님들이 에디슨을 저능아 취급한 것에 분노한 어머니가 그만두게 한 것이다.

아버지는 에디슨을 별종 취급했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학교를 그만둔 에디슨에게 어머니는 직접 공부를 가르치고 덕분에 독서에 심취하게 되었다고 했다.

과학에 눈을 뜬 건 뉴튼의 'Principia'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이때 배터리에 관해서도 흥미를 느꼈는데, 이후 에디슨은 용돈이 생기는 대로 화학 약품을 사서 실험을 했다고 했다.

에디슨의 말을 듣던 막스는 무슨 마음인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한 학교는 좀 다를 거야. 딱 한 가지 과정만 배우면 되거든.”

“한 가지요?”

“인간 기본 윤리에 입각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너의 역할이란?”

“그게 뭐예요?”

“...... 강좌 이름이야. 콜로라도 과학자라면 기본 적으로 배우는 거야.”

물론 막스가 방금 만든 과목이었다.

천재지만 탐욕스러운 기업가.

테슬라의 교류 방식을 사장 시키기 위해 전기의자를 개발하고, 동물들을 끔찍하게 교류 전압을 사용해 죽인 일.

축음기와 ‘키네토스코프’라는 최초의 영사기(활동 사진기)를 개발했음에도 개인에게 팔 궁리만 했던 인물.

그런 에디슨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었다.

‘콜로라도 과학자.’

막스의 꿍꿍이를 모른 채, 이 문장 하나가 에디슨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과학자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어떤 학위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필요도 없었다.

실험을 즐기고, 원리를 파헤치거나 발명할 수 있다면 누구나 과학자가 될 수 있었다.

더욱이.

“돈은 걱정하지 마. 어떻게 하면 세상이 더 좋아질까, 이것만 생각해. 네 꿈을 내가 캐스팅한 거니까.”

막스가 검지로 에디슨을 가리켰다.

‘내 꿈을 캐스팅했다고?’

막스의 말에 한껏 고무된 에디슨은 하루라도 빨리 콜로라도에 도착하길 바랬다.

소변을 보는 척 객실을 훑어보고 온 헨리 메카티의 손에 빵이 들려 있다. 이를 본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며 낮게 캐물었다.

“너, 이거 어디서 난 거야?”

“······ 누가 줬어요.”

“사실대로 말해. 훔친 거 아니지?”

“엄마는 대체 아들을 어떻게 생각하는 거예요.”

“요즘 같은 때에, 빵을 나눠 주는 게 이상해서 하는 소리야.”

남부보다 낫다 해도, 북부 역시 전쟁으로 인해 경제가 시궁창이었다. 빵을 나눠 줄 만큼 여유롭지 않았고, 솔직히 말해서 헨리 메카티는 그렇게 귀염 상도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어머니는 쓸데없이 객관적인 구석이 있었다.

“야, 헨리. 설마 그 빵을 혼자 먹을 생각인 건 아니지?”

헨리의 형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필사적으로 숨기려 하지만 힘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

‘아아, 이건 총사령관님이 주신 빵인데!’

결국 헨리는 빵 부스러기만 입에 넣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같은 열차 칸, 한쪽에선 형제들끼리 빵 쟁탈전이 벌어진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 펼쳐졌다.

“유카. 이것 좀 먹을래?”

“감자 꺼지시고. 이거 먹어, 유카.”

일본 여자아이 하라다 유카의 양손에 감자와 옥수수빵이 쥐어졌다.

오동패와 고유지가 준 것이다. 둘은 유카를 가운데 두고 같은 의자에 앉아 신경전을 벌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유카는 담담하게 음식을 세 등분으로 쪼갰다.

말없이 오동패와 고유지에게 건네주고, 자신의 입에도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기분 좋은 듯 바닥에 닿지 않는 다리를 흔들며 입을 오물거렸다.

둘은 그 모습도 귀여운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건너편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막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반응에 움찔한 오동패와 고유지가 슬그머니 막스의 시선을 피했다.

‘한심하긴.’

기껏 미국까지 데려왔더니, 저러고 앉아 있다.

독기가 빠진 건 좋은데 빠져도 너무 빠진 거 아닌가.

“너희 둘. 일 년 안에 영어 못 배우면, 유카랑 떼어 놓는다.”

“!”

“다른 것도 마찬가지. 내 귀에 이상한 소리 들려오면, 조선으로 돌려보낼 테니까 각오해.”

흠칫한 오동패와 고유지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때 유카가 해맑게 웃으며 물을 건네주자 둘은 바보처럼 헤벌쭉거렸다.

막스는 다른 일본 아이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해줬다.

당장 중요한 건 영어. 그걸 배우지 못하면 친구들과 떨어질 거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너희들 생존이 걸린 문제다.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 주는 것도 잘 따라왔을 때 이야기야.”

스카프 속. 막스가 입꼬리를 올리던 때, 객실로 소년 판매원이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계란이랑 옥수수빵 있어요! 따끈따끈한 신문도 있습니다!”

“저거 완전 거짓말이에요. 신문이 죄다 오래된 것 뿐이더라고요.”

에디슨이 투덜거렸다.

자신처럼 선량한 사업가가 피해 보는 건 전부 저런 사기꾼들 때문이라고 했다.

전신주를 이용해 최신 신문을 발행했던 에디슨으로선 판매원이 고깝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막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신문을 샀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신문은 오늘 날짜였다.

에디슨은 눈을 껌뻑이며 판매원을 쳐다봤다.

“네 사업 방식이 여기까지 퍼진 모양이네.”

“뭔가 도둑맞은 기분이네요. 내가 생각해낸 사업인데···.”

“덕분에 내가 최신 정보를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그럼 뭐해요. 아무도 안 알아주는데.”

에디슨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과연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될 수 있을까.

훗날엔 도를 넘어서긴 했지만, 성직자도 아닌 에디슨의 생각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막스 역시 대가 없는 발명과 희생은 원하지 않았으니까.

“앞으론 네가 만든 모든 것들을 세상 사람이 알게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 테니까, 넌 걱정하지 말고 연구에 전념해.”

“알겠어요.”

막스는 미소를 머금으며 신문을 펼쳤다.

하지만 헤드라인을 보자마자 미간을 찡그렸다.

올해 있을 의원 선거에 관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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