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우리 밥그릇을 뺏어가면 큰일이지
아이즈번 신선조, 조슈번 사무라이들의 혈투!
를 예상했지만 습격은 싱겁게 끝이 났다.
탕! 탕!
조슈번 사무라이들은 와일드 빌 히콕과 버팔로 빌, 그 외 SFBC 대원 8명의 총탄에 속수무책 쓰러졌다.
이를 본 아이즈번 사무라이들의 눈빛엔 놀라움과 허무함이 새겨지는데. 백날 칼을 휘둘러봐야 총알을 이길 수 없다는 진리를 새삼 깨달은 것이다.
반면 SFBC 대원들은 시체에는 관심도 없는 듯 총에 탄약을 장전하고 기모노 안 속에 집어넣었다.
“시체는 알아서 하고, 이제 료마인가 그놈을 잡으러 가볼까?”
히콕의 말에 사무라이들이 앞장서고, 일부는 남아 시체를 처리했다.
조슈, 사쓰마번의 회동은 사쓰마번의 가로(심복) 코마츠 타테와키의 저택에서 이루어졌고.
동맹을 성사시킨 주역, 사카모토 료마와 타카스기 신사쿠는 여전히 저택에 머물렀다.
“사쓰마번은 건드릴 이유가 없어. 그러니 두 놈이 나오면 그때 제거하자고.”
히콕은 저택과 거리를 둔 채 매복했다.
‘이제 끝이 오는구나.’
게이샤들과 술 퍼마시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히콕과 대원들은 하루빨리 지루한 일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사카모토 료마와 타카스기 신사쿠가 저택에서 나온 건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료마가 상기된 얼굴로 신사쿠에게 말했다.
“오늘부로 일본의 역사는 바뀔 거야. 그만큼 우리가 큰일을 한 거라고.”
“분명 막부가 무너지고 존황양이를 이룰 수 있다면 역사는 바뀌겠지.”
“조슈와 사쓰마라면 가능해. 이미 막부는 그 힘이 다했으니까.”
“아무튼, 고생했다, 료마. 오늘의 기쁨은 모든 일이 끝난 뒤에 나누자고. 아, 그리고 이거.”
타카스기 신사쿠가 품속에서 리볼버를 꺼냈다.
“내가 청나라 상하이에 두 정을 샀거든. 미국에서 만든 최신형 권총이더라고.”
“...... 이렇게 귀한 걸 줘도 되는 거야?”
“큰일을 벌였으니, 몸조심해야지. 암살에 당하면 말짱 헛거라고.”
료마는 비장한 얼굴로 리볼버를 받았다.
신사쿠의 말마따나, 당분간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위험했다.
둘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료마는 도사 번, 신사쿠는 북쪽 조슈번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 둘은 자신들이 꿈을 채 펼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이야, 이걸 여기서 보네.”
히콕은 이마에 구멍이 난 채 죽은 료마가 손에 쥐고 있던 리볼버를 빼앗았다.
모델은 스미스앤 웨슨 모델 넘버 2.
막스가 설계에 동참한 총이었다.
“아씨, 이거 보니까 또 집에 가고 싶네.”
“내 말이. 요즘엔 쓰벌, 혹한기 훈련까지 꿈에 나온다니까.”
“그건 악몽인데?”
“그니까. 근데 요샌 그것도 아련하더라고.”
대원들의 말에 히콕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미국으로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조선에서 왕비의 간택이 이루어질 즈음.
일본은 대혼란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삿초동맹의 밀약이 막부 쇼군에게 들어가고, 이를 빌미로 일왕 덴노를 압박했다.
- 조슈번이 사쓰마번과 손을 잡고 막부를 무너트리려 했습니다. 다행히 사쓰마 번주가 이 일을 알렸으니 그들의 공이 크다 할 수 있지요. 허나, 조슈번은 이대로 놔둘 수 없습니다. 덴노께선 속히 조슈번 정벌의 윤허를 내려주십시오.
상황이 이러니 사쓰마번은 신속히 발을 빼고, 조슈번은 그들의 배신에 분노했다.
또한 사카모토 료마의 암살로 출신지인 도사번도 막부에 적의를 드러냈다.
요코하마 항구.
미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던 히콕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사카모토 료마의 뒤를 봐주고, 함께 밀무역 사업을 하던 영국의 무기상인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였다.
삿초동맹 파기, 사카모토 료마의 죽음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글로버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히콕을 쏘아봤다.
“이번 일에 미국이 개입한 걸 모를 줄 아나?”
“뭔 소리야. 우리가 개입했다고? 증거 있어?”
“미국 특수부대원들이 요코하마에 수개월째 머물렀던 이유. 그게 곧 증거다.”
어디 그뿐인가. 글로버는 이들이 막부측과 뻔질나게 만난 것도 알고 있었다.
글로버는 조슈번에 무기를 팔고, 막부가 무너진 뒤엔 사업을 확장해 막대한 이익을 얻을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걸 함께 할 파트너가 사카모토 료마였고.
