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 Welcome to Wells Village
“마을이 코 앞이다! 흑인 새끼들은 닥치는 대로 잡아들여!”
무리를 이끄는 자는 존 맥도웰. 쓰리 핑거드 잭이라는 별칭을 가진 존 데일리의 오른팔이다.
그는 지금 상황이 짜증 나는 듯 코를 잔뜩 찡그린 채 전방을 주시했다.
‘고작 한 놈을 잡으려고 이게 무슨 개지랄이냐.’
물론 한 놈이지만 추격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정체가 연방 보안관이라는 것과 추격하던 부하 다섯을 죽인 것만으로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놈이었다.
[Welcome to Wells Village]
아치형의 간판. 그 밑을 빠르게 통과한 말들이 마을 중심으로 진입했다.
그런데.
“뭐야, 왜 이렇게 썰렁해?”
저녁도 아닌데 상점 문은 굳게 닫혀있고, 거리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질 않는다.
대신 창문 틈으로 훔쳐보는 눈빛들을 볼 수 있었다.
“뭐야, 썅. 죄다 쥐 새끼처럼 집구석에 처박혀 있는데?”
선두에 선 맥도웰이 건물들을 유심히 훑어봤다.
‘우리가 올 줄 알았다 이거지.’
말 머리를 부산히 움직이며 맥도웰이 소리쳤다.
“흑인 한 놈이 이 마을로 숨어들었다! 놈을 잡으면 이 마을에 해를 끼칠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 5분. 그 안에 놈을 내 앞에 데려와라!”
시시껄렁한 갱단은 씨알도 안 먹힐 협박.
하지만 데일리 갱단은 나름 네바다에선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마을 사람들은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도했다.
그중엔 심약한 민병대원도 있었다.
호기롭게 자원했으나 사람에게 총 쏘는 건 처음.
심장은 터질 듯 쿵쾅거리고, 손은 덜덜거리고. 총에 땀이 묻어날 정도로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한편, 옥상에서 웅크리고 있던 막스가 코트를 젖혀 수류탄을 빼 들었다. 잭 슬레이드는 신기한 듯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폭탄이다. 뒤지고 싶지 않으면, 얼굴 치워.”
“...... 폭탄이 그렇게 생겼다고?”
막스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핀을 뽑으려는 때.
“앞으로 4분! 어서 마을에 숨어든 놈을 잡아 오란 말이다!”
탕!
맥도웰이 소리치며 하늘로 총을 쐈다.
그런데 이 소리에 당황한 나머지.
탕!
민병대원이 방아쇠를 당겼다.
“저쪽 집이다!”
말들이 요란하게 움직이고, 갱단들이 총성이 난 곳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이래서 둘이 싸우는 게 낫다니까.’
공격 신호는 수류탄의 폭발.
그런데 갑작스러운 총성에 민병대가 반응하고.
밀집된 갱단의 전열이 흐트러졌다.
‘뭐, 상관없나.’
슬쩍 옥상 아래를 내려다본 막스는 핀을 뽑아, 그나마 모여있는 곳에 수류탄을 투척했다.
휘이이잉.
콰아아아앙!
굉음과 동시에 폭발에 휩쓸린 놈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말과 흙이 뒤섞인 채 땅에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치명적인 부상은 고작해야 일곱 정도.
나머지를 제거하기 위해 준비된 자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웰스, 이 개자식들!!”
“옥상이다!”
“뻑! 건물 안에도 있어! 이 새끼들 사방을 포위했다고!”
아수라장 속, 위치를 파악한 갱단들이 옥상과 건물을 향해 총을 쏴댔다. 이때 막스와 데니스 헤인즈가 연막탄을 각각 투척.
푸스스스.
이내 연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표적을 향해 퍼붓는 총탄.
부정확한 난사지만 총성이 울릴 때마다 연기에 휩싸인 갱단은 공포와 두려움에 제대로 된 대응이 불가능했다.
옥상에서 총을 쏘던 막스는 벽에 기댄 채 리볼버에 총알을 채워 넣었다.
그러다 힐끔 잭 슬레이드를 쳐다봤다.
탕! 탕!
꽤 집중하며 방아쇠를 당기는데, 과연 표적을 제대로 보고 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실소를 흘린 막스는 품에서 쪽지들을 꺼내 잭 슬레이드에게 내밀었다.
