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0화 (300/360)

#300 황제 노턴 1세

“미국 시민의 위증적인 요청과 욕망에 따라, 나, 조슈아 노튼, 이전의 알고아 베이, 굿 호프의 케이프, 그리고 미국 황제 노턴 1세로 즉위한 지 6년 하고도 10개월이 지난 지금. 내게 부여된 권위의 덕택으로 미국의 폭력적인 전쟁은 종결되고 평화를 되찾았노라.”

노턴 1세는 샌프란시스코 뮤지컬 홀에서 자신의 치적을 늘어놓았다.

본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어찌 됐든 황제 치하에 벌어진 일이니까.

병풍처럼 뒤에 서 있던 막스는 과거 존 브라운이 보낸 편지를 떠올렸다. 당시 막스가 서부 사령관으로 있을 때였다.

- 황제께서 나와 남부의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을 소환했네. 당장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의회를 해산시키고 직위를 해제시키겠다는군. 자네가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우리 모두 실업자가 될 수도 있네.

존 브라운뿐 아니라 현 대통령 링컨 역시 노턴 1세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한번은 막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 황제께서 세계 평화를 위해 국제연맹 구성을 지시했네. 유럽에서 관심을 보일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솔깃한 제안이었네.

힘의 논리가 당연시되는 시대.

노턴 1세는 열강들이 약소국을 지배하고 약탈하는 일들을 막기 위해 평화를 전제로 한 국제적 기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리고 오늘은.

“종교란 결국 믿는 사람의 행동이 중요한 법이니라. 이 땅에 여러 형태의 종교가 있지만, 그로 인한 갈등이 번지는 건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이는 예수님의 희생을 망각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여 짐은 모든 종교와 종파간의 갈등을 금지할 것을 천명하노라.”

정치, 사회, 종교까지. 실로 황제의 폭넓은 지식과 식견은 무릎을 칠 정도였다.

사람들의 환호 속에 연설은 끝이 나고.

막스는 마침내 홀 뒤편에서 노턴 1세를 독대할 수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모자에 넣어 준 동전을 열심히 세고 있었다.

“오늘 연설도 감명깊었습니다, 황제 폐하.”

“연설은 그저 말에 그칠 뿐. 중요한 건 이 말을 실천하려는 의지니라.”

“과연 그렇군요. 그런데 대체 그런 생각들은 어찌 생각하셨습니까.”

“그건 간단하다. 무릇 황제라면 백성의 근심이 무엇인지 헤아려야 하는 법. 교통이 불편하면 길을 내주고, 몸이 불편하면 병원을 늘려주면 되느니라. 허나 왕궁에만 처박혀 있어서 도저히 알 수 없으니, 직접 찾아보는 수밖에.”

하수구와 교통을 점검하고, 공원과 도서관에서 사람들을 살피는 게 노턴 1세의 일과였다.

“백성들에게서 거둔 세금은 곧 백성들을 위해 쓰여야 하느니라.”

“옳은 말씀입니다.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놈이 많은 거죠.”

“자네···.”

허허거리며 노턴 1세가 웃음을 터트린다. 그는 막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짐이 총사령관 하나는 잘 두었군. 부패한 관리들이야말로 도둑놈들이지.”

“..... 그나저나, 제가 가짜 총사령관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노턴 1세가 막스를 위 아래로 훑어봤다.

“일단 자네 키와 덩치가 더 커. 또한 말에서 내릴 때 품속에서 들려온 소리는 분명 무기였네. 진짜 총사령관에겐 없었거든.”

“...... 예리하시군요.”

“수하를 못 알아보는 건 황제로서 실격이지. 그건 그렇고.”

노턴 1세가 막스와 모자에 있는 동전을 번갈아가며 보더니, 그 절반을 꺼내 내민다.

“백성들의 세금일세. 이걸 받은 이상 진짜든 가짜든 자네에게 책임감이 주어졌네.”

“어떤 책임감입니까?”

“총사령관으로서 해야 할 일이겠지.”

막스에게 쥐어진 돈은 50센트가 채 되지 않았다.

이전 총사령관에게도 이런 식으로 돈을 주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돈을 어찌 사용하실 생각입니까?”

“밥 먹어야지.”

“!”

“짐의 건강이 곧 나라의 안정과 평화니라.”

“그럼 황제께서 오래 사실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겠군요.”

청결한 옷과 주거지. 영양 가득한 음식과 전담 주치의까지 두어야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건 또 아니라며 노턴 1세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니라. 반대로 돈이 많으면 황제의 자격을 잃게 되는 셈이지.”

“?”

“이건 내 과거와 연관이 있느니라. 일단 배가 고프니 물이라도.”

“하긴 연설을 그렇게 하셨는데···.”

노턴1세는 가죽으로 된 물주머니를 꺼내 몇 모금 마시더니 막스에게도 내밀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 놓았다.