‘그런데 이 근본도 없는 거지 같은 미국 새끼들이 전부 망쳐놨단 말이지.’
글로버는 분노를 억누르며 말을 내뱉었다.
“료마를 건드린 건 명백한 실수야.”
“그러니까 증거가 있냐고. 있으면 정식으로 미국 정부에 항의하던가.”
“...... 영국을 우습게 보는군.”
현재 미국과 영국의 관계는 최악이다.
독립전쟁과 이후 벌어진 미영전쟁. 비록 헨트 조약으로 미영전쟁은 정전 협정을 맺었지만, 이 사건으로 미국은 유럽과의 관계가 끊기고 경제, 문화적으로 고립되는 신세가 되었다.
미국이 끊임없이 서부로 영토를 확장하고 공업을 발전시키려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물론 히콕은 양국 관계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이죽거리며 글로버의 화를 북돋웠다.
“네가 곧 영국이냐? 왕족이라도 돼?”
“너희들, 곧 후회하게 될 거야.”
“어이구 무서워라. 아무튼, 헛짚었어. 우린 아무 상관도 없다고.”
히콕을 노려본 글로버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개자식. 어디 네놈들 뜻대로 되나 봐라.’
요코하마를 떠난 글로버는 곧바로 시모노세키항을 찾아갔다.
막부의 조슈번 정벌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
그런데 막부가 모든 무역을 막아둔 탓에 조슈번은 무기를 조달할 수도 없었다.
삿초동맹으로 이를 타개하려 했지만, 오히려 뒤통수를 맞았으니 조슈번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었다.
이때 글로버는 조슈번의 젊고 영어가 가능한 사무라이를 찾았는데.
바로 이토 히로부미였다.
이 둘의 관계는 꽤 오래전부터 이어졌다.
이토 히로부미는 영국으로 유학 간 조슈 5인방 중 하나였고, 이 유학을 추진하고 돈을 대준 게 토마스 블레이크가 몸담은 자딘매시선이라는 회사였다.
그리고 이 자딘매시선은 영국의 동인도 회사로 아편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현재는 홍콩에 본사를 두어 돈이 되는 물건이라면 모조리 취급하는 대형 무역회사였다.
“사쓰마번은 자기들이 막부의 손에 놀아나는 것도 모르고 있네. 물론 안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없겠지만.”
“그래서 글로버 당신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내가 조슈번에 무기를 공급하지.”
방법은 도사번을 통해 우회하는 것.
“사카모토 료마의 죽음으로, 지금 도사번의 사무라이들은 막부에 대한 적의로 가득해. 차라리 때에 돗초동맹을 하는 건 어떤가?”
사쓰마번 대신 도사번이라.
이토 역시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사쓰마, 조슈번에 밀려 존재감은 떨어지지만 도사번역시 규모가 작은 곳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그들과 무언가를 하기엔 시일도 촉박하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그런데 영국인이 나서서 다리를 놓는다?
사업가인 그야 이익에 따른 행동이겠지만 벼랑 끝에 몰린 조슈번이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당장 급한 건 무사들을 무장시킬 무기였다.
“번주께서 제안을 수락하실 겁니다. 무기만 제대로 공급받는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죠.”
“그건 보장할 수 있네.”
글로버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이토 히로부미 역시 새로운 계획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막부의 공격을 버틴다면, 다른 번들과의 동맹도 이끌 수 있을 터.’
존황양이의 기치 아래, 조슈, 도사, 사가 번까지 규합한 뒤 세력을 늘리면 막부와 대적할 만했다.
보름 뒤.
시모노세키항에 도사번의 상선이 도착했다.
하지만 그 안에 실린 건 자딘매시선의 무기였고, 이를 운반하는 책임자 역시 영국인이었다.
글로버는 책임자인 윌리엄 캐즈윅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자딘매시선의 창립자 윌리엄 자딘의 조카였다.
“무기는 넉넉히 가져왔네. 그중에 특별한 게 하나 있는데, 아마 자네도 깜짝 놀랄 걸세.”
“요새 하도 놀랄 일이 많아서, 어지간하면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글쎄. 내가 개틀링을 가져왔는데도?”
“뭐?!!”
글로버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대체 그걸 어떻게 구한 거야? 미국에선 절대 안 판다고 했다면서.”
“다 방법이 있지. 무기를 공급하는 회사에서 남군에서 카피한 제품을 만들던 건스미스를 영입했더라고.”
“오호, 그런 방법이!”
남북전쟁 다시 남군은 리차드 개틀링과 함께 작업한 건스미스들을 납치했다. 그리고 그들을 회유해 기관총을 만들게 했으니, 이후 수십 개가 전장에 투입되기도 했다.
물론 북군이 만든 오리지널에는 못 미친다.
그럼에도 개틀링 기관총은 그 자체로 위력적이었다.
