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 미래를 보장 받고 싶다면, 망설이지 마세요.
존 데일리는 분리수거가 불가능한 쓰레기다.
악랄하고 비열한 무법자는 오로라 마을에 오기 전, 캘리포니아에서도 몇 건의 살인을 저지른 놈이었다.
이후 오로라의 광산 관리자로 있던 데일리는 패거리들을 모아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을 제거하고 도박, 매춘, 아편 등을 취급하는 술집도 운영. 이 자금으로 부하들을 거느리고 사람들을 매수, 공갈, 협박해 작금의 보안관 자리에 이르렀으니.
한마디로 부정부패의 끝을 달리는 무법자였다.
“저 안에 그놈이 있을 겁니다, 보스.”
데니스가 가리키는 곳은 마을 중심에 위치한 보안관 사무실.
늦은 밤이지만 2층까지 등잔불은 훤히 켜져 있고,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 새끼들 밤마다 저러고 놉니다. 아주 술집이 따로 없다니까요.”
위장 크림을 지운 데니스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막스의 눈동자가 어둡지만 등불에 드러난 건물 외벽을 훑었다.
마을 인구가 제법 되어선지 사무실은 2층.
특이하게도 개척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벽돌로 지어졌다.
“예전에 누가 앙심을 품고 사무실에 불을 질렀다더군요. 그것 때문에 잔뜩 쫄아서, 벽돌로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과거 로렌스 보안관 사무실도 불이 난 적이 있었다.
막스도 잔뜩 쫄아··· 아니, 이왕 지을 거 튼튼하게 벽돌로 지은 바 있었다.
“그래서 마을에 남아있는 갱단은 몇 명이야?”
“20명 가까이 됩니다.”
웰스 마을에서 죽은 놈이 30.
그런데 아직 20명이나 남았단다.
갱단치곤 상당한 규모였다.
잠시 후.
사무실을 정탐하고 온 데니스가 상황을 전했다.
“갱단 새끼들이 전부 사무실에 모여서 진을 쳤네요.”
“문은 몇 개지?”
“저기 보이는 입구랑, 뒤에 작은 쪽문이 하나 있습니다.”
“창문은?”
데니스는 눈알을 굴리며 생각했다.
“1층은 정면에 둘, 측면에 하나, 뒤쪽은 얼굴만 내밀 정도로 작은 창문이 하나 있습니다. 2층은 뒤쪽에도 커다란 창문 두 개가 있구요.”
구조를 머릿속에 그린 막스.
빠르게 머리를 굴린 끝에 입을 열었다.
“일단 놈들이 뒷문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 뭐, 결국 튀어나오긴 하겠지만 그건 알아서 처리할 수 있지?”
“물론입니다. 그럼 문을 막으면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오케이.”
어둠 속에 스며든 데니스가 다시금 사무실로 접근했다. 그러는 동안 막스는 가방에서 네 개의 리볼버를 장착하고 보조 무기를 점검했다.
보안관 사무실 안.
존 데일리가 이끄는 데일리 갱단은 매일 밤 이 안에 모여 술을 마시고 카드 게임을 즐겼다.
“대체 맥도웰은 언제 오는 거야? 그깟 흑인 새끼 하나 쫓는데 무슨 일주일이 걸리냐고.”
“어디 보통 흑인이냐. 연방 보안관하고 연관이 있을 게 분명하다고.”
갱단들은 흑인과 연방 보안관을 분리시켜 생각했다. 데니스가 흑인을 시켜 마을을 들쑤신 걸로 착각하고 있었다.
“하여간 그 연방 보안관 새끼는 KKK단이나 쫓지 뭐하러 여기까지 왔대.”
“내 말이. 네바다 광산 마을에 KKK단이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과연 그것 때문에 연방 보안관이 여길 찾아온 걸까.’
부츠를 신은 채 보안관 책상에 발을 얹은 남자.
존 데일리는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휩싸였다.
저지른 일이 많아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닌 데다, 그를 조급하게 만든 건 최근 두드러진 연방 보안관들의 활약이었다.
‘갑자기 서부 곳곳에서 미친 듯이 날뛰고 있단 말야.’
동부나 남부가 아닌 서부에 올 이유가 있을까.
더욱이 오지나 다름없는 네바다 오로라 마을에도 버젓이 나타났다.
더 많은 연방 보안관이 몰려오면 지금까지 쌓은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존 데일리가 데니스를 제거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더 큰물에서 놀고 싶은 욕망. 하지만 구석진 광산 마을을 벗어나기엔 힘이 부족하다.
존 데일리에겐 기댈만한 권력자가 필요했다.
해서 접선을 시도했고 오늘에야 그들이 응답을 보내왔다.
‘그런데 별로 마음에 들진 않아.’
존 데일리는 책상 위에 놓인 편지를 다시금 훑어 내렸다.
[마침 네바다주를 담당할 지부장급 인물이 필요했습니다.
존 데일리, 당신의 명성이라면 WCBS의 일원이 되기에 충분하지요.
미래를 보장받고 싶다면, 망설이지 마세요.