사업이 쫄딱 망하던 날. 노턴 1세는 캘리포니아를 벗어나 이곳저곳 떠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땐 세상을 원망하고 어떻게 죽을까만 고민했지. 그러던 어느 겨울밤.”

노턴 1세는 빈 오두막집을 발견하곤 그 안에서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잠을 청하는데, 구름에 가려진 달빛이 창문 틈으로 들어오더군. 그리고 놀랍게도 벽에 나폴레옹 황제의 초상화를 비추는 게 아닌가.”

한때 미국 영토 절반이 프랑스 루이지애나였다.

아마도 오두막집은 프랑스인이 살았던 곳으로 추측되었다.

“아무튼, 그때 짐은 초상화를 넋 놓고 바라봤지. 말을 탄 나폴레옹 황제께서도 분명 짐을 보고 계셨고. 그런데 이때, 초상화의 그분께서 내게 말을 걸어왔네.”

“뭐, 뭐라고 말입니까?”

노턴1세는 물을 마시는 막스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I’m your father.”

“풉!”

막스가 노턴1세의 얼굴에 물을 뿜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총사령관!”

“어윽,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황제의 용안에 감히 제가 실수를.”

“흠흠. 수하의 흠을 감싸는 것또한 지도자의 덕목. 죄를 뉘우치고 반복하지 않으면 되는 걸세.”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언제 빨았는지 모를 지저분하고 꼬깃한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냈다.

“아무튼, 그 날밤 꿈에서도 선왕이 모습을 보였네. 그리고 내 진정한 정체를 일러주었지.”

더욱 놀라운 건, 아침에 눈을 뜨니 방 한 구석에 정갈하게 군복이 놓여있었다는 거다.

“그게 바로 짐이 입고 있는 이 옷이지.”

“엄청난 사연이 있는 옷이군요.”

“만약 짐이 사업에 성공해서 돈이 많았다면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기적이었지.”

“흠. 모든 걸 잃고서야, 비로소 정체를 깨닫게 되신 거군요.”

“바로 그거지.”

막스의 말이 마음에 드는 지 노턴 1세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돈이 많을수록 돈에 집착하고, 명예가 높을수록 명예에 집착하지. 한때 짐도 그러했으나, 지금은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느니라.”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고민이 있는데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고해성사는 신부에게. 나랏일은 짐에게.”

“조금 애매합니다만.”

“오늘만 허락하노라.”

황제의 윤허를 받은 막스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사실 속하는 돈도 많이 벌고 있고, 명예도 이룰 만큼 이루었습니다. 지금까지 그걸 위해 달려왔는데, 앞으로 제 삶의 가치는 어디에 두어야 하는 겁니....”

노턴 1세가 빤히 막스를 쳐다본다.

일렁이는 눈빛은 분명.

“설마 부러워하는 겁니까?”

“..... 어디보자. 꿈을 이루었을 때, 허탈감을 극복하는 방법이라.”

노턴 1세는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 턱수염을 매만졌다. 그리고는.

“꿈이 꿈인 이유는 꿈이기 때문에 꿈이지.”

“......”

“고로 꿈은 제한이 없다는 말과도 같으니.”

“오....”

“남들은 상상도 못 한 꿈을 꾼다면, 죽는 날까지 허탈함은 없을것이니라.”

‘이야.’

막스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탄성을 내뱉었다.

전, 현생을 통틀어 노턴 1세는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이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노턴 1세야 말로 황제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조만간 황제 페하를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대화를 끝낸 막스는 홀로 뮤지컬 홀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말을 타고 미친 듯이 차이나타운을 향해 질주했다.

*

“워워!”

길을 가로막은 중국인 남자가 셋.

막스가 고삐를 당겨 말을 멈춰세웠다.

“총사령관님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랑 볼 일이 있으시죠?”

“무엄하도다!”

막스의 외침에 중국인들은 어이없는 실소를 흘렸다.

“일단 말에서 내리세요 총사령관님.”

“자자, 우리 도움 없으면 황제 폐하께서 총사령관님을 경질할지도 모릅니다.”

막스가 말에서 내리자 놈들은 주변부터 살폈다.

그리고는 막스를 포위하듯 팔을 붙잡아 슬그머니 골목으로 끌고 갔다.

한 놈이 귓가에 속삭이길.

“무험하도다? 이 새끼가 진짜 돌았나. 넌 오늘 뒤질 줄 알아.”

골목 깊숙이 들어오자마자.

속삭이던 놈이 막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뒤이어 발로 배를 걷어찼다.

퍽! 빠직!

골목에 있던 상자를 부수며 쓰러지고. 놈은 막스를 향해 침을 뱉었다.

“아무리 미쳤어도, 맞으면 아프다는 건 기억하지? 이 개새끼야.”

“그만해, 총사령관님한테 무슨 무례냐. 그나저나 오늘 번 거 주셔야죠.”

“요즘 돈이 부족해서 군인들이 쫄쫄이 굶고 있습니다요.”