“나 지금 바쁜데.”
“쏘면 맞추긴 하고?”
“..... 한, 열놈 죽였을걸?”
잭 슬레이드가 또르르 눈알을 굴리자, 막스가 코웃음을 쳤다.
“개소리 말고. 얼마 전, 쥴스 베니와 결탁한 역마차 강도는 내가 제거했다.”
“뭐?”
“레드 마운틴을 따라가다 운 좋으면 시체를 볼 수 있을 거야. 물론 봐도 누가 누군지 분간하긴 힘들겠지만.”
리볼버를 거둔 잭 슬레이드는 떨떠름한 얼굴로 쪽지들을 건네받았다.
이때 요란하게 울리던 말발굽 소리가 마을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연기를 뚫고 갱단들의 탈출이 시작된 것이다.
“저 새끼들 도망치잖아!”
탕!
잭 슬레이드가 총을 쏘지만, 이미 놈들은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다.
막스와 데니스는 벽에 기대있는 저격 라이플을 손에 쥐었다.
그런 다음 옥상 중앙에 단을 쌓듯 세워둔 나무 상자를 밟고 올라섰다.
데니스는 옆에서 라이플을 쥔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옥상에 부는 바람에 코트 자락이 휘날리고, 스코프에 눈을 댄 막스가 마을에서 멀어지는 놈들을 겨냥.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타앙!
철컥.
드르르륵.
팅.
볼트를 뒤로 후퇴시키자 튕겨 나오는 탄피.
정확히 다섯 발을 쏜 뒤, 데니스가 들고 있던 라이플을 다시 넘겨 받았다.
타앙!
타앙!
막스가 표적을 제대로 맞췄는지 잭 슬레이드는 알 수 없다. 그런데 표정을 보면 얼추 알 것도 같았다.
살짝 눈을 감고 입가를 씰룩거리면, 빗맞았다는 뜻일 터. 마지막 열 발째, 막스의 표정이 그랬다.
'저게 남북 전쟁에서 공포로 불린 저격수의 모습인가.'
총사령관이 직접 전장에서 저런 저격을 했다면 군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남북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잭 슬레이드라, 머릿속으론 꽤 멋진 그림을 상상하고 있었다.
이때, 상자를 내려온 막스가 잭 슬레이드의 어깨를 토닥였다.
몽롱한 눈빛은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여긴 네가 보안관을 도와 정리해. 나중에 쥴스버그로 찾아가마. 그땐 제대로 총잡이의 모습을 보여주도록.”
“...... 열 명은 죽였다니까.”
“개소리 말고. 가자, 데니스.”
"옛썰!"
막스와 데니스가 건물을 내려가고, 잭 슬레이드는 옥상에서 마을 전경을 바라봤다.
연기가 서서히 걷히고 말과 사람이 뒤죽박죽된 채 꿈틀거리는 모습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잠시 후, 말 두 필이 빠른 속도로 마을을 벗어났다.
가는 도중 울린 총성들은 나중에야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저격 총에 맞았지만 치명상을 비켜 간 놈들을 확인 사살한 것이었다.
마을에서 죽은 데일리 갱단 놈들이 21명.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저격으로 죽은 놈들이 9명이었다.
30명 중 탈출한 놈은 0명이었다.
데일리 갱단의 보복을 두려워했던 마을 사람들은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연방 보안관은 어디 있습니까?”
“오로라 마을로 향했습니다.”
“바로요?”
웰스 마을 보안관들이 눈을 껌벅였다.
30명을 죽이고, 곧바로 두목인 존 데일리를 죽이러 갔다는 소린데.
“연방 보안관들이 무슨 전투 기계들이네요.”
'내 말이. SFBC.... 미친놈들이네, 진짜.'
전율을 느낀 잭 슬레이드는 더더욱 막스와 함께 일하기를 갈망했다.
*
“오로라 마을에서 오로라가 보이냐?”
“...... 농담이죠?”
‘그 오로라가 아니라고!?’
막스는 당연히 농담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로라 마을은 새벽의 여신이라는 말로, 그 이전에는 에스메랄드라는 이름이었다. 에메랄드와 금, 각종 광물이 넘쳐나는 광산 마을이라 지어진 이름이었다.
