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 위대한 건스미스
소년이 겨누고 있는 총구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막스는 건스미스 조나단에게 말을 건넸다.
“KKK단으로 의심되는 자들이 왔다고 들었습니다만.”
“......혹시 교단에서 오셨습니까?”
막스가 KKK단을 언급하자 조나단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딱 봐도 같은 몰몬교 형제는 아니고, 솔트레이크시티 보안관은 더더욱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조나단은 당신 정체부터 밝히라며 막스를 빤히 쳐다봤다. 그런데 정작 막스의 시선은 소년을 향해 있었다.
“왜 자꾸 남의 아들을 쳐다보... 응?!”
미쳐 말을 끝내기도 전, 막스는 마치 소년에게 보여주듯 보안관 배지를 내밀었다.
그 때문에 조나단은 고개를 쭈욱 뺀 채 그게 뭔지를 살펴봐야 했다.
그리고 배지를 확인한 순간, 굳었던 얼굴이 풀어지며 입가에 미소가 번져갔다.
“아, 연방 보안관이셨군요!”
‘쉐리프가 아닌 마샬?’
아버지의 말에 놀란 아이도 슬그머니 총구를 치운다. 여차하면 쏘려고 한 게 분명했다.
‘역시 싹수가 다르구만.’
막스가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리던 때, 콜린이 조나단에게 인상착의를 물었다.
“두 명이 왔는데, 한 명은 키가 제법 컸습니다. 둘 다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고요.”
연방 보안관이라는 걸 알아서인지, 조나단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다른 특징은?”
“비교적 키가 작은 남자가 눈을 자주 깜빡거렸습니다.”
은행강도 중 한 놈이 유독 눈을 깜빡인다고 했다. 콜린은 동일 인물임을 확신했다.
“그럼 맡긴 총기는 언제 찾아가기로 했지?”
“이틀 뒤요···. 그러니까 오늘입니다···.”
갑자기 조나단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리볼버 수리를 맡겼는데, 부품이 없어서 수리를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이틀 내로 끝내라고 협박하지 뭡니까. 그래서 겨우겨우 부품을 알아보긴 했는데, 내일쯤에나 도착하거든요.”
그런데 만약. 놈들이 악랄한 KKK단이고 맡긴 총기를 제때 수리하지 못했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소년이 막스와 콜린에게 총구를 겨눈 것도 이 때문이었다.
막스가 조나단에게 물었다.
“수리를 맡긴 리볼버 모델이 뭡니까?”
“웨블리 롱스퍼, 1853년 모델입니다.”
총구가 길고, 장전 속도를 높인 5발 캡 앤드 볼 리볼버. 영국 웨블리 형제가 최초로 특허를 얻은 총이다. 더불어 최초로 분실 방지 권총 끈 고리가 달린 총이었다.
‘이것도 인연이구만.’
운 좋게도 역마차 강도들에게서 얻은 리볼버 중 웨블리 롱스퍼가 있었다.
‘이걸로 일단 환심을 사야겠군.’
모든 건 소년 때문이다. 반드시 그의 재능을 손에 넣어야 했다.
막스가 콜린을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러는 동안 막스의 관심은 다시 소년에게로 향했다. 그가 들고 있는 독특하게 생긴 권총을 응시하며 말을 건넸다.
"하모니카 건을 개조했군. 약실에 화약을 붓는 상단 구멍을 없애고, 약실 앞뒤로 구멍을 뚫었네?"
하모니카 건은 꽤 오랜 역사를 가진 권총이다. 하모니카처럼 생긴 구멍 뚫린 약실을 슬라이드처럼 밀어 장전하는 방식으로, 많게는 12발까지 연속 발사가 가능했다.
그리고 이 방식으로 이름을 날린 게 소년의 아버지 조나단 브라우닝. 그래서인지 막스의 질문에 어깨가 으쓱해진 조나단이 대답했다.
“아들놈이 손재주가 있어서, 제가 만든 걸 개조했더군요. 그런데 사실, 요즘 하모니카 방식을 누가 쓰겠습니까.”