조만간 WCBS에 관한 기사가 미 전역에 나가게 될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당신의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되 줄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미친. 난 네바다를 벗어나고 싶다고.’
이왕 관리자가 될 거라면 돈도 많고, 여자도 많은 동부가 좋지 않겠는가.
물론 냉정히 생각하면 자신의 명성은 고작해야 네바다를 벗어나지 못한다. 전국구로 이름을 날리기엔 한창 부족했다.
‘네바다 지부장이라···.’
톡, 톡.
존 데일리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고민에 빠졌다.
한편, 데니스 헤인즈는 마구간에서 문을 막을만한 것들을 찾았다.
눈에 띄는 건 굵은 나무토막과 삼지창.
그리고 밧줄.
‘이거면 되려나.’
데니스는 은밀히 도구들을 쪽문으로 가져갔다.
그런 다음 굵은 나무를 사선으로 기대어 문을 막고, 삼지창은 땅에 박아 이를 밧줄로 나무와 엮었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지금 상황에선 최선의 작품이었다.
데니스는 보스가 시키는 일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예측하는 건 소소한 재미였다.
데니스는 가능한 전술을 떠올려봤다.
‘수류탄을 터트려서 1, 2층에 있는 놈들을 전부 잡긴 힘들 거고.’
네이선 로어가 있다면 모를까, 보스 성격상 무턱대고 문을 박차고 들어가지도 않을 것이다.
가능성은 플래쉬탄인데.
‘그건 시간이 너무 짧아.’
데니스가 생각한 최선의 방법은 플래쉬탄을 터트리고, 이어 연막탄을 까는 것이었다.
피아 구분없이 시야를 가릴테지만.
당황한 놈들이 밖으로 튀어나오면, 느긋하게 총으로 잡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문은 왜 막았을까.’
데니스 헤인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연 보스의 전술은 어떤 것일까.
그 결과를 보기 위해 데니스는 모자를 벗어 보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이어진 보스의 행동에 데니스는 식겁한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당당하게 걸어온다고?’
어머니가 준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채.
성큼성큼 사무실로 다가오는 보스.
그런데 오른손에는 리볼버가 아닌 다른 것이 들려 있었다.
‘와, 여기서 저걸?’
데니스가 눈을 껌뻑일 때.
“어어? 저 새낀 또 뭐야? 거기서 스탑.”
사무실 앞, 테라스에서 시가를 태우던 놈이 움직임을 멈춘 채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 하는 새끼냐···!”
거리는 대략 10m.
순간 다가오던 놈이 총구를 들어 자신을 겨눈다.
그런데 구멍이 상당히 컸다.
남자의 고개가 살짝 비틀어질 때.
탕!
슈우우우욱.
총구에 불이 뿜어지고. 신기하게도 총알이 아닌 눈부신 불덩이가 자신에게 쏘아졌다.
‘왓더···.’
입을 벌리자 시가가 바닥에 떨어지고.
펑!
가슴에 불덩이가 적중된 놈은 그 힘에 밀려.
유리창을 깨트리고 사무실 안으로 처박혔다.
“뭐, 뭐야!”
화르르르.
조명, 혹은 신호탄으로 사용되는 플레어건.
적중당한 몸은 충전재인 연소 화학물질로 타오르고. 눈을 뜨지 못할 만큼 밝은 빛과 열기가 사무실 안을 순식간에 뒤덮어 버렸다.
이때 또 다른 창문이 깨지고, 꼬리를 단 불덩이가 벽에 처박혔다.
순식간에 벽면에 불이 번져갔다.
플레어건의 특성상 강렬한 빛과 열기는 꽤 오래 지속된다. 이를 버티지 못하는 놈들이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튀어나왔다.
가장 먼저 나온 놈은 불에 트라우마가 있던 존 데일리. 하지만 눈을 감싸며 뛰쳐나온 놈이 마주한 건, 리볼버 총구였다.
“!”
철컥.
탕!
존 데일리의 이마에 총탄이 박히고, 밖으로 튀어나온 속도만큼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동시에 손에 쥐고 있던 편지 한 장이 나풀거리며 허공에 휘날린다.
탕!
탕!
줄지어 문으로 나오는 놈들을 향해 총탄이 퍼붓고. 창문으로 탈출을 시도한 놈들 역시 총탄을 피할 수 없었다.
휘익.
여섯 발을 쏟아낸 리볼버는 집어 던지고, 새로운 리볼버로 교체. 연이어 방아쇠를 당겨 나오는 놈들을 족족 쓰러트렸다.
같은 시각.
쾅! 쾅!
데니스는 자신이 막아둔 쪽문을 미친 듯이 두드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윽고 문을 박살 내고 나온 놈들은 노력이 무색하게 총탄에 쓰러져갔다.
‘플레어건을 이렇게도 활용하는구나.’
내심 감탄하면서도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쉴새 없이 해머를 코킹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 보스! 다수를 상대할 때 재장전 시간을 단축하는 노하우가 있습니까?
- 그딴 노하우는 없다. 그냥 리볼버 여러 정을 쓰면 되지, 언제 총알 갈고 있어.
