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8화 (298/360)

#298 단 한 명의 조선인

차이나타운을 지배하는 식스 컴파니 수장들이 회담을 요청했다.

‘간을 보기 위함일까, 아니면 긍정적인 관계를 위한 것일까.’

분명한 건 막스의 이름이 어느 정도 먹혀들었다는 사실이다.

“모레 저녁 7시. 장소는 이 호텔로.”

“알았어. 그렇게 전할게.”

자리가 부담스러운 듯 샤오친은 곧바로 호텔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막스는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약속이 잡혀 있던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미팅 목적은 곧 도착할 조선 사절단에 관한 관계 협약.

연방 보안관 이전에 막스는 조선 사절단과 관련된 제반 업무를 링컨 대통령에게 위임받았다.

그 때문에 사절단의 모든 스케쥴은 막스의 관리하에 진행되었다.

잠시 후.

응접실을 찾아온 주지사가 덥석 막스의 손을 붙잡았다.

"주지사 프레데릭 로우입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오히려 제가 영광이지요. 막스 조입니다."

"소개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앉으시지요!"

프레데릭 로우는 껄껄 웃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같은 공화당원 출신인 데다 막스에 관해 미리 알고 있던 터라 각별한 마음은 더했다.

회의 주요 안건은 조선 사절단과 협약할 내용과 범위. 중요한 건 조선에 투자할 사람들을 모으는 일인데, 이 부분에서 주지사의 힘이 필요했다.

“제가 한 번 모아보겠습니다. 전쟁 영웅께서 캘리포니아에 오셨으니 반응이 뜨거울 겁니다.”

“그렇게까지 해주신다면야. 내친김에 이틀 뒤 7시, 제가 머무는 호텔 컨벤션에서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막스는 미리 생각이라도 해 둔 듯 구체적인 일자와 장소까지 잡아두었다.

사절단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막스가 화제를 돌렸다.

“주지사께선 차이나타운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거 대답하기가 조심스럽군요.”

“참고로 전 부정적입니다.”

막스가 같은 동양인이라 눈치를 살피던 주지사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지저분하고 범죄가 끊이질 않는 곳이죠.”

“그럼 이대로 놔둬선 안 되겠군요.”

“그래서 저도 고민을 하던 참....?”

주지사의 눈이 또르르 굴러가 막스를 응시했다.

“혹시 캘리포니아를 뉴욕처럼...?”

“그땐 전시상황이었고, 지금은 평시잖아요.”

“대신 그땐 군인이고, 지금은 연방 보안관이지 않습니까?”

어느 상황이든, 명분만큼은 확실하다.

연방 보안관이 차이나타운을 들쑤신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지만 주지사 입장에선 캘리포니아를 뉴욕처럼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는 달래듯 막스에게 말을 건넸다.

“..... 차이나타운의 폐해가 있긴 하지만, 철도 공사도 그렇고 지금 중국인은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국인들에게서 거둬들이는 세금이 캘리포니아 재정 4분의 1에 육박한다.

중국인에게 혹독하리만치 세금을 부과했기 때문인데, 반대로 임금은 백인보다 30% 낮았다.

한 마디로 적게 주고 많이 떼고 있었다.

이 사실을 언급하며 프레데릭 로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의 이미지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성실하고 묵묵하게 일하는 자들이라 거부할 이유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골드러시가 끝나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한없이 나올 것 같던 광물이 바닥을 보이자, 밥그릇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궁핍해진 백인은 더 많은 광물을 캐기 위해 중국인들을 공격하고 노골적으로 경멸하고.

캘리포니아주는 백인들 편에 서서 중국인과 히스패닉에게 월 20달러라는 광부 세금을 부여했다.

“여러모로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은 뉴욕 파이브포인츠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막스가 미소를 지었다.

“제가 물어본 건 중국인이 아니라 차이나타운에 관한 야기였습니다.”

“아··· 그랬죠, 차이나타운.”

그게 그거 아닌가 싶지만 분명 차이는 있었다.

뉴욕을 물었는데, 주지사가 미국인에 대해 말한 셈이었다.

“그래도 주지사께선 중국인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시는군요.”

“되도록 편견 없이 보려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차이나타운이 중국인, 나아가서 동양인의 상징처럼 되고 있다는 거. 인종차별의 문제를 백인에게 탓하기 전에 차이나타운의 썩은 부분은 반드시 도려낼 필요가 있었다.

막스가 주지사에게 말했다.

“사실, 제가 차이나타운에서 가장 염려하는 부분은 바로 아편입니다.”

“아편이요?”

아편에 관한 폐해는 아편전쟁으로 이미 많이 알려진 시기였다. 하지만 의약품으로 사용된 탓에 어느 정도의 위험성을 가졌는지, 막스만큼은 알지 못했다.

“4년 전, 엄청난 양의 아편이 샌프란시스코 항구로 유입되었다고 들었습니다.”

