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9화 (309/360)

#309 풀리지 않는 의문

무장한 흑인들을 추격했지만, 정작 폭도들이 발견한 건 총에 맞은 시체들. 그리고 그들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장내는 일대 혼란에 빠져들었다.

“감히 시장을 죽이다니!”

“흑인들이 미친 짓을 벌였다!”

횃불을 든 폭도들은 눈에 부릅뜨고 마차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반면 WCBS 대원들은 동료들의 시체를 두고 고심에 빠졌다.

평원에 있어야 할 시체를 누가 무슨 목적으로 옮겨둔 것일까.

그러고 보면 무장한 흑인들은 총을 쏘면 맞을 것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들을 여기까지 따라오게 했다.

이는 도주가 아니라 유인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우리에게 누명을 씌울 생각이다!’

음모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깨달은 순간.

타앙!

타앙!

총탄이 날아와 그들의 몸에 박히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WCBS 대원들이 썩은 짚단처럼 쓰러지자 폭도들도 공포에 휩싸였다.

“후퇴다, 후퇴! KKK단 형제들··· 컥!”

총탄은 횃불을 좌표 삼아 폭도들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땅에 떨어진 횃불들이 마른 풀에 불길을 놓아 표적을 환하게 밝혔다.

시체는 늘어 가고 연방 보안관과 핑커톤은 마지막 한 명이 쓰러질 때까지 방아쇠를 당겼다.

*

사우스 멤피스 폭동현장.

“현 시간부로 멤피스는 계엄령이 선포되어 군이 개입한다! 폭도들은 즉시 행동을 멈추고 무기를 내려놓아라! 저항하는 자는 연방에 대한 반란으로 간주, 즉결 처형하겠다!”

한스 부사령관은 무장한 군인 150명을 폭동 진화에 투입하고. 유색 부대의 흑인 군인들에게도 무기를 지급했다.

“군인들은 복수심으로 방아쇠를 당기지 말라! 지금은 폭도들을 해산시키는 게 우선이다!”

분노를 삼킨 흑인들은 한스 부사령관의 명령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도시로 진입했다.

폭도들은 총을 앞세워 몰려드는 군인들에게 돌과 병, 횃불을 집어 던지며 저항했다. 하지만 폭력에 휩싸인 광기는 차츰 옅어지고 이성이 돌아온 폭도들은 현장을 도망가기에 급급했다.

사우스 멤피스에 군인들이 폭동을 진압한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WCBS 대원들을 제거하던 막스는 어느 순간 골목에 몸을 숨긴 채 한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서둘러라! 절대 군인들에게 개틀링 기관총을 넘겨선 안 된다!”

교회 첨탑 아래, 존 알버트가 소리쳤다.

남부에서 만든 개틀링 기관총은 언뜻 보기에도 막스표 개틀링보다 무거워 보였다.

올리는 것도 상당한 노력이 들어갔을 터였다.

‘미련한 새끼들.’

딴에는 연방 보안관들이 나타나면 기관총으로 응사할 계획이었을 텐데. 고작 막스에게 몇 번 쏘고 이제는 철수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효율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미련함이었다.

첨탑 위, 한 명이 기관총을 밧줄로 묶고.

이를 교회 종을 걸어둔 고리와 연결.

마치 우물에서 양동이로 물을 퍼 올리고 내리는 것처럼, 개틀링을 아래로 내리려 했다.

“조심, 조심! 흔들리지 않게 꽉 잡아 새끼들아!”

“뻑뻑! 대체 다른 놈들은 왜 안 오는 거야!”

‘안 오는 게 아니라 못 오는 거지.’

30명이었던 WCBS 대원 중 개틀링 기관총을 철수하는 데 동원된 자들이 일곱.

사실상 이들이 유일한 생존자였다.

개틀링 기관총이 천천히 첨탑 아래로 내려올 즈음. 막스가 가방에서 뭔가를 뒤적거렸다.