탕!
탕!
데니스 역시 막스처럼 리볼버를 번갈아 사용했다. 이순간만큼은 둘에게 재장전은 무의미했다.
총성은 오로라 마을의 밤을 깨우고 잠에서 막 깬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하나둘 집 밖으로 나온 마을 사람들.
입을 다물지 못한 그들의 눈동자엔 활활 타오르는 보안관 사무실이 맺혀있었다.
매케한 연기가 마을을 휘감고.
사람들은 하늘로 치솟는 불길 앞에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타오르는 사무실엔 무관심한 듯, 손에 쥔 편지를 읽고 있었다.
‘WCBS?’
존 데일리에게 응답한 WCBS.
미지의 집단이 막스의 신경을 자극했다.
*
뉴욕 맨해튼.
로잔나 피어스 건물 3층.
책상에 앉아있는 갈색 머리의 여인이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신문 기사들을 오려, 두꺼운 노트 빈 공간에 붙여두고, 이 같은 작업을 반복하던 때.
한 남자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덜컥.
빼꼼히 열린 문틈으로 고개를 내민 남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홀리데이였다.
“잠시 시간 돼? 오늘도 기사 모으는 모양이네.”
“유일한 취미이자 기쁨이에요.”
피치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트에 붙인 것들은 연방 보안관에 관한 기사.
특히 막스로 추정되는 기사만 모아 스크랩하고 있었다.
“어쩐 일이에요?”
“오늘 오전에 듀란트 부사장를 만났거든. 막스가 편지에 썼던 내용을 확인하려고, 유타에 직원을 보낸 이유를 추궁했어. 그런데 오히려 나한테 화를 내더라고.”
“감추는 게 있는 걸까요?”
피치의 말에 홀리데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그래서 내가 그동안 자금 집행한 내역을 살펴보겠다고 했더니, 안색이 돌변하더라고.”
대륙횡단 열차는 대규모 토목 공사다.
그만큼 나라의 재정이 휘청일 정도로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었고. 정부와 철도 감독 회사, 시공사, 하청 업체, 금융회사 등이 얽힌 복잡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사업이 진행될수록 자금 계획이 당초 예상을 빗나갔다. 시공사에 지급해야 할 돈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그 부분을 검토하려고 했더니, 발작했다 이거네요.”
“피치가 봐도 수상하지? 사실 예전부터 이걸 캐려고 했거든.”
자금 흐름을 보기 위해 자료를 검토했으나 당시엔 뚜렷한 부정을 발견할 순 없었다.
시공사에서 요구한 금액이 증가한 이유로 다음을 내세웠다.
콜레라와 같은 질병, 터널 폭파 중 생긴 사고.
무법자들과 인디언들의 공격 등등.
납득은 가지만, 하나같이 실체를 파헤치기 힘든 손실들이었다.
“내가 볼 땐, 여기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
“동의해요. 애초에 그자들은 이 사업으로 일확천금을 꿈꿨던 자들이잖아요.”
그럼에도 UPR(유니온 퍼시픽 레일로드)의 임원이 될 수 있던 건, 그들 하나하나가 대륙횡단 열차를 기획하고 설계했던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분까지 가지고 있었고.
피치가 홀리데이에게 물었다.
“좀더 확실한 조사가 필요한거죠?”
“나 혼자 힘으론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현 상황에서 SFBC가 투입되긴 힘들고.
‘여기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생각을 끝낸 피치가 말을 이었다.
“비밀경호국 터커 국장, 그리고 핑커톤에게 이 일을 부탁해야겠네요.”
“그거 가능한 거야?”
“아마도요. 이게 좀 작은 사업인가요. 막스에겐 제가 편지로 말해둘게요.”
“하여간 피치가 뉴욕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니까.”
홀리데이는 속이 뻥 뚫린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같은 시각.
뉴욕 맨하탄의 한 회의실.
“지금까지처럼, 홀리데이는 앞으로도 우리에게 걸리적거리기만 할 겁니다.”
“애초에 대륙횡단 열차와는 상관도 없는 인물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한 것부터 잘못된 거죠.”
“이게 전부 존 브라운과 망할 동양인 총사령관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거친 말들이 나와도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이때 말없이 생각에 잠겼던 듀란트가 입을 뗐다.
“지금 막스 조는 유타에 있습니다. 행적으로 봐선 캘리포니아를 가는 것 같은데.”
운을 뗀 뒤, 듀란트가 충격적인 말을 던졌다.
“이참에 홀리데이를 제거하는 건 어떻습니까.”
“..... 쉽지 않을 텐데요. SFBC를 어떻게 감당하시려고요?”
“마침 좋은 방법이 떠올랐거든요.”
듀란트가 신문을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굵직한 기사 제목에는.
[미국 두 번째 민간군사기업 탄생.
WCBS, 과연 SFBC와 어떤 관계를 이어갈 것인가.]
남부 플로리다에 기반을 둔 두 번째 PMC 집단.
남부를 넘어선 하얀색 원
White Circle Beyond South
원 역사에도 없는 WCBS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