남북 전쟁 전후로 권총은 리볼버가 대세로 굳어졌다.
슬라이드, 덕풋, 페퍼박스 리볼버 등.
온갖 창의적인 총들이 발명되었지만, 회전실 약실을 채택한 리볼버가 효율과 재장전 속도 측면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었다.
그런 이유로 특이한 권총들은 빠른 속도로 ㅅ시장에서 도태되었다.
막스는 소년의 총을 응시하며 물었다.
“리볼버가 대세인데, 굳이 슬라이드 방식의 총을 만든 이유는?”
“그냥··· 눈에 보여서요. 아버지 말씀대로 요새 누가 이런 총을 쓰겠어요. 그리고 상단 구멍을 없앤 건, 전쟁 이후 금속 탄피가 사용되어서 그랬어요. 퍼커션이 따로 필요 없고, 화약을 채울 일도 없어졌으니까요. 그래서.”
소년이 핀을 제거하고, 총을 들고 뒤로 젖히자, 금속으로 된 총알이 우수수 떨어졌다.
소년은 빈 약실을 확인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렇게 한 발씩 격발할 때마다, 슬라이드가 정확히 한 칸씩 이동해요. 그러면서 노리쇠에 정확히 뇌관이 위치하게 되는 거죠.”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홈이 회전하면서 미는 방식이구나. 방아쇠를 누르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겠고?”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막스는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니까.”
“맞아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하모니카 방식에선 그게 가장 효율적이더라고요. 대신 이 총 자체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요.”
“쏠 때마다 약실의 무게가 달라져서, 정확도가 떨어지지. 재장전은 빠르지만, 정작 쏠 때마다 무게 중심이 달라지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거든.”
“맞아요! 특히 저같이 힘없는 아이에겐 커다란 단점이죠!”
소년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총기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걸 보면, 역시 싹수부터가 달랐다.
막스가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물었다.
“그래서 네 이름은?”
“존 모세 브라우닝이요.”
자동화기의 아버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총기 발명가.
사망 당시 80개 총기에 128개의 특허를 보유.
윈체스터, 레밍턴, 콜트, 세비지, 그리고 벨기에 FN(Fabrique Nationale) 등에서 만든 무기들이 존 브라우닝의 손을 거쳐 갔다.
‘존 브라우닝을 영입할 생각이었는데.’
그 시기가 지금은 아니었다.
우연히 은행강도가 이곳으로 안내한 것이었다.
미래 총기 역사를 써 내려갈 존 브라우닝을 눈앞에 두고 막스는 짜릿한 흥분을 느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과연 이 소년을 어떻게 콜로라도로 데려가는가였다.
원 역사대로라면, 존 브라우닝 역시 아버지의 영향으로 몰몬교도다. 그 때문에 오그던을 떠나 독립한 건 20대가 훌쩍 지나서였고, 그마저도 선교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존 브라우닝을 콜로라도로 데려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편으론 이른 시기에 발견한 만큼,
‘몰몬교에 덜 물들지 않았을까.’
더욱이 조나단은 몰몬교답게 부인이 셋이고, 존 브라우닝의 형제는 무려 22명이나 된다.
‘그중 하나쯤 데려가는 거야, 뭐.’
어찌 됐든, 존 브라우닝을 낚기 위해, 막스가 친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총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꿈이 뭐야?”
조금은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존 브라우닝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건스미스가 되고 싶어요.”
“롤모델은?”
막스는 몇 년 전 사망한 새뮤얼 콜트나, 헨리 라이플을 만든 벤자민 헨리 등을 생각했다.
이때 존 브라우닝이 슬쩍 아버지를 쳐다본다.
‘역시 아버지를 존경하는···.’
그런데 예상 밖의 대답을 내놨다.
“전 연방 총사령관님 막스 조요.”
“!”
아버지 조나단의 입에서 허망한 웃음이 흘러나온다. 아들이 자신을 쳐다본 건 그저 미안해서였다.
반면 막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건스미스가 되고 싶다며?”
