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총을 꺼내야 협박이지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걸 보면, 폭동이 밤새 계속되었나 봅니다.”
아침 일찍 KKK단 설립자들이 캠프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눴다.
“최소 사흘은 이어가야 할 텐데, 첫날에 너무 힘을 빼는군요.”
“뭐, 임펙트만 있으면 한 번에 초토화하는 것도 나쁘진 않죠. 이번 폭동을 계기로 남부 공화당이 흔들리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니까요.”
“공화당은 둘째 문제고, WCBS에서 연방 보안관을 몇 명이나 제거했는지가 관건입니다.”
뒤늦게 오두막에서 나온 KKK단의 수장, 대마법사 네이선 베드포드 포레스트가 끼어들었다.
그의 등장에 드래곤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개틀링까지 동원했으니, 지금쯤 벌집이 돼서 굴러다니지 않겠습니까?”
“뭐가 됐든. 어서 빨리 소식을 듣고 싶군요. 그동안 당한 걸 생각하면 잠도 안 온다니까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반격은 시작된 거니까. 남부에서 설치던 연방 보안관들이 곧 씨가 마를····!!”
푸슝.
포레스트가 말을 끝내기도 전, 옆에 있던 드래곤 리차드 리드의 가슴에 총알이 박혔다.
뒤이어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 소리가 들려왔다.
투드드드드드.
리차드 리드에 이어, 존 레스터, 프랭크 맥코드, 존 케네디가 잇달아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총탄이 박힐 때마다 뒤로 밀려 오두막 벽에 부딪혔다.
포레스트는 본능적으로 몸을 납작 엎드렸다.
살아 남은 드래곤들 역시 남부의 베테랑 장교.
땅에 배를 붙인 다음 기어가 엄폐물을 찾았다.
기관총 사수 네이선 로어는 서 있는 표적들이 보이지 않자, 땅을 긁어내듯 바닥으로 난사했다.
천막에 구멍이 송송 뚫리고, 식사를 준비하던 냄비가 찌그러지며 튕겨 나갔다. 총탄은 불 때던 장작을 헤집고, 불꽃과 연기가 퍼져나갔다.
노련한 군인들은 땅에 엎드려 총알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멋모르고 KKK단에 가입한 혈기 왕성한 청년들은 도망가느라 이리저리 날뛰다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네이선 로어가 개틀링 기관총으로 적진을 초토화하는 동안 막스와 연방 보안관들을 오두막에 접근했다. 그리고.
드르르르륵.
약 3분가량을 쏟아낸 뒤에야 기관총 탄약이 바닥을 드러냈다. 분당 400발을 계산하면 대략 1,200발을 쏟아낸 셈이었다.
평원에 찾아든 고요함.
이제 끝났나 싶어, 하나둘 땅에 배를 깔고 있던 자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서로 눈치를 살피고 이내 몸을 일으켜 어딘가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타이밍에.
슈우욱, 푸슛.
뚜쿵.
뚜쿵.
사방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소리가 정확히 도망자들의 뒤통수를 날려버렸다.
그 모습을 본 포레스트는 이를 악물고 땅바닥을 기어 다녔다. 오두막 뒤로 이동한 뒤 자리를 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모습이 막스의 스코프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대마법사든, 드래곤이든.
막스는 움직이면 보이는 족족 방아쇠를 당겼다.
슈우욱, 퍽.
잘 익은 수박에 박히듯 총탄이 머리통에 꽂힌다.
몸을 꿈틀거린 포레스트는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막스는 타겟을 바꿔 바닥에 누워있는 놈들을 조준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보이면 방아쇠를 당겼다.
개틀링 기관총으로 시작한 공격은 기습에 가까웠지만 연방 보안관들은 스코프만 움직일 뿐, 오두막에 다가가지 않았다.
간혹 들려오는 총성은 인내력이 바닥난 놈들을 향한 것으로, 사냥은 이렇듯 천천히 진행되었다.
