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 멤피스 대학살(3)
번쩍이는 총구.
공기를 찢는 소리.
전방을 응시하던 막스의 고개가 뒤를 향했다.
뒤쫓던 놈들은 급격히 속도를 줄여 떨어진 대원들을 말에 태웠다. 그리곤 이내 마을로 말머리를 틀어 되돌아갔다.
‘폭도들 틈에 섞여서 또 공격하려나.’
놈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막스가 정면을 응시했다. 속도를 줄이자, 충돌할 기세로 달려오던 무리 역시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굳이 얼굴을 확인하지 않아도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조 짐 주니어, 산초, 네이선 로어, 그리고 테네시에서 활동하던 대원들이 여섯.
“보스, 설마···.”
“도망치던 중이었어요?”
“아니, 얼마나 다급했으면 조명탄까지 쐈대요?”
“..... 그런거 아니야.”
막스는 대원들의 시선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아니었으면 니들 다 죽었어. 방금까지 내가 뭐를 상대하고 온 줄 알아?”
“뭐, 설마 개틀링이라도 있었습니까?”
막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생각 없이 말했던 산초의 얼굴이 굳어졌다.
“단순한 폭동은 아니군요.”
대원들의 시선이 천천히 마을을 향했다.
제법 먼 거리에서도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하늘 높이 치솟은 연기가 눈에 훤히 들어왔다.
“KKK단, 멤피스 경찰국, 그리고 WCBS도 개입했다.”
막스의 말에 대원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줄기차게 신문에서 언급한 조직.
SFBC를 표방한 단체와 처음으로 맞닥트리게 된 상황에 대원들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했다.
“소음기에 개틀링 기관총까지 확인했는데, 앞으로 뭐가 더 있을지 모르지.”
발명이 어렵지 카피는 어렵지 않다.
성능은 장담 못 해도 라이플 총성을 줄인다는 생각만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소음기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실제로 많은 무기 제조사가 남북전쟁에서 쓰인 특수부대원들의 무기들을 목격자의 진술과 수집한 자료들을 토대로 연구하고 있었다.
막스가 불타오르는 사우스 멤피스 마을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놈들은 폭동 속으로 우리를 유인했다. 진압한다고 나섰을 때, 제거할 생각이었겠지.”
그런데 놈들이 성급하게 개틀링을 꺼냈다.이미 드러난 이상 개틀링은 비장의 무기가 아니었다.
*
사우스 멤피스의 교회.
혼란 속에 WCBS 대원 하나가 개틀링 기관총 사수에게 분노를 터트렸다.
“네놈 때문에 우리 계획이 다 틀어졌다! 정작 연방 보안관 새끼들은 도시에 들어오지도 않았단 말이다!”
‘시발, 누가 혼자서 그 지랄 할 줄 알았냐고!’
연막 속에 폭탄이 터지고, 동료들의 시신이 터져나가는 걸 봤을 때. 손은 저절로 기관총 손잡이를 잡았다. 주변을 휘젓고 돌아다닌 건 분명 혼자가 아닌 10인분짜리였으니까.
WCBS 선임 대원 존 알버트가 가라앉은 분위기를 전환하려 했다.
“이미 틀어진 작전은 미련 두지 마. 어차피 폭동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으니까.”
쥐새끼 한 마리 때문에 광기가 주춤하긴 했지만,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타오르는 불길과 연기는 사람들의 이성을 밀어내고 폭력만을 남겨두어
약탈, 방화, 살인, 강간이 곳곳에 벌어졌다.
특히 수십 명이 고깔모자를 쓴 KKK단은 선동과 폭력으로 거리를 휩쓸고 있었다.
“결국, 연방 보안관들이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선 이곳으로 진입하게 될 거야. 예정대로 우리는 폭도들 틈에 숨어 놈들을 제거하면 된다.”
리더인 존 알버트가 대원들의 얼굴을 차례로 응시했다. 30명 중 남아있는 건 23명.
순식간에 대원을 잃은 것이다.
이를 깨문 존 알버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누이 말했지만, 이번에 죽은 놈들은 WCBS가 아닌 폭도로 처리한다. 개죽음당하기 싫으면 정신들 똑바로 차려.”
각오를 다진 WCBS 대원들이 군중들 속에 스며든다. 그들은 막스에게 농락당한 분노를 흑인들에게 쏟아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존 알버트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대체 그놈은 뭐지.’
혼자 나타나 폭동 현장을 전쟁터로 만든 놈.
