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 설마, 너도 짭이냐?
무릇 보안관이라면 마을을 보호해야 할 사명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존 데일리는 본인이 무법자가 되어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그것도 연방 보안관들의 손에 의해.
사건을 수습해야 할 당사자인 보안관의 죽음.
그 덕분에 막스는 데니스를 도와 마을의 안정을 위해 사흘을 머물렀다.
잿더미가 된 보안관 사무실을 새로 짓고, 보안관도 새로 선출. 공동체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희망이 되살아난 마을과 보안관들은 목소리에도 자신감이 묻어 났다.
“존 데일리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자들은 이미 마을을 탈출했습니다. 잡히면 죽을 걸 안 거죠.”
“다시는 이곳에 발도 못 붙일 겁니다!”
원 역사에선 존 데일리를 축출하기 위해 600명의 자경단이 무기를 들고, 5천 명의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은다. 그리고 붙잡힌 존 데일리와 일당은 불과 30분 만에 교수형을 당했다.
물론 막스는 존 데일리가 누군지 조차 모른다. 눈에 띄어서 제거한 것뿐이었다.
어느 정도 사건을 수습하고. 나머지는 데니스에게 맡겨두기로 했다.
그렇게 마을을 떠나려는 때. 마을 사람들이 우려를 표시했다.
“산세가 꽤 험할 텐데요.”
“가이드를 구해서 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막스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말 안 했던가요? 제집 뒷산이 로키산맥이라고. 뭐, 이 정도쯤이야.”
“...... 정 그러시다면. 무운을 빌겠습니다.”
데니스와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막스는 호기롭게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그런데 며칠 뒤.
“아오! 내가 여길 또 넘으면 사람도 아니다!”
네바다에서 캘리포니아를 가려면, 중간에 가로막힌 시에라 산맥을 넘어야 한다.
그런데 산세가 험하기로는 로키산맥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서부 개척 당시 험한 산세와 인디언 습격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더니 과연 그 이유가 있었다.
‘사막은 사막대로, 산은 산대로 힘들구먼.’
새삼 느끼지만, 미국은 더럽게 넓었다.
*
캘리포니아주 중부의 맨티카.
시에라 산을 넘고 처음 도착한 마을이다.
막스는 잡화점부터 들러 물과 식량을 구하고, 최근 신문도 손에 넣었다.
그늘진 곳에 앉아 빵을 오물거리며 신문을 펼치자, 주 헤드라인은 최근 의회를 통과하고 대통령의 승인까지 난 법에 관한 기사였다.
[민권법, 마침내 통과하다!]
민권법(Civil Rights Act of 1866)은 미국 내 모든 사람의 시민권을 보호하고 옹호 수단을 제공하기 위한 법이다.
사실상 남북전쟁이 이후 ‘인종, 피부색, 노예 또는 비자발적인 노예들’을 미국 사회에 통합하기 위한 것이 민권법의 핵심 가치였다.
원 역사에선 링컨 암살 후 대통령이 된 앤드류 존슨이 거부권을 행사하지만, 의원들이 이를 무효화 시키며 법안을 제정하는 데 성공한다.
이는 남북전쟁 종전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상원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KKK단은 흑인들의 시민권 부여를 막기 위해 광기 섞인 폭력을 사용.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지지를 얻으며 더 많은 단원의 가입으로 세력을 불려나갈 터.
막스가 KKK단을 초기에 와해시키려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페이지를 넘기자 마침 이와 관련된 기사가 실려 있었다.
[테네시주, KKK단으로 추정되는 강도 사살.]
그 외에 미시시피, 아칸소, 루이지애나 등.
SFBC 연방 보안관들은 KKK단을 제거하며 이미지를 바닥에 끌어내리고 있었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있구만.'
미소를 머금으며 기사를 읽던 막스의 미간이 좁아졌다.
[SFBC의 강력한 경쟁자 탄생, 민간군사기업 WCBS!]
‘민간군사기업?’
무법자 쓰레기에게 네바다 지부장을 제안했던 놈들이?
이름에서조차 인종차별, 백인우월주의가 드러나는 것들이?
그런데 무시하기엔 WCBS에 속한 이름들이 예사롭지 않다.
보스는 제임스 이웰 브라운 스튜어트, 일명 젭 스튜어트.
남북전쟁 이전, 캔자스에서부터 막스와의 악연을 이어간 인물이었다.
‘쨉이 SFBC 짭 보스라니.’
막스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렀다.