그렇게 세 시간을 집요하게 저격한 끝에 멤피스 KKK단 비밀지부의 대학살은 끝이 났다.
마법사와 드래곤 여섯, 타이탄 넷, 사이클롭스들이 32명이 제거되었는데. 사실상 KKK단 핵심 인물이 전부 몰살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가 포레스트냐?”
“여기 같은데요.”
막스의 질문에 한 대원이 머리에 구멍 난 시신을 가리켰다. 죽는 게 억울했는지 포레스트는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잠시 턱을 매만진 막스가 대수롭지 않게 말을 툭 내뱉었다.
“일단 작업이나 하자.”
대원들은 오두막 주변의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이름 없는 자유인의 무덤’에서 가져온 시체들을 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무언가를 발견한 듯 조 짐 주니어가 소리쳤다.
“보스! 여기 땅이 좀 이상한대요?”
막스와 대원들이 우르르 몰려가자, 누군가를 묻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조심히 파봐.”
삽자루를 든 대원들이 땅을 파내자, 시체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 여자, 아이까지 십여 구의 흑인들 시체가 땅에 묻혀 있었다.
“진짜 개자식들이네. 하.”
“...... 굳이 무덤을 파서 시체를 가져올 필요가 없었네요.”
대원들은 먹먹한 마음으로 KKK단에게 처형당한 흑인 가족들을 바라봤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막스가 한 대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구덩이를 파고, 무덤에서 파낸 시체를 묻자. 폭동 현장에서 데려온 시체들은 대충 의식을 치른 것처럼 만들고.”
막스가 노리는 건 두 가지.
포레스트가 과거에도 흑인들을 학살했고, 폭동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흑인들을 납치해 처형한 것으로 위장하는 것이었다.
남부 전쟁 영웅을 제거하는 데는 그만한 정당성과 명분이 따라야 한다. 링컨 대통령의 부담도 줄이고 후폭풍을 줄이려면 이 정도 번거로움은 감수해야 했다.
물론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없던 영웅도 만들어내려는 게 지금 남부인들의 심정이었으니까.
*
미 전역에 멤피스 폭동에 관한 기사가 뿌려졌다.
그런데 여기서도 남부와 북부 신문의 온도 차는 극명했다.
북부는 폭동의 주체를 백인들로 규정.
경찰과 소방관, 행정관료들, KKK단이 만들어낸 희대의 참극을 집중 조명했다.
반면 남부는 폭동의 주체를 흑인으로 규정했다.
증거로 객관적인 숫자를 제시했다.
흑인 32명 사망, 72명 부상.
반면 백인은 127명 사망, 부상자 23명.
충격적이게도 폭동을 일으킨 백인들의 피해가 상상 이상으로 컸다. 가뜩이나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남부인들에겐 음모론의 불씨로 작용했다.
[저항하지 않은 흑인들이 127명의 백인을 죽였다? 이걸 믿는다면, 당신은 위선 가득한 북부인입니다.]
남부 언론들은 멤피스 폭동을 연방의 음모로 몰아가려 했다.
연방 보안관들의 개입과 자유인 사무국과 교회, 학교, 저택 등 흑인들만 이용하는 건물 43채가 불에 탔음에도 남부 언론들은 선동을 멈추지 않았다.
멤피스 시청.
사건이 터지자마자 전국에서 기자들과 정치인들이 몰려들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포레스트와 시장, 도시 기록관의 죽음을 해명하라며 연방 보안관들을 재판에 세우려 하고, 공화당 의원은 강력하게 반발하며 공세를 퍼부었다.
“대체 연방 보안관들이 뭐하러 존 파크 시장을 살해한단 말입니까? 시체에서 빼낸 총알은 이미 폭도들이 사용한 것들로 밝혀졌는데 억지좀 작작 부리세요!”
“그러니까 대체 왜 폭도들이 시장을 죽이냔 말입니다! 연방 보안관이 야밤에 시장을 마차에 태워간 것부터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폭동이 일어나는 동안 시장이 술집에 있었던 건 이해가 갑니까? 연방 보안관들에게 칭찬은 못 할망정 의심을 하다니, 정신 좀 차리세요!”
