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의 Levi Strauss & Co.
막스는 1층 입구 위에 상호가 새겨져 있는 4층짜리 대형건물로 들어섰다.
총과 칼이 그려진 검은색 스카프를 두른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남자의 등장.
순간 로비에 적막이 흐르고, 데스크 여직원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잔뜩 굳어 있었다.
“리바이 스트라우스를 만나러 왔습니다만.”
“어, 음. 사, 사장님은 지금 외출 중이라서요···.”
“언제 돌아옵니까?”
“이, 일 년···.”
“일년?”
막스는 미간을 찡그리자, 여인의 눈동자가 또르르 굴러갔다.
“...... 하, 한 달이었나?”
막스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내 스카프를 내리며 말했다.
“난 리바이 사장과 미리 약속하고 온 겁니다. 전하세요, 막스 조가 왔다고.”
“그러니까 지금 안···!”
여직원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진다.
“실례지만, 누구라고요?!”
눈동자가 빠르게 막스 얼굴을 스캔할 때.
계단에서 한 무리가 내려왔다.
중심에 있는 남자는 회사 대표인 리바이 스트라우스. 막스를 발견한 그가 반색하며 소리쳤다.
“헛! 보스 아니십니까?”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날 듯이 계단을 내려온 리바이가 덥석 손을 붙잡는다. 둘의 만남은 뉴욕을 끝으로 만 3년 만이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멀긴 꽤 멀더군요. 그나저나 회사 규모가 상당하네요.”
“모두 보스 덕분 아니겠습니까. 미스 셰리, 오후 스케쥴은 전부 비워두세요.”
“네? 아, 알겠습니다···.”
여직원은 막스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대답했다. 리바이는 계단에서 어정쩡하게 있던 회사 임원들에게 막스를 소개했다.
“다들 인사하세요, 이분이 바로 전 미국 총사령관이신 막스 조입니다.”
캘리포니아는 남북전쟁에서 한참 벗어난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전쟁 영웅들에 대한 소문은 때론 과장이 보태지기도 했다.
게다가 막스는 리바이 스트라우스 회사 지분의 절반을 보유한 실질적인 공동 대표이기도 하다.
임원들은 격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캘리포니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리바이 스트라우스의 첫 사업은 유럽에 있는 친척들로부터 의류, 침구, 빗, 지갑, 손수건 등을 수입해 판매하는 도매업이었다.
당시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당시 남들은 광산으로 향할 때 리바이는 광부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팔았다.
실제로 골드러시에서 부자가 된 사람들은 리바이와 같은 공산품을 제공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탁월한 사업 감각으로 돈을 긁어모으고 캘리포니아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리바이는 이들과의 연계를 통해 샌프란시스코의 사업가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캘리포니아에의 사업가들과 조선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사실 이전까지만 해도 다들 중국, 일본에만 관심을 가졌거든요.”
뉴욕은 대서양 무역의 중심지고 캘리포니아는 태평양 무역의 중심이다.
캘리포니아 북쪽으론 캐나다, 남쪽으로는 멕시코와 남미 시장이 있지만, 태평양 너머 아시아 시장 역시 탐나는 지역이기도 했다.
“엔지니어들은 어떻습니까?”
“조선까지 갈 만한 엔지니어를 구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일단 분야별로 모집하긴 했습니다.”
조건은 주지사급 연봉에 달하는 3천 달러.
광물 탐사, 토목 및 건축, 공장 설계 및 감독, 자재와 원료, 유통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었다.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군요.”
“별말씀을요. 덕분에 안목도 더 넓어졌습니다.”
“그런데 알프레드 노벨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공장을 가동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예 거기서 살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저도 요새 통 보기가 힘들 정도예요.”
노벨은 캘리포니아에 다이너마이트 회사를 설립했다.
이름은 M&N Dynamite company.
막스와 노벨의 이니셜을 딴 화학회사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생산하기 위해 기존 공장을 인수하고, 필요한 설비들을 들여놓으며 본격적으로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를 도운 건 리바이와 콜로라도에서 온 자들이었고, 캘리포니아에 이어 뉴욕에도 제2공장을 지을 예정이었다.
