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7화 (297/360)

#297 차이나타운의 식스 컴파니

현재 캘리포니아 중국인 인구는 3만.

그중 3분의 1이 대륙횡단 철도 공사에 투입되어 일하고 있다.

핑커톤 수석 탐정 애벗의 말에 따르면.

- 캘리포니아 의회에서 동양인, 히스패닉에게 세금을 물리는 바람에, 광부로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주로 공장이나 세탁업에 종사하죠. 일부는 아칸소 농장으로 갔습니다. 갈 사람은 가고 남은 사람은 대개 질이 안 좋은 법이거든요.

특히 차이나 타운이 그렇다.

중국인들이 많이 몰려 사는 만큼 범죄도 잦다고 했다. 그런데 애벗이 우려하는 건 중국인 갱단뿐만이 아니었다.

- 차이나타운에는 아편에 찌든 남군 패잔병들이 득실거립니다. 행여 총사령관님 얼굴이라도 알아보면 골치 아플 겁니다.

애벗이 말하는 요점은 어지간하면 중국인들과 엮이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그럴 거였으면 콜로라도 때부터 오지랖 떨진 않았겠지.’

이미 이막산 때부터 중국인들과 엮여있다.

콜로라도에서도 마찬가지. 캘리포니아에 온 이상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었다.

막스가 샤오친을 쳐다보며 고민하고 있을 때, 샤오친의 얼굴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사람을 꼬나보고 지랄이야? 눈깔을 확!’

하지만 생각에만 그칠 뿐, 샤오친은 꼬리를 말듯 남자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터득한 게 있다면 백인과 엮여 좋을 게 하나 없다는 거. 시비를 걸면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을 노려보던 남자가 갑자기 말머리를 자신에게 틀었다.

다그닥, 다그닥.

얼굴을 가린 스카프와 무장 상태.

샤오친의 가슴은 쿵쾅대고 천천히 다가오는 남자를 향해 잔뜩 경계심을 끌어 올렸다. 불안감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하, 저 새끼, 왜 오는 거냐.’

샤오친은 미간을 찌푸리며 코앞까지 다가온 막스를 올려봤다.

그렇게 말없이 시선이 오고 가길 몇 초.

말에 탄 남자가 손을 들어 올리더니.

느닷없이 자신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빠각.

뇌가 진탕 될 정도의 강한 충격, 이내 밀려오는 극심한 고통.

뒤이어 남자의 목소리가 귓속을 간지럽혔다.

“4달러 갚아, 새끼야.”

“!?”

허리가 꺾이고 머리를 마구 문질러 대던 샤오친이 움찔하며 동작을 멈췄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자, 스카프를 내린 채 낯익은 얼굴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 설마···.’

“이막산!?”

말이 이막산이지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전 미 총사령관 막스 조였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샤오친이 뒷걸음질 쳤다. 동시에 골목에서 일행들이 하나둘 튀어나왔다. 변발에 넓은 모자를 쓴 중국인들은 막스를 보며 하나같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막스가 샤오친에게 마저 말을 내뱉었다.

“14년 전에 빌려 갔으니까, 이자까지 해서 20달러. 합리적이지? 아무튼, 내일까지 페어몬트 호텔로 가져와.”

“······”

샤오친이 대답하지 않자, 이번엔 발로 다리를 후려쳤다.

빠각.

“예전엔 잘도 지껄이고 뺏어가더니, 왜 말이 없어. 설마 아직도 영어 못하냐?”

“샤오 따거! 이 자식은 뭔데요?!”

분노한 일행들이 달려들자. 샤오친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경거망동하지 마!”

겨우 몸을 일으킨 샤오친은 다리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얼굴을 찌푸렸다.

막스는 그것도 그냥 치지 않았다.

“인상 안 펴?”

“...... 돈은··· 내일 가져다주마.”

“호오, 영어 좀 하네. 하긴 돌대가리라도 10년을 넘게 살았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아, 참 응솅은 잘 있지?”

응솅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샤오친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다.

자신의 보스인 응솅은 과거 이막산을 백인 노예 상인에게 팔아먹은 인물이기도 했다.

샤오친은 이를 바득 깨물며 물었다.

“복수 때문에 찾아온 거냐?”

막스가 코웃음을 쳤다.

입술을 꿈틀거린 막스는 뭔가 말하려다, 귀찮은 듯 고개를 한쪽으로 가리켰다.

“꺼지고, 내일 돈이나 가지고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샤오친은 이내 일행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골목 앞에 남아있는 건 막스와 뺨에 손자국이 선명한 남자뿐이었다.

