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 세인트루이스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남북전쟁이 끝나고 첫 선거인가.’
남과 북으로 갈라졌던 민주당이 합쳐지고.
링컨이 대선 당시 창당했던 국민 연합당은 다시 공화당으로 돌아갔다.
과연 남부에선 어느 당이 우세할까.
논란이 되는 건 해방된 노예의 참정권.
수정헌법 13조는 노예를 해방시켰지만, 참정권은 아직이다.
하지만 시민권이 부여된 흑인에게 참정권까지 부여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민주당은 흑인 참정권을 반대하며, 백인들을 선동할 터. KKK단이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창설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었다.
흑인 참정권을 막기 위한 무력 시위.
혼란을 일으켜 급진 공화당의 입을 막기 위한 목적이 다분했다.
막스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떠올리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노예에서 갑작스레 해방된 흑인들을 향한 백인들의 증오와 핍박.
만약 남부에 주둔한 연방군이 철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그 철수가 이뤄지는 시점은 공화당이 민주당에 밀린 시점이 아닐까.
결국 이 모든 것들이 선거와 연관이 있었다.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막스는 다른 기사로 시선을 돌렸다.
[이즈 브릿지 건설 현장에서 살인 사건 발생!]
1866년에 벌어진 첫 살인.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발생한 것으로, 교량 건설 현장에서 흑인 노동자 두 명이 피살된 사건이었다.
막스가 관심을 둔 건, 이즈 브릿지 교량 건설이 앤드류 카네기가 설립한 키스톤 브릿지에서 따낸 첫 사업이라서였다.
교량은 도로와 철도를 결합한 것으로 미시시피를 경계로 미주리주와 일리노이를 연결하는 첫 다리였다. 그만큼 의미가 있는 사업이었다.
‘카네기가 식겁했겠는데.’
사업 시작한 지 몇 개월 만에 살인 사건이라.
막스는 이내 한 인물을 떠올리며 턱을 어루만졌다.
- 굳이 세인트루이스로 가고 싶은 이유는? 연방 보안관이 되었으니까, 금의환향이라도 하고 싶어? 아니면 복수?
- 둘 다 아니야, 보스. 그냥 내 마음의 빚을 청산하고 싶어서 그런 거야.
- 가면 물러질 수도 있어. 알던 사람은 변했을 수도 있고, 너한테 총을 겨눌 수도 있지. 그만큼 네 위치가 달라졌단 말이다.
- 알고 있어, 보스. 그래도 세인트루이스를 맡고 싶어.
- 네 결정에 책임이 따른다는 걸 잊지 마.
막스가 이렇듯 걱정을 내비친 건, 한 가지를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연방 보안관의 경험이부족한 주(州) 정부 경찰이나 카운티 보안관들.
그들이 연방 보안관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연방 보안관의 주 활동무대는 동부.
서부 개척이 제대로 이루어진 지가 얼마 되지 않은데다 그나마 있던 연방 보안관들은 남북전쟁 동안 위조지폐를 추적했고 이후엔 남부 재산을 몰수하는 데 투입되었다.
그 때문에 미주리주만 넘어가도 연방 보안관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연방 보안관이 나타나면 자칫 그들과 마찰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어떤 계기가 없는 한, 이런 위험성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계기라···.’
기사를 읽는 동안, 열차는 볼티모어에서 새로운 손님을 태운 뒤, 펜실베이니아로 향했다.
*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말 먼지를 일으키며 남자가 도착한 곳은 SLMPD(세인트루이스 경찰국).
‘내 발로 여길 오게 될 줄이야.’
건물을 응시한 남자는 피식하며 말에서 내렸다. 그리곤 말을 묶어 둔 뒤, 입구로 향했다.
SLMPD는 미시시피강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으로 정신이 없었다.
“일단 흑인들이 푼돈이 없어진 점. 밤에 이루어진 점으로 미루어봐선 강도의 소행으로 보입니다.”
“그럼 인종 문제는 아니라, 이거네?”
“머릿속에 그런 게 있을지도 모르죠. 희생자가 흑인인 것만 봐도, 뻔하잖아요.”