“...... 맞습니다. 의료용으로 들여왔죠.”

그런데 그 양이 무려 52t이다.

과거 아편은 중국인 이민자들이 반입한 정도로 많지 않은 양이었다. 그런데 남북전쟁을 틈타 대량의 아편이 들어온 것이다.

“의료용으로 들어온 아편들이 지금 어디로 갔는지 확인이 됩니까?”

“흠. 글쎄요. 당시 식스 컴파니와 해외 무역회사에서 추진한 일이라.”

“해외 무역회사라면 어디를 말하는 겁니까?”

“자딘매시선이라고 홍콩에 위치한 회삽니다.”

‘자딘매시선?’

자연스레 일본에 있는 영국 무기상 토마스 블레이크가 떠오른다.

그리고 아편전쟁에 깊숙이 관련된 자딘매시선이라는 회사를 곱씹어봤다.

영국은 중국 시장을 잠식하려 통상조약을 맺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중국에서 수입한 차와 도자기가 계층 구분 없이 팔려나가고, 영국 물건들은 중국에서 인기가 없었다. 심각한 무역수지 적자를 본 것이다.

나라의 금과 은이 중국으로 반출되자, 영국은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비장의 카드를 사용.

늘 그렇듯 상도덕 따윈 개무시하고 아편 밀무역을 시작했다.

한번 접하면 헤어나오기 힘든 중독성.

이런 아편의 특성 때문에 수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중국 사회는 아편의 병폐로 몸살을 앓는다.

당시 영국의 동인도 회사로 중국에 아편을 밀매한 회사가 바로 자딘매시선.

본사는 홍콩이다.

순간 막스의 머릿속엔 이 거대한 카르텔이 그려졌다.

태평천국과 반청복명 운동으로 중국 본토에서 탈출해 홍콩으로 간 삼합회. 그들의 자금을 지원받아 샌프란시스코에 세워진 식스 컴파니.

이 카르텔이 이제는 영국에서 수출한 아편을 미국에 역수출하고 있었고. 그 중심이 바로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이었다.

원 역사에서도 미국 차이나타운은 아편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마치 체인사업처럼 차이나타운을 늘려 갔다. 아편뿐 아니라 매춘, 도박까지 곁들여 자신들의 세상을 구축해 나간 것이다.

막스가 차이나타운에 반감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중국 사회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겁니다. 주지사께서 도움을 준다면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이틀 뒤.

힙이 컴파니 보스 응솅은 마차를 타고 회담 장소로 향했다. 같은 마차엔 삼엽, 힙캣 컴파니 보스도 함께 타고 있었다.

“제멋대로 약속장소와 시간까지 정한 걸 보면 우릴 만만히 보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럴수록 휘둘려선 안 되죠.”

삼엽 보스의 말에 응솅이 고개를 절레 저었다.

“총사령관일 땐 몰라도, 지금 이막산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SFBC도 우리와 같은 민간 기업이지 않습니까?”

“말했을 텐데요. 배경은 여전히 막강하다고.”

“과연 캘리포니아에도 통할까요? 따지고 보면 여긴 남부도 북부도 아닙니다.”

이번엔 힙캣 컴파니 보스도 끼어들었다.

그는 일방적인 약속에 끌려가다시피 하는 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이막산은 미국에 단 한 명뿐인 조선인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과연 백인들이 끝까지 따를까요? SFBC는 무슨 배알도 없답니까?”

“언제 SFBC 대원을 만나게 되거든, 제가 시험 한 번 해봐야겠군요. 천 달러 꽂아주면 바로 이막산 뒤통수에 총을 쏠지 누가 알겠습니까.”

힙캣 보스 말에 응솅이 이죽거리며 맞장구쳤다.

삼엽 보스는 담담한 표정만 지을 뿐. 그들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속으론 비웃고 있었다.

‘미국 땅에서 단 한 명뿐인 조선인. 그런 자가 총사령관까지 올라간 걸 보고도 느끼는 게 없나 보군.’

반면 중국인은 어떠한가.

얼마 전 신문에서 나온 통계가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 흩어진 중국인이 대략 4만. 그중 남북전쟁에 참전한 동포는 북군 일곱, 남군 셋.

그리고 이들의 최고 계급은···.

‘상병이다. 멍청이들아.’

중장과 상병의 차이는 개도 알아서, 짖는 게 다르다고 했다. 그런데 무릇 회사 보스라는 놈들이 그걸 모른다.

삼엽 보스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내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화려하고 커다란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돈은 있어도, 중국인은 들어갈 수 없는 호텔.

하지만 조선인은 버젓이 머물 수 있는 호텔이 오늘따라 더욱 거대해 보였다.

팰리스 호텔 로비 앞.

마차 두 대가 멈추고 그 안에서 식스 컴파니 보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을 호위한 경호원들만 수십.

위세도 과시할 겸, 이들을 이끌고 들여가려 할 때, 무장한 백인 셋이 길을 막아섰다.

