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3화 (303/360)

#303 애들 소식 없냐?

환영식 행사는 막스가 머물던 호텔 컨벤션 홀에서 진행됐다.

주지사와 샌프란시스코 시장, 의회 의원 등 유력한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양 국가의 장밋빛 미래를 위한 연설이 오고 갔다.

모든 일정이 마무리될 즈음.

막스가 박규수에게 말을 건넸다.

“특별 손님을 초빙했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분들도 특별했는데, 기대되는군요.”

사절단이 커다란 회의실에 도착하자, 앞을 지키던 SFBC 대원이 문을 열며 소리쳤다.

“황제 폐하, 조선 사절단이 찾아왔습니다!”

“!”

대통령이 다가 아니었어?

갑자기 튀어나온 황제라는 존재에 사절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막스는 입맛을 다시며 안을 가리켰다.

“들어가시죠.”

사절단은 황급히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중앙에는 말끔한 제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는데, 과연 황제다운 기풍으로 자신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절단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큰절을 올렸다.

“······”

막스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비공식적인 만남이라 기자들을 참석시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사신 박규수, 오경석 등은 대아미리가(大亞美里加) 합중국 황제를 뵈옵나이다.”

막스가 이를 통역하자, 노턴 1세는 목청을 가다듬으며 응수했다.

“미국에 온 걸 환영하오. 나 역시 그대들과 같은 인사법으로 반가움을 표현해야겠소.”

“?!”

갑자기 노턴 1세가 납작 엎드려 큰절을 시도.

나름 따라 하려고 했으나, 한복이 워낙 품이 넓어서인지 자세를 제대로 보지 못한 모양이다.

융단폭격하듯 머리부터 땅에 박고 손은 허우적거리며 자세를 버텼다.

영락없는 군대 얼차려 자세였다.

‘젠장!’

이를 깨문 막스는 머릿속으로 슬픈 생각을 떠올렸다.

얼굴이 시뻘게진 노턴 1세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뭔가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하고는 머리를 문지르며 테이블 상석에 앉았다.

막스를 비롯해 전부 착석하자, 노턴 1세는 20명의 사절단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짐을 너무 부담스럽게 여기지 마오. 황제라도 권위를 내세우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 그대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자 하오.”

노턴 1세의 말은 막스의 입을 통해 사절단에게 전달되었다.

“우리 총사령관은 조선말도 잘하는군. 짐이 사람 하나는 잘 뽑았도다.”

“..... 속하는 본래 조선 사람입니다만.”

“Real?”

노턴 1세가 눈을 껌뻑일 때, 박규수가 헛기침을 시작으로 입을 열었다.

“외람되오나, 황제께서 머문다는 소리는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이해하네. 짐이 즉위한 지 오래되지 않아 모르는 사람도 많거든.”

그걸 모른다고? 일국의 황제 즉위를?

박규수는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 황제께서 계시는 데 대통령은 왜 있는 겁니까?”

“백성들이 원하니 생긴 것이지.”

“하면 역할은 어떻게 다른 겁니까?”

“그게 무슨 구분이 있겠나. 다만 현재 짐이 집중하고 있는 건 백성들의 근심거리를 찾아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네.”

구체적으로 하수구, 마차 시간표 체크, 맛집 선정을 예로 들었다.

박규수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황제께서 어찌 그런 사소한 것까지 챙기시는 겁니까?”

“그런 사소한 것이 백성들의 삶이기 때문이지.”

“무릇 황제께선 더 큰 일에 관심을 두어야지 않겠습니까?”

“자꾸 그런 식으로 범위를 두는 이유가 무엇인가? 애초에 백성들이 왕을 섬기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니, 그 왕이란 어떤 존재인가? 역사 이래 나라가 바뀌고 새로운 국가가 탄생할 때마다 왕은 바뀌었네. 하면 그 이전에 왕은 어떤 존재였는가? 바로 백성 중 하나였네.”

