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2화 (312/360)

#312 또다른 레인저스들

호텔 앞.

노인은 마차에서 덩그러니 상자를 내려놓고 사라졌다.

네이선 로어가 쇠지렛대로 나무 상자를 열자 구겨진 신문지 틈으로 노란 금속이 번쩍거렸다.

“이게 윈체스터 라이플이군요.”

“나정도 되니까 방금 출시한 신제품을 이렇게 빨리 받아보는 거야.”

“방금이라니, 한 2주 된 거 아닙니까?”

“따지냐?”

어찌 됐든, 호레이스 스미스는 윈체스터 라이플 열 정과 다량의 탄약을 보내왔다.

막스는 라이플 한정과 천 발의 총알을 챙겼다.

“아니!? 대체 몇 명을 죽이려고요?”

막스가 코웃음 치자 대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라이플과 탄약을 챙겼다. 대충 계산해보면 막스를 빼고 각자 400발의 총알이 분배되었다.

“각자 짐 정리하고 30분 내로 모여.”

“바로 떠납니까?”

“뭐, 여기서 볼일 더 있어?”

“아뇨.”

잠시 후.

호텔에 재집결한 대원들을 이끌고 막스는 미시시피강 나루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한적한 곳에 이르러선 갑자기 말을 멈춰 세웠다.

“여기가 적당하겠다.”

“...... 뭘요?”

“뭐긴 뭐야. 새로운 총이 생겼으면 뭘 해야돼?”

말에서 내린 막스는 천으로 둘둘 만 윈체스터 라이플을 집어 들었다.

천을 풀러 여유있게 총의 마감상태까지 꼼꼼하게 살펴봤다.

총열은 강철 프레임으로 제작되었고, ‘옐로우 보이’라는 별칭답게 총몸은 구리 합금으로 만들어져 금처럼 반짝거렸다.

기존 헨리 라이플이 전장식인데 반해 윈체스터는 우측 총몸 프레임의 슬라이딩 게이트로 총알을 밀어 넣는 방식이라 장전이 편리해졌다.

막스가 장전을 위해 카트리지에서 총알을 꺼냈다.

40구경의 스미스앤 웨슨에서 만든 풀메탈재킷 센터파이어.

이를 슬라이딩 게이트에 밀어 넣자 스프링이 밀리며 총열 밑 길쭉한 약실을 채워갔다.

그렇게 들어간 총알이 15발.

우드로 만들어진 개머리판과 총열 덮개.

어깨에 닿는 부분은 총몸과 같은 구리 합금으로 덧대었다. 이를 어깨에 견착한 뒤 눈으로는 총몸 위에 있는 가늠쇠를 조준.

방아쇠울과 연결된 레버에 손가락을 끼워 아래로 당겼다.

철컥.

총몸 위의 브리치가 열림과 동시에 해머가 뒤로 젖혀지고, 약실에서 총알이 위로 밀려 올라온다.

철컥.

다시 레버를 당기자 브리치가 닫히고 해머가 전진하여 코킹이 완료되었다.

헨리 라이플은 남북전쟁 이전에 만들어졌지만, 정작 군에 보급된 건 전쟁 후반에 들어서였다.

몇몇 대원들은 직접 사용해보기도 했는데, 막스가 레버 액션 라이플을 다루는 건 처음 보는 광경. 그래서인지 지켜보는 눈빛들이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표적은 주변에 있는 나무들.

막스가 그중 하나를 조준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탕!

곧바로 레버를 아래로 당겨 탄피를 위로 배출하고, 다시 코킹.

탕!

철컥.

탕!

막스는 갈수록 레버를 당겨 코킹하는 속도를 높였다. 그 동작을 지켜보던 대원들의 동공이 점차 확장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레버를 당겨 장전과 격발을 반복.

윈체스터 라이플로 미친 속사를 선보였다.

대원들이 입을 쩍 벌어질 때, 마지막 탄피가 솟구치며 사격은 끝이 났다.

‘아쉬운 점이 있긴 해도 역시 물건은 물건이다.’

막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라이플에 다시금 총알을 채워넣었다.

“빠르고 정확한 속사가 가능할 때까지, 죽어라 연습해라. 나도 그럴 거니까.”

“옛썰!”

“그럼 나루터로 가자.”

“아니, 혼자 쏘고 가는게 어딨어요!?”

“연습하라면서요!”

잠시 후.

탕! 탕! 탕!

숲에서 잇단 총성이 들리고, 인근을 지나가던 누군가는 다시 폭동이 벌어졌다며 도시로 달려갔다. 하지만 사람들이 몰려왔을 땐 흔적이 사라진 뒤였다.

*

멤피스 서쪽 나루터.

배를 기다리던 백인과 흑인들 사이에 사소한 시비가 벌어졌다.

“기분나쁘게 왜 쳐다보냐고, 새끼들아!”

“대체 누가 누굴 봤다고 그러는 겁니까!”

폭동은 끝났지만, 백인과 흑인 모두 앙금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루터에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인종 간 시비가 벌어지곤 했다.

그런데 이때.

한 무리가 말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왔다.