“아니야, 밀턴 순경. 괜히 골치 아파지니까, 그냥 좀도둑으로 가자고.”
흑인들이 죽든 말든.
갈렌 경감이 신경 쓰는 건 흑인들이 뒤섞인 사회 운동가들이다. 그들이 사건을 해결하라고 들고 일어서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차라리 좀도둑의 소행으로 축소해 관심을 돌리는 편이 나았다.
그런데 이때.
“그건 안 될 말이지.”
갑자기 경찰들이 하는 회의실에 한 남자가 훅 끼어들었다.
추위를 뚫고 와서인지, 두터운 버팔로가죽 코트에는 군데군데 물방울들이 맺혀 있었다.
그런데 얼굴이 어딘가 익숙하다. 누군지 알아본 갈렌 경감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설마 라이언 홀드?”
“엇! 진짜네?”
세인트루이스의 뒷골목 파이터.
좀도둑을 모아 갱단을 만든 리더.
몇 년 동안 안 보이나 했더니, 갑자기 경찰서에 불쑥 튀어나왔다.
라이언 홀드를 알아본 경찰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쳐 왔어?”
“누가 여기까지 들여보낸 거야!”
“혹시 범인이 너냐? 자수하러 온 거야?”
“그럼 말이 되네.”
빈정거림과 비난이 난무할 때, 라이언은 담담하게 두 인물을 응시했다.
그가 기억하는 세인트루이스 경찰은 고작해야 두 명. 하나는 노골적으로 경멸의 시선을 보이는 갈렌. 그리고 자신을 본 순간 잔뜩 얼굴이 굳은 밀턴.
거칠고 방황했던 시기, 두 사람이 라이언 홀드를 대하는 태도는 극과 극이었다.
갈렌은 공갈과 협박, 폭행을 일삼고 공을 차지하기 위해 거짓 자백까지 얻어 내려 한 악랄한 경찰이었다.
반면 밀턴은 당근과 채찍을 주며 자신에게 애정 어린 관심을 보였던 인물이었다.
그나마 라이언이 살인을 저지르고 흉악범이 되지 않은 것도 밀턴 덕분이었다.
밀턴은 정말이지 경찰다운 경찰이었다.
그런데 현재 이 둘의 위치가 대조적이다.
악랄한 경찰 갈렌은 경감으로, 밀턴은 아직도 승진을 못 한 채 순경에 머무르고 있었다.
- 무릇 대가리가 약삭빠른 놈들이 승진도 빠른 법이다.
- 그럼 총사령관님 대가리는···!?
- 디질래? 나는 약삭빠른 게 아니라 그냥 천재다. 잔머리는 물론 약삭빠를 이유가 없지.
- ...... (계속 들어야 하나).
- 너희에게 바라는 건 적에겐 약삭빠르되 아군에겐 우직하고 정도를 걷는 모습을 보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어딜 봐서요?
- 이 새끼들이 진짜. 군장 들고 헤쳐모여. 5분 준다.
혹한기 훈련 시절, 보스 말을 떠올리던 라이언 홀드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세상은 어째 보스의 말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오랜만이네요, 밀턴.”
“······ 여긴 어쩐 일인가. 한동안 안 보여서 마음이 편했었는데.”
왜 하필 이 시점에 경찰서를 찾아온 걸까.
밀턴은 라이언을 본 순간 가슴이 덜컥했다.
표정에 안타까움, 불안함이 고스란히 닮겼다.
라이언은 그런 밀턴의 표정을 뒤로하고 갈렌 경감을 쳐다봤다.
“이 사건은 인종 범죄가 확실한바. KKK단의 개입 여부를 수사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수사에 뛰어들 생각입니다.”
잠시 경찰국에 적막함이 찾아들었다. 입술을 씰룩거리던 경찰들이 마침내 웃음을 터트렸다.
“저 새끼가 총 맞았나. 네까짓 게 뭔데 수사에 뛰어들어?”
“뭐, 연방 보안관이라도 되냐, 미친 새끼···!?!”
라이언이 두툼한 코트를 젖히자 드러나는 별 모양의 배지.
거기에 박힌 단어.
United States
Marshal
경찰들의 입이 쩍 벌어진다.