자문자답이 습관처럼 되어버린 노턴 1세.

그러면서 자연스레 상대의 질문을 원천 차단하고 자기 말만 늘어놓기 시작했다.

온갖 현안들을 다루고 광범위한 주제를 넘나들더니 급기야 하늘까지 가버렸다.

“인간이 땅을 달리고 바다를 누볐으니, 다음은 하늘이네.”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튀어나온 말에 막스는 통역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총사령관?”

“예이.”

막스가 통역하자 사절단의 고개가 조금씩 비틀어졌다. 노턴 1세는 이를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해서 짐은 인간이 곧 하늘을 날 수 있을 거라 확신하네. 기금을 조성할 생각인데, 조선이 동참한다면 태평양을 날아가는 것도 가능할 걸세.”

“......”

분위기를 읽은 노턴 1세는 스윽 눈치를 보더니 회담의 끝을 맺었다.

“아무쪼록 뜻깊은 시간이었네. 기회가 된다면 그대들의 왕을 미국에 초청하고 싶군. 짐의 뜻을 전해 조속히 날짜를 잡았으면 하네. 아무튼, 그대들을 만나봤으니, 이제 백성들을 만날 차례로군. 부디 남은 일정 잘 마무리하고 조선으로 무사 귀환하길 바라네.”

노턴 1세는 나설 때와 빠져야 할 때를 귀신같이 알고 있었다. 그가 회의장을 벗어나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를 깬 건 오경석이었다.

“인간이 하늘을 날다니, 황제께선 생각이 남다르시군요.”

실제로 노턴 1세는 라이트 형제보다 30년 앞서 비행기의 등장을 예견했다. 구체적인 기금 조성까지 지시할 정도였으니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었다.

그건 그거고.

막스는 뒤늦게 노턴 1세에 관한 충격적인 진실을 말해주었다.

사절단은 대혼란에 휩싸였다.

“자신을 황제라 칭하다니요! 그건 정신병이 아닙니까?”

“그걸 그냥 놔둔단 말입니까?”

“글쎄요. 단순히 미친 사람이었다면 제가 초빙했겠습니까.”

막스 말마따나 정신병자를 사절단에게 소개한 건 커다란 외교적 결례였다. 대놓고 따지지 않았지만, 사절단의 낯빛은 우중충해 있었다. 그들은 막스에게 농락당했다고 생각했다.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미국이란 나라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기에, 저분을 모신 겁니다.”

“어떤 점에서 말입니까?”

“말로 설명하긴 힘듭니다. 일단 밖으로 나가시지요.”

막스는 찜찜한 표정을 한 사절단과 회의장을 벗어났다.

그렇게 로비를 지나쳐 입구를 나서려 할 때.

사절단의 눈이 하나같이 동그랗게 커졌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겁니까?”

호텔 앞에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캘리포니아는 인구가 많은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우리 막스 조께서 명성이 드높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13개의 주를 지나치면서 사절단은 막스의 영향력을 실감했다. 가는 곳마다 대접받는 건 전부 막스 덕분이었고, 오늘 역시 그 연장선이라 여겼다.

그런데 막스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아니라 노턴 1세 때문입니다.”

모여든 군중들이 열광하는 건 사절단도, 막스도 아닌 노턴 1세. 자신을 황제라 여기는 정신병자때문이라는 건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당장 참수해도 모자랄 판에 어찌 저런 반응을 보인단 말입니까?”

조선 최전선에 있는 개혁파 박규수조차 황당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시민들이 저렇듯 황제를 따르는데, 누가 무슨 죄목으로 저자를 참수하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엄연히 나라의 대통령이 있는데 황제라니요.”

“대통령 또한 국민이 선출한 거니까요.”

“허···.”

적지 않은 기간, 조선 사절단 미국을 견학했으나 백성이 왕을 선출한다는 개념은 여전히 낯설었다.

왕은 조선 이전에도 존재했고, 청나라와 일본에도 존재했으니. 문명이 시작된 이래 반드시 누군가는 앉아 있어야 할 자리다.