사용한 무기들로 봐선 SFBC가 분명한데.
세븐 스트롱 중 한 놈인지, 일반대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뭐가 됐든. 시체를 확인하면 알게 되겠지.’
존 알버트는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적당한 건물 지붕으로 이동했다. 크로스로 맨 가방에는 얼마 전 WCBS에서 보급한 무기들이 가득했다.
‘무기빨로 깐족거리는 것도 이젠 끝이다.’
전방을 주시하던 존 알버트는 연방 보안관, 아니 SFBC 대원들이 몰려오길 기다렸다.
한편, 도시로 향하던 막스 일행에게 말 두 필이 빠른 속도로 접근했다. 도시 외곽으로 빠져있던 핑커톤 수석 탐정 호기스와 그의 동료였다.
연방 보안관들을 빠르게 훑어본 호기스는 긴장한 듯 침을 삼킨 뒤 말을 건넸다.
“이 친구가 포트 피커링을 찾아갔는데, 사령관이 자리를 비웠다더군요. 그런데 기가 막힌 게.”
요새 사령관 스톤맨 장군이 한 살롱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이다. 자리에는 멤피스 시장 존 파크와 의원들이 함께였다고도 했다.
‘이것들이 아주 작정을 했구나.’
이 폭동이 끝나면 과연 누가 처벌을 받을까.
높은 확률로 폭동의 원흉들은 무죄로 풀려날 가능성이 컸다. 그들은 멤피스 시장, 의회 의원, 요새 사령관, 경찰들이었으니까.
희생자가 수두룩한데,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다?
‘절대 이 꼴은 못 보지.’
전생에도 몇 번 겪어본 일이다. 용병을 그만둔 것도 더러운 꼴을 보기 싫어서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모조리 죽이고도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얼굴을 찡그린 막스의 머릿속에 잔인한 음모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머리를 굴려 몇 가지 선택지를 추리고 고심한 끝에. 막스가 수석 탐정에게 말을 건넸다.
“흑인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지?”
“자유민 사무국(Freeman Bureau)을 중심으로 대피하고 있습니다. 수장은 연방 장교 출신인 런클이라는 백인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막스는 날카로운 눈으로 대원들을 응시했다.
“계획을 전면 수정한다. 당장 도시로 진입하진 않을 거야.”
“......”
“왜들 반응이 없어?”
대원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원래 계획이 뭐였는데요?”
“뭐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야 반응하죠.”
“애초에 계획이 없던 거 아닙니까?”
막스는 코웃음 치며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당장 흑인으로 위장한다, 실시.”
“!”
“그런 다음 산초와 조 짐 주니어는 자유민 사무국장을 꼬드겨 흑인들을 요새로 유인해.”
“요새요?”
막스는 대답 대신 네이선 로어에게 다른 지시를 내렸다.
“넌 마차를 구해서 WCBS 놈들의 시체를 실어.”
평원에서 대원들의 총에 맞아 죽은 놈들이 셋.
그런데 왜 그 시체들을 마차에 싣는 걸까.
막스가 구체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이를 들은 대원들은 역시 보스는 사악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핑커톤 탐정들은 이게 진짜 되는 건지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이를 무시하고, 막스가 담담하게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멤피스 폭동이 성공하면 남부 곳곳에서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거다.”
그 사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관련자들을 철저히 응징한다. 그런 점에서 정의 구현을 위해 KKK단과 WCBS는 이용가치가 있었다.
*
이미 백인들의 타겟이 된 자유민 사무국 건물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사무국장과 직원들은 여인과 아이들을 대피시키고, 남자들은 백인들의 공격을 저지하며 피해를 줄이고자 했다. 하지만 유색부대 군인들은 퇴근할 때 총기를 반납했기 때문에, 사실상 이들에게 무기란 농기구나 주방용 칼이 전부였다.
“대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제발 여자들과 아이들은 건드리지 마!”
흑인들이 울분에 찬 분노를 토해낼수록 백인 폭도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노예 주제에 권리를 얻으려는 게 잘못이다!”
“애초에 네놈들을 먹여 살렸으니까, 없애는 것도 우리 마음이지! 병신···!”
타앙!
조롱하던 백인의 머리가 크게 휘청이며 바닥에 쓰러졌다.
타앙!
타앙!
곧이어 총성이 울릴 때마다 폭도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등장했군.’
건물 지붕에 있던 WCBS 존 알버트는 불꽃이 번쩍이는 곳을 향해 라이플을 조준했다.
