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스폐샬 포스는 마음과 정신에서 나온다
텍사스 동부의 평원을 질주하는 두 집단.
도망가는 자와 쫓는 자들의 추격전은 두 시간이나 지속되었다.
두드드드드드.
선두에 있는 자가 손을 들자 지축을 울리는 진동이 잦아든다.
인디펜더트 레인저스를 이끄는 리더들이 추격을 중단시킨 컬렌 베이커에게 모여들었다.
수평적인 관계지만 조금은 컬렌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거리가 좁혀지기는커녕, 더 벌어져서 멈춘거야. 이 이상의 추격은 의미가 없잖아?”
“차라리 추격조를 따로 편성하는 게 어때?”
“이대로 놓치면 두고두고 화근이 될 거라고.”
리더들의 말에 컬렌 베이커가 고개를 저었다.
“바운서의 말이 사실이라면, 놈은 북부 총사령관일 가능성이 커. 추격조를 보내봐야 몰살당할 게 빤하지.”
사실상 놈은 퀸시티에서 20명의 레인저스 대원을 전멸시켜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해서 컬렌과 리더들은 쪽수로 밀어붙이려 했는데, 간발의 차이로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서 인원을 쪼갠다?’
같은 일만 반복될 뿐이다.
컬렌은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다들 한 번쯤은 그 새끼한테 당해봤잖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뒤통수친다는 거.”
서부지역 전투만 보더라도 미주리주 윌슨 크릭, 텍사스 탈환, 콜로라도 공성전, 켄터키 벨몬트, 테네시 피츠버그 랜딩. 그중 하이라이트는 상관이었던 남부 연합 서부 사령관과 군단장을 한 번에 날려버린 지휘막사 폭발 사건.
남부의 군인이라면 직간접적으로 막스에게 당한 경험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동양인 새끼가 총사령관까지 올라간 걸 보면 운은 더럽게 좋다니까.”
“이건 전부 병신같은 바운서 때문이야. 9시까진 붙잡아놓을 수 있다더니, 지금이 몇 시야? 2시간 내내 달렸는데 이제 9시라고!”
“퀸시티에 바운서의 목을 매달까? 그래야 일 처리를 똑바로 하지.”
과연 바운서가 멀쩡할까?
컬렌이 쓴웃음을 지었다.
“놈이 운인 좋은 건지, 아니면 눈치가 빠른 건지. 바운서를 보면 알겠지.”
“설마 당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백인 틈을 비집고 총사령관이 된 동양인이야. 아직도 운이라고 생각한다면 니넨 아직 싸울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거다. 빌어먹을 동양인이라도 능력만큼은 인정해야 비로소 상대할 수 있는 거라고.”
질투와 시기, 분노와 증오.
불나방처럼 뛰어들다 죽는 것도 대부분 이런 편협한 사고를 벗어나지 못해서다.
컬렌은 이걸 지적했다.
물론 일부 리더들은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래서 상대가 대단한 인물이라 건드리지 말자는 거야? 사기가 뚝뚝 떨어지는 소리는 나만 들리는 건가?”
“동양인 새끼를 칭찬할 시간에 제거할 방법부터 궁리하는 건 어때?”
말투가 삐딱하지만 컬렌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표정은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놈을 상대할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 아무것도 안 하면 되거든.”
“...... 장난해?”
“잘 생각해 봐. 텍사스에서 놈이 뭐를 할 수 있는지를. 선택지가 많지 않거든.”
군대를 동원해서 대규모 토벌 작전에 들어간다 치면, 그냥 숨어버리면 되고, 민간인들과 섞이면 그만이다.
“여기가 텍사스라는 걸 잊지마. 일부 지역만 빼면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 줄 사람들은 널렸다고.”
그 때문에 대규모 군사 작전과 기습은 불가능하다. 미리 정보를 얻게 될 테니까.
“만약 북군 총사령관이 이 사실을 안다면 두 번째 카드를 쓰겠지. 바로 우리를 도발해서 먼저 공격하게 만드는 거야.”
“흠.”
“거기에 말려들면 참호, 개틀링, 매복이 우릴 기다릴 거고. 그땐 전멸당하는 거지.”
하지만 미리 알아챈다면 얼마든 피할 수 있다.
컬렌이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마지막 카드는. 이것저것 깨작거리다 포기하고 정치질만 하는 거야. 사실상 나는 이게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해서 대응방안은.”
컬렌은 눈에 힘을 주어 리더들을 바라봤다.
“놈이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고, 도발하면 무시하고, 정치질을 하면 협력자를 암살한다. 실패해봐야 기껏 애들 몇 명 죽는 게 전부니까 손해도 크지 않고.”
