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4화 (284/360)

#284 둘이서 이러는 거 오랜만이네요.

로키산맥의 절벽을 등지고 지워진 준투 요새.

그 안에는 은행, 식료품과 학교 그리고 SFBC 훈련소와 숙소가 갖춰져 있고. 조금 떨어진 동쪽에는 클리어강과 맞닿아 대장간과 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이게 얼마 만인가.”

대장간과 공장 총괄 관리자 제임스 해리스가 막스를 반긴다.

서부에서 눈을 뜬 뒤 처음 만난 백인.

막스와 가장 인연이 깊은 코닐의 아버지는 변함없이 우직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날아오르듯 달려와 포옹하는 여인은.

“막스! 밥은 잘 먹고 다닌 거야? 어디 아픈 데는 없고?!”

“보다시피 아주 건강해요.”

어머니가 오랜만에 만난 자식을 살펴보듯 메리는 막스의 볼살을 만지작거렸다.

용병들과 뉴욕 갱단들에겐 위화감이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아직 밥 안 먹었지? 오늘 저녁 기대하라고! 아, 참!”

몸을 돌리던 메리가 불쑥 물었다.

“피치양은 왜 같이 안 왔어?”

“임신했어요.”

“이런, 경사네 경사야! 이거 다음엔 우리가 뉴욕을 찾아가야겠네. 아무튼 저녁때 보자고!”

신이 난 메리가 막스를 놓아주자, 이번엔 곰처럼 서 있던 남자가 눈물을 글썽이며 다가왔다.

“주인···님!”

“이색. 지금 나 엿먹이려고 그러는 거지?”

노예 해방을 위해 싸운 미국 총사령관에게 주인님이란다. 그것도 흑인이.

알프레도가 코를 훔치며 미소 짓자, 노려보던 막스는 이내 웃으며 어깨를 토닥였다.

“그동안 무기 만드느라 고생했어.”

“힘들긴 했죠.”

“하여간. 엘리자도 잘 있었죠?”

“그럼요. 전부 보스 덕분이에요.”

알프레도의 부인 엘리자 스콧.

죽은 드레드 스콧의 첫째 딸은 두 아이와 함께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아이들은 눈을 껌뻑이며 막스를 올려다봤다.

알프레도 가족 주변에 있는 흑인들은 죽은 드레드 스콧의 부인과 자식들이다. 그래서인지 막스를 보는 눈빛이 촉촉해 있었다.

드레드 스콧은 죽었지만, 그 가족들은 요새 안에서 머물며 막스의 사업과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며 살고 있었다.

막스를 환영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는 중국인들도 있었다. 그중 차홍과 양옌이 환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요새에 차이나타운 만든 건 아니지?”

“설마. 각자 나름 열심히 살고 있어.”

차홍은 질겁하며 고개를 젓고, 양옌은 말없이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군중들이 갈라지며 한 남자가 등장했다. 휠체어를 탄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

존 브라운이었다.

“자네가 오길 눈이 빠져라, 기다렸네.”

“일이 좀 많아야지요.”

존 브라운을 마지막으로 본 건, 조선에 가기 전으로 1년 6개월 만이다.

막스는 휠체어를 끄는 흑인 남자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덴저필드 뉴비.

원 역사에선 노예였던 부인과 강제로 헤어진 분노로 하퍼스 페리 습격에 동참.

백인들에게 붙잡혀 처참하게 살해당한 혼혈 남자였다. 하지만 현재는 온 가족이 요새에 모여 잘살고 있었다.

*

요새 옆에는 존 브라운 대학(John Brown University)이 있다.

총장은 존 브라운, 이사장은 막스.

대통령 퇴임 직후 존 브라운은 자신의 거처를 콜로라도로 정했는데, 막스 요청이 아닌 자발적인 의사였다.

“내 이름으로 학교를 세운 건, 나보고 여기 있으라고 한 것 아니었나?”

“전혀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만. 나쁜 선택은 아니었죠?”

“흠. 뭐, 로키산맥이 내게 조금이나마 시간을 준 것 같긴 하네.”