“아저씬 이 총알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아요?”
존 브라우닝이 손가락으로 총알을 짚었다.
막스가 만든 풀메탈재킷 총알이었다.
전쟁 후반에 연방은 납탄 대신 풀메탈재킷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만 여전히 납알탄보다 비싼 총알이라 확산은 더디기만 했다.
그나마 총포사에 있었기 때문에 존 브라우닝은 빠르게 총알을 만져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걸 떠나, 막스를 놀라게한 건 존 브라우닝의 이어진 말들이었다.
“원래 스미스앤 웨슨이 림파이어 탄피를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막스 조 총사령관이 바닥 중앙에 뇌관을 따로 만들어 삽입한 센터파이어 방식을 고안했지 뭐예요. 바로 이 총알을 말이죠!”
존 브라우닝은 센터파이어 방식이야말로 총기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이라며 흥분했다.
“혹시 그것도 알아요? 개틀링 기관총하고 특수부대원이 사용했던 저격 라이플도 전부 막스 조 총사령관님이 고안한 총이래요.”
대체 존 브라우닝은 이걸 어떻게 알았을까.
막스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버지 조나단에게 향했다. 그러자 그는 빙그레 웃으며 아들의 말에 설명을 보탰다.
“스미스앤 웨슨 총기와 개틀링을 막스 조가 설계했다는 소문이 건스미스들 사이에서 퍼졌거든요.”
전쟁을 전후로, 총기 매카니즘은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다. 게으른 건스미스들은 장사를 접어야 할 정도로 총기 시장은 급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막스 조.
스미스들 사이에서 퍼진 소문이었다.
“듣기론 특수부대원들이 지닌 무기도 장난 아니라더군요. 오죽하면, 하나쯤은 죽어서 탈탈 털리길 바라는 미친 건스미스도 있다니까요.”
“.......”
조나단은 웃으며 말하지만, 막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연방 보안관과 특수부대원의 관계는 최대한 밝히지 말아야겠군.’
황금 고블린도 아니고, SFBC 대원이 그런 식으로 표적이 되어선 곤란한 일이었다.
막스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때.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며 콜린이 들어왔다.
손에는 총구가 긴 리볼버가 들려있었는데, 한눈에 알아본 조나단이 소리쳤다.
“헛! 보안관님도 그 총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웨블리 롱스퍼 초기모델은 수제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구하기 쉽지 않았다.
전 세계에 팔려나간 게 고작해야 3천 개 정도 될까. 그 때문에 수리를 맡긴 것도, 덜컥 이걸 가져온 것도 놀랄만한 일이었다.
‘일단 이걸로 환심을 한번 사 볼까.’
모든 건 존 브라우닝을 얻기 위해서다.
“그래서 어떤 파츠가 필요합니까?”
“...... 흰지 프레임 자체를 바꿔야 하는데. 그걸 빼면, 그 총은···.”
“상관없습니다. 이게 뭐 대단한 총이라고.”
수집하는 사람들에게나 가치가 있지, 막스에겐 더 성능 좋은 리볼버가 수두룩하다.
막스가 고철 넘기듯 웨블리 롱스퍼를 건네자, 조나단이 눈을 껌뻑거렸다.
“정보를 알려준 대가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막스의 시선이 존 브라우닝을 향했다.
“아들이 꽤 똘똘해 보이더군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좋게만 본 건 아니고. 잘만하면 미래에 아주 촉망받는 건스미스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참에 콜로····.”
다그닥, 다그닥.
하필 중요한 말을 꺼내는 때.
가게를 향해 빠른 속도로 말들이 접근했다.
대화가 끊어진 막스는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가게 앞에 두 명이 멈춰서더니, 이윽고 말에서 내렸다.
둘 다 목에 붉은 스카프를 매고, 한 남자는 네이선 로어 만큼이나 키가 컸다.
그들을 본 조나단의 낯빛이 그새 어두워졌다.
“저 자들입니다. 총을 맡기러 온 모양이에요.”
