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6화 (286/360)

#286 제대로 된 대화를 해 봅시다

몰몬교 임시 성전.

콜린은 1층 홀에서 대기하고, 막스는 브리검 영과 ‘천상의 방’이라 이름 붙인 곳에서 독대했다.

윈저체어 열 개가 둥글게 놓여 있고, 사방은 스테인글라스로 된 창문으로 가득한 곳.

막스를 바라본 브리검 영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방문한 것조차 탐탁지 않았다.

‘이번엔 또 무슨 일로 찾아왔지.’

오레곤 트레일의 동양인 성자라고 교도들이 떠받드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과거 메도우스 대학살 사건이란 몰몬교의 치부를 들춘 것도 그닥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당시 그것 때문에 막스에게 질질 끌려다니게 되었으니.

동양인인 것도, 연방 총사령관이었던 것도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찾아온 목적이 뭐든, 대화에서 주도권은 절대 내주지 않는다.’

브리검 영이 그렇게 마음을 다잡을 때,

막스가 넌지시 그를 바라봤다.

전생에 유타 지역을 여행할 때, 조유강은 브리검 영에 관한 소책자를 읽은 적이 있었다.

솔트레이크 시티를 몰몬교 성지로 만든 인물.

몰몬교를 창시한 조셉 스미스보다 더 영향력이 큰 인물. 그리고 제2대 회장으로서 임기 기간이 길고 몰몬교의 르네상스를 이끈 입지 전적인 인물.

그런데 브리검 영도 종교를 벗어나 개인사를 들춰보면 나름 깔 건 있었다.

일단 부인이 55명, 자식은 56명이나 된다.

몰몬교가 일부다처제라 넘어간다 쳐도, 브리검 영의 재산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60만 달러가 넘어갔으니까.

물론 동부 부자들에 비하면 작은 액수다.

하지만 몰몬교도들이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살며 교에 돈을 헌납할 때, 정작 회장은 재산을 축적했다.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게다가 브리검 영은 노예제를 옹호했다가, 불리할 땐 폐지를 주장하기도 하는 등 오락가락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브리검 영은 노예제 옹호론자다.

흑인들은 백인처럼 지혜롭게 행동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흑인들에게 신권 부여를 금지하는 금지령까지 제정하기도 했다.

또한 동양인의 경우 백인들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었다.

간단한 안부 인사가 끝나고, 막스는 곧바로 은행강도 사건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놈들이 유타에 숨어들었다는 말에 브리검 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막스의 생각을 문제 삼아 공격했다.

“그래서 지금 본 교도들이 은행강도라고 말하고 싶은 거요?”

“제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내 앞에서 그 얘기를 꺼낸 저의가 그게 아니면 뭐란 말이오?”

브리검 영이 날을 세우자, 막스의 눈도 가늘어졌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도 않았습니다.”

“들어봐야 빤하지. 솔직히 상황이 그렇지 않소? 유타는 약속대로 전쟁 중립을 지켰고, 교도들은 신앙 아래 순수함 삶을 살고 있는데, 갑자기 와서 은행강도가 유타에 숨어들었다니. 뭐 어쩌라고 그런 말을 내게 하는 거요? ”

“지금 기선 제압이라도 하려고 이렇게 생떼를 부리는 겁니까?”

“새, 생떼라니!?”

얼굴이 벌게진 브리검 영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막스 또한 기분이 상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은행강도가 유타에 처박혔고, 놈들을 잡기 위해 도움을 청하려는 것인데 왜 날 그런 식으로 몰아갑니까?”

“그러니까 왜 우리가 그 일을 돕냐는 말이오. 그리고 당신은 또 무슨 권한으로 내게 도움을 청하는 거고?”

‘너무 오래 방치했나.’

막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브리검 영은 유타를 자신의 제국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총사령관도 뭣도 아닌 동양인을 자신의 아래로 보고 있었다.

이때 막스가 담담히 품속에서 배지를 꺼낸다.

브리검 영의 눈이 커졌다.

“연방 보안관?”

“조용히 도움을 청하려고 했는데, 괜한 오해를 샀군요.”

“동양···. 아니 총사령관이 어찌 연방 보안관이 되었단 말이오?”

“그야 될만하니까 된 거고.”

막스가 브리검 영을 응시했다.

“지금 은행강도들이 유타에 숨어들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문데.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이유?”

