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 나와 게임이 하고 싶은가
조선 사절단이 캘리포니아에서 떠나던 날.
홀리데이가 피격당했다.
장소는 뉴욕 맨해튼의 브로드 스트리트.
늦은 시간 UPR(유니온 퍼시픽 레일로드)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가던 중 벌어진 일이었다.
뉴욕 벨뷰 병원(Bellevue Hospital).
“오른쪽 어깨에 총알이 관통하긴 했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볼 수 있나요?”
홀리데이 부인 메리가 눈물을 글썽이며 의사에게 물었다.
“약에 취해 잠들었으니까, 깨우지는 마세요.”
“알겠어요.”
메리가 아이들과 함께 병실에 들어가고, 의사는 복도에 서 있는 사람들로 시선을 돌렸다.
무장한 남자가 둘, 그리고 낯익은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이군요, 미시즈 에밀리 조. 늦었지만 임신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수술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닥터 해먼드.”
의사는 윌리엄 알렉산더 해먼드.
남북전쟁 당시 래터맨과 구급차를 만든 함께 군 병원 책임자였다.
해먼드는 수은 광물인 ‘칼로멜’의 위험성을 언급했다가 의사 협회에서 매장당할 뻔한 일이 있었는데, 막스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었다.
더 나아가.
- 칼로멜의 문제는 수은입니다.
수은의 심각성을 모르던 시기라 막스가 알려준 힌트는 의학계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왔다.
해먼드는 몇 번의 실험을 한 끝에 수은이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는데, 불과 1년도 안 된 일이었다.
“부군께선 통 얼굴 뵙기가 힘드네요.”
“저도 못 본지 오래됐어요. 그나저나, 경호 문제를 상의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신가요?”
“물론입니다.”
사무실로 자리를 옮긴 해먼드는 피치의 요구를 기꺼이 수용했다.
홀리데이를 특실로 옮기고 치료를 직접 담당.
경호를 위한 병원 보안도 SFBC에게 위임하기로 했다.
대화가 끝나고 사무실을 나왔을 땐, 복도에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대체 몇 명이야.’
해먼드가 엉거주춤 서 있을 때, 남자들이 피치에게 몰려들었다. SFBC, 핑커톤, NYPD 경찰들이 뒤섞여 있었다.
연방 보안관인 피치가 슬쩍 해먼드를 쳐다봤다.
“죄송하지만, 회의실 써도 될까요?”
“무, 물론입니다.”
해먼드의 안내를 따라 피치는 남자들을 이끌고 병원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서 피치의 시선을 받은 SFBC 대원 로스코와 키더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마차를 타고 가던 중, 항상 들리던 빵집에 멈췄습니다. 저는 마부석에서 대기하고, 키더가 홀리데이와 빵집에 들어갔죠.”
계산을 끝내고 마차로 오던 중.
말을 탄 남자들이 홀리데이에게 접근하고, 일부는 마차로 다가와 로스코의 시선을 가렸다.
“낌새가 이상해서 피하라고 소리쳤죠. 그랬더니 놈들이 곧바로 총을 뽑더라고요.”
순식간에 총격전이 벌어지고 로스코와 키더가 다섯을 죽이는 동안 재수 없게도 홀리데이까지 총에 맞게 된 것이다.
“말을 타고 지나가면서 벌인 짓이라 실제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대원들의 말을 들은 피치가 NYPD 경찰에게 물었다.
“시신은 어떻던가요?”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사건을 벌이기 전에 미리 소지품도 다 빼놨더라고요.”
“총알이 관통된 걸 보면 금속탄피를 사용한 것 같은데, 맞나요?”
피치의 질문에 경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한 명이 44구경 센터파이어 방식의 금속탄피를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제조사는요?”
“WS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음. 그럼 총알 몇 개를 제게 가져다주세요.”
경찰들과 대화를 나눈 피치는 핑커톤 탐정들에게 별도의 은밀한 요청을 했다.
“아무래도 UPR 부사장을 감시해야겠어요. 누굴 만나는지, 이번 사건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잘 지켜볼 필요가 있어요.”
UPR 부사장은 대륙횡단 열차 노선 기획부터 깊이 연관된 토마스 듀란트.
홀리데이와 사이가 틀어지고, 막스가 유타에서 듀란트의 직원을 만난 이후. 피치는 핑커톤 탐정에게 몇 개월 전부터 UPR 임원들을 뒷조사를 의뢰한 바 있었다.
*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 호텔.
막스가 핑커톤으로부터 홀리데이 피격 소식을 들은 건 사건이 벌어진 지 사흘이 지나서고.
