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8화 (288/360)

#288 버번 위스키 두 잔과 총알 하나

바에 들어선 순간.

밖에서부터 시끄럽게 들려오던 소음은 끊어지고. 막스는 빠르게 장내를 훑어갔다.

내부는 여느 개척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선술집과 비슷하다.

바텐더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 바 테이블.

그 밖에 서너 명이 앉을 수 있는 둥근 테이블은 네 개가 전부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술집은 한 무리가 장악한 듯 보였다.

‘세 놈인가.’

음침한 구석에서 막스와 콜린을 노려보는 사내가 셋. 놈들은 매춘부를 끼고 카드 게임을 하던 중이었다.

총포사에서 봤던 두 놈은 어디로 샌 건지, 보이지 않았다.

- 저 새끼들, 은행 강도 놈들이 맞는 것 같아.

인상착의를 확인한 콜린이 속삭였다. 어디까지나 주워들은 정보들이라 백 퍼센트 확신은 있을 수 없다.

놈들이 은행강도라는 걸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어이, 왔으면 술이나 처 마실 것이지. 뭘 쳐다봐?”

시가 연기를 길게 내뿜던 놈이 거만한 표정으로 묻는다. 무장한 막스와 콜린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남은 시간 실컷 즐겨라.’

스카프 속, 막스는 비웃음을 지으며 바 테이블로 다가갔다. 하지만 놈들이 봤을 땐 그저 겁쟁이로 보일 뿐.

“꼬리 내린 개새끼가 따로 없구만.”

콜린이 눈썹을 씰룩거린다. 하지만 막스는 그깟 도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 테이블 의자에 걸터 앉았다. 심지어 놈들에게 등을 보인 채였다.

“겁쟁이들은 신경 쓰지 말고 카드나 돌려.”

다시 포커 게임이 시작하고 매춘부들과 웃고 떠드는 소리가 바를 가득 채웠다.

- 두 놈이 올 때까지 기다릴 작정이야?

- 낌새를 차리고 도망가면 어떻게 해요. 그땐 콜린 혼자 쫓아다녀야 할 텐데?

- 어우, 그건 안 될 말이지. 기다리자.

콜린이 히죽거리며 주머니에서 시가를 꺼냈다. 이를 입에 문 채 딱성냥을 테이블에 쓰윽 그을 때.

끼이익, 끼이익.

스윙도어가 삐걱이며 두 남자가 술집 안으로 들어선다. 그 중 키큰 놈이 들어오자마자 손에 쥔 봉투를 달랑거렸다.

“내가 오그던에서 맛있는 걸 사왔···.”

순간 멈칫하며 바 테이블로 시선이 옮겨졌다. 익숙한 등짝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뭐야, 이 새끼들 아까 총포사에서 봤던 놈들 아냐?”

“음?”

카드 게임은 즉각 중단되었다.

눈치 없는 매춘부의 웃음 소리마저 사그라들고, 술집 안에 있던 눈들이 막스와 콜린의 등짝을 향했다.

‘다 모였으니, 확인해 볼까.’

술집 안의 무리가 은행 강도인지 아닌 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끼이익.

막스가 의자 채 몸을 돌리고,

푹.

보안관 배지를 바 테이블 위에 꼽았다. 손을 떼자 누군가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

보안관 배지를 본 놈들의 눈빛이 크게 일렁이고, 술집 안의 공기가 묵직해졌다.

은행 강도든 아니든. 이 분위기만으로도 놈들이 범죄자라는 건 명백해졌다.

막스를 따라 몸을 튼 콜린은 강도들 보다 매춘부들에게 시선을 보내며 낮게 읊조린다.

“휘말리기 싫으면 나가.”

눈치를 살피던 매춘부들이 몸을 일으켜 뒷걸음질 쳤다. 그들이 자리를 벗어나며 내는 삐걱거림이 긴장감을 더해갔다.

이때 막스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내가 왜 왔는지는 알지?”

“글쎄. 모르겠는데···?”

“읊어줘? 네 놈들은 미주리주 리버티, 클레이 카운티 저축 은행을 털고, 직원들과 지나가던 학생도 죽였거든.”

“매춘부 살해한 것도 추가.”

콜린이 말을 덧붙였다.

얼굴이 잔뜩 굳어진 갱단의 리더 존 자렛. 이를 깨물고는 동료들을 힐끔 쳐다본다. 그리고는 이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보안관 둘이서, 아주 용기가 가상하구만.”

지금 이 판에서 중요한 건 기선제압.

자렛은 심리적으로 위축된 동료들에게 쪽수를 일깨워줬다.