젭 스튜어트 말고도 기사에 언급된 인물들은 대부분 남북전쟁에서 이름을 날린 남부 장교들이었다.
‘멕시코로 도망가더니, 벌써 넘어온 건가.’
그런데 이상하다.
로버트 리의 항복 협정에 따라 항복한 군인들은 무기를 반납하고 사면권을 받았다.
그러나 도주한 병사들은 예외다. 그들은 군법재판소에 회부 되어 정식 재판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젭 스튜어트는 처벌은커녕 버젓이 회사까지 차렸다. 그것도 위험천만한 민간군사기업을.
‘뭔가 거래가 있었다는 얘긴데.’
대충 떠올려보면 멕시코의 정치 상황과 맞물렸을 가능성이 크다.
현 멕시코 황제 막시밀리안 1세는 프랑스의 지지를 받고, 미국은 그에게 밀려난 대통령 후아레스를 지지했으니. 미국이 국경을 맞댄 멕시코가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걸 바라는 건 당연했다.
그런 이유로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나자마자 후아레스를 멕시코의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했다.
동시에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를 설득하고, 막시밀리안의 지원을 중단하도록 외교적 압력을 가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골칫거리가 있었으니. 미국은 막시밀리안 황제를 돕는 남부 패잔병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을 것이다.
‘사면 조건을 내걸고 미국으로 불러들였나.’
벼랑 끝에 몰린 자들에게 꽤 매력적인 제안임은 분명하다.
링컨이 존 브라운과 다른 점은 이 같은 중요한 사실을 막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뭐, 그게 정상이긴 하지.’
대통령이 시시콜콜하게 막스에게 정보를 보고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터커를 비밀 경호국 국장으로 박아둔 건데.
‘일이 시원치 않구만.’
링컨 암살시도와 KKK단, 그리고 WCBS의 설립.
이 세 개를 결합해서 생각해보면.
누군가 그려놓은 큰 그림이 하나둘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의심된다.
‘이래저래 골치아픈 일들만 늘어나는군.’
뇌를 더 영민하게 돌리기 위해 막스는 남은 빵을 입에 쑤셔 넣어 전투적으로 씹어댔다.
*
캘리포니아와 정반대에 있는 미국 동남부 플로리다주.
WCBS의 본사 회의실.
“언론에 기사를 뿌렸으니 사람들도 WCBS를 주목할 겁니다.”
“벌써부터 남부 부유층들이 관심을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건 뭐, 시작부터 시장을 삼등분 한거나 다름없죠.”
SFBC, 핑커톤이 북부를 먹고 WCBS는 남부를 공략. 미국의 보안 시장을 삼등분한다는게 회사의 단기 목표였다.
이렇듯 자신하는 건, 남부에서만큼은 지지기반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회의실에 긍정의 기운이 넘쳐나지만, 한 남자만큼은 무표정을 유지했다.
시선은 의미 없는 곳에 위치하고, 회의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남자의 머릿속은 복잡한 셈으로 가득하다.
막스를 향한 열등감으로 점철된 제임스 이웰 브라운 ‘젭’ 스튜어트.
남부연합의 공식적인 최종 계급은 별 세 개인 중장. 이후 멕시코로 도망갔으나 어느새 민간군사기업 WCBS의 보스가 되어 나타났다.
젭 스튜어트가 마침내 입을 뗐다.
“며칠 전, 영국의 무기상이 저를 찾아 왔습니다. 그 자가 하는 말이, 막스 조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순간 회의실의 분위기는 배가 침몰하듯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실상 WCBS의 첫 의뢰인 셈인데, 그게 하필 전 미국 총사령관에 관한 정보라니.
게티즈버그, 빅스버그 전투 등. 온갖 패배를 떠올린 이들의 얼굴엔 똥씹은 표정이 절로 나왔다.
젭 스튜어트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내가 이유를 물었더니, 그자가 놀라운 말을 하더군요. 조선과 일본 내정에 막스가 꽤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겁니다.”
영국의 무기상은 자딘메시선에서 보낸 자다.
그는 일찍이 남부에 무기를 공급했기 때문에 젭 스튜어트와도 알고 있던 사이였다.
“보아하니, 그쪽에서도 막스 조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것 같더군요.”
“그럼 이참에 힘을 합쳐서 제거하면 되겠군요. 그깟 동양인, 영국과 손잡으면 어려울 게 있겠습니까?”
회의장 분위기가 조금은 되살아났다.
하지만 젭 스튜어트는 내심 비웃음을 삼켰다.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차리는구만.’