퇴임 당시 존 브라운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병색이 짙었었다. 그런데 콜로라도에 온 이후 몸 상태가 조금은 호전되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까지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화제는 링컨 암살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졌다.

존 브라운은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에게 있었던 비밀스러운 일을 전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때, 자네를 보기 위해 매나사스 사령부로 가던 길이었네.”

갑자기 말이 발작하듯 놀라 어디론가 달려갔다고 했다. 모자까지 벗겨진 존 브라운은 겨우 말을 진정시키고서야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떨어진 내 모자에 구멍이 나 있었네. 총알이 관통한 게지.”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한창 전쟁 중이라, 당시에 내 모자를 들고 있던 병사에겐 비밀로 하라고 했네. 아마 그때부터 암살 시도는 계속 있었을 거야.”

게티즈버그로 향하던 기차 폭발과 링컨 암살까지.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까지 생각하면 대통령을 죽이려는 암살 시도는 더 많지 않았을까.

근심이 가득한 얼굴을 보며 막스가 고개를 절레 저었다.

미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쟁을 이끈 대통령이 지금은 링컨 대통령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제 복잡한 생각은 마시고, 여기서 남은 여생을 편하게 보내십시오.”

“그럴 생각이네. 적성에도 딱 맞더라고.”

“다행이군요.”

존 브라운 대학은 백 퍼센트 장학금으로 운영된다.

능력은 있지만 가난한 학생들이 몰려들어 현재 인원은 2천 명 가까이 늘었다.

그뿐 아니라 교수들 연봉도 하버드, 예일대를 넘어섰다. 막스는 미국을 넘어 해외에서까지 유능한 자들을 영입하기 위해 달콤한 복지들을 잇달아 내세우고 있었다.

“이왕 온 김에, 기숙사 증축도 논의해 보세.”

“필요하면 늘려야겠죠.”

“연구실하고 캠퍼스도 이왕이면 더 크게 만드는 건 어떤가?”

“기획서 가져오면 검토해보겠습니다, 총장님.”

“우리 사이에 기획서는 무슨.”

“그럼 힘들겠는데요.”

“...... 곧 만들어 올리겠네, 막스 이사장.”

대통령과 총사령관이 지금은 대학 총장과 이사장 관계로 뒤바뀌었다.

이 관계가 마음에 드는 듯 존 브라운의 얼굴에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

“척, 내가 3개월 훈련 코스로 잡아 놨으니까 열심히 해.”

막스의 말에 척이 죽을 상을 짓는다.

대체 음식 파는데 군사 훈련은 왜 필요하단 말인가.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거야? 뉴욕이면 내가 이러지도 않아. 대륙횡단철도 공사 지역이 어디지, 척?”

“서부···.”

“그렇지. 소스 한 번 더 뿌렸다가 총 맞으면 어쩔 거야? 무법자가 달리 무법자겠어?”

“......”

“뉴욕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절대 죽으면 안 되는 거야, 척.”

“그럼. 당연하지!”

“그러니까 열심히 훈련할 받을 수 있도록 해. 햄버거 팔다 뒤지기 싫으면.”

막스는 척의 어깨를 두드리며 집합한 사람들을 응시했다.

SFBC 대원들을 조교로, 조선인 셋과 용병, 뉴욕 갱단들이 그들 앞에 도열해 있었다.

“모두 뒤를 돌아본다! 전방에 보이는 저곳이 바로 SFBC의 근본적인 힘이 샘솟는 곳이다. 느껴지나?”

로키산맥의 험준한 산봉우리.

저기서 힘이 나온다고?

다들 눈을 찡그릴 때, 막스가 말을 이었다.

“훈련에는 여섯 개 인디언 부족도 참가한다. 그들에겐 연례 행사니까, 쪽팔린 모습은 보이지 말도록. 그리고 훈련 중 죽으면 공기 좋은 묫자리가 보상이다. 개죽음당하기 싫으면 정신 바짝 차려.”

다음은 아이들인데.

직접 말하기보다 비서 칸토에게 지시를 내렸다. 오랜만에 보스를 마주한 그는 흥분한 표정으로 부지런히 메모하고 있었다.