신문에 관련된 기사가 실린 건 또다시 이틀이 지난 뒤였다.
[뉴욕 도심 한복판에서 UPR 홀리데이 사장 피격당하다!]
내용에 따르면 습격을 시도한 범인들은 모조리 경호원들에게 제거되고 암살은 미수에 그쳤다.
어깨에 총상을 입은 홀리데이는 모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이미 핑커톤 탐정에게 들은 것들이지만 기사를 읽는 막스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은 부상이지만, 홀리데이는 막스에겐 가족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내가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워준 건가.’
UPR, CPR, ST&AF, Kansas Railroad 등.
밴더빌트를 능가하는 철도왕으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이런 사건이 벌어졌으니.
국가의 사활을 건 대규모 사업에 홀리데이를 앉힌 건 자신의 욕심인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이번 사건은 UPR 내부 문제다.’
암살자는 누군가 고용한 것에 불과할 터.
중요한 건 그들을 사주한 자를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힌트는 홀리데이와 주고받은 마지막 편지. 그가 언급한 부사장 토마스 듀란트일 가능성이 크다.
홀리데이는 내부 거래 문서를 뒤적거려 부정행위를 파헤치던 중, 듀란트와 몇몇 임원들과의 갈등이 불거졌다.
‘이 건을 내가 직접 맡기는 무리고.’
지금까지 홀리데이와 함께 사건을 맡은 피치가 계속 이어가는 게 맞다.
다만, 암살까지 시도한 만큼 대원들을 더 붙여줄 필요가 있었다.
‘여기 처박혀 있으니까, 정보가 너무 느려.’
피치가 분명 편지를 보냈을 텐데 도착하려면 일주일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뭐가 됐든. 캘리포니아를 떠날 시점이군.’
얼마 전 테네시에 있는 SFBC 대원이 핑커톤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다.
내용은 KKK단의 본진을 알아냈다는 것.
이를 두고 막스에게 의견을 물어온 것이다.
그것 말고도 현재 테네시는 흑인과 백인들의 분쟁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턱을 긁적거리던 막스가 고민 끝에 몸을 일으켰다.
로비에는 오늘도 SFBC 대원 둘이 죽치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애들은?”
“지금 거의 도착했을 겁니다.”
놀란 막스가 되물었다.
“그래? 어디쯤인데?”
“아마 뉴욕 부근일 걸요?”
“뉴욕!?”
커피를 마시던 SFBC 대원들의 눈알이 굴러가며 막스를 쳐다봤다.
“...... 홀리데이가 피격됐잖아요.”
“...... 나는?”
“그만좀 해요.”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막스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같이 어디 좀 가자.”
“...... 그렇게 말하면 가기 싫죠.”
“어디 갈건데요? 이상한 데 가는 건 아니죠?”
막스가 말없이 발걸음을 옮기자, 대원들은 입이 바짝 타는지 조용히 뒤를 따랐다.
그리고 향한 곳은 다행히도 리바이 스트라우스와 노벨의 공장. 막스는 사람들을 만나고 사업을 논의하며 시간을 보냈다.
며칠 뒤, 주지사를 찾아갔을 때 뜻밖의 인물들을 만났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분들을 소개해주고 싶었거든요.”
“만나서 영광입니다. 저는 웨스턴 유니온의 콜린스 맥크레, 이쪽은 조지 캐난입니다.”
웨스턴 유니온은 미국의 전신 회사.
남북전쟁 발발 직후, 대륙횡단 전신주를 완성했고, 최근엔 경쟁사 ‘아메리칸 텔레그래프’와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텔레그래프’를 인수해 사실상 미국 전신 산업의 독점권을 얻은 회사였다.
현재 웨스턴 유니온은 뉴욕 본사를 다른 곳으로 이전할 계획을 세웠는데, 다름아닌 콜로라도 준투였다. 물론 이들이 막스를 찾아온 건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다이나마이트요?”
“예. 저희가 미국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전신주를 설치하고 있는데, 현재 브리티시 컬럼비아까지는 공사가 끝났거든요.”
미국이 유럽과 전신망을 연결하는 데에는 두 가지라 루트가 있다.
대서양의 해저케이블을 깔아 영국과 연결하거나, 러시아를 통해 유럽과 연결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현재 이 두 사업이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지금 대서양 쪽은 애틀랜틱 텔레그래프 회사가 해저케이블을 깔고 있는데,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거든요. 아마, 유럽과 연결하는 건 우리가 될 겁니다.”
콜린스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막스는 두 회사의 경쟁은 관심 밖이었다.
이순간 머릿속에 스친 건, 러시아로 가는 전신주의 경로였다.