안에서 동그란 쇳덩이 같은 걸 꺼냈는데, WCBS 대원 다섯을 제거하면서 획득한 수류탄이었다.

‘얼마나 위력적인지 볼까.’

팅.

스스스슷.

핀을 뽑자마자 불길한 진동이 느껴졌다.

식겁한 막스가 재빨리 적들을 향해 수류탄을 내던졌다.

‘3, 2, 1····!?’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록 반응이 없다.

한편 밧줄을 잡고 있던 WCBS 대원들은 자신들에게 데구르르 굴러온 수류탄과 허공에 매달린 개틀링 기관총을 번갈아 쳐다봤다.

“뭐해 병신들아! 튀어!”

존 알버트가 소리치자, 대원들이 일제히 밧줄을 놓고 몸을 피하려 했다. 이때 개틀링 기관총이 땅에 떨어짐과 동시에 뒤늦은 폭발이 일어났다.

쿵.

쾅!

위력은 막스가 만든 것에 절반.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뭉쳐있던 네 명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끄윽.”

바닥에 쓰러진 대원들이 신음을 흘리고, 폭발에 떠밀려 나간 존 알버트는 고개를 흔들며 충격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이때 첨탑 위에 있던 대원이 알버트 옆에 떨어졌다. 이마엔 구멍이 뚫려 꾸역꾸역 피를 쏟고 있었다.

“세상에, 10초 만에 터지면 폭발력이라도 좋던가. 대체 어떤 병신이 만든 거야?”

귀가 먹먹해진 탓에 존 알버트는 그 말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눈가에 아른거리는 타이탄이 사태의 원흉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너, 이 새끼···.”

처음부터 타이탄으로 위장하고 폭도들 틈에 섞여 있었지! 라는 말을 내뱉기도 전. 막스가 이마에 총구를 겨눈 탓에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공포에 지배당한 존 알버트의 몸이 떨려왔다.

이때 막스가 뒤집어 쓴 고깔모자를 벗었다.

드러난 얼굴을 확인한 알버트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SFBC 보스...!?’

입을 쩍벌린 알버트의 머리에 고깔모자가 씌워졌다. 직후 막스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기관총 잘 쓰마, 타이탄.”

탕!

존 알버트를 끝으로 폭동에 가담한 WCBS 대원 전원이 몰살당했다.

당초에 막스는 이들이 WCBS라는 걸 밝히고 그들의 영향력을 축소하려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효과가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젭 스튜어트가 대원들의 일탈로 몰아가고 선을 긋는다면? 연방 보안관들이 WCBS에 누명을 씌운다고 되레 남부인들을 선동한다면?

자칫 WCBS가 판을 키워 사건 조사에 뛰어들겠다며 생떼를 부릴 수도 있었다.

이는 시장, 도시 기록관, 경찰국장, 그리고 요새 사령관까지 제거한 막스에겐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해서 멤피스 폭동에서 WCBS 대원을 부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차라리 그들이 KKK단과 연결된 것처럼 꾸미는 게 이득이었다.

잠시 후.

폭발과 총성을 듣고 한스 부사령관이 군인 열 명을 이끌고 나타났다. 그는 땅에 박힌 기관총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서, 설마 폭동에 기관총까지 동원된겁니까?”

“보다시피. 그나저나, 부탁이 있는데 말야. 저 기관총을 마차에 실었으면 하거든.”

“알겠습니다! 너희는 당장 마차를 구해와.”

부사령관이 지시를 내리자 군인들은 십 분도 안 되어 마차를 가져왔다.

그 짐칸에 개틀링 기관총과 탄약을 실었다.

“빠르게 폭동을 진압한 건 모두 부사령관 덕분이야. 이왕 하는 거 뒤처리도 잘 해보라고.”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연방 보안관들을 찾으러 가야지. 폭도들에게 당했으면 큰일이잖아?”

“제가 부하들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막스는 크게 고개를 저었다.