한때 범죄자였던 라이언에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배지였다.
“연방 보안관 라이언 홀드. 갈렌 경감이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고 한 이상, 정식으로 이 사건에 뛰어들 거요. ”
“....... 보안관을 사칭하는 거라면 각오해야 할 거야.”
“경찰서에서 보안관을 사칭하는 미친놈이 어디 있나. 뭐, 내 신분이야, 주 대법관에게 확인하면 될 일이고.”
갈렌 경감이 눈을 가늘게 떠 라이언을 쳐다봤다. 만약 라이언이 진짜 연방 보안관이라면?
순간 뒷골이 서늘해졌다.
과거 라이언에게 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손에 땀이 배기 시작했다.
그런 갈렌 경감을 보며 라이언은 담담하게 한 가지를 요청했다.
“사건 조사를 위해 인원이 좀 필요한데. 어떻게 붙여 줄 거요, 갈렌 경감?”
“......”
“대답하지 않는 건, 수락한다는 의미죠?”
라이언은 눈만 껌뻑거리는 밀턴 순경을 콕 짚었다.
“같이 가죠.”
보안관 사칭한 자가 경찰서를 찾아와, 경찰을 데려간다?
제정신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라이언 홀드가 연방 보안관일 가능성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렇게 되면, 주지사나 주 대법관이 아니라면 아무도 그를 제지할 수 없었다.
경찰서가 적막한 가운데, 라이언과 밀턴 순경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연방 보안관이라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나야 뭐...... 항상 똑같지.”
밀턴은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긴 듯 라이언에게 물었다.
“혹시 옛날 일로 복수하려는 건 아니지?”
“뭔 복수에요. 경찰들에겐 아무런 악감정 없습니다. 오히려 과거를 지우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걸요. 철없던 시절이라고 저지른 죄들이 용납되는 건 아니잖아요.”
남의 물건을 훔치고, 불법 도박 싸움판에 끼어든 것. SFBC가 되기 전, 라이언은 숨 쉬는 것 빼고 범죄가 아닌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랬던 라이언이 달라졌다.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밀턴은 신기한 듯 라이언 홀드를 쳐다봤다.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이렇게 변한 거야?
“일과 사람 때문이라고 봐야죠.”
라이언 홀드가 짙은 미소를 지었다.
막스와 동료들과 있다 보면 다른 길은 보이지도 않는다. SFBC는 다이나믹하며 노는 물 자체가 달랐으니 말이다.
서부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세븐 스트롱.
그중 막스와 콜린, 히콕이 전설처럼 총잡이로서 이름을 남겼다. 남북 전쟁을 거치면서 희미해졌지만, 그들에 비해 라이언 홀드는 아무런 이름도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라이언은 그들의 동료가 된 것만으로 만족했다.
밀턴 순경과 현장을 답사하고 저녁을 즐긴 뒤.
이후부터 라이언은 홀로 세인트 루이스의 핑커톤 지부를 찾아가 그들과 공조하며 살인범들을 추격했다.
그런데 사흘 뒤.
갑자기 밀턴이 라이언을 찾아왔다.
“경찰국에서 적들의 은신처를 발견했어.”
“위치는요?”
정보를 얻은 라이언은 은밀히 현장을 급습하려 했다. 그런데.
“이게 얼마 만인가, 라이언 홀드!”
“시발, 두목은 연방 보안관이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예전처럼 우리 리더가 되는 건 어때?”
살인범들은 과거 라이언 홀드가 만든 갱단의 일원들. 정보가 샌 건지, 라이언이 찾아올 걸 알고 있었다. 심지어 연방 보안관이라는 것도.
‘역시 함정이었군.’
막스와 함께 있다 보면 저절로 생기는 게 있다. 바로 눈치와 감이다.
자신을 경계한 갈렌 경감?
아니면 밀턴이 뒤통수를 친 걸까?
그게 누구든.
‘나를 우습게 봤다 이거지.’
노는 물이 다르다는 게 어떤 건지.
놈들에게 확인시켜줘야겠다.
그리고 같은 시각.
콜로라도로 향하던 막스가 세인트루이스 기차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