다가올수록 모습이 또렷해졌는데,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게 갱단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불길한 모습이었다.

“워워.”

잔뜩 먼지를 일으키며 나룻터에 도착한 일행들이 고삐를 잡아 말을 멈춰 세우고. 가까이서 무장 상태를 확인한 사람들은 입을 닫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들의 등장만으로 흑백시비는 일단락 되었다.

막스와 보안관들은 장내를 스윽 훑어본 뒤, 말에서 내려 옷을 털던 때.

마침 나룻터로 배가 도착했다.

“시간을 아주 기가 막히게 맞췄구만.”

막스와 일행들은 말 고삐를 잡고 하나둘 배에 올랐다.

미시시피강의 폭은 대략 1km.

막스는 갑판 벽에 등을 기대고 나룻터 가판대에서 산 신문을 펼쳤다.

멤피스 폭동에 관한 건 대충 훑고, 다음 장을 펼치자 텍사스에 관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텍사스를 떠돌아다니는 남부 연합의 망령들.]

기사 내용은 한때 남부 연합의 게릴라 조직이었다가 지금은 갱단이 되어 버린 이야기였다.

물론 다른 남부에도 비슷한 갱단들은 넘쳐난다.

다만 텍사스가 다른 점은 갱단들이 레인저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는 것이다.

이는 남부 연합이 레인저스라는 이름으로 게릴라 조직을 운용한 데에 기인했다.

‘텍사스 레인저스도 이들에게 당했겠지.’

눈을 찡그린 막스의 시선이 다음 기사를 향했다.

[텍사스 목축업자의 위대한 도전.

몇 개월 전 용감한 사업가 찰스 굿나잇과 올리버 러빙이 뉴멕시코의 포트 섬너 부대에 2,000마리의 소떼를 납품했다.

텍사스 벌크냅에서 출발한 이 여정은 무려 500마일(805km). 수년 전 콜로라도 준투로 1만 마리의 소떼가 이동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기사는 남북전쟁 이후 대규모 소떼 이동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로 두 용감한 사업가가 벌인 일은 텍사스 목축업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다.

[본 기자는 남북전쟁 기간 텍사스 롱혼의 개체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짧게 요약해보면 사람들이 소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동부로 향하는 수출길이 막힌 게 원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소가 넘쳐나는 텍사스엔 두당 4달러에 불과했고. 이에 찰스 굿나잇과 올리버 러빙은 값을 비싸게 받을 수 있는 곳까지 소떼를 몰고 가는 데 성공. 엄청난 이익을 남겼다.

앉아서 넋두리할 시간에 수요가 필요한 곳으로 직접 공급하라.

이같은 발상의 전환은 주변 텍사스 목장주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한 가지 사례가 성공하면 따라 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마련이니까.

막스가 턱을 매만지며 기사를 읽어갈 때.

네이선 로어와 백인들 사이에 시비가 벌어졌다.

“야,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예?”

막스한테나 고분고분하지 로어 역시 과거엔 동부 뒷골목을 전전하던 때가 있었다.

스스로 밝히길 별명이 ‘크레이지 베어 로어’였다고 했다.

“아까부터 기분 나쁘게 힐끔거리던데?”

“제, 제가요? 전혀 아닙니다.”

“뭘 아니야. 한 열 번은 눈을 마주쳤구만.”

백인들은 흑인에게 시비를 걸었던 무리.

하지만 근육질의 네이선 로어 앞에선 잔뜩 움츠린 채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흑인들은 내심 고소함을 느꼈지만, 모른 척 강만 응시했다.

성큼성큼 백인들에게 다가간 로어가 위에서 내려봤다.

단순히 쳐다본 게 문제는 아니었다.

“니들 아이리쉬지. 멤피스 폭동 때 뭐했어?”

“...... 뭘 하긴요? 집에서 잠잤죠.”

“개소리하네. 딱 보니까 폭동에 참가했구만. 니들 폭도였지, 요 머더 뻐커!?”

“절대 아닙니다!”

“그럼 그 가방은 뭐야? 폭동 때문에 일자리 잃고 멤피스 떠나는거잖아, 새끼들아.”

네이선 로어의 말에 막스는 신문에서 눈을 떼 백인 남자를 훑어봤다.

이 타이밍에 여행 가방 들고 멤피스를 떠난다? 그것도 아일랜드인이?

백인들의 낯빛이 변하는 거로 봐선 로어의 추리는 꽤 신빙성이 있었다.

로어의 추궁이 이어지자 대원들도 가세해 백인들을 둘러쌌다.

“이 새끼들 이거, 폭도들이 확실하구먼.”

“그래서 니들 어디로 도망가냐?”

“도, 도망이라니요? 그냥 일자리 찾아서 텍사스로 가는 건데요.”

“호오, 거기에 무슨 일자리가 있는데?”

“뭐, 목장에서 일하는 거죠···.”

한 남자가 말끝을 흐렸다.

턱을 긁적거리던 막스는 다시 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기사 말미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텍사스 롱혼의 개체 수가 대략 600만 마리로 추정되는 가운데.

목장 수 역시 가파르게 증가했다.

하지만 정작 소떼들을 관리할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한 목장주가 본 기자에게 말하길.