한때는 자신도 저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백인이라는 우월감에 취해 동양인의 모든 걸 하찮게 여기고 깔본 적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전쟁에서 패배하고 멕시코 국경을 넘으면서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걸. 편협된 시각,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절대 막스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걸.
그런데 이를 깨닫는 순간, 거짓말처럼 막스가 걸어왔던 길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동양인이 하필 캔자스를 선택한 이유.
여기에 맞물려 거지 같은 이름이지만 SFBC라고 지은 것 역시 북부 노예제 폐지론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함이 분명했으니.
‘놈의 행동엔 철저한 계산이 깔려있다.’
그리고 모든 면에서 막스의 계산은 적중했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능력이랄까.
해서 젭 스튜어트가 결심한 것은 모방.
민간군사기업을 따라 만들고. 같은 전략으로 남부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이름도 노골적으로 짓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작은 그렇다 해도 모방을 넘어 SFBC를 앞서가려면 자금, 인재, 무기, 조직 체계 등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지원해줄 큰손들은 젭 스튜어트에게 기회를 주었다.
- KKK단이 휘젓고 WCBS는 정상적인 활동을 하면 되겠군. 자금은 우리가 지원해주겠네, 젭.
이들이 원하는 건 단 하나.
미국을 움직일 거대한 힘을 얻는 것이었다.
막스를 향한 증오심은 마음속 깊이 갈무리하고 젭은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입을 뗐다.
“막스 조의 행보를 봐선, 앞으로 유럽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이건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되겠지요.”
미국을 넘어 자딘메시선과 같은 유럽 큰손들도 머지않아 WCBS를 후원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SFBC 따윈 자금력으로 압도할 수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하루빨리 젊고 유능한 인재를 영입해야 합니다. 당분간은 거기에 집중하죠.”
회의가 끝나고, 젭 스튜어트는 WCBS 대원들이 있는 훈련소를 찾아갔다.
현재 인원은 50명 내외.
전부 남북전쟁에 참여한 군인 출신들이다.
잽 스튜어트는 이게 못마땅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군인이 아니야.’
막스는 차치하고, SFBC에는 콜린, 히콕, 산초, 조 짐 등 실력자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일반 대원들 역시 무시 못 할 수준이고.
‘그들을 따라잡으려면 완성된 총잡이들을 영입해야 한다.’
“1분대 사격 준비! 표적을 향해 발사!”
탕!
탕!
WCBS 대원들이 사용하는 리볼버는 스미스앤웨슨 모델 No2.
총탄은 모두 풀메탄재킷을 사용한다.
‘앞서가진 못해도 비슷하겐 가야지.’
대원들의 사격을 지켜보던 때.
“보스, 뉴욕에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뉴욕?”
응접실을 도착하자 옛 친구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동기로 남북전쟁에선 신념이 달라 진영이 엇갈린 친구였다.
“그동안 잘 지냈나, 스튜어트.”
“보다시피.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인가? UPR에서 일한다고 들었는데.”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 왔네.”
밀실로 장소를 옮긴 뒤, 친구는 예상치 못한 의뢰를 맡겼다.
UPR 회장 홀리데이 암살.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젭에게 상대는 진지하게 되물었다.
“가능한가?”
“대륙횡단 열차 사업에 내분이라도 생긴 모양인데, 누구의 뜻이지?”
“그건 중요하지 않네.”
“흠. 시작부터 어마어마한 걸 의뢰하는군.”
“대신 보상은 확실하지. 성공하면 북부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얻는 셈이니까.”
철도 보안 경비와 호송 업무를 WCBS에 맡긴다는 말인데. 이것 역시 홀리데이가 죽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마침내 도착한 막스는 천천히 말을 몰아 중심부로 향했다.
'여기도 엄청나구만.'
뉴욕과 언뜻 비슷한 분위기였으나 확연히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중국인이 더럽게 많다는 거.
막스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이던 때.
일단의 무리가 말먼지를 일으키며 막스에게 달려왔다.
‘뭐야, 저것들은.’
슬쩍 도로 옆으로 벗어난 막스는 언제든 총을 뽑을 준비를 하며 무리를 주시했다.
그런데 근처에 있던 중국인들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무리들을 보며 환호했다.
“막스 조!”
“오오! 막스!”
막스가 멍한 표정을 지을 때, 선두에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슬쩍 스카프를 내리며 눈웃음을 치는데, 분명 중국인이었다.
그는 마치 연예인처럼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도로를 질주했다.
‘설마, 너도 짭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