그리고 영국의 한 무기제조업체는 남부의 패배가 짙어질 즈음 건스미스에게 접근.
재빨리 자국으로 빼돌리는 데 성공했다.
“개틀링 기관총이 일본에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막부에서 이걸 보면 기절하겠군.”
글로버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
조슈번을 정벌하러 왔다가, 개틀링 기관총에 쓸려나갈 막부의 사무라이들.
벌써부터 그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나저나 윌리엄. 한 가지 부탁이 있네.”
“우리 사이에 부탁은 무슨. 말해보게.”
“개인적인 건 아니고. 어쩌면 앞으로 우리 회사와도 관련이 있을 수도 있네.”
글로버는 미국 특수부대가 일본에서 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이를 들은 윌리엄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미국이 일본을 먹을 생각인 건가?”
“조선을 강제 개항시킨 것도, 그 미국 총사령관이었어. 보통 그런 일은 해군 제독이 할 일이잖아? 아무리 같은 조선인이라도 총사령관이 나설 건 아니지.”
“흠. 이거 아무래도 미국이 조선과 일본을 먹을 생각인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만 여기서 좀 헷갈리는 게, 그 조선인 총사령관이 미국에서 이런저런 사업을 한다더라고.”
“그냥 군인이 아니었어?”
윌리엄이 놀라자, 글로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좀 자세히 알고 싶어서 미국 총영사한테 물어봤더니, 자기는 모른다고 발뺌하더라고.”
“그래서 그 조선인 총사령관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 이거지?”
“최대한 많은 걸 원해. 조선과 일본에서 일을 벌인 것만 봐도 보통 놈이 아니니까.”
“무슨 사업인지 모르지만, 우리 밥그릇을 뺏어가면 큰일이지.”
턱을 쓰다듬던 윌리엄이 이내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미국 롯지의 도움을 받아야겠군.”
“그게 확실할 거야.”
회사 동료를 떠나, 이들은 프리메이슨이었다. 둘 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같은 롯지에 몸을 담고 있었다.
이날 시모노세키항구에 내린 무기는 비밀리에 조슈번으로 옮겨졌다.
*
이름도 모를 미국 네바다의 동쪽 황야.
막스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황량한 벌판에 기함을 토해냈다.
“내가 이 길을 또 가면 사람도 아니다!”
210km에 달하는 소금 사막을 횡단하고.
어찌어찌 유타를 벗어나긴 했지만, 네바다라고 다를 게 없었다.
‘그나마 안내인이 혜자여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황야에서 꼼짝없이 죽을 뻔했다.
- 말 세 필을 끌고, 그중 하나엔 수레를 달고 가야 해. 아니면 다 죽어.
술집에서 네 명을 시체로 만든 덕에 말은 여유가 있었다. 두 마리엔 수레를 연결해 물과 식량을 싣고. 말들을 번갈아 가며 이용한 덕에 겨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틀 뒤.
지칠대로 지친 막스의 눈에 이정표가 보였다.
이미 당한 경험이 있어 큰 기대는 안 했다.
[웰스 빌리지까지 5마일(8km)]
“오오, 이 정도 거리라면!”
막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솔직한 심정으론 피치와 결혼했을 때보다 더 기쁜 마음이 들었다.
막스는 가즈아를 외치며 말을 채근했다.
네바다주 웰스 빌리지.
터벅터벅 말 세필을 이끌고 도착한 마을은 생각보다 커 보였다.
먼 거리에서도 건물들이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도착하면 배부터 채워야겠다.’
근사한 여관에서 목욕도 하고, 세탁소가 있으면 옷도 빨고.
들뜬 마음으로 마을을 향할 때.
다른 방향에서 마을로 다가가는 일행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장하고 있었다.
‘건드리면 다 죽인다.’
황야를 겨우 벗어난 막스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 이럴수록 대화는 총으로 해야 하는 법.
시비 걸면 총부터 꺼낼 생각이었다.
잠시 후.
마차와 그 일행들과 근접했다.
서로 경계하는 눈빛이 오고 가고. 막스가 쓱 훑어보니 무법자들은 아니었다.
마차에는 센트럴 오버랜드 캘리포니아가 박힌 깃발이 꽂혀있었다.
‘역마차 서비스군.’
이들은 우편물이나 소포를 배달한다.
워낙 길이 위험해, 역마차엔 호송하는 자들이 붙게 마련. 이들을 샷건 메신저라고 부른데, 한때 와일드 빌 히콕의 직업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샷건 메신저 중 한 명이 막스를 노골적으로 훑더니. 시선이 말 안장 옆에 꽂힌 천으로 감싼 라이플에 멈췄다.
뭔가 골똘히 생각한 남자가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라이플은 왜 가린 거지?”
“내 마음이다.”
“흠. 그야 그렇긴 한데.”
막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시비 걸 거면 확실하게 해.”
“......”
남자가 턱을 쓰다듬더니 물었다.
“당신, 연방 특수부대원 출신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