“고맙지만, 여기 처리하려면 손 하나가 아쉬울 거야. 나 혼자서 충분해.”

“그럼 끝나고 뵙겠습니다!”

슬쩍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넨 막스는 마차를 몰아 거리를 지나갔다.

폭도들은 해산했지만, 건물은 여전히 불에 타고 있고. 거리엔 시체들이 너부러져 있었다.

그중엔 백인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원 역사에서 기록된 멤피스 폭동의 결과는 참혹하다.

흑인 46명 사망, 75명 부상, 100명이 넘는 흑인이 강도를 당하고 5명의 여성이 강간을 당했다.

흑인들이 거주하는 주택 91개, 그들이 다니는 4개의 교회, 8개의 학교가 불에 탔다.

반면 백인의 피해는 사망자 2명.

그중 한 명은 흑인과 같이 있다는 이유로 폭도들에게 살해된 백인이었다.

물론 막스는 이 수치를 전혀 알지 못한다.

멤피스 폭동에 관한 사전 지식도 없었다.

단순히 직접 보고 듣고 목격한 걸 토대로 행동 지침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 끝은 멤피스 폭동의 마지막 책임자를 처단하는 일이었다.

어느 순간 마차를 멈춰 세운 막스는 흑인들 시체를 짐칸에 실었는데. 그 수가 대략 열 구였다.

개틀링 기관총과 탄약, 시체까지 가득 실은 마차는 얼마 후 도심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향했다.

*

사무스 멤피스 북쪽.

멤피스 관리들과 요새 사령관이 죽은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

“우웩!”

한창 작업 중이던 핑커톤 탐정이 몸에 있는 걸 연신 게워냈다. 그는 오래전 땅에 묻힌 썩은 시체를 꺼내 마차에 싣던 중이었다.

“으웨에엑!”

“어우, 뭔 비위가 그렇게 약해.”

해골이나 다름없는 시체들을 연방 보안관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마차에 옮겼다. 하지만 핑커톤 탐정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이들이 파낸 시체들은 남북전쟁 당시 희생된 흑인들. 이곳 무덤은 이름도, 출신도 모르는 ‘Tombs of the Unknown Freeman(이름 없는 자유인들의 무덤)’이 매장된 곳이었다.

테네시주는 남북전쟁 중 게릴라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벌어진 곳이었다.

특히 빅스버그가 함락된 이후가 절정이었는데, 당시 게릴라 부대를 이끈 남부 장군은 테네시 연방의 요새를 탈환하며 흑인들에게 끔찍한 학살을 저지른 일이 있었다.

워낙 충격적이고 잔인한 방법을 동원해 흑인들을 죽였기 때문에, ‘미국 군대 역사상 가장 암울하고 슬픈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학살을 일으킨 남부 장군은 다름 아닌 네이선 베드포드 포레스트였다.

작업이 막 끝나고 숨을 돌릴 무렵.

마차 한 대가 접근했다.

덜커덩, 덜커덩.

느릿느릿 다가오는 마차는 달빛을 고스란히 받아 마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또렷했다.

경계심을 거둔 연방 보안관들과 탐정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고생하셨습니다, 보스. 폭동은요?”

“폭동을 끝나고 정리하는 중이야. 준비는?”

“끝났습니다.”

“그런데 포레스트가 있는 곳은 알아내셨습니까?”

수석 탐정 호기스가 물었다.

포레스트는 폭동 당일 아침부터 농장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위치를 파악하려 했지만 핑커톤 탐정 네명으론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막스는 알아낸 듯했다.

“여기서 멀지 않아. 그곳에 KKK단 핵심 인물들과 전부 모여있을 거야.”

WCBS 대원 다섯을 족쳐 얻어낸 정보다.

막스는 교차검증까지 거치 세 명에게서 동일한 위치를 알아냈다. 나름 확신을 갖고 있었다.

“장소도 알아냈으면, 바로 가죠!”

