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7화 (317/360)

#317 버팔로 사냥꾼들

타아앙!

총성이 날 때마다 버팔로가 하나둘 쓰러진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버팔로는 누운 채 다리로 땅을 긁어댔다.

“저 자식들, 동물 학대 방지 협회에 신고해야겠네요.”

“예전부터 느낀 건데, 버팔로랑 뭔 일 있었어? 먹을 땐 잘도 먹더니 가끔 이상해진단 말야.”

콜린의 말에 막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상황 보면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까?”

“아니. 전혀 안 보이는데.”

“버팔로 가죽이 돈 된다고 생각해 봐요. 골드러시처럼 사람들이 잔뜩 몰려와서 죄다 총 들고 사냥할 거 아닙니까.”

“대평원에 널렸는데, 뭐 그 정도쯤이야.”

“천 명이 하루에 100마리씩 사냥하면요?”

머릿속으로 계산하던 콜린이 헉소리를 냈다.

“하루에 10만 마리네!?”

“일 년이면 3,650만 마리죠. 문제는 인디언입니다. 버팔로가 그들의 의식주인데, 씨가 말라 간다고 생각해 봐요.”

생존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 벼랑 끝으로 인디언들을 몰아넣고, 백인들은 그걸 빌미 삼아 토벌에 나설 것이다.

원 역사에서 분열된 인디언들이 연합해 미연방과 전투를 벌이는 것도 결국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대통령은 뭐래?”

“그쪽도 뾰족한 수가 없죠. 얼마 전엔 의회에서 철도 노동자 식량으로 버팔로를 제안했다고 하더군요. 기막힌 아이디어라고 저희들끼리 박수까지 쳤다던데요.”

가죽, 장식용, 식량, 인디언 쇠퇴 전략.

날이 갈수록 버팔로 사냥을 해야 할 이유가 붙고 있으니.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취할 선택은 암묵적 묵인밖에 없지 않을까.

“인디언 편을 들면,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잖아요. 다음 재선을 위해서도 링컨은 무리수를 두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대책은 있는 거야?”

“설마 없겠습니까?”

콜린이 막스를 빤히 쳐다봤다.

“없어 보이는데.”

“...... 그나저나, 사냥이 끝났나 보네요.”

언제부턴가 평원에 울리던 총성이 들리지 않는다.

대평원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던 버팔로들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혼자 가요.”

“나 혼자 저길 가라고? 갱단 소굴로?”

“노동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대놓고 그들 앞에서 사람을 죽이진 않겠죠.”

“...... 그거 꽤 위험한 추측이야.”

“아무튼, 둘 다 위험에 빠지는 것보단 낫습니다. 보니까 무장한 놈들도 별로 없더만요.”

실제로 노동자들을 빼면 총을 든 놈은 5명 내외였다.

하지만 막스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무기를 들고 갈 수 없으니까, 내가 나중에 뒤따라 갈게요. 미리 놈들한테 흑인 하인이 있다는 말만 전해줘요.”

순찰대원들에게 걸린 것처럼, 갱단들에게도 무기가 발각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콜린은 막스에게 등을 떠밀려 혼자 나설 수밖에 없었다.

*

“고고! 작업을 서둘러라!”

누군가의 지시가 떨어지자, 칼을 든 노동자들이 우루루 들판으로 몰려갔다.

굳이 버팔로 사체를 옮길 필요 없이 현장에서 도축 작업이 이루어졌다.

사실상 고기보다는 가죽을 얻기 위한 것으로, 버팔로가 체온을 잃기 전 가죽을 벗겨 소금으로 경화시키는 초반 태닝 작업이었다.

한쪽에선 칼로 가죽을 벗기고, 다른 한쪽에선 캠프를 작업 현장으로 이동하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세인트루이스의 모피 무역상이 현장을 응시하며 말을 건넸다.

“총만 받쳐주면 하루에 천 마리는 무난하게 잡을 수 있겠군요.”

“숙련된 사수라 가능한 거지, 초보들은 턱도 없소.”

“뭐, 그렇긴 하겠죠. 그나저나, 존 메이슨. 이번엔 샘플이지만 본격적으로 사냥을 하려면 장소를 이동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텍사스 동부엔 생각보다 버팔로가 많지 않다.

무역상의 말에 존 메이슨이 턱을 어루만졌다.

“가격만 제대로 쳐준다면 못 할 것도 없지.”

“지금 가격이 최고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앞으로 동부에서 수요가 폭증하면 가격은 하락하고, 경쟁도 그만큼 치열해질 거니까요.”

현재 버팔로 가죽은 3.5달러, 뼈는 톤당 2.5달러.

육류는 부패하기 쉬워 가공 공장과의 거리에 따라 영향을 받았다. 철도 노동자들에게 고기를 공급하기 위해선 공사 현장과 가까운 곳에서 사냥이 이루어져야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철도 공사가 진행 중인 아이다호주는 2년 전 버팔로 사냥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결국, 콜로라도와 캔자스가 답이로군.”

“갈 생각이 있다면 남들이 자리 잡기 전에 서둘러야 할 겁니다.”

하지만 존 메이슨은 고개를 저었다.

“텍사스 독립을 이루기 전까진 여길 벗어날 수 없지. 애초에 사업을 할 생각이었으면 진작 다른 길을 찾았을 거야.”

‘이런 미친새끼.’

때가 어느 땐데, 텍사스 독립이 진짜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걸까.

무역상은 속내를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숙련된 사수 좋아하네. 앞으로 니들 같은 놈들이 넘쳐날 거다.’

돈이 되는 사업엔 사람들이 몰리게 마련이다.

전쟁이 끝나고 갈 곳 없는 군인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그깟 버팔로 사냥꾼쯤이야.

“그럼 전 며칠 뒤에 물건을 가지러 오겠습니다.”

무역상이 자리를 뜨자 존 메이슨은 노동자들을 채근했다.

“내일까지 만들어야 할 가죽이 5천 개다! 야간까지 작업하기 싫으면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나무 아래에 앉은 존 메이슨은 위스키 한 모금을 마신 뒤, 작업 현장을 지켜봤다.

그런데 이때 저 멀리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웬 놈이냐!”

“어이구, 수고들 하십니다. 버팔로들이 단체로 잠들었나 했더니, 다들 하늘나라로 갔군요.”

농담을 건넸는데 반응이 없다.

무안해진 콜린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재빨리 자신을 소개했다.

“뉴스 읽어 주는 남자, 프랭크 매드슨 네일리라고 합니다.”

“몸 수색해!”

홀로 말을 타고 온 콜린은 무장도 단촐했다. 그나마 있던 리볼버 한 정을 빼앗기고, 신문을 보관하던 가죽 두루마리도 빼앗겼다.

“뭐 하는 놈이야?”

존 메이슨이 다가오자 부하가 두루마리를 건네준다. 그 안에 있던 신문들과 콜린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뉴스 읽어 주는 퇴역 군인이 있다더니, 자네로군. 듣기로는 둘이서 움직인다고 들었는데.”

“곧 도착할 겁니다. 볼 일이 급하다고 해서요.”

잠시 생각에 잠긴 존 메이슨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뭐가 됐든. 마침 잘 됐어. 자네처럼 뉴스를 읽어 줄 사람이 필요했거든. 나와 마을로 가지.”

“······ 근처에 마을이 있습니까?”

‘좆됐네.’

그렇게 해가 질 무렵, 콜린은 갱단에 포위된 채 인근 마을로 끌려갔다.

뒤늦게 작업장에 도착한 막스는 