그런데 총을 쏜 놈들은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쥐새끼같은 놈들.’
존 알버트가 표적을 찾는 동안, 조 짐 주니어와 대원들은 적들을 교란하며 잠시나마 백인 폭도들의 발을 묶어두었다.
그러는 동안 산초는 자유인 사무국장 런클을 꼬드겼다. 물론 갑자기 나타난 자의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런클은 배지를 보고서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연방 보안관? 흑인이?”
“위장한 거니까, 대충 그렇게 알고. 당장 요새로 갑시다!”
“가면 방법이 있습니까? 스톤맨 사령관은 지금까지 우리의 요청을 외면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현 시간부로 연방 보안관이 요새를 지휘할 겁니다.”
런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현재로선 흑인들이 의지할 건 군대가 유일하다.
포트 피커링의 군대만이 폭동을 끝낼 수 있었다.
“우리가 시간을 끌 테니, 흑인들을 통솔하쇼.”
“아, 알겠습니다.”
런클이 흑인들을 이끌고 포트 피커링으로 방향을 틀 때, 막스는 이제 막 요새에 도착한 참이었다.
“꼼짝마! 움직이면 쏜다!”
경계 근무를 서던 군인 두 명이 막스를 향해 총을 겨눴다.
“지금부터 포트 피커링은 연방 보안관이 지휘한다.”
“...... 그게 무슨 개소리야!?”
막스가 배지를 보이자, 군인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스카프를 내리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서, 설마···?”
“오랜만이다, 제군들. 요새 부사령관에게 내가 왔다가 전해다오.”
“알겠습니다!”
군인 한명이 요새 안으로 튀어나가더니, 곧이어 장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막스를 본 부사령관 한스 중령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마, 막스 총사령관님?”
“오호, 자네가 부사령관이었나? 한스 대위, 아니 이제 중령이군. 늦었지만 진급 축하해.”
“아아, 이렇게 총사령관님을 뵙는군요. 세인트루이스가 마지막이었으니까 4년 만이네요.”
한스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서부사령부를 경호했다. 당시 계급은 대위로 서부 사령관이었던 막스가 습격한 게릴라들을 제거하는 걸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이었다.
한스 중령은 막스의 방문이 반가웠지만, 한편으론 머리가 복잡했다. 연방 보안관이 군대에 개입하고 지휘까지 한다는 건 민감한 문제였다.
이때 막스가 한스를 응시하며 물었다.
“지금 밖의 상황을 모르진 않겠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령관은 자리를 비웠더군.”
“...... 그것 때문에 오신 겁니까?”
“아니면 올 이유가 없지. 애초에 포트 피커링에 군대가 주둔하는 건 남부인들의 폭동을 막기 위해서야. 그런데 사령관은 지금 뭘 하고 있지?”
한스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럴수록 막스는 더욱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임무를 망각하고, 술이나 처마시고 있는 사령관은 군법으로 다스려야지. 며칠 내로 그랜트 원수와 셔먼 사령관이 그자의 죄를 추궁할 거야.”
한스의 눈동자가 미친 듯 요동쳤다.
이 짧은 시간에 보고까지 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상대는 그랜트와 셔먼 장군을 부하로 두었던 총사령관 막스. 심지어 그랜트와 셔먼은 가장 존경하는 군인으로 주저 없이 막스를 뽑기까지 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부사령관이 직접 폭동을 진압해. 그럼 내가 개입할 이유도 사라지는 거니까.”
한스가 슬쩍 다른 장교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막스는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찼다.
“상대는 우리가 목숨 바쳐 이룩한 결과를 전복시키려는 폭도들이다. 장교라면 신속한 상황판단과 빠른 결단을 내릴 줄 알아야지. 아니면 하극상이나 명령 불복종으로 추궁당할 게 두려운가?”
“아, 아닙니다!”
“맞든 아니든. 걱정하지 마. 내가 다 막아줄 테니까. 자네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당장 게엄령을 선포하고 폭도들을 진압하는 거야.”
한스 중령이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장교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신속하게 군을 무장시키고 요새 밖으로 나갈 채비에 들어갔다.
군인들의 행동을 지켜본 막스는 요새를 빠져나와 폭동이 일어난 곳으로 향했다.
가까워질 무렵엔 말에서 내려,
KKK단 특유의 고깔모자를 뒤집어 썼다.
막스는 폭도들 사이로 스며들어 스스로 폭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