“이름은?”

“······ 알렌 차오요···.”

“미국엔 언제 왔어?”

“석 달 전에 왔습니다.”

“영어 잘하네. 선교사 통해서 들어온 건가?”

“예. 홍콩에서 있었거든요.”

울먹거리면서도 알렌 차오는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맞은 거야?”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막스를 바라보던 알렌 차오의 눈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선생님···.”

“선생님은 무슨.”

샤오친을 개처럼 다룬 모습을 목격한 알렌 차오는 구세주를 만난 듯 무릎까지 꿇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

홍콩에서 선교사에게 영어를 배운 알렌 차오는 미래를 위해 미국행을 결심했다.

골드러시는 시들해졌어도 일거리가 많고 돈 벌 기회가 많다는 소리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렇게 배를 타고 미국으로 오는 도중, 배 안에서 운명적인 여인을 만나고. 수개월에 이르는 여정 동안 둘 사이에선 자연스레 사랑이 싹텄단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에서 둘만의 미래를 계획했는데.

“캘리포니아에 도착하고, 갑자기 종적이 사라졌어요···.”

회관에 물었더니, 백인이랑 눈이 맞아 도망갔다면서 되레 자신에게 화를 냈다는 것이다.

“수이는 절대 그럴 리가 없거든요. 그동안 제가 알아본 바로는, 수이처럼 갑자기 사라진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포기할 수 없던 알렌 차오는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자들을 찾아가 사정을 알렸다.

“그중엔 시어요 회관의 임원도 있었습니다.”

시엽은 캘리포니아의 중국 사회를 장악하는 식스 컴파니 중 하나. 알렌이 그곳까지 찾아가서 여기저기 들쑤시자 오늘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샤오친은 어느 컴파니 소속이지?”

“힙이 컴파니요.”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오늘 샤오친에게 굳이 자신을 드러낸 것은 차이나타운을 지배하는 식스 컴파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떠보기 위함이었다.

막스는 콜로라도에서 이미 힙이 통의 후팡과 조직원들을 제거했다.

그 때문에 자신을 적대시할지, 혹은 손을 내밀어 협상하려 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직접 찾아가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그 매개채로 샤오친을 이용했다.

그리고 여기에 알렌 차오를 추가하기로 했다.

- 며칠 뒤에 찾아가마.

‘그 남자라면 내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알렌 차오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샤오친이 잔뜩 움츠려든것만 봐도 상대의 위치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최소 회관의 임원급이거나, 이곳 캘리포니아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런데 일본 사람인가?’

캘리포니아에 온 지 석 달밖에 안 된 알렌 차오는 막스를 조선인과 연결 지어 생각하지 못했다.

더욱이 남북전쟁이 끝난 지도 2년이 다 되어 가는 탓에. 총사령관에 관한 기사는 율리시스 그랜트뿐이었다.

막스는 대외적인 미팅을 위해 팰리스 호텔에도 숙소를 마련했다.

방에 들어가서 무장을 해제하는 때, 테이블 위에 놓인 신문에 눈길이 갔다.

[미국 최초의 5성 장군 탄생, 법안 통과 유력!]

어제 읽었지만 여러 생각이 드는 기사다.

남북전쟁을 끝낸 막스의 최종 계급은 중장.

이후 바통을 이어받은 율리시스는 몇 개월 만에 대장으로 진급했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 의원들이 입법 추진까지 해서, 율리시스는 5성 장군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제 곧 대원수가 탄생하는 건가.’

언뜻 미 육군이 현대화 시스템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백인 총사령관을 띄워 동양인을 지운다.

일부 상원 의원이 법안을 추진한 건 분명 이런 의도도 깔려있을 터. 그 결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의 상징성을 막스에서 율리시스 그랜트로 빠르게 대체하고 있었다.

물론 막스 역시 이렇게 될 걸 예상은 하고 있었다. 여전히 미국은 백인들이 지배하는 사회였으니까.

씁쓸하지만 샤오친이 자신을 보고 움츠러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백인 사회에 녹아든 막스의 배경을 두려워했다.

그게 평범한 동양인 쿨리들의 사고방식이고, 재판에서 증언조차 할 수 없는 자들이 취해야 할 생존방식이었다.

훗날 혼혈로 태어날 막스의 아이가 그런 대접을 받으면?

미국이 진정한 다인종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선 중국인의 역할이 있다. 무조건 척진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과연 식스 컴파니가 어떤 식으로 나올까.’