반대로 성공만 하던 놈이 한번 실패를 맛보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무력감을 느끼게 되고, 점점 무리한 수를 두게 되면서 빈틈을 보일 터.
‘그때는 텍사스에서 뼈를 묻는 거지.’
컬렌 베이커는 자신의 대응 방법을 확신했다.
텍사스라는 장소와 시간은 자신들 편이었으니까.
*
텍사스주 카터빌.
추격을 뿌리친 막스 일행은 마을로 들어가는 대신 주변에서 숨을 돌렸다.
말에게 풀을 먹이는 동안. 대원들과 레인저스는 추격을 포기한 이유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
새가슴이니, 말을 잘 못 탄다느니, 심지어는 자신의 뒷모습을 보고 잔뜩 겁먹었다는 말까지 튀어나왔다. 네이선 로어가 자신의 등근육을 과시할 때.
참다 못한 막스가 개소리 말라며 끼어들었다.
“바운서처럼 게릴라들의 정보통들이 마을 여기저기에 숨어 있다. 그리고 난 그걸 피해서 놈들을 잡을 방법을 알고 있다, 손?”
“......”
“그걸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 힘들어질거야.”
갱단과의 전투에서 레인저스가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도 결국 정보가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광활한 텍사스에 점조직처럼 퍼져있는 게릴라와 무법자를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막스는 이를 고민하며 다시 말에 올라탔다.
이틀 뒤.
일행은 데인저필드 부근에서 조 짐 주니어와 조우했다.
“콜로라도와 뉴욕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다들 모이려면 한 달은 걸리겠군.”
막스와 일행은 다시금 대평원을 질주했다.
그렇게 사흘을 달린 끝에 댈러스에 도착.
마침내 텍사스 레인저스로 활동하는 SFBC 대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무려 3년 만의 재회였다.
“그동안 고생했다.”
“멀리서나마 소식은 들었어, 보스. 결혼 축하해.”
“조만간 애가 나오게 생겼는데, 축하가 너무 빠른 거 아냐?”
“으잉? 피치가 아기를 가졌다고?”
포드는 믿을수 없다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막스는 웃음을 머금으며 대원들을 바라봤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월러스, 에버스, 프리맨.
캘리포니아 레인저스였던 헤리 러브, 라파예트 블랙, 그리고 왼팔을 잃은 빌리 핸더슨.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막스를 쳐다봤다.
눈빛엔 불안과 착잡함이 담겨 있었다.
“이야기는 들었다. 흠. 너한테 필요한 걸 가져왔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
말이 끝나자마자 네이선 로어가 총을 가져왔다.
다들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던 때.
윈체스터 라이플을 쥔 막스가 레버는 놔둔 채 총몸 전체를 회전시킨다.
레버가 내려가자 해머가 후퇴하고, 약실이 그 사이로 총알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원위치가 되었을 즈음.
철컥.
일명 스핀 코킹의 방법으로 한 손 장전을 완료했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질 때, 빌리 핸더슨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내가 며칠 썼던 건데, 불만없지?”
“.......”
핸더슨이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막스가 총을 건네주고는 어깨를 두드렸다.
“익숙하면 혼자 열다섯은 죽일 수 있을 거야.”
“......”
언뜻 냉정한 모습이지만, 핸더슨의 눈시울은 이미 촉촉이 젖어 있었다.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눈치 보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핸더슨에게 윈체스터 라이플은 많은 의미를 내포했다.
팔을 잃었다는 고통과 절망보다 핸더슨을 힘들게 한 건, 조직에서 내쳐지는 모습이었으니.
보스가 총부터 건네준 건 팔이 없어도 SFBC 대원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막스는 대원들을 향해 자신의 신체를 가리켰다.
“우리의 스폐샬 포스는 마음과 정신이다. 몸이 어떻든지 간에 SFBC에서 할 일은 널려 있다는 걸 잊지 마.”
텍사스 레인저스. 연방 보안관.
배지의 모양과 새겨진 글자는 다르지만, 이들은 변함없는 SFBC 대원들이었다.
*
막스는 댈러스에서 머무는 동안 거점으로 사용할 건물을 매입했다.
그리고 텍사스에 영향력이 있는 자들을 만나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다음 선거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 의원 숫자는 공화당이 우세합니다. 그때까지는 법안 통과가 어렵겠지요. 샘 휴스턴 주지사께서 비록 돌아가셨지만, 영향력은 막강하거든요.”
현 텍사스 주지사 앤드류 잭슨 해밀턴의 말에 따르면.
전 주지사 샘 휴스턴과의 계약 건은 유효했지만, 막스의 예상대로 남부 골수 의원들은 이를 무효화하려 법안 상정을 시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남부 탈퇴를 종용한 의원들이 직을 상실했기 때문에, 텍사스 민심과는 달리 공화당 의원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샘 휴스턴의 생전 업적이 많아 그가 추진했던 사업을 폐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이거군.’