‘이제 돈이 제대로 들어오겠군.’
다이너마이트는 만드는 족족 팔려나갈 테고.
고객들은 알아서 찾아올 터.
돈을 쓸어 담는 일만 남았다.
사업들을 점검하던 끝에 리바이가 화제를 돌렸다.
“근처에 스테이크 잘하는 곳이 있습니다. 아직 식사 안 하셨을 텐데, 같이 가시지요.”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던 차에 막스가 왔기 때문에 당장 배부터 채워야 했다. 리바이와 막스는 회사를 빠져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오는 도중에 아주 신기한 걸 봤는데, 저를 사칭하는 자가 있더군요.”
“아, 캘리포니아 총사령관 말씀이시군요.”
“알고 있었습니까?”
리바이가 걸음을 멈추며 웃음을 터트렸다.
“여기엔 총사령관뿐 아니라, 황제도 살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죠.”
“......”
캘리포니아 황제에 관한 건 막스도 알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사업에 실패한 정신이 불안한 자가, 어느 날 다시 나타나 자신을 황제라 선언했으니.
미국 최초의 황제 노턴 1세였다.
동부까지 알려질 만큼 신문에도 간혹 언급되는 인물이라 막스가 모를 수가 없었다.
더욱이 전생에서는 황제의 에피소드를 다룬 TV 프로그램까지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총사령관은 금시초문이었다.
“나타난 지 얼마 안 되었거든요. 정신 나간 중국인이 갑자기 자신을 총사령관이라고 하더니, 노턴 1세의 충신이 되어 버렸지 뭡니까.”
한 마디로 정신병자 둘이 황제와 총사령관 역할 놀이를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냥 돌아이들이었다.
리바이는 껄껄대며 레스토랑 입구의 한쪽을 가리켰다.
“마침 여기도 황제께서 인증하신 식당입니다.”
과연 입구 한쪽에는 ‘황실 인증 식당’이라는 금속 기념패가 걸려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은 과대망상에 빠진 정신병자에게 진심이었다. 리바이도 그렇고.
*
식사를 끝마치고 막스는 리바이와 함께 노벨을 찾아갔다.
방문한 M&N Dynamite Company엔 익숙한 인물들도 볼 수 있었다.
“드디어 오셨군요, 보스!”
노벨을 경호하던 SFBC 대원이 셋.
콜로라도에서 회사 설립을 위해 따라온 직원들도 함께였다.
회의를 끝내고, 공장까지 둘러본 막스는 공장 숙소에 짐을 풀었다.
저녁때가 되자 SFBC 대원들이 그동안 막스에게 온 편지들을 가져왔다.
막스는 그중 피치에게 온 편지를 가장 먼저 뜯었다.
[배가 나날이 나오고 있어.
그래서 그런지 먹고 싶은 것도 많아졌어.
아마 애기가 태어나면 우리 닮아서 엄청나게 잘 먹을 게 분명해.]
막스의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내용을 읽어갔다. 그러던 중.
[UPR 내부에 문제가 생겼어.
듀란트 부사장이 의심스러워서 비밀 경호국 터커 국장과 핑커톤에게 뒷조사를 부탁했어.
내가 볼 땐, 자금 쪽에 손을 댄 것 같은데 정보를 얻는 대로 알려줄 게]
‘횡령 내지는 배임일 수도 있겠군.’
그렇게 가정해보면 자금 흐름상 연방 정부에서 지급한 돈이 하청 업체까지 가는 도중에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막스는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며 피치에게 보낼 답장을 써 내려갔다.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면서 막스는 사업 쪽에 집중했다. 그리고 며칠 뒤엔 몇 가지 정보를 얻기 위해 핑커톤 지부를 찾아갔다.
“수석 탐정 조지 애벗입니다.”
막스는 조선 사절단 위치부터 물었다.
대륙횡단 철도 건설과 동시에 전신주가 함께 세워졌기 때문에, 정보 전달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핑커톤은 막스의 요청대로 사절단의 위치를 수시로 확인하고 있었다.
