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5화 (315/360)

#315 당신도 글을 읽을 줄 아나요?

텍사스 댈러스 남동쪽, 챗필드 마을.

허름한 헛간에 모인 마을 사람들은 한 남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엔 4월 10일 자, 뉴욕 타임지에 실린 신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동물은 인간의 손에 의해 친절하고 정중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법에 따라 보호되어야 한다. 뉴욕시의 헨리 버그가 한 말입니다.”

“마누라도 나를 정중하게 대우하지 않는데, 뭔 동물까지 신경 써!?”

“그거야 사내 구실을 못 하니까 그렇지!”

“아니, 이 여편네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애들 듣기 민망하다며 나무라는 소리가 짧게 오고 갔다.

피식 미소를 지은 콜린은 도수도 없는 작은 안경을 만지며 마저 신문을 읽어갔다.

“아무튼, 헨리 버그는 뉴욕시에 미국 동물 학대 방지 협회(ASPCA)를 설립했습니다. 동물 권리 선원에 담긴 내용은 ‘잔혹 행위를 금지’하는 헌장이 담겨 있는데, 역사상 최초라는군요.”

“먹고 살기 바쁜데, 동물까지 신경 쓰는 걸 보면 역시 동부는 여유가 넘치는 모양이야.”

“그나저나 파이브 포인츠에는 아직 갱단들이 득실거리려나. 내가 있을 땐 난리도 아니었거든.”

“그러고 보니 자네 뉴욕 출신이지?”

기사 내용 중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자들의 잡담이 이어졌다. 하지만 동부의 경쟁에 밀려 텍사스까지 밀려난 자들에게 추억이란 딱히 자랑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이번 뉴스는 석 달 전 미 의회에서 통과시킨 민권법에 관한 기사...”

“우우우우!”

“...... 링컨 대통령은 노예에서 해방된 흑인과 이미 자유를 획득한 흑인들의 인권법을···.”

“에이! 차라리 동물 학대 방지법이 낫지, 흑인 새끼들한테 인권은 무슨. 그건 건너뜁시다.”

“다음 기사 읽어요!”

“..... 음. 그럼 이번에는 올해 초,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된 해골에 관한 기사로 가 볼까요.”

“차라리 그게 낫다!”

막스는 구석에 앉아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

신문 읽어주는 사업(?)을 시작하며 몇몇 마을을 전전한 결과. 사람들은 연방 정부와 남북전쟁에 관한 기사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 뜨면 일터로 나가, 해가 질 때까지 고된 일을 하는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캘리포니아 고고학자가 칼라베라스 해골을 발견했는데, 이 해골이 플라이오세 시절에 살았던 인류라고 하더군요.”

“플라이오세?”

“대략 500만 년 전인 신생대 시대라고 되어 있군요.”

“말이 되는 소리야? 그때 인간이 살았을 리가 없잖아?”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는 기껏해야 6천 년 역사 밖에 되질 않는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이전인 신생대에 인간이 살았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다윈의 진화론이 한바탕 세상을 뒤흔들어 놓더니, 부쩍 신앙심을 테스트하는 무리가 많아졌다.

장내가 시끄러워지자, 콜린은 예상한 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 역시 이 고고학자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에 10달러를 걸겠습니다. 아마도, 발견된 해골은 금광을 캐러 간 고고학자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된 게 결정적인 증거지요.”

“크하하. 그거 일리 있구만.”

“해골에 금가루 묻었드면 백프로지!”

사람들은 콜린의 해석을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실제로 캘리포니아 해골은 훗날 날조된 거짓으로 밝혀진다. 선사시대는커녕 해골은 고작해야 천년 정도 된 것이었다.

어찌 됐든, 테이블 위에는 여러 신문이 겹쳐져 있고, 그 옆에 놓인 회중시계를 쳐다본 콜린이 슬슬 자리를 정리했다.

“지금까지 세상을 읽어주는 프랭크 매드슨 네일리였습니다. 신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콜린이 허리를 숙여 멋지게 인사를 하자,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이 타이밍에 흑인으로 위장한 막스는 재빨리 깡통을 들고 자리를 돌아다녔다.

“만족하셨다면, 좋아요와 함께 팁을 넣어 주세요!”

들어올 때 이미 입장료 10센트를 지불했기 때문에 넣든 안 넣든 사람들의 자유였다.

하지만 흥에 취한 이들은 개의치 않고 동전을 넣었다.

땡그랑.

경쾌한 소리가 날 때마다 막스는 흰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던 때, 뒤켠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흑인 여성도 동전을 집어넣었다.

그녀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시선은 콜린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인이라도 받고 싶은가요?”

“...... 아니요. 그냥 이야기가 재미있어서요. 그런데 혹시.”

흑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당신도 글을 읽을 줄 아나요?”

“...... 예. 왜요?”

“부러워서요. 원하는 이야기는 전부 읽을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네요.”

이는 그녀가 흑인이라서는 아니었다.