막스가 정치와 사업적인 일들로 시간을 보낼 때.
텍사스 국경을 넘는 자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간혹 지나가는 흔적에 총과 피를 더러 남기기도 했는데.
“가진 것 다 내놔!”
“...... 뭔 또라이들이 이렇게 많아.”
탕! 탕!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넘어온 콜린.
시가에 불을 붙인 뒤 여유 있게 강도들의 시체를 털었다. 하지만 요란하게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에 재빨리 말에 올라타야 했다.
“아나, 뭔 갱단이 이렇게 많아.”
역시 텍사스는 예사롭지 않은 곳이었다.
더욱이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가 없는 게.
“시바껏, 탄약도 떨어져가고 빈총만 들고 다니게 생겼다고!”
SFBC 대원들은 외부 활동이 길어질수록 무장 상태가 빈약해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특수한 무기라는 건 결국 만든 곳에서 공급을 받아야 했으니. 주기적으로라도 콜로라도를 찾아가야 했다.
같은 시각 텍사스 서북쪽.
인디언들과 군인들의 호위 아래, 마차 다섯 대가 댈러스로 향한다.
이들의 출발지는 콜로라도.
마차 짐칸엔 준투 요새에서 만들어진 무기들이 가득 실려 있었는데. 윈체스터 라이플 2백여 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
댈러스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맨션.
미 전역에 흩어졌던 180명의 SFBC 대원이 집결. 단상에선 막스가 소리를 높였다.
“오느라 수고 많았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모인 이유는 하나. 텍사스를 독립시키겠다는 미치광이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미치광이들이 다른 주들과는 많이 다르다.
본래 막스가 가장 좋아하는 적들은 생각 없이 저돌적이고 공격적이며 맹목적인 믿음으로 똘똘 뭉친 놈들이다.
여기에 더해 백인우월주의까지 갖추면 금상첨화.
사리분별을 못하는 놈이야 말로 가장 쉬운 상대다.
그런데 자칭 레인저스의 이름을 뒤집어쓴 게릴라들은 흩어진 점조직처럼 활동하기 때문에 좀처럼 제거하기가 쉽지 않았다.
“해서 텍사스에서 우리가 했던 방식을 그대로 할 생각이다. 점들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가 점이 되어 놈들을 공략, 즉 각개격파를 할 생각이다.”
“......”
“물론 우리 점은 좀 더 크다. 2인 1조니까.”
- 와, 존나 크네. 두 배야!
- 근데 적들은 왜 하나라고 생각하는 거지?
- 이걸 작전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조용! 사실상 이번 작전의 핵심은 최대한 걸리지 않고 숨어있는 게릴라들을 색출해 제거하는 것이다. 이를 염두해서 각자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도록.”
- 그냥 알아서 하라는 거네.
- 그동안 보스가 많이 무책임해졌네.
- 힘들었나.
“참고로 어제 콜로라도에서 무기가 도착했다. 새로운 무기들도 있으니, 훈련 시간은 일주일. 그동안 익숙해질 수 있도록!”
대원들은 윈체스터 라이플과 탄약, 보조무기들을 지급받고 짧은 기간 훈련에 돌입했다.
맨션은 댈러스 중심부와 떨어진 곳이라 총소리에도 자유로웠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
새벽 동이 트기 전, 다양한 복장과 인종들이 맨션에서 튀어나왔다.
일부는 말을, 일부는 마차를. 일부는 수레를 끌었다.
“자, 그럼 우리도 가볼까요.”
“대체 왜 자꾸 나랑 짝을 하려는 거야.”
“유부남끼리 오순도순 얼마나 좋습니까.”
콜린은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 막스는 흑인으로 위장한 채 둘은 마부석에 나란히 앉아 마차를 끌었다.
그렇다고 마차가 화려한 건 아니고, 농부들이 끌법한 허름한 마차였다.
짐칸에는 무기들이 실려 있었는데, 한쪽에는 신문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러니까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신문을 읽어 준다 이거잖아? 그거 진짜 되는 거야?”
“당연히 될뿐더러, 돈도 벌 수 있다니까 그러네. 텍사스 마을이 워낙 깡촌들이라 뉴스를 몰라요.”
“근데, 그건 그렇고. 신문은 누가 읽어?”
막스가 손가락으로 콜린을 가리켰다.
“신문 읽어 주는 퇴역 남부 군인과 흑인. 얼마나 멋집니까.”
콜린은 시가 연기를 벅벅 피워대고, 막스는 느릿느릿 동부의 어느 마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