막스와 데니스는 작은 모닥불을 피우고, 마른 육포로 끼니를 때웠다.
네바다의 이색적인 풍경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광을 만들어냈다.
그래서인지, 감성이 풍부해진 데니스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보스, 세인트루이스에서 저한테 한 말 기억합니까?”
“돈 안 갚으면 죽인다고 그랬던가?”
“..... 반대죠. ‘나중에 갚아. 그리고 파이트 머니 같은 거 없이도 부자가 될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약속은 내가 또 칼이잖아.”
“그러니까요. 그땐 설마설마했거든요. 그런데 진짜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SFBC가 넘어선 건 피부색만이 아니다.
민간 군사 기업을 넘어 미국 특수부대, 연방 보안관까지. 카멜레온처럼 스며들어 맹활약을 하고 있었다.
“꿈도 이렇게는 못 꿀 겁니다.”
“이런 장소에서 그런 소리하면 죽어, 인마. 재수 없는 소리 마.”
“갑자기 그날 일이 생각 나서요. 솔직히 이유도 묻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아무튼, 이제야 말하지만 어머니 병원비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군. 도움이 되었으면 다행이다.”
“그런데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데니스는 막스와 함께 조선에 있었다.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는 말이고, 이 사실을 안 것도 불과 몇 개월 되지 않았다는 걸 뜻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때, 데니스가 말을 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편지가 있는데. 온통 제 자랑뿐이었습니다. 사실 집에서 전 별로 쓸모없는 놈이었거든요."
그런데 SFBC가 된 이후로 데니스는 어머니의 가장 큰 자랑이 되었다.
"보스가 미국 총사령관님이라고 했을 때, 어머니의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좋아하셨다는 말이지?"
"당연하죠.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만드신 게 있습니다."
데니스가 벌떡 일어나,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 안에서 꺼낸 건 얇게 종이로 포장된 스카프였다.
“어머니가 직접 수를 놓은 거라고 하더군요.”
검은색 바탕에 흰색으로 그려진 리볼버와 보위 나이프.
하단부엔 마찬가지로 흰색 글씨가 새겨져 있었는데.
Spercial Force Beyond the Color.
“어머니의 디자인 감각이 상당하시네.”
전체적으로 갱단 느낌이 물씬 풍기는, 무법자들이 착용할 법한 디자인이었다.
데니스 헤인즈도 멋쩍은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냥 소장품으로 생각해··· 주십···."
막스는 목에 묶인 스카프를 풀러, 데니스의 어머니가 만든 것으로 대체했다.
“멋지냐?”
“...... 솔직히 도적같습니다.”
“그 말도 틀리진 않지. 내가 세상에서 훔치고 싶은 것들이 꽤 많거든.”
“그럼··· 잘 어울립니다.”
데니스의 말끝이 떨려왔다. 눈에는 눈물이 조금 맺혀 있었다.
“이걸 똑같이 만들어서 대원들에게 나눠줘야겠다. 디자인 비용은 어머니 이름으로 지불하지.”
훗날 막스는 데니스의 어머니 이름으로 세인트루이스 보육 재단에 2만 달러를 기부한다.
스카프는 개나 소나 전부 둘러대기 전까진 SFBC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디자인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심벌로 사용되었다.
네바다주의 오로라 마을은 캘리포니아에서 불과 3마일(4.8km) 떨어진 곳이다.
막스가 굳이 여기까지 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길은 험하고 거칠지만, 결국 캘리포니아의 경계까지 왔으니 말이다.
광산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마을은 나날이 커져, 오로라 마을에는 1만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건물은 수백 개가 다닥다닥 붙어 어지간한 도시와 비견될 만했다.
하지만 광산으로 일어난 도시는 대게 자원 고갈과 함께 쇠퇴하기 마련.
특히 오로라 마을처럼 교통이 험난하고 산에 자리 잡은 곳일수록 고스트 타운이 될 확률이 높았다.
“가서 그런 말 하면 안 돼요. 마을 사람들한테 몰매 맞습니다.”
“오로라에 땅 사고 싶다며. 너한테 마을을 보는 안목을 알려주는 거야, 인마. ”
“...... 아무튼, 가시죠.”
마을 진입 직전, 막스와 데니스는 말을 외곽에 묶어두었다. 그리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밤을 이용에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