그만큼 존엄하고 신성시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미치광이가 자신을 황제라 칭하고, 사람들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열광하는 모습을 보인다.

더욱 이해 가지 않는 건, 주지사를 비롯한 관료들의 반응이다.

그들은 노턴 1세를 공손히 대우해줬다. 마치 진짜 황제처럼.

“저들의 진심은 모르겠으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노턴 1세를 무시할 수 없다는 거죠.”

이는 본인들 역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그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라 했으니, 저들이 그런 백성들의 눈치를 보는 건 당연했다.

“미국을 견학하는 동안 많은 문제점을 보셨겠지만, 궁극적으로 이 나라는 발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은 바로 저기에 있지요. 나라를 통치하는 건 왕의 피가 아니거든요.”

아무도 죽이지 않고, 아무도 추방하지 않고, 아무것도 빼앗지 않는, 정신은 조금 이상하지만,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자칭 황제’.

그리고 그에게 열광하는 시민들을 억압하지 않는 국가.

사절단은 백성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노턴 1세를 바라봤다.

머릿속으론 그간 미국의 발전된 모습들이 스쳐 갔다.

그리고 회의장에서 나눈 대화를 곱씹었다.

이날 노턴 1세와의 만남이 사절단에겐 왕이란 기존 통념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내가 너무 서둘렀나.’

막스는 사절단의 표정을 살피며 생각했다.

조선을 입헌군주제로 만들기 위한 초석. 그 길을 제시했는데 저러다 정변이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물론 흥선대원군과 고종이 끝까지 왕권에만 집착한다면, 막스는 스스로 정변을 일으킬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실제로 박규수의 제자들이 갑신정변을 일으킨 주역들이었으니. 막스가 박규수에게 기대한 건 더욱 격렬하게 조선의 변화를 꾀하라는 요구였다.

*

조선 사절단이 캘리포니아에 머문 지도 닷새째.

그들과 함께 조선으로 가게 될 기술자들이 속속들이 샌프란시스코 항만에 모여들었다.

일부는 남북전쟁에 참여한 연방 소속 군인도 있었는데, 광물 탐사를 맡은 헨리 크로커는 막스가 최초로 받았던 ‘MOH(Medal of honor)’ 훈장을 받은 인물이었다.

이는 막스가 리치먼드를 포위했을 때, 대위였던 크로커는 중대를 이끌고 돌격을 주도. 14명의 포로를 생포하고 자신도 상처를 입은 공로로 받은 훈장이었다.

막스의 부탁으로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애타게 광물 탐사 전문가를 모집했을 때, 크로커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었다. 워낙 주변에 탐사할 곳이 많아 굳이 조선까지 갈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리바이 스트라우스의 입에서 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인생의 가장 찬란한 영광을 얻은 크로커에겐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

- 마, 막스 총사령관님? 진짜 막스 총사령관님 맞습니까!?

- 일단 반갑고. 눈물 좀 닦자.

- 어흑.

- 그나저나, 광물 탐사 전문가라고?

- 옛 썰!

- 그럼 귀관을 믿고 한 가지 임무를 내리겠다.

- 맡겨만 주십시오! 조선 땅을 다 파헤쳐서라도 임무를 완성하겠습니다!

- 다 팔 필요는 없고.

세계 3대 금광에 속했던 게 조선이다.

청나라에 공물 바치는 게 싫어 채굴만 안 했지, 어디든 파면 나올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막스는 5년 전 처음으로 목판 인쇄된 대동여지도 신유본을 펼쳐 한 곳을 가리켰다.

- 평북 운산이다. 첫 타겟은 여기야.

- 옛 썰! 목숨 걸고 파보겠습니다!

- 아주 든든하구만.

5개월간의 일정을 마친 조선 사절단.

해군 함선에 올라 샌프란시스코 항만을 출발했을 때, 배에는 30여 명의 엔지니어와 그동안 통역을 맡았던 선교사 밸라 부부도 함께였다.