- 과거엔 흑인과 히스패닉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샌 우리 같은 백인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에요. 이게 또, 소떼 몰다 저녁에 마시는 커피 한잔이 기가 막히거든요. 하늘에 별은 또 어떻고요. 뭐랄까, 상남자들에겐 꿈과 모험이 가득한 직업이라고 할 수 있죠.

황야를 누비며 소떼를 모는 낭만을 원한다면.

전쟁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남부에서 일자리를 찾기보다, 조금만 고개를 서쪽으로 돌려보는 건 어떨까?

헤이, 카우보이! 당신도 될 수 있다고!]

막스는 다시금 보안관들에게 포위된 백인들을 쳐다봤다.

‘바야흐로 카우보이들의 시대가 도래했군.’

폭동으로 직장을 잃은 아일랜드인들과 남부의 패잔병들이 카우보이가 되기 위해 거친 텍사스로 향하고 있었다.

미시시피강 건너편은 아칸소주 웨스트 멤피스.

배에서 내린 로어는 서둘러 나루터를 빠져나가려는 백인들을 흘겨봤다.

“텍사스든 어디든. 또 한 번 폭동 일으키면 그땐 뒈질줄 알아라.”

“아, 진짜. 우리 폭도 아니라니까요.”

“아니긴 뭘 아냐.”

‘이새끼들 대체 뭐냐고. 지들이 무슨 보안관이야 뭐야?’

탄식을 내뱉은 백인 청년들은 서둘러 나루터를 빠져나갔다. 로어가 그 뒷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시자 막스가 고개를 절레 저었다.

“로어, 너 그러다 일찍 죽는다. 적당히 해.”

“옙!”

“가자.”

막스와 일행들은 말머리를 서쪽으로 틀어 천천히 속도를 높였다.

아칸소주에서 텍사스까진 대략 500km.

아쉽게도 핑커톤은 텍사스와 아칸소에 지부를 설치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평원을 가로지르는 동안 막스는 마을에 들러 텍사스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

*

아칸소주 경계와 인접한 텍사스주 퀸시티.

시티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마을 인구는 고작해야 100명. 마을 중심을 질주하는 무리는 사람들의 불평따윈 무시한 채 속도를 멈추지 않았다.

드드드드.

히이이잉!

땅이 울리고 잔뜩 먼지가 피워오른다.

이들이 멈춘 곳은 라메스 살롱.

의자에 몸을 묻은 채 한가로이 잠자고 있던 바운서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무장한 자들의 가슴에 달린 배지를 보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망할 레인저스들.’

정확히는 텍사스 레인저스와는 다른 인디펜던트 레인저스(Independent Rangers)라는 갱단이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 의회는 파르티잔 레인저 법(Partisan Rangers Act)을 발동해 게릴라를 모집했는데. 인디펜던트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전쟁은 끝이 나고, 로버트 리 장군이 항복한 순간 사실상 파르티잔 레인저 법은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재 존재하는 레인저스들은 이름만 유지할 뿐, 사실상 변질된 무법자들로 구성된 갱단들이었다.

바운서가 미간을 찡그리자, 선두에 있던 리더가 씹던 담배를 뱉은 뒤 말을 내뱉었다.

“뒈지기 싫으면 꺼져.”

리더의 말과 함께 바운서의 눈이 술집 안으로 향한다. 내부에선 오리지널 텍사스 레인저스 대원 셋이 적들과 맞서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 사장한테 또 된통 깨지겠구나.’

파손되는 부분이 적기만을 바랄 뿐, 혼자서 이 싸움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앞으로의 상황을 짐작한 바운서는 입맛을 다시며 천천히 살롱에서 몸을 피했다.

바운서가 사라지자, 말에서 내린 레인저스들이 하나둘 총기를 꺼내 든다.

라이플을 앞세운 리더가 술집을 향해 소리쳤다.

“텍사스에서 레인저스는 오로지 우리 뿐이다!”

“미친 새끼들! 정신차려 인마! 전쟁은 끝났다고!”

“노노! 우리의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철컥.

탕!

탕!

20명가량의 인디펜던트 레인저스 대원들이 살롱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나무로 지어진 목조 건물은 방패로는 최악이었다.

유리창이 깨지고 파편들이 튀고 구멍이 뚫렸다.

안에 있던 텍사스 레인저스 대원은 제대로 된 응사도 못한 채 바닥에 엎드려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바닥에서 울림이 전해진다.

‘누가 온다!’

적들도 울림을 느꼈는지 총성이 멈추었다.

인디펜던트 레인저스들은 술집이 아닌 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신들을 향한 채 질주하는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군이냐, 적이냐.’

이를 판단하기도 전.

빛에 무언가가 반짝이더니 일제히 총구들이 자신들을 향한다.

기겁한 갱단원들이 총을 드는 때.

탕!

선두에 있던 자의 손이 빠르게 레버를 당겨 코킹. 동시에 열 명의 보안관이 쏟아내는 총탄들이 인디펜던트 레인저스들의 몸에 박혔다.

공식적인 윈체스터 라이플의 첫 총격전이 텍사스 퀸시티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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