“우리 손에 죽은 연방 군만 백 명이 넘는다. 시시껄렁한 강도 따위가 아니라고. 고작 얼굴이나 가리는 겁쟁이새끼들한테 당할 것 같아?”

“말이 많은 걸 보니까, 똥줄이 탄 모양이네.”

결투에서 중요한 건 자신감. 이를 위해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는 건 매우 중요한 요소다.

“내가 사기한번 떨어트려 줄까?”

두려움, 공포, 불안이 가득할 때 몸은 둔해지고 총구는 흔들린다.

이를 노리듯 막스가 스카프를 내린다. 짙은 미소를 본 순간 자렛과 동료들의 눈동자가 미친듯 요동쳤다.

“네놈···!”

동양인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떠오르는 것들이 상당하다.

이들은 은행 강도 이전에 남부 게릴라였고, 그 이전에는 보더 러피안으로서 제이호커스와 싸웠다.

때문에 한 때 이들의 리더였던 콴트릴, 블러드 빌 앤더슨, 아치 클레멘트의 죽음까지 모조리 막스 조가 관련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미치자, 투지로 끓어오르던 눈빛에 스멀스멀 공포가 맺히기 시작했다.

‘끝났군.’

놈들의 눈빛을 본 막스는 이미 승부가 끝났음을 자신했다.

여기에 양념을 첨가하려, 막스가 놈들을 도발했다.

“뭐해? 알아서 기던지. 아니면 총을 뽑아야지.”

질식할 것 같은 긴장감. 자렛의 얼굴에 맺힌 땀이 흐르고, 생존 본능은 자연적으로 그들의 손을 홀스터로 안내한다.

급한 마음은 철저히 감추고,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느릿느릿.

반대로 생각만큼은 자신을 세상 최고의 속사수라며 최면을 걸었다.

‘난 느리지 않다. 느리지 않다.’

승부는 단 한 번.

여기에 모든 걸 쏟아 부어야 한다.

마침내 손가락 끝에 총이 닿을 때.

멈췄던 시간이 움직이듯, 움직임들이 커졌다.

자렛과 동료들이 홀스터에서 총을 뽑았다.

아니 뽑으려 했다.

탕! 탕!

탕! 탕!

끼이익, 퍽.

술집을 가득 채운 총성.

테이블과 의자가 어지럽게 움직이는 소리.

그리고.

툭.

문 앞에선 두 놈이 빵 봉투를 떨어트리고 다급히 총을 뽑으려 한다.

이때 막스가 총구 방향을 틀어 잇달아 패닝으로 해머를 코킹.

탕! 탕! 탕!

끼이익.

와장창! 창문 유리가 깨지고, 입구에선 두 놈은 총을 뽑지도 못한 채 스윙도어를 밀며 쓰러졌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

총구의 열기를 타고 김이 모락모락 피워 오르고. 막스가 이를 휘이 불어 날려 버렸다.

콜린은 꿈틀거리던 놈들에게 마지막 확인 사살을 하고, 스윙 도어를 밀고 밖을 살펴봤다.

바운서가 너무 조용하길래 뭐하나 했는데, 눈에 총알이 박힌 채 죽어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린 콜린이 다시 들어와 막스에게 눈짓했다.

말하지 않아도 손짓 눈빛만으로 대화가 가능했다.

- 밖에 바운서는 왜 저래?

- 내가 쐈으니까요.

‘와씨, 대체 언제 쏜 거야.’

산탄총을 쥔 채 죽은 걸로 봐선 자신들을 노린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 쳐도 그 짧은 시간에 그걸 보고 쏘기 까지 한 건 경악할 수준이었다.

콜린은 혀를 내두르며 총을 집어 넣었다.

“스벌, 이놈의 바텐더는 위스키를 만들러 갔나. 대체 언제 주는 거야?”

콜린이 바 테이블 너머를 기웃거린다. 그러자 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바텐더가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바, 바로 드리겠습니다!”

버번 위스키로 잔을 꽉꽉 채운 뒤, 떨리는 손으로 두 잔을 내밀었다.

콜린이 동전을 꺼내 계산하려고 할 땐, 막스가 휘이 몸을 돌려 바텐더를 노려봤다.

그리고는 리볼버를 수직으로 들어 올렸다.

기겁한 바텐더가 뒷걸음질 칠 때.

‘한 번쯤 해보고 싶었다.’

철컥.

툭.

리볼버를 기울이자 실린더에서 총알 하나가 떨어졌다.

데구르르 구르는 총알을 잡고는.

탁.

바텐더 앞에 세워 놨다.

“계산은 이걸로.”

버번 위스키 두 잔의 값으로 내민 것은 납알탄이 아닌 금속탄피 총알.

바텐더에겐 생소한 경험이었다.

나름 계산이 필요했다.