SFBC 대원들이었다.

“막스 보스의 손님인가?”

“그렇소.”

“약속된 사람만 들어올 수 있다.”

대원이 나머지는 꺼지라며 고개짓했다.

굳은 얼굴을 한 보스들은 하는 수없이 부하들을 밖으로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SFBC 대원들을 따라 간 곳은 로비 구석.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보스의 미팅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다들 여기서 기다릴 수 있도록 해.”

“미팅?”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거든.”

“......”

식스 컴파니 보스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곧 폭발할 듯 주먹을 움켜쥔 이들도 있었다.

“망할, 고작 이따위 대접을 받으러 여기 왔단 말입니까?”

“약속을 이렇게 잡는 건 예의가 아니지요!”

“그냥 돌아갑시다!”

중국어로 고성이 오고 가고, 이는 로비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불만있으면 우리한테 직접 말하면 되지, 대체 왜 중국어로 말하는 거야?”

“낸들 아냐.”

SFBC 대원들은 한가로이 팔짱을 낀 채 설전을 벌이는 보스들을 지켜봤다.

그런데 이때, 1층 컨벤션 홀의 문이 열렸다.

“회의가 끝난 모양이군.”

SFBC 대원의 말과 동시에 식스 컴파니 보스들이 몸을 틀어 문이 열린 곳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오는 인물들을 확인한 순간 이들의 설전도 끝이났다.

다들 입을 닫은 채 심각한 얼굴로 나오는 이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의회 의원들과 샌프란시스코 시장과 부시장.

재무국장, 대법관과 관료들.

심지어 대륙횡단열차의 CPR(센트럴 퍼시픽 레일로드) 핵심 관계자들과, 캘리포니아를 주름잡는 사업가들이 컨벤션 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미친 인맥이로군.’

저들만으로도 법안 하나는 만들고도 남을 터.

더욱이 그들이 막스를 대하는 태도와 표정에서 회의 중심이 누구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식스 컴파니 보스들은 시작부터 강력한 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미팅이 끝났음에도 사업가들은 막스 주위에 몰려 관심을 드러냈다.

“오늘 말씀 감명 깊었습니다.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 주셨네요.”

“참석 안했으면 엄청난 손해를 볼 뻔했습니다.”

“우리 산업협회에서 따로 자리를 마련하고 싶은데 시간이 되실런지요?”

막스는 오늘 미팅에서 중요한 부분을 언급했다.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대륙횡단 열차가 캘리포니아에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 공사가 완공되면 동부와 서부의 물가 차이가 무너질 겁니다. 내수 시장에 의존하는 분들은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될 지도요.

대륙횡단 열차는 누군가에겐 기회지만 누군가에겐 존폐위기가 달린 일이다.

실제로 원 역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대륙횡단 열차가 개통되고 일 년 만에 캘리포니아 경제가 휘청이며 대공황이 들이닥친 것이다.

막스는 이 점을 언급하며 자연스레 사업가들의 시선을 태평양 너머로 유도했다. 그 시장은 다름 아닌 조선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였다.

미래에 대한 식견과 막스가 추진하는 사업들, 그리고 그가 쌓아온 명성은 사업가들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참 인사를 나누던 때 막스는 로비 구석에서 물끄러미 서 있는 중국인들을 발견했다.

시선이 마주친 응솅은 슬쩍 고개를 돌리고, 나머지 보스들은 복잡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막스가 갑자기 보스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또 무슨 망신을 주려고.’

보스들의 표정이 잔뜩 굳어졌다.

삼엽의 등줄기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막스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에 캘리포니아 유력 인사들의 관심까지 집중되었으니.

그가 와서 한 말은.

“미팅이 길어져서 시간이 조금 늦어졌군요. 사죄드립니다.”

“.....”

막스의 정중한 말투에 오히려 보스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SFBC 대원이 앞장서고 보스들은 말없이 뒤를 따라갔다. 지켜보던 유력인사들은 막스와 식스 컴파니의 관계를 나름 추측하며 소곤거리기까지 했다. 이는 보스들의 귀에도 들을 수 있었다.

- 앞으로 식스 컴파니와도 사업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구만.

- 같은 동양인이라, 뭐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지.

‘오늘, 막스 조를 반드시 우리 쪽으로 만들어야겠군.’

삼엽 컴파니의 보스 위아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우려했던 일 보다, 상황은 긍정적이었다. 그런데.

덜컥.

문이 닫히고 자리에 앉은 순간, 위아태의 미소가 사라졌다.

자신들을 쳐다보는 막스의 표정엔 가소로움, 조소가 가득했다. 말투도 마찬가지.

“그래서 나를 보자고 한 용건은?”

“......”

막스는 손쉽게 식스 컴파니 보스들에게 급의 차이를 깨닫게 해주었다.

전통적으로 꽌시(关系)를 중요시하는 중국인들에게 막스의 미친 인맥은 당근과 채찍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