“혹시··· 알래스카를 통과하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이번 원정도 바로 알래스카에 전신주를 설치하기 위해서거든요.”
사업에 실패해도 알래스카까지만 연결된다면야 밀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다이나마이트가 얼마나 필요합니까?”
막스는 그 자리에서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주지사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눈뒤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기분이 좋아보이네요, 보스.”
“그럼. 앞으로 안심하고 훈련할 수 있겠어.”
“후, 훈련이요?”
*
캘리포니아를 떠날 준비는 되었는데, 정작 기다리던 피치의 편지가 오질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홀리데이가 피격당한 지 2주일이 지나서야 편지를 받을 수 있었다.
[토마스 듀란트가 뒤로 ‘Crédit Mobilier of America’라는 회사를 만들었어.
구조를 보면 UPR이 이 회사에 하청을 주면, 여기서 요청한 공사 자금을 집행해주거든.
물론 연방에서 지급하는 거지.]
그런데 이 회사가 요청한 금액이 예상을 훨씬 초과했다. 공사 단가를 두 배가량을 부풀려 청구한 것이다.
[문제는 이 크레딧 모빌리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엮여 있다는 거야.
지금 하나둘 파헤치고 있는데, 갑자기 토마스 듀란트가 UPR 본사에 처박혀서 나오질 않네.
아무래도 대원들을 파견해야 할 것 같아.]
UPR 본사는 네브레스카주의 오마하.
대륙횡단이 시작되는 동쪽 지점이었다.
결국, 이 문제는 대륙횡단철도의 이익이 불확실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
‘시작부터 공사비를 횡령할 목적이었나.’
편지는 총 다섯 장.
그런데 마지막 장을 넘길 때, 종이 조각이 팔랑거리며 떨어졌다.
‘음?’
종이는 피치가 신문 광고를 오린 것으로, 이를 본 순간 막스의 미간이 좁아졌다.
<우리는 당신같은 유능한 건맨을 원합니다!
능력을 썩히지 마세요!
화끈한 보상, 완벽한 모험이 펼쳐질 겁니다!
단, San Francisco Bampot Chink는 지원하지 마세요. 자격 미달이니까!>
Bampot은 바보, 멍청이, 어리석다를 뜻하고,
Chink는 Chinese에서 파생된 아시아인들을 비하하는 단어다.
막스가 부들거린 건, 대문자에 굵은 볼드체로 쓰인 앞글자들.
누가 봐도 SFBC, 아니 막스를 겨냥한 문구였다.
[홀리데이가 피격당한 날 뉴욕 신문사마다 실린 광고야. 이게 뭘 뜻하겠어?
편지 쓰는데도 분노가 가라앉질 않네.]
WCBS가 자신들이 저질렀다는 걸 막스에게 공표했다. 이는 명백한 조롱이며 도발이었다.
한동안 광고 문구를 응시한 막스는 핑커톤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애벗에게 WCBS 광고를 건넸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막스의 질문에 애벗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시선을 광고에 고정한 채 입을 떼었다.
“대놓고 SFBC를 저격한 거네요.”
“정확히는 나를 도발한 거죠. 타이밍상 WCBS가 홀리데이 암살에 관련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심증만 있지 물증은 없지요.”
“잡을 테면 잡아 봐라, 이건가요?”
그렇다기엔 몇 가지 노림수가 있어 보인다.
하나는 막스에게 원한이 사무친 남부 총잡이들을 끌어들이는 것.
다른 하나는 말 그대로 SFBC를 향한 선전포고.
‘식스 컴파니처럼 양지와 음지를 넘나들면서 세력을 키우겠다 이건가.’
하지만 WCBS는 백인이고 남부를 등에 업고 사업을 확장한다. 차이나타운과는 비교할 수가 없엇다.
가뜩이나 남부 재건으로 민감한 시기.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연방 보안관이 마구 쑤시고 들어가기엔 리스크가 컸다.
‘나와 게임이 하고 싶은 모양인데.’
젭 스튜어트가 그럴 깜이 되나.
다섯을 동원하고도 홀리데이 암살에 실패했고, 되려 죽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막스는 수석 탐정 애벗에게 물었다.
“WCBS가 테네시에도 활동한다 그랬던가요?”
“테네시 맴피스에서 목격한 거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 백인과 흑인들이 서로 치고받고 난리도 아니거든요. 물론 일주일 전 정보입니다만.”
“그거면 됐습니다.”
KKK단과 WCBS 둘다 맛을 보러 가야겠다.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핑커톤 각 사무실에 연락해두세요. 다음 내 목적지는 테네시 맴피스라고.”
“.....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