같은 날 밤.

샌프란시스코의 커니 스트리트 레스토랑에 중국인들의 회합이 열렸다.

모인 이들은 차이나타운을 지배하는 식스 컴파니.

안건은 갑작스레 등장한 막스 조였다.

회합을 주관하는 삼엽 컴파니의 보스가 장내를 둘러보며 입을 뗐다.

“조선인 이막산이 전 총사령관이라는 건 이미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각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의견 있으면 말해보시지요.”

“오늘 내 부하에게 한 짓을 생각해 보면 답은 이미 나왔습니다. 고작 20달러 때문에 그랬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흥분하며 입을 뗀 자는 힙이 컴파니의 보스였다. 그는 이곳에서 막스에게 가장 큰 피해를 본 자였다.

“더구나 콜로라도에선 이미 후팡과 수하 여럿을 죽인 놈입니다. 절대 좋은 뜻으로 오진 않았겠죠.”

“그래서 그자가 뭘 원하는 것 같습니까?”

“뭐, 빤하지요. 말이 군인이지 뒤로는 이런저런 사업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돈 아니면 사업 이권을 노린 거겠지요.”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 제거해야지요.”

순간 회의장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주관자인 삼엽 보스는 고개를 절레 저으며 힙이 보스에게 물었다.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면 됩니다.”

“뉴욕 갱단이 그러다 작살났다죠?”

닝옌 컴파니 보스가 담담한 얼굴로 비꼬았다.

힙이 보스가 그를 노려보자 이번엔 다른 컴파니에서도 가세했다.

“뉴욕 한복판에서 개틀링 기관총으로 갱단을 쓸어버렸고. 그 전에 막스 조가 죽인 갱단만 수십 명이 넘어요.”

“그땐 전시 상황이라 가능했던 거고, 지금은 개뿔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SFBC는요? 특수부대 전신이 막스 조 부하들이라는 걸 잊었습니까?”

여론이 불리해지자 힙이 보스가 입술을 씰룩거렸다.

“다들 겁이 많아지셨구려.”

“겁이 많다니, 무례한 말이오!”

“지극히 상식적으로 따져 보세요. 그자를 건드려서 우리가 얻을 게 무엇인지를.”

탁!

힙이 보스가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조선인이, 감히 중국인을 개무시하는 데 그냥 넘어가겠다!? 이걸 동포들이 알면 어디 얼굴이나 들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

“자자, 응솅 보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세요.”

삼엽 컴파니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회관이다. 그만큼 기반이 탄탄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만큼 감히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힙이 보스 응솅이 이 이상 날뛰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삼엽 보스가 의견을 정리하듯 장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무시당한 이상 분명 참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런데 상대는 조선인 이막산이 아니라, 한때 미국 총사령관이었던 막스 조입니다. 솔직히 나는 그자의 개인적인 능력을 떠나 배경이 두렵습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나 의회에 막스 조의 입김이 닿는다면? 가뜩이나 온갖 핍박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인들에겐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삼엽 보스는 냉정하게 상황을 직시했다.

“나는 우리 식스 컴파니가 뉴욕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갱단도 아닐 뿐더러, 막스 조가 어떤 도발을 하던, 절대 휘말려선 안 됩니다.”

“...... 치욕스럽군요.”

힙이 보스의 말에 삼엽 보스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백인들에게 당한 건 치욕스럽지 않았습니까? 어제 난 산업 협회 의장에게 세 번이나 머리를 숙여야 했습니다. 그제는 센트럴 철도 회사 임원을 찾아가 마찬가지로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치욕스럽다고 한들 어쩌겠습니까.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인데.”

힙이 보스는 마땅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을 쳐다보는 삼엽 보스의 시선에 차가운 한기마저 느껴졌다.

‘여차하면 나를 제물로 세울 인간이다.’

결국, 막스 조와 은원 관계가 없으니 관망하겠다는 것일 터. 삼엽 보스는 일이 복잡해지면 오히려 자신을 제거하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일단 물러서는 수밖에.’

막스 조의 칼날이 노골적으로 자신을 향할 때. 사생결단은 그때 내려도 늦지 않는다.

힙이 보스가 그렇게 결심하던 때, 삼엽 보스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차라리 이러는 건 어떻습니까?”

다음 날.

샤오친은 약속대로 팰리스 호텔을 찾아왔다. 일방적인 약속이지만, 어찌 됐든 20달러를 막스에게 내밀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전했다.

“식스 컴파니 보스들이 너, 아니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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