막스가 천천히 노턴 1세에게 받은 50센트를 건네줬다. 이를 받자 마자 아까 때린 놈이 또다시 막스의 머리를 후려쳤다.

“가뜩이나 그 조선인 새끼 때문에 짜증 났는데, 마침 잘됐다. 너 오늘 나랑 좀 놀자.”

멱살을 잡고 일으킨 순간.

막스의 스카프가 벗겨졌다.

멱살을 잡은 손에 급속도로 힘이 빠져나가고.

눈을 부릅뜬 놈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리고 그 입으로 리볼버 총구가 쑤욱 들어왔다.

“정신병자도 알아본 걸 너넨 모르는구만.”

탕!

푹!

총알이 남자의 뒤통수를 날리고 바로 뒤에 있던 놈의 얼굴에까지 박힌다.

탕!

확인사살을 할 즈음.

다른 한 놈이 도망가려 몸을 튼다.

막스는 그 뒤통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놈이 쓰러지자 막스도 함께 바닥에 몸을 뉘였다.

그리곤 뒤통수 절반이 날아간 놈이 쏜아낸 피를 뭍혀 자신의 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핑커톤 수석 탐정이 알려준 가짜 총사령관의 과거를 떠올렸다.

- 형제가 같이 캘리포니아로 넘어왔는데, 동생이 중국 갱단에게 살해당했답니다.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제 생각엔 도망치다 붙잡혀서 그런 것 같더라고요.

이민자들은 배를 탈 때부터 뱃삯을 빚으로 떠안는다. 도착하면 현지에서 벌어 갚아야 하는데, 동생이 병에 걸려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다.

때문에 날짜에 제때 일정 금액을 갚지 못하자, 캘리포니아를 탈출하려고 했다.

그리고 형제가 가려했던 장소는 콜로라도였다.

막스가 얼굴에도 피를 뭍힐 즈음.

총소리를 듣고 골목 안으로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 선두는 SFBC 대원. 타이밍을 기다리던 그들은 막스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연방 보안관님!”

“연방 보안관이 차이나 갱단에게 습격당했다!”

잇달아 몰려온 구경꾼들.

그들을 뚫고 피를 흘린 채 대원들에게 업혀 가는 막스. 식스 컴파니 휘하의 갱단들은 이 장면을 망연자실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

쾅!

“미련한 새끼들!”

힙이 컴파니 보스 응솅이 탁자를 내리쳤다.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이건 놈이 꾸민 음모예요, 따거! 놈이 가짜 총사령관 행세를 해서 유인한겁니다!.”

“그래서 넘어간 게 잘한 짓이야?!”

짝.

응솅이 샤오친의 뺨을 후려쳤다.

그런데 이때, 부하 한 명이 달려와 소리쳤다.

“따거! 위아태가 찾습니다!”

막스가 벌인 일의 여파로 식스 컴파니의 긴급 회동이 열렸다. 그런데 그 목적이 무엇인지 응솅은 알고 있었다.

‘회의에 참석했다간 내가 죽는다.’

위아태는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시킬 것이다. 그동안 막스와 오고간 정황을 봐도 능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더욱이 약삭빠른 위아태는 자신이 캘리포니아를 탈출하지 못하도록 손을 썼을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건 나머지 다른 보스들이야.’

식스 컴파니 보스중엔 조선인에게 휘둘리는 꼴을 못마땅해하는 자들도 있다. 그들은 위아태의 힘에 눌려 마지못해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힘이 모든걸 좌우한다.’

당장 자신을 압박하는 위아태를 제거하는 것.

이를 위해 필요한 건 외부의 힘이다.

“샤오친. 당장 자딘매시선의 윌리엄 캐즈윅에게 도움을 요청해라.”

“아, 알겠습니다, 따거.”

뺨을 맞고도 샤오친의 눈빛은 응솅의 결정을 반기듯 반짝였다. 그만큼 샤오친도 절박했다.

그는 괴롭혔던 이막산이 캘리포니아에 나타났을 때부터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딘매시선 뿐이었다.

*

다음 날.

연방 보안관 피격사건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병원에서 신문을 보던 SFBC 대원들이 막스에게 물었다.

“보스, 이러다 다른 주까지 기사가 퍼지면 다들 캘리포니아로 달려오는 거 아닙니까?”

“제 말이요. 이거 약간 충성도 테스트 같은데.”

미 전역에 퍼진 SFBC 대원들은 신문을 보자마자 그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차릴 것이다.

선택은 두가지, 달려올 것인가 무시할 것인가.

막스가 200개째 팔굽혀펴기를 끝내고 일어섰다.

“죄다 놀라고 울면서 달려올까봐, 핑커톤 각 지부에 미리 전달해 놨다. 와도 가까이 있는 애들만 올 거야.”

그러나.

- 보스가 또 뭔 일을 꾸미나 보네.

- 이야, 어디에 피좀 뭍혔나.

- 하던 일이나 하자.

각지에 흩어진 SFBC 대원들은 막스의 바람과는 정 반대의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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