“에디슨은 화학자들 연구실에 넣어 주고. 숙소도 마찬가지. 그리고 조선, 일본에서 데려온 아이들은 분리해서 백인 아이들과 섞이게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조셉 헤코는 따로 숙소 제공하고, 당분간 일본 아이들 돌볼 수 있도록 조치하고.”

“넵!”

막스는 몇 가지 더 지시를 내린 뒤 칸토를 응시했다.

칸토는 히스패닉으로 과거 산초의 동료였던 자다. 눈치가 빠르고 커피를 잘 타는 것 외에도, 행정 업무 역시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나 없는 동안 수고했어, 칸토.”

“별말씀을요.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근데, 전쟁 중에 결혼도 하고 애를 둘이나 낳았다면서?”

“......”

칸토의 눈동자가 천장으로 향했다.

SFBC 동료들이 전장에서 구를 때, 결혼까지 했으니 여간 찔리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늦었지만, 이거 받아.”

막스가 3천 달러에 해당하는 금덩이를 건넸다.

놀란 칸토가 금과 막스를 번갈아 쳐다봤다.

“통나무집에서 산다며? 결혼했으면 근처에 집 하나 제대로 지어야지.”

“...... 보스.”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지금처럼 날 도와줘.”

“자르지만 않으면 평생 그러고 싶습니다!”

“일 잘하는데 왜 자르겠어.”

막스는 웃으며 더 많은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칸토와 이런저런 일을 끝낸 뒤.

막스는 에디슨을 데리고 CIE(창조, 혁신, 진화-Creatvie, Innovation, Evolution) 연구실을 찾아갔다.

철문 세 개를 지나 서야 도착한 연구실은 공간도 넓고 무수한 장비들이 갖춰져 있었다.

에디슨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막스가 도착하자 알프레도와 리차드 개틀링, 그 밖에 백여 명에 달하는 연구원과 보조들이 모여든다. 일부는 막스를 처음 본 사람들도 있었다.

자신들을 고용한 보스, 미국 총사령관이자 동양인을 보는 눈빛은 다채로울 수밖에 없었다.

‘빠진 인원은 알프레드 노벨인가.’

화학, 물리, 광학, 수학, 기계 등.

막스는 엔지니어이자 과학자들을 응시했다.

사실상 첫 대면이나 다름없어 가벼운 인사로 시작했다.

“콜로라도에 오신 걸 뒤늦게나마 환영합니다. 이곳 연구실 이름은 다들 아실 겁니다. 창조, 혁신, 진화. 그리고 그 모든 베이스는 인간입니다. 지난 전쟁에서 본 것처럼, 앞선 무기는 종전을 앞당기고 더 큰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리차드 개틀링이 동감한다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혁신적인 무기는 전쟁을 억제한다.

개틀링 기관총을 만든 이유와도 같았다.

“전 여기 계신 분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지금처럼 연구에 집중해 주세요. 보상은 물론, 여러분들의 이름은 후대에 영원히 기억될 겁니다.”

특허는 CIE Lab으로 등재되지만, 개발자의 이름은 개인으로 명시한다.

보상은 이익의 20%.

여기에 더해 기본적인 의식주는 물론 연구에 필요한 모든 자금을 대주기 때문에, 과학자들에게 CIE lab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에디슨은 주먹을 꽉 쥐며, 이들 틈에 자신의 이름을 떨치고자 다짐했다.

콜로라도에 도착한 지 사흘째.

막스는 인디언들과도 회동하며 바쁜 일정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콜린은 준투에 있는 전미 핑커톤 탐정 사무소를 들락거렸다.

그렇게 해서 은행강도로 추정되는 놈들이 이곳 준투를 거쳐 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뭐 이것도 추측이야. 다만, 캔자스에서 매춘부를 죽였던 놈들과 인상착의가 비슷한 것 같더라고.”

강도들은 가는 곳마다 돈을 물 쓰듯 써댔다.

살롱(술집)에서 고급술과 매춘부를 낄 때나, 장거리를 위해 다량의 음식을 사들이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얼마 전 솔트레이크시티에도 핑커톤 사무소를 개설했다는데. 거기 가서도 협조를 구해야 할 것 같아.”