“뭐라고? 정신? 당신 말 다했어!?”
어찌 됐든, 시장의 죽음은 폭동을 진압하러 가던 중, 이를 막으려는 폭도들에 의해 죽은 것으로 결론 났다.
술집에서 목격한 자들의 진술과 모든 정황이 이를 뒷받침했다.
게다가 포레스트는 어떠한가?
그가 이끈 KKK단은 비밀 지부에서 사이한 의식을 한답시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흑인들을 처형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시체들이 명백한 증거였고, 민주당 의원조차 쉴드 불가능한 흉악 범죄였다.
한편 공화당 의원들은 존 브라운 대통령 경선 때문에 줄곧 막스와 안면이 있는 자들이었다.
물론 이런 관계를 떠나, 연방 보안관들을 적극 비호하는 건 막스의 한 가지 제안 때문이었다.
- 차라리 이번 기회에 수정 헌법 14조까지 밀어붙이는 건 어떻습니까?
존 브라운이 수정 헌법 13조로 노예해방을 이루었다면, 급진적인 공화당 의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흑인들의 완전한 시민권을 이루고자 했다.
막스는 멤피스 폭동을 적절한 시기로 봤다.
- 백인이든 흑인이든. 이전에 노예였든 아니든.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귀화했으며 외세에 충성하지 않는 사람은 미국 시민이어야 합니다.
- 확실히 지금이라면 반발을 무마할 수 있겠군.
그리고 실제로 멤피스 폭동으로 촉발된 수정 헌법 14조는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남부 재건 기간 링컨이 온정적인 태도로 그들을 달래주었다면, 막스는 거침없는 폭력으로 남부의 폐단을 제거해 나아갔다.
연방 보안관 임명 당시, 막스가 링컨에게 제안한 자신의 역할과도 벗어나지 않았다.
멤피스 도심의 아벨 호텔.
조 짐 주니어와 산초, 네이선 로어가 주도적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동안 막스는 뒤로 빠져 있었다.
호텔 로비에서 신문을 읽던 중 한 대목에서 막스의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폭동에 동원된 개틀링 기관총은 남북전쟁 당시 남부에서 제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이를 도시로 반입한 것은 WCBS 대원들.
하지만 인터뷰에 응한 젭 스튜어트 사장은 폭동에 참여한 건 누구의 지시도 아닌 대원들의 개인 일탈이라며 선을 그었다.]
‘얍삽하긴.’
막스는 WCBS를 이번 사건에 끼워주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개틀링 기관총 출처를 조사하던 중 WCBS의 개입이 드러나고, 막스의 예상대로 젭 스튜어트는 폭도들과 분명한 선을 그었다.
속으로야 열불이 나겠지만, 조직의 수장으로서 당연한 조처였다. 젭 스튜어트는 30명의 대원을 잃고도 분노를 삼켜야 했다.
‘홀리데이에게 위안이 되었으려나.’
막스가 담담하게 신문을 훑어갈 때.
호텔 입구가 소란스러웠다.
고개를 돌리자, 백인 흑인이 뒤섞인 무리가 로비로 들어섰는데 자유인 사무국장 런클과 사회운동가들이었다.
밖에는 들어오지 못한 흑인들이 수백, 아니 수천 명이 모여있었다.
이때 대원이 다가와 막스에게 말을 건네왔다.
“보스, 자유인 사무국에서 감사를 전하고 싶답니다.”
“......”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막스는 스카프를 내리고 그들을 맞이했다.
“흑인들을 버리지 않고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막스 조 보안관님.”
“너무 희생이 컸습니다. 감사 인사를 받기엔 오히려 마음이 무겁기만 하군요.”