“일주일 전에 네바다 원네무카였으니까, 지금쯤 캘리포니아 국경을 넘었을 겁니다. 보름 정도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지 않을까 싶군요.”
향후 조선과 미국의 교류는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터. 사절단은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의원들을 두루 만나며 관계를 맺어둘 필요가 있었다.
막스는 WCBS에 관해서도 물었다.
수석 탐정 애벗은 코를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요즘 줄기차게 신문 광고하고 있던데, 정작 회사가 남부 플로리다에 있어서 그런지,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WCBS는 젊고 유능한 총잡이를 구하기 위해 대대적인 구인 광고를 내고 있었다.
여기에 응한 인재들은 성향에 따라 남부는 WCBS, 북부는 핑커톤으로 몰리고 있었다.
막스가 애벗에게 말을 건넸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주시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앨런 국장이 전 지부에 공문을 돌렸습니다. 조만간 수집되는 대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충 이야기를 끝내고 일어서려는 때, 애벗이 물었다.
“참, 샌프란시스코에 총사령관을 사칭하는 미친놈이 있는데, 알고 계십니까?”
“며칠 전에 우연히 봤습니다.”
“뭐 딱히 신경 쓸 건 없지만, 뒤에 있는 놈들은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애벗은 멕시코 전쟁에 참전한 군인으로 일찌감치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했던 자였다. 그 때문에 이곳 사정을 손바닥 보듯 알고 있었다.
애벗이 말한 건 중국 갱단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는데, 잘 되었군요.”
막스가 다시 자리에 앉자, 애벗은 자신의 전문 분야라는 듯 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
“중국인 갱들을 여기선 통이라고 부릅니다. 그게 중국에서 갱단들이 주로 회관에 모여서 그렇게 불린다고 하더군요.”
샌프란시스코엔 6개의 주요 회관이 있다.
중국 본토와 통로를 조직해 노동자를 집단으로 제공하고 중국인들의 정착을 돕는 등.
표면상으론 정상적인 회사 형태였다.
“근데 사실상 통들 뒤에 그 여섯 개의 회관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차이나타운 매음굴 아시죠? 거길 중심으로 세력 싸움도 장난 아니거든요.”
파이브 포인츠가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갱단들이 조직된 것처럼, 통들은 중국인 이민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뭐, 말은 그렇습니다만. 제가 볼 땐 자기네끼리 뒤통수치고 난리도 아닙니다. 그 미친놈도 원래는 정상이었는데 통들에게 하도 린치당해서 맛이 갔거든요.”
희망을 품고 머나먼 미국까지 왔거늘, 결국 그를 미치게 만든 건 같은 중국인이었다.
막스는 아니지만, 이막산에게도 같은 기억이 있었다.
중국인의 꼬임에 넘어가 배를 탄 건 이막산의 멍청함이 원인이지만, 캘리포니아에서 중국인들에게 당한 갈취와 협박, 집단 린치는 막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더 무서운 건, 자신들 때문에 미쳐버린 놈한테까지 갈취한다는 겁니다. 황제랑 같이 있다 보면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돈을 좀 주거든요. 걱정하는 건 혹시나 진짜 총사령관님한테도 그러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말끝에 애벗이 막스의 눈치를 살폈다. 말로는 걱정이라지만 은근한 기대감도 섞여 있었다.
어쩌면 통들이 막스를 건드릴 수도 있을 텐데, 콜로라도나 뉴욕에서처럼 뭔가가 벌어질 것 같은 기대감이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중국인들은 뉴욕, 콜로라도와는 전혀 달랐다. 이미 3만 명 가까운 중국인들이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있어 와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핑커톤 사무실을 나온 막스.
말을 타고 천천히 대로를 지나가던 때.
중국인 몇 명이 한 남자를 골목으로 끌고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터벅, 터벅.
느릿느릿 이동하던 때.
지나가듯 골목 입구에서 망을 보듯 주변을 경계하는 놈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런데, 얼굴이 낯이 익다.
막스는 말을 멈춘 채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맞네, 그 자식.’
중국인은 이막산과 함께 배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넘어온 샤오친. 이막산에게 돈을 빌리고 아직도 갚지 않은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