“행여 사람들이 은행강도와 몰몬교를 연관 지어 생각할까 싶어, 그동안 언론을 막은 겁니다. 가뜩이나 몰몬교를 물고 뜯으려 안달이 난 사람들이 어디 가만히 있겠습니까?”

물론 그 이유 때문은 아니다.

언론이 떠들면 놈들이 다른 곳으로 달아날까 싶어서 알리지 않은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막스는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회장님이 은행강도 체포를 도우면, 그 공을 몰몬교에게 넘겨주려 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방법을 바꿔야겠군요. 우선 은행강도가 유타로 넘어온 이유를 나름 추측해보면 이렇습니다.”

전쟁이 끝난 직후라 남부는 여전히 연방 군이 주둔 중이다.

그 때문에 미주리주에서 은행을 턴 놈들이 갈 곳은 연방의 힘이 미치지 않은 곳인데, 가장 적합한 곳이 바로 유타였다.

사실상 이 지역에 사람이 살게 된 이후, 연방 보안관이 온 것 자체도 처음 있는 일이라 무법자들에겐 좋은 은신처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막스의 추측이다.

그런데 꽤나 그럴듯했다.

“앞으로 더 많은 무법자가 유타로 몰려들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니 지금 필요한 건 뭐다? 연방 군인이죠.”

막스는 유타에 군을 주둔시키겠다며 압박했다.

깜짝 놀란 브리검 영이 즉각 반응을 보였다.

전 연방 총사령관 이미지가 덧대어져 말에 무게가 달랐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억지네! 군이 들어오면 교도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은가?”

“교도들의 재산을 보호하고, 법을 수호한다는 데 거절할 이유가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설득해보죠.”

브리검 영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가뜩이나 오레곤 트레일의 동양인 성자라며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런 막스가 달콤하게 설득하면 반대는커녕 오히려 군대를 반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막스는 또 하나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일단 은행강도는 첫 번째 볼 일이고, 두 번째는 대륙횡단철도 공사에 대한 협상입니다.”

“협상? 자네가 무슨 자격으로?”

막스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놈의 주머니에는 뭐가 저리 많이 들었단 말이냐.’

브리검 영이 미간을 찌푸릴 때.

막스가 종이를 팔랑거렸다.

놀랍게도 UPR(유니온 퍼시픽 레일로드) 회장 홀리데이의 대리인 자격을 적시한 문서였다.

브리검 영은 똥 씹은 표정으로 문서를 쳐다봤다.

“나도 UPR의 투자잡니다. 홀리데이 회장과의 관계는 뭐 말 안 해도 잘 알 테고. 아무튼, 몰몬교도를 공사에 투입하는 건 좋다 이겁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철도 노선이 이상하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리인가?”

“처음 존 브라운 대통령과 계획했던 노선은 이게 아니었거든요.”

막스는 존 브라운 대통령을 언급하며 또다시 브리검 영을 압박했다.

“일직선으로 이어져야 할 철도 노선이 왜 유독 유타에서 굽어진 이유를 당최 이해할 수 없다 이 말입니다.”

대륙횡단 열차 노선은 유타 지역의 그레이트 솔트 레이크를 따라 휘어진다.

최대한 공사비를 절약하려면 일직선이 되어야 하는데, 유타에서만큼은 유독 심하게 굽어졌다. 막스는 이를 문제 삼은 것이다.

“다행히 공사 시작 전이라, 이 부분을 의회에서 따질 생각입니다. 불필요한 비용 지출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철도 회사는 공사 비용을 평지는 마일(1.6km) 당 16,000달러, 산기슭은 32,000달러, 산세가 험한 곳은 48,000달러로 책정했다.

이는 노선이 길어질수록 공사 업체에 유리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업체와 몰몬교와 밀약이 있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브리검 영은 포교를 통해 동부에서 신도들을 유치하기 위해 철도 노선에 사활을 걸고 있으니 말이다.

유타에 계획된 철도 노선과 몰몬교의 로비.

존 브라운과 막스는 이를 알면서도 묵인했다.

아무래도 유타의 도시를 지나는 게 사업성으로 좋았으니 말이다.

브리검 영은 모르고 있지만, 막스는 대륙횡단철도 사업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수정하고 결정까지 내렸으니까.

“지금 와서 노선을 바꾸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그럴만한 힘도 없···.”