여기 모인 사람, 아니 서부 정착촌에 있는 대부분은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자들이었다.

이들이 신문을 접하기 힘든 건 외지인인 데다 문맹자들에게 신문을 팔러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막스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한 백인 노인이 여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갈 시간이다, 머딘.”

“예, 주인님.”

주섬주섬 바구니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난 여인. 막스에게 슬쩍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뒤 노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노예 해방이 이루어지고, 자유인이 되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백인 노인에 종속되어 있었다.

막스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꽤 많은 흑인을 볼 수 있었는데. 대부분은 갑자기 찾아온 자유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세상을 두려움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은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의 노예로 남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머딘은 마을에서 사 온 식료품을 정리했다. 그런데 그녀도 모르는 사이 바구니 속에 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자유인들의 맞춤법 책(The Freeman’s Spelling-Book)>이란 교과서였다.

“......”

“머그! 어서 들어오지 않고 뭐해.”

“예, 들어가요!”

책을 숨긴 머딘은 대충 씻은 뒤, 옷을 갈아입고 늙은 주인이 있는 침대로 올라갔다.

그녀가 눕자 주인이 담담하게 물었다.

“문단속은 잘했지?”

“예. 창문까지 다 확인했어요.”

최근 갱단이 출몰하면서 말이 도둑맞고, 일부는 저항하다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잇달아 벌어졌었다. 늙은 주인의 침대 옆에 샷건이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무슨 책을 들고 있던데, 그자들이 준 건가?”

“...... 그런 것 같아요. 영어 교과서더라고요···.”

주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머딘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그런데.

“잘 배워 둬. 나는 늦었지만, 너는 젊잖아.”

“......”

“아침 일찍 켈린 농장에 일을 도와줘야 하니까, 얼른 자.”

“알겠어요.”

늙은 주인은 이내 눈을 감고 말이 없었다.

몇 년 전 부인이 병으로 죽고, 자식들은 전쟁에서 목숨을 잃는 등. 고독한 주인의 인생에 남은 거라곤 노예인 머딘 뿐이었다.

지금은 부인도 노예도 아닌 애매한 신분이지만, 분명한 건 주인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문을 읽어주는 자리에 머딘을 데려간 것도 아마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주인이 죽으면 나는 어떻게 하지.’

물끄러미 노인을 바라보던 머딘도 이내 잠이 들었다.

챗필드 마을의 선술집.

시가를 문 콜린이 물었다.

“오늘은 얼마 벌었어?”

“4달러 25센트.”

“이야, 갈수록 돈이 늘어나네?”

“말했잖아요. 괜찮은 사업이라고. 그나저나, 다음 마을은 좀 큰 곳으로 가야겠습니다.”

“왜?”

“책 좀 사게요.”

“오늘도 줬어?”

막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콜린이 짙은 미소를 지었다. 놀랍게도 흑인에게 영어 교과서를 주자는 발상은 콜린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지하철도에 몸담을 때부터, 흑인들에게 교과서를 전달하던 습관 때문이었는데, 나름 이유와 신념도 뚜렷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교과서 하나로 인생이 바뀔 수도 있지. 물론 안 될 놈은 안 되겠지만.”

“오늘 만난 여자는 열심히 배울 거에요. 눈빛부터 달랐으니까.”

“그러고 보면, 대원들에게 강제로 글자 공부를 시킨 건 잘한 거였어.”

이 시기엔 미국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문맹률도 증가했다.

이를테면 독립전쟁 이후 50%였던 문맹률이 현재 80%까지 늘어났으니, 가난한 이민자와 노동자들이 미국으로 오면서 벌어진 현상이었다.

여기에 더해 노예는 법적으로 교육이 금지되어 있어 흑인들 역시 대부분 문맹일 수밖에 없었다.

막스와 콜린이 영어 교육에 관한 건전한 토론을 벌일 때, 선술집의 주인이 탁자를 치며 영업 종료를 알렸다.

콜린이 눈을 가늘게 떠 물었다.

“이제 9시인데?”

“일이 있어서 그렇소.”

“요즘 주변에 갱단이 출몰한다더니 그것 때문에 그런가?”

“괜한 오지랖 부리지 말고. 잠자리는 위층 3호실에 만들어 놨으니, 술 마시려거든 올라가던가.”

주인이 눈을 흘기며 재촉한다. 콜린은 심드렁한 표정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어쩔 수 없지. 밤새 퍼마실 생각이니까 아침 돼도 깨우지 마쇼. 밥은 필요 없으니까.”

콜린이 손을 내밀자 주인이 남은 위스키를 건네줬다.

“2달러요.”

막스는 아까운 듯 동전 두 개를 올려두고 계단을 올라갔다.

“오늘 벌어들인 돈 절반을 술로 날리다니.”

“위장이잖아, 위장.”

방으로 들어온 둘은 등잔은 켜지 않은 채, 소리에 집중했다.

잠시 후, 술집 주인이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말을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케이. 갑시다.”