멤피스 흑인 사회는 폭동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연방은 흑인들을 위해 100만 달러의 예산을 편성했다. 이 돈은 남부 각 지역의 자유인 사무국에 지급되고, 이들은 초기 재건 기관이 되어 피난처와 식량, 의복, 연료, 그리고 학교를 설립해 흑인들의 자립을 돕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폭동으로 멤피스는 10만 달러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불에 탄 건물과 빼앗긴 재산들을 복구하기엔 까마득한 일이었다.
하지만 막스는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 두었다.
멤피스 최고의 갑부.
은행, 부동산, 면화 및 식료품, 철도 등 돈 되는 일은 전부 연관된 사업가 나폴레옹 힐이 거액의 후원금을 내기로 했다.
“나, 나폴레옹 힐이 왜요?”
“뭐, 이번 폭동이 안타까웠던 모양이지요.”
“이상하군요. 나폴레옹 힐은 흑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앞으론 좋아할 겁니다.”
막스가 이렇듯 확신하는 이유가 있었는데.
연방 보안관은 사건을 수습하는 한편, WCBS를 고용했던 나폴레옹 힐을 찾아가 조사를 벌였다.
그자는 이번 폭동과 관련해 시장, 포레스트, 도시 기록관 존 크레이튼과 서신을 주고받았다.
증거를 확보한 막스는 곧바로 나폴레옹 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협상에 들어갔다.
- 저, 저는 WCBS 대원들만 내줬지, 이번 폭동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 그자들이 폭동의 주범인데 상관이 없다고?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엄밀히 따지면 나폴레옹 힐은 폭동에 동조하긴 했지만 직접 행동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연방 보안관이 곧 법이다.
동조한 것만으로 나폴레옹 힐을 재판대에 세울 수 있었다.
- 복구 기금으로 10만 달러. 그게 네 죄를 속죄하는 길이다.
- 이건 누가 봐도 협박 아닙니까!?
- 총을 꺼내야 협박이지. 이왕 그렇게 생각하는 거 포레스트 옆에 나란히 묻어줘?
- ......
재산이 많다고 해도, 10만 달러를 선뜻 내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폭동을 묵인하고 마음으로 응원한 것치곤 비싼 대가였다.
사업가답게 나폴레옹 힐의 머리는 비상했다.
그는 막스가 연방 보안관 이전에 콜로라도를 지배하는 사업가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 좋습니다. 까짓거 10만 달러를 기부하죠. 대신 저와 앞으로 손을 잡는 건 어떻습니까? 솔직히 전 노예나 흑인 문제는 관심도 없거든요. 남북전쟁에서 전 중립을 지켰습니다.
- 호, 이 상황에서 나랑 딜을 하는 거야?
- 생각보다 저도 이것저것 하는 게 많거든요. 분명 손을 잡으면 손해는 안 볼 겁니다.
- 흠. 그럼 10만 달러는 앞으로의 관계를 위한 투자 겸 흑인들을 위한 자선기금으로 생각해도 되는 건가?
- 제가 원하는 게 바로 그겁니다.
- 콜.
막스 역시 사업가의 생리를 알기 때문에 협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욱이 사업가로서 나폴레옹 힐은 이용가치가 있었다. 미시시피강 무역의 중심지인 멤피스는 동부와 서부, 남과 북의 중심이었으니까.
폭동으로 인한 피해는 금전 치유로.
가족을 잃은 슬픔은 멤피스시 차원에서 ‘이름 없는 자유인의 묘지’에 기념비를 설치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폭동이 수습되는 동안 막스는 호텔 로비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사이 나폴레옹 힐은 뻔질나게 찾아와 사업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2주간의 시간이 흘러가고, 로비에서 신문을 읽던 막스의 눈이 반짝였다.
[올리버 윈체스터, 헨리 라이플 액션을 개량한 라이플 선보여.]
건메탈이라 불리는 청동과 황동의 합금.
때문에 ‘옐로우 보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 라이플은 방아쇠 레버를 내려 볼트를 후퇴, 장전과 탄피를 빼내는 연속 사이클 방식을 채택했다.
이름하여 서부를 평정한 윈체스터 라이플.
그 역사적인 첫 모델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