버번 위스키 한 잔에 10센트.

금속 탄피 총알은 대략 25~30센트.

따져보니 무조건 이익이다.

바텐더가 막스의 눈치를 살피며 총알을 챙겼다.

막스가 최초인지 알 수는 없으나, 위스키 값을 총알로 지불한 건 흔하지 않은 시기였다. 금속 탄피 가격은 납알탄보다 몇 배는 비싸 확산 속도가 더뎠으니 말이다.

1온스(30ml) 위스키 한 잔이 원샷(One Shot)으로 거듭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위스키를 입에 털어 넣은 뒤.

막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도를 제거했으니 돈을 찾아야지.’

자그마치 이놈들이 털어간 돈이 6만 달러. 그동안 흥청망청 써댔어도, 절반 이상은 남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주리주에서 유타까지 도망쳐온 놈들이 돈을 다른 곳에 은닉했을까?

놈들은 애초에 훔친 돈을 전부 쓸 작정이었다. 그동안 술집만 찾아다닌 행적이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했다.

그런데 몸을 움직이기 전, 막스가 바텐더를 노려봤다.

“저 놈들이 여기에 며칠 머물렀지?”

“보, 보름 정도요.”

“그럼 나한테 할 이야기가 있을 텐데.”

“······ 그게 무슨.”

은행 강도들은 유타를 목적지로 정해두고 움직였다. 그리고 놈들은 이 술집에서 보름이나 머물렀다. 사장과의 관계를 의심해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막스는 바텐더의 반응을 지켜보며 불쑥 질문을 던졌다.

“너와 바운서. 누가 여기 사장이야?”

“······”

마치 대답을 구하듯 바텐더의 눈동자가 천천히 입구 쪽으로 향했다.

바텐더는 아직 바운서가 죽은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역시 바운서였나.’

골든 스파이크 마을 인구는 불과 백 명 내외. 그 마저도 몰몬교가 대부분이라 술집을 찾는 손님은 외지인들 뿐이다.

로렌스 보안관이었을 때 겪어봐서 안다. 개척 마을에서 이 정도 사이즈는 사장 혼자 바텐더, 안주는 물론 서빙까지 해야 겨우 먹고 산다는 걸.

“잔머리 굴리는 소리 다 들려.”

막스가 리볼버를 바텐더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당황한 그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버, 버드 아니, 바운서가 주인입니다!”

“너랑 여자들은?”

“저는 그냥 고용된 거고, 여자들은 전부 버드가 동부에서 데려온 겁니다! 진짜 악랄한 놈이었거든요.”

콜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갔다. 여자들에게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바텐더는 불안한 듯 자꾸 문 쪽을 힐끔거렸다. 이때 막스가 툭 말을 내뱉었다.

“왜 자꾸 거길 봐. 바운서는 이미 죽었는데.”

“······ 예?”

“창문 깨진 거 보면 몰라? 산탄총으로 겨누길래 내가 쐈지.”

정확히는 문 앞에 서 있던 두 놈을 쏘려 할 때였다.

바텐더가 깨진 유리창을 멍하니 쳐다봤다.

당황, 분노, 그 외에도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 동요를 감지한 막스가 엄지로 해머를 젖혔다.

당황한 바텐더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 이때,

“그 새끼가 사장이래. 여자들도 그 새끼가 납치했고.”

여자들에게 다녀 온 콜린이 확인을 더했다.

“요 머더···!”

탕!

머리가 뒤로 꺾이며 피를 뿜어낸다. 바텐더의 몸이 뒤에 있던 유리 장식장에 쳐박히고 주변의 술병들을 어지럽히며 무너져 내렸다.

즉사한 바텐더의 눈에 쏟아진 위스키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난장판이 된 장내를 둘러보며 콜린이 휘파람을 불었다.

“이거 다 죽였으니, 돈은 찾기도 힘들겠구만.”

자그마치 이놈들이 털어간 돈이 6만 달러다. 그동안 흥청망청 써댔어도, 절반 이상은 남았을 터였다.

하지만 막스의 생각은 달랐다.

“아마 돈은 여기에 놔뒀을 겁니다.”

미주리주에서 유타까지 도망쳐온 놈들이다.

안전 가옥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놈들은 애초에 훔친 돈을 전부 쓸 작정이었다. 그동안 술집만 찾아다닌 행적이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했다.

그리고 실제로, 막스와 콜린은 은행강도들이 머문 방에서 4만 3천 달러에 달하는 돈을 발견했다. 그동안 놈들이 알차게 돈을 뿌려도 기껏 1만 7천 달러밖에 쓰지 못한 것이다.

바로 되돌아왔을 땐, 여자들이 시체들을 밖으로 끌어내고 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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