어차피 지금 여관에는 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혹시 몰라 막스와 콜린은 발소리를 죽여 마구간으로 향했다. 그런 다음 마차와 분리된 말 두 필을 타고 술집 주인 뒤를 쫓기 시작했다.

“주인 새끼가 갱단하고 관련이 있다더니, 진짜인 모양이네.”

“뭐, 잡아보면 알겠죠.”

대략 20여 분을 달린 끝에 말 속도를 줄였다.

달빛에 모인 무리가 대략 다섯.

말에서 내린 막스와 콜린은 대화를 듣기 위해 은밀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힘없는 늙은이뿐이라, 일은 어렵지 않을 거야.”

“그래도 멕시코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라며?”

“전쟁은 우리도 참전했잖아 병신아. 뭘, 겁먹고 있어.”

“그나저나, 흑인년은?”

“납치해야지. 데리고 놀다가 KKK단에 팔던가, 아니면 다른 주인을 찾아주자고.”

“호오, 오늘 돈 좀 만지겠는데?”

갱단의 대화를 제대로 들을 순 없지만, 의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놈들이 가리키며 숙덕거린 곳은 언덕 아래 나무로 지어진 집과 헛간, 축사가 보이는 목장이었다.

“역시 현장에서 잡아야겠지?”

“시체 끌고 가는 것보단 그게 낫겠죠.”

갱단이든 뭐든. 평원에서 백인 다섯이 죽으면 온갖 소문이 떠돌게 마련이다.

연방 군인의 소행이라던가, 아니면 흑인들이 죽였다는 등 억측들이 사실처럼 마을에 퍼지게 된다. 그 때문에 현장에서 사살하는 편이 뒤처리가 깔끔했다.

막스와 콜린은 갱단의 타겟이 된 목장에 접근.

헛간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으려 했다.

그런데.

왈 왈!

낯선 자들을 경계하듯 목장 안에 있던 개가 짖기 시작했다.

“아군이다, 이 개새끼들아.”

“그렇게 해서 알아 듣겠어요?”

막스가 품속에서 말린 육포를 꺼내 집어 던졌다.

순간 조용해진 개를 보며 콜린이 혀를 찼다.

“고작 먹는 걸로 경계 근무를 소홀히 하다니. 저 개새끼들은 잡아 먹어야겠구만.”

“동물 학대 방지 협회에 신고할 겁니다.”

콜린이 코웃음을 치던 때, 삐걱 소리가 나며 현관문이 열렸다.

개소리에 잠이 깬 노인이 조심스레 밖을 나온 것이다. 달빛에 비친 노인의 손에는 샷건이 들려 있었다.

- 더블 배럴이라 근접전이면 셋까지는 잡겠네.

- 글쎄요. 새총이라면, 그 전에 죽을 가능성이 크죠. 그런데, 저 노인. 내가 교과서를 준 흑인의 주인이네요.

- 그래?

막스와 콜린이 수군거리는 동안 노인은 산탄총을 앞세워 주변을 살폈다. 그렇게 막스와 콜린이 있는 헛간에 다가올 즈음.

두드드드드.

목장으로 말들이 무서운 속도로 접근했다.

이렇게 대놓고 습격하는 강도들을 보며 막스와 콜린이 고개를 절레 저었다.

반면 말발굽 소리에 놀란 주인은 곧바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머딘! 어서 피해!”

“예!?”

“너라도 도망가서 마을 보안관에게 알리라고!”

“주, 주인님?!”

“시간 없어! 얼른!”

집안에서 들려오는 대화는 막스와 콜린의 귓가에 또렷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이미 갱단이 목장에 들어온 탓에 여인의 탈출은 불가능했다.

히이이잉!

“바로 시작해보자고!”

말에서 내린 갱단들은 저마다 무기를 손에 쥐고 집으로 달려갔다.

“썩 꺼져라, 망할 새끼들!”

탕!

탕!

창문 틈으로 발사된 샷건의 묵직한 총성.

하지만 막스의 예상대로 샷것의 쉘(Shell)을 채운 건 작은 납 알갱이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새를 잡기 위해 만들어진 탄알이라, 납 알갱이가 분산되고 위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게다가 마음이 너무 급한 나머지 노인은 사정거리에 들어오기도 전에 두 발을 쏴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오히려 장전 시간만 적들에게 알려준 꼴이었다.

“얼른 문을 부셔!”

한 명이 문을 향해 돌진하려 할 때였다.

“이게 뭐게!”

콜린이 소리를 질러 시선을 끌었다.

놀란 적들이 고개를 돌릴 때, 막스가 조금은 떨인 곳에 우뚝 서서는 윈체스터 라이플의 레버를 당겼다.

철컥.

탕!

철컥.

탕!

순식간에 다섯 번의 레버를 당겨 쓰러트린 뒤, 막스는 천천히 다가가 꿈틀거리는 놈들의 머리통을 향해 확인 사살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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