“우린 그냥 손님입니다. 모른 척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콜린은 물건을 둘러보는 척하고 막스는 존 브라우닝에게 다가가 옆에 앉았다. 그리곤 말없이 리볼버를 꺼내 보였다.
일종의 미끼 상품이었다.
‘어때, 이런 건 처음 보지?’
예상대로 존 브라우닝의 눈이 반짝거렸다.
실린더 양쪽에 구멍이 뚫린 스미스앤 웨슨 모델 넘버2. 그런데 존 브라우닝이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만져봐도 돼요?”
“물론이지.”
존 브라우닝이 리볼버를 살피던 때.
딸랑 소리와 함께 두 명의 은행강도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장내를 쓰윽 둘러보던 둘의 시선이 콜린과 막스에게 멈췄다. 하지만 등을 돌린 채 꿈쩍도 안 하는 게 잔뜩 겁먹은 듯 보였다.
비웃음을 머금은 키 큰 놈이 이내 주인 조나단에게 다가갔다.
“맡긴 건?”
“그, 그게 지금 방금에서야 부품이 도착해서요. 조금만 여유를 주시면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보고 그때까지 기다려라? 이틀 여유를 준 것만도 감지덕지해야지.”
철컥.
키 큰 남자가 총구를 들이밀자, 조나단이 질겁하며 두 손을 든다. 남자는 스윽 시선을 돌려 콜린과 막스, 그리고 소년을 쳐다봤다.
아이야 그렇다 쳐도 모른 척하는 두 남자를 쳐다보니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죄다 동부에서 기어들어 왔나. 뭔 마을에 남자다운 새끼들이 없어.”
“총도 못 쏘는 새끼들이 총포사엔 왜 있는 거야.”
두 놈의 비아냥거림에도 막스와 콜린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키 큰 남자는 시시함을 느꼈는지, 총을 집어넣은 뒤 조나단을 노려봤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건 네 잘못이다. 수리가 끝나는 대로 골든스파이크 골드 살롱으로 직접 가져오도록 해.”
“.......”
“왜 대답이 없어? 우리보고 또 오라는 거야?”
“아, 아닙니다.”
겁먹은 주인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총을 집어넣으며 둘이 몸을 돌렸다. 문을 열기 직전, 키 큰 놈은 고개를 힐끔 돌렸다.
“어디서 지린내가 나는 것 같군.”
고개 한번 돌리지 않은 겁쟁이, 막스와 콜린에게 한 소리였다.
여전히 반응하지 않자, 놈은 경멸의 시선을 남긴 채 가게를 벗어났다.
곧이어 말발굽 소리가 멀어지자, 막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골든 스파이크면 여기서 30분 거리군요.”
“마, 맞습니다.”
“그럼 우리가 대신 배달 갔다 와야겠군요.”
“배, 배달이요?”
보안관이 직접?
모자를 눌러 쓴 막스와 콜린. 그런데 그들이 당장 갈 것처럼 등을 돌리자 조나단이 다급하게 말했다.
“배달할 총은 안 들고 가세요? 수리할 시간을 조금 주시면···.”
“의미 없습니다.”
어차피 다 뒈질텐데.
막스의 대답에 콜린이 낄낄거리며 가게를 벗어났다.
*
석양이 질 즈음.
막스와 콜린이 도착한 곳은 황량한 술집 'Golden Saloon'이었다.
“그럼 들어가 볼까요.”
말을 대충 묶어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에 앉아 있던 바운서는 산탄총을 벽에 기댄 채, 눈동자만 움직여 둘을 주시한다.
그리고 지나칠 땐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듯 바운서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행여 말썽 피우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바운서가 산탄총을 가까이 가져가며 경고했다.
그러자 콜린이 피식거리며 노려봤다.
“선배로서 중요한 팁 하나 알려주면.”
“?”
“바운서는 눈치가 생명이다.”
“.......”
삐걱, 삐걱.
막스가 스윙도어를 밀고 들어가자, 창문으로 들어온 석양의 붉게 물든 빛이 살롱 안의 칙칙한 어둠을 상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