“그나저나, 애들 소식은?”

“애들 누구요?”

“내 피격 사건 듣고 온 애들 몰려올 거 아냐. 어디쯤 왔다는 소식 없냐고.”

막스의 말에 SFBC 대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소식 못 들었는데요.”

“그래? 오면 괜히 헛걸음 하는 건데, 은근 신경 쓰이네.”

“······”

사절단이 떠나고 며칠 뒤.

“애들 소식 없냐?”

“······ 없습니다.”

“그래?”

막스는 미뤄둔 일을 끝내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경찰국을 방문했다.

“위아태, 면회다!”

철컹.

철문이 열리고 위아태가 간 곳은 경찰국 내 밀실.

다크서클이 입까지 내려온 그는 생기 없는 눈으로 막스를 응시했다.

“이번엔 또 무슨 방법으로 날 이용하려고 찾아온 거요?”

“그 말은 아직 이용할 가치가 있다는 건가?”

위아태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왜 나를 여기에 가둬놨는지 , 며칠 전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소.”

“그거 알기 쉽지 않을 텐데.”

막스의 비아냥거림에 위아태의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분노가 아닌 막스에게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수하들이 찾아와 차이나타운의 상황을 알려줬소. 식스 컴파니는 해체 수준이고, 사업장은 모조리 박살 났더군요.”

“일부 사업장은 말짱해. 불법 사업장만 없앤 거지.”

“뭐가 됐든. 신기한 건 이런 상황에서 누구도 신흥 세력을 만들 생각이 없다는 거요.”

지배 세력의 몰락은 그동안 유지된 질서의 파괴를 의미한다.

그리고 혼란 속에 새로운 조직들이 난립하는 건 당연한 수순.

그런데 아무도 움직이질 않는다.

이는 위아태와 다른 두 보스의 죄목이 뚜렷하지 않은 채 수감되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우리를 인질로 잡은 거 아니오?”

자고로 쥐새끼도 밟으면 꿈틀대는 법.

중국인들의 대우가 개차반이라 해도 쪽수가 많은 데다, 그들의 밥줄이 단번에 박살 나면 저항이 있게 마련이다. 격렬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가두 행진이나 시위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런데 부하들은 수감된 보스가 나오길 기다리며 조신하게 컴파니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파이를 쪼개 먹던 세 조직이 박살 난 때문에 차이나타운의 지배력은 이전보다 강한 상태.

남겨진 부하들은 오매불망 보스를 기다리며 다른 세력을 짓누르고 있었다.

결국 막스는 보스들을 감옥에서 길들이고 외부로는 평화를 만들어낸 셈이었다.

이를 깨달은 위아태는 막스의 심계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뭐든 급하면 체하는 법입니다. 당장 밥줄이 끊긴 자들을 어쩌면 우리보다 더 악랄하게 차이나타운을 지배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걱정되면 지금까지 모아둔 돈을 좀 풀어. 그러고 나서 얘기해.”

“······”

드르르륵.

자리에서 일어난 막스는 위아태를 내려봤다.

“여기 좀 더 있어. 그동안, 네 역할과 위치를 고민 좀 해보고.”

밀실을 빠져나오는 막스의 등 뒤로 위아태가 장탄식을 내뱉었다.

막스가 머무는 호텔 로비.

소파에 앉아 죽치고 있는 대원들에게 물었다.

“아직 소식 없냐?”

짜증이 난 대원들은 대답 대신 고개만 저었다.

- 시발, 이러다 아무도 안 오면 뭔 일 나는 거 아냐?

- 그냥 누구라도 불러올까?

대원들이 심각한 얼굴로 속닥거릴 때, 로비 안으로 핑커톤 수석 탐정 애벗이 들어섰다.

그는 굳은 얼굴로 막스에게 뜻밖의 소식을 알렸다.

“홀리데이 UPR 사장이 피격당했습니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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