호기스가 마차에 오르려 하자 막스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무래도 핑커톤 탐정들은 도시로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예? 이번 일은 안 끼워주시는 겁니까?”

지금까지 개고생했는데 빠지라고?

호기스와 탐정들의 얼굴에 섭섭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벤자민을 발견했다.”

순간 탐정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WCBS를 감시하던 동료 탐정의 소식이 끊기더니, 결국 놈들에게 당한 모양이었다.

“...... 벤자민은 어디에 있습니까?”

“개틀링 기관총이 설치된 교회 첨탑 부근. 켈린 잡화점 뒤뜰에 숨겨뒀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탐정들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했다.

길거리에 죽은 채로 있었다면 폭도라는 누명을 썼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폭동 중에 불에 타거나 시신이 훼손될 수도 있었고.

오랜시간 동고동락한 동료의 죽음.

그를 배려해준 막스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핑커톤 탐정들은 도심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우리도 출발할까.”

목적지는 멤피스에서 동쪽으로 10km 떨어진 곳.

멤피스 KKK단 비밀 지부로 사용되는 장소였다.

시간은 새벽 3시.

자정을 넘었지만, 긴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적당히 피곤해진 산초는 마차에 짐들이 많아 속도가 느리다며 투덜거렸다.

반면 막스는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게 마부석에 앉아 별을 보며 입을 뗐다.

“어차피 빨리 도착해도 해가 뜨면 시작할 거야.”

“왜요? 후다닥 끝내고 자야죠?”

“죽으면 원없이 잘 텐데, 그렇게 해줘?”

“.....”

입을 닫은 산초를 보며 막스가 피식거렸다.

“이 난장판을 벌여놓고 잠자다 죽으면 너무 행복한 죽음 아니냐? 정신이 멀쩡할 때 죽어야지.”

오싹. 설마 저런 생각을 할 줄이야.

산초가 슬그머니 막스와 거리를 두었다.

다른 대원들도 질린 표정을 지었다.

한편으론 보스와 같은 편이라는 데에 큰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해가 빼꼼히 고개를 쳐들 즈음.

평원 한가운데 지어진 오두막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 세워진 천막 캠프는 폭동에 동원된 KKK단들의 숙소로 보인다. 짐작하건데 놈들은 폭동을 하루 이틀로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금부터 세팅 들어간다.”

막스의 지시가 떨어지자, 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든 준비를 끝낸 뒤엔 땅에 누워 표적들을 응시했다.

“나무로 지어진 오두막에, 천막들이라. 총알이 아주 잘 뚫리겠구만.”

“오늘 드래곤 여섯 마리, 하늘로 올라가나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예전부터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거든.”

“호오, 보스도 모르는 게 있습니까?”

대원들의 시선이 막스에게 쏠렸다.

“왜 대마법사가 드래곤보다 센 거냐?”

“.....”

“인간 주제에 포레스트가 왜 드래곤 위에 있냐고. 걔 10 서클이야?”

서클이 뭔지 몰라도, 뭔가 이상하긴 하다.

대원들의 머릿속에도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렇게 대마법사의 기준, 능력에 관한 토론이 벌어지는 사이. 마침내 태양이 하늘로 떠올라 대지를 환히 비추었다.

“보스, 솔직히 말해봐요. 우리 잠 못 자게 하려고 노답 질문 던진 거죠?”

“닥치고. 고깔모자 나왔다.”

가장 먼저 잠에서 깬 자가 오두막을 나와 힘차게 기지개를 켰다.

“하음. 상쾌한 아침이구만!”

온몸을 활처럼 쫙쫙 펴 스트레칭을 하는 사이, 천막에서도 하나둘 고깔모자를 쓴 놈들이 기어 나왔다.

"희망찬 아침이 밝았다! 사이클롭스들은 식사를 준비하라!"

모닥불을 피우고, 아침 준비로 부산할 때.

네이선 로어는 개틀링 기관총 손잡이에 손을 뻗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