“회장님은 내가 우습게 보입니까?”

순간 천상의 방에 무거운 침묵이 감돈다.

이때 팽팽한 긴장감을 비집고 막스의 목소리가 브리검 영의 고막을 두드렸다.

“가끔은 유타 밖으로도 나가보세요. 세상이 어떤지. 정보가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브리검 영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 와서 철도 노선을 바뀌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브리검 영이 걱정하는 건, 전직 총사령관이 언론과 의회를 들쑤시면 일이 겉잡을 수없이 커질 수도 있다는 거.

어쩌면 철도 노동자를 몰몬교로 채우겠다는 계획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 그뿐인가.

눈앞의 교활한 동양인은 은행강도 사건까지 몰몬교에 뒤집어씌우고도 남을 인간이다.

연방 보안관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연방 군을 유타에 주둔시키겠다며 공갈 치고.

은행강도와 몰몬교를 엮겠다며 협박하고.

대륙횡단철도의 노선 문제를 걸고 넘어지겠다며 압박하고.

정신없이 막스에게 얻어터진 브리검 영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머릿속엔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해 나아가려 할 때. 막스는 그럴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기분 좋게 찾아왔는데, 대접이 이러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막스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브리검 영이 눈을 떴다. 입술을 씰룩거리더니 신음하듯 말을 내뱉었다.

“그러지 말고, 제대로 된 대화를 해 봅시다, 연방 보안관.”

*

- 교도들에게는 어떻게 전달하는 게 좋겠소?

- 놈들이 눈치채면 곤란하니까, 대충 KKK단이라고 해둡시다.

브리검 영은 막스의 말대로 교단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다음을 지시했다.

“KKK단이 유타에서 단원들을 모집하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수상한 자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하십시오.”

“감히 몰몬교 성지에서 KKK단을 모집한단 말입니까?”

“그러니 하루빨리 뿌리 뽑아야지요.”

이 같은 지시는 교도들 사이에 빠르게 전달되었다.

솔트레이크 시티의 핑커톤 탐정 사무소.

막스, 콜린이 머문 지 사흘째 되던 날,

교단 관계자가 찾아와 소식을 전했다.

유타 전역에 교도들이 퍼져 있어서인지, 놀라운 속도였다.

“이틀 전, 오그돈 마을 총포상에 수상한 자들이 들렸답니다.”

무기 구입은 물론 수리까지 맡겼다는 것이다.

“인상착의가 맞다면 맡긴 무기를 되찾으러 올 때 붙잡으면 되겠군요.”

막스와 콜린은 즉시 오그돈으로 향했다.

가는 길, 콜린이 말을 건넸다.

“설마 함정은 아니겠지?”

“브리검 영이 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잘못 건들면 박살날 거 빤히 알 테니까요. 뭐,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죠.”

“아무튼 불과 사흘 만에 범인들을 추적한 걸 보면, 브리검 영이 대단하긴 하네.”

“앞으로 유타에서 일이 터지거든, 브리검 영을 찾아가요. 그게 제일 빠르니까.”

막스가 브리검 영과 신경전을 벌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결과를 보듯,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솔트레이크 시티 북쪽으로 64km 떨어진 마을.

둘은 어렵지 않게 은행강도가 들렸던 총포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간판이 막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Jonathan Browning

GUNSMITH

Blacksmith & Farrier

막스의 시선이 한동안 간판에 머물렀다.

총포사의 주인 이름을 확인한 때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이것 봐라.’

말을 묶어 둔 뒤, 막스가 가게 문을 열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잔뜩 긴장된 목소리. 주인인 건스미스(총포 대장장이, 제작사)는 무장한 막스와 콜린을 경계하듯 쳐다봤다.

막스와 콜린 둘 다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터라, 최근 떠들썩한 KKK단이 아닐까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하지만 막스의 시선은 주인이 아닌 다른 곳을 향했다.

가게 구석에서 10살 정도의 소년이 막스와 콜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를 본 순간 스카프 속 막스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굳이 찾을 필요도 없었구만.’

총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본 순간, 막스는 터져 나오는 흥분을 꾹꾹 눌러야했다.

그런데 소년이 쥐고 있는 조잡한 물건.

길쭉하고 시커먼 구멍이 막스와 콜린을 향하고 있다. 소년이 직접 만든 총이 분명했다.

표정을 봐선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막스를 향해 총을 쏠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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