드넓은 유타주에 작심하고 처박힌 은행강도를 무슨 수로 찾을 것인가. 설상가상 이미 다른 곳으로 튀었으면 잡을 방도가 없었다.

“일단, 브리검 영을 만나러 가죠.”

무턱대고 유타를 뒤지기보단, 몰몬교를 이용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날 막스와 콜린은 조용히 요새를 벗어났다.

그런데 입구에서 SFBC 대원인 준투 보안관을 마주쳤다.

“혹시 지금 유타로 가는 길입니까, 보스?”

“어. 왜?”

“두 분한테는 쓸데없는 말이지만, 최근 몇 개월 동안 센트럴 오버랜드 역마차가 잇달아 습격당했거든요.”

센트럴 오버랜드는 포니 익스프레스가 망한 뒤, 근근이 유지하는 역마차 서비스 회사다.

커버하는 지역은 미주리주 세인트 조셉에서 유타 솔트레이크시티까지였다.

콜린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몇 개월 동안 습격당했는데도 못 잡았어?”

“그게 아주 교묘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줄 버그 마을에 있는 역마차 관리자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내부자와 관련된 것 같거든요.”

줄 버그는 준투 북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준투 도시가 커지면서 유타지역을 오가는 물류가 늘어나자, 덩달아 역마차 서비스도 활발해진 마을이었다.

막스와 콜린은 머릿속에 정보를 갈무리한 뒤 길을 재촉했다.

목적지는 솔트레이크시티.

로키산맥을 끼고 800km는 족히 가야 하는 거리였다.

줄 버그 마을.

막스와 콜린은 관리자를 만나려 했지만, 자리에 없는 탓에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 달린 끝에 콜로라도와 와이오밍의 경계 부근에 도착했다.

“여기서 야영 장소로 적당하겠군.”

콜린이 자리를 선정하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간이 천막을 세운다. 그동안 막스는 버팔로 똥을 긁어모아 불을 지폈다.

그런데 이제 막 봄이 시작된 터라, 차가운 똥들은 습기를 머금고 있어 불을 붙이기도 힘들었다. 결국 콜린까지 가세해 드문드문 보이는 포플러 나뭇가지를 모아서야 불을 지필 수 있었다.

‘젠장, 버너부터 만들어야 하나.’

힘들게 불을 지핀 뒤에 똥으로 화력을 올리고, 이윽고 베이컨을 굽고 옥수수알갱이와 야채를 마요네즈를 버무려 볶았다.

“참 먹는 데는 진심이란 말야.”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한 끼라도 잘 먹어야죠.”

달빛과 하늘에 수 놓인 별들.

그 아래에서 유부남 둘이 모닥불에 앉아 저녁을 때우고, 느긋하게 커피까지 마셨다.

“그래서 부인을 꼬드긴 놈은 어떻게 했어요?”

“부모 잃고 가난한 여자를 납치해 매춘부로 만들었으면, 살 가치가 없는 새끼잖아? 그래서 목을 잘라 버렸지.”

“바텐더 새끼가 그 모양인 걸 보면, 켈리 여관 주인도 지하철도랑은 상관없던 거네요?”

“전혀. 만약 그랬으면 진작에 노예 추적자 새끼들한테 노출됐을 거야.”

콜린이 과거를 회상하던 때.

막스가 갑자기 한쪽을 응시했다. 콜린도 이내 같은 방향을 바라봤다.

두드드드드.

미약하게 들려오던 말발굽 소리가 점차 커지기 시작한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난 뒤, 조금 떨어진 언덕 위로 올라갔다. 야영 장소를 선정할 때 이미 봐둔 곳이라 서로 의논할 필요도 없었다.

잠시 후.

커지던 말발굽 소리가 갑자기 줄어들었다.

“말에서 내린 모양이네.”

상대를 놀라지 않기 위해 말에서 내렸다 해도 말발굽 소리는 나야 한다.

그런데 놈들은 말을 묶어놓은 뒤 이곳으로 은밀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둘이서 이러는 거.”

콜린은 말없이 낄낄거리며 시가를 입에 물었다.

물론 불을 붙이는 짓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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