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 쓰레기 청소 시간
사우스 멤피스에 집결한 백인 폭도들은 흑인들의 주택, 학교, 교회, 심지어 사람까지 불태웠다.
공포와 두려움에 떨던 흑인들은 밖으로 뛰쳐나와 자유인 사무국으로 향하지만, 그곳 역시 불에 타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마땅히 피신할 곳이 없어 우왕좌왕하던 때.
자유민 사무국장 런클의 주도 아래 흑인들이 군 요새로 방향을 틀었다.
“놈들이 포트 피커링으로 향한다!”
“뒤쫓아라!”
광기에 사로잡힌 KKK단과 폭도들은 칼과 도끼, 총을 들고 흑인들을 뒤쫓고. 흑인으로 위장한 연방 보안관들은 그들의 추격을 저지했다.
하지만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폭도들과 WCBS까지 개입한 탓에 총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거나 먹어라!”
콰아앙!
콰아앙!
연방 보안관이 내던진 수류탄의 연쇄적인 폭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에서 막스 역시 식겁하며 몸을 빼냈다.
‘적당히좀 던져, 새끼들아!’
차라리 골목으로 잠시 피신해야겠다.
그렇게 발걸음을 돌리려 할 때.
“직급은?”
고깔모자를 쓴 놈이 막스를 빤히 쳐다본다.
살짝 당황한 막스는 대충 생각나는 대로 말을 던졌다.
“..... 사이클롭스.”
“음. 나 타이탄이 명령한다. 사이클롭스는 돌격해서 악을 처단하라.”
‘미친새끼.’
차라리 드래곤이라고 할 걸 그랬나.
막스가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보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
푸욱.
보위 나이프를 수직으로 올려 상태의 턱을 찌르고 정수리까지 관통시켰다.
고깔모자 사이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칼을 빼 타이탄을 침몰시킨 뒤엔 그의 이름마저 빼앗았다.
“이제 내가 타이탄이다.”
막스는 상대의 고깔모자를 벗겨 품속에 챙겼다.
이죽거린 뒤엔 피 묻은 칼을 자신의 고깔모자에 문질렀다. 너무 깨끗한 것도 의심을 살 수 있다.
막스는 고깔모자에 피를 칠해 더욱더 음산한 KKK단을 연출했다.
‘지금쯤 군인들과 만났으려나.’
대충 시간을 가늠한 뒤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런 다음엔 폭도들 틈에 섞여 소리쳤다.
일부를 다른 쪽으로 유인하기 위해서였다.
“무장한 흑인들이 북쪽으로 도망친다!”
말이 끝나자마자 총을 쏘던 흑인들 몇몇이 북쪽으로 몸을 날린다. 흑인으로 위장한 조 짐 주니어와, 산초, 그 외 보안관들이었다.
그들은 막스의 신호를 받고 북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들의 추격을 부추기기 위해 막스가 지시를 내렸다.
“나 타이탄이 명령한다! 모든 KKK단은 무장한 흑인 놈들을 쫓아라!”
타이탄은 지역 단장인 드래곤 바로 아래의 실무진급.
막스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열댓 명의 고깔모자들이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맹목적인 충성심은 소름이 끼칠 정도.
이미지를 아무리 깎아놔도 KKK단들의 신념은 여전히 활활 타올랐다.
막스는 혀를 차며 발걸음을 옮길 때, 이번엔 무장한 남자가 길을 가로막았다.
WCBS의 존 알버트였다.
‘알아서 찾아오는 군.’
고깔모자 속 막스의 눈빛이 반짝인다.
몸은 언제든 상대를 죽일 준비를 해두었다.
존 알버트가 눈을 가늘게 떠 말을 건넸다.
“무장한 흑인들은 KKK단의 상대가 아니다. 너희들은 남아서 폭동에나 참여해.”
“...... 곧 군대가 동원될 텐데, 무장한 놈들이라도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막스의 말에 존 알버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는 위아래로 막스를 훑어내리며 말했다.
“군대가 동원될 일은 없다는 말 못 들었어? 그런데 니들이 왜 무장한 놈들을 쫓냐고.”
“...... 놈들이 무장했든 안 했든. 세상에 착한 흑인은 죽은 흑인뿐이다. 고로, 우린 흑인들이 누구든 차별하지 않아.”
“...... 문맥상 차별이 맞는 말이냐? 총도 없는 놈들이 왜 무장한 흑인들을 쫓냔 말이다!”
“아무튼. 나 타이탄은 대마법사의 지시에 충실할 뿐이다.”
“.......”
‘하여간 이 새끼들은 말이 안 통해.’
존 알버트는 대마법사니 드래곤이니 이 지랄 할 때부터 KKK단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사실 타이탄과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었다.
“어찌 됐든, 놈들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KKK단은 여기 남아서 원 목적에나 충실해.”
존 알버트는 막스에게 명령하듯 말을 남긴 뒤 등을 돌렸다. 그 뒤를 천천히 다가가 제거하려 했으나, 놈의 동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다음을 노려야 했다.
WCBS 대원들 일부는 무장한 흑인들을 쫓아 북쪽으로 이동하고, 나머지는 존 알버트와 이곳에 남아 연방 보안관들을 색출하려 했다.
‘그럼 숨바꼭질을 해볼까.’
막스가 WCBS를 주시하며 난장판을 거닐때였다.
갑자기 주택 안에서 여인의 비명이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가자 흑인 남편은 이미 시체가 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고, 폭도 셋은 부인을 붙잡고 일을 벌이려 했다.
그들은 아일랜드계 경찰관들. KKK단으로 위장한 막스를 보며 히죽거렸다.
“너도 하려면 줄···.”
순간 막스가 거리를 좁히며 파고들었다.
보위 나이프로 한 놈의 목을 베고, 다른 두 놈의 가슴을 찌르고 발로 쓰러트렸다. 그런 다음 발로 밟아 목뼈를 부러트렸다.
순식간에 세 명을 처리한 막스가 여인을 응시했다. 그녀는 KKK단원이 왜 백인들을 죽인 건지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옷 입고, 따라와.”
“.....”
“살려면 날 믿어.”
막스는 여인의 목덜미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지나가다 마주친 폭도들은 아무도 이 광경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막스는 인적이 드문 곳에 와서야 여인을 놓아 주었다.
“곧장 포트 피커링으로 달려가. 군인들이 보호해 줄 거니까.”
“당신은 누구시죠?”
막스는 품에서 연방 보안관 배지를 보여주곤 발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 대고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내뱉은 여인이 이내 포트 피커링으로 내달렸다.
막스는 폭도들 사이를 거닐며 틈이 날 때마다 폭도들을 제거했다.
그러다 한 흑인 주택에서 라이플을 쬐던 놈을 발견. 막스는 주변을 스윽 둘러보곤 내부로 진입했다.
푸욱.
상대 입을 막은 뒤 보위 나이프로 가슴을 찌른 뒤, 칼끝을 후벼팠다. 그런 다음 고통에 신음하는 놈의 귀에 대고 막스가 속삭였다.
“포레스트와 KKK단 핵심 인물들은?”
막스는 상대가 입을 열 때까지 고문을 멈추지 않았다.
*
폭동이 일어난 곳에서 8km 떨어진 노스 멤피스의 미쉘 살롱.
짙은 담배 연기, 피아노 연주가 흐르는 속.
시장과 의원, 경찰국장, 요새 사령관이 모여 술판을 벌였다. 자리엔 핵심 주동자인 존 크레이튼 도시 기록관도 함께였다.
평소라면 조용한 곳에서 마셨을 텐데, 굳이 사람들이 있는 살롱까지 온 데는 이유가 있었는데.
폭동에 관한 조사가 이루어졌을 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실제 원 역사에서 멤피스 폭동 기간 시장은 술에 취해 있었고 요새 사령관 조지 스톤만 대령은 사흘 내내 벌어진 폭동을 방관했다.
마지못해 계엄령을 선포해 진압하지만 이미 흑인들은 막심한 희생을 치룬 뒤였다.
그런데 연방은 사법처리를 주 관할로 넘기고, 주 정부와 지방 관리들은 이 사법 조치를 거부했기 때문에 소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폭동과 관련된 자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사건이 덮어진 것이다.
“뭐, 세상이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영원한 사업은 없는 법이죠. 멤피스를 발전시키려면 가진 자들을 끌어들여 새로운 사업을 모색해야 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북부처럼 공업화를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창 멤피스 발전에 관한 건설적인 이야기가 오고 갈 때였다. 술집 안으로 군인이 들어왔다.
그는 막스의 사주를 받고 온 자였다.
“큰일났습니다! 사우스 멤피스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살롱에 있던 사람들은 그게 진짜냐며 놀라워했다. 반면 시장이 있는 테이블은 놀라움이 아닌 허탈한 표정을 내비쳤다.
특히 요새 사령관 조지 스톤만은 잡아먹을 기세로 군인을 노려봤다.
‘이 병신 새끼. 내가 보고하지 말라고 그렇게 강조했는데.’
엿 먹이려 작정했는지 오자마자 그것도 큰소리로 폭동 소식을 전했다.
이렇게 되면 살롱에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봐서라도 뭔가 움직임을 보여야 했다.
“..... 자세히 보고해 봐.”
“옙! 백인 폭도들이 흑인들 거주지에서 살인, 방화, 폭행 등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계엄령!?”
조지 스톤맨은 물론 시장과 경찰국장까지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사령관인 내가 여기 있는데, 누가 게엄령을 선포했단 말이냐!”
“연방 보안관입니다!”
시장과 일행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조지 스톤맨은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부하를 쏘아봤다.
연방 보안관이 무슨 권한으로 군을 움직인단 말인가? 명백한 월권행위였다.
조지 스톤맨이 벌떡 일어나 분노를 터트리려 할 때. 거구의 사내가 술집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남자의 덩치보다 가슴에 번쩍거리는 배지에 시선이 쏠렸다.
쿵. 쿵.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술집 안에 큰 울림이 전해진다. 성큼성큼 테이블로 다가온 남자가 시장을 내려다봤다.
“연방 보안관 네이선 로어요. 지금 폭동이 일어났는데, 대체 여기서 뭣들 하는 겁니까?”
시장이 연방 보안관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나.
하지만 위협적인 로어의 덩치와 자신이 저지른 일이 있어 어깨는 자연 움츠러들었다.
“우, 우리도 방금 보고를 받았습니다.”
“뭐, 그건 그렇고. 나와 함께 폭동을 진압하러 갑시다. 이미 군이 나서긴 했지만, 여러분들이 나서야 진정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연방 보안관들만 죽어나게 생겼습니다.”
로어는 보안관들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겁박하듯 시장에게 얼굴을 들이 밀었다.
“자, 가시죠.”
모여있던 이들은 하나같이 찜찜한 얼굴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로어는 그들을 밖으로 데려가는 한 편, 군인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가서 이분들이 곧 도착할 거라고 부사령관에게 전해드려.”
“알겠습니다!”
조지 스톤만은 부하가 연방 보안관의 지시를 따르는 걸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당장 이걸 따지고 들 상황은 아니었다.
살롱 앞에는 마차 두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마부석에 앉은 자들은 핑커톤 탐정.
시장, 도시 기록관, 경찰국장, 요새 사령관이 줄줄이 나오는 걸 보며 내심 분노를 하고 있었다.
“어서들 타시고, 폭동 현장으로 가 봅시다. 내 동료들과 군인들이 어느정도 정리는 해두었을 테니까, 위험하진 않을 겁니다.”
로어는 시장 일행들을 안심시켜 마차에 태웠다.
그렇게 사우스 멤피스에 가까워질 즈음.
인적이 드문 곳에 이르러 마차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왜 갑자기 멈추는 거요?”
“저쪽에서 누가 오고 있습니다.”
“음?”
잠시 후.
한 무리가 달려오는데, 흑인으로 위장한 연방 보안관들이었다.
도시 기록관 존 크레이튼이 창문에 고개를 내밀어 그들이 오는 모습을 살펴 봤다.
이때.
철컥.
네이선 로어가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
“쓰레기 청소 시간이다.”
타앙!
총알은 WCBS가 사용했던 WS가 새겨진 금속 탄피. 곧이어 시장, 경찰국장, 요새 사령관에게도 방아쇠를 당겼다.
로어와 탐정들이 재빨리 이전에 죽은 WCBS 시체 두구를 마차 주변에 눕히고 각을 잡을 때.
흑인으로 위장한 보안관들이 합류했다.
“애들 많이 몰려 온다. 준비 해.”
조 짐 주니어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원들과 로어, 핑커톤 탐정들은 미리 봐둔 지형으로 숨어들었다. 그곳엔 급조한 참호가 파져 있었다.
잠시 후.
“죽여라! 사이클롭스의 심판을 받아라!”
KKK단과 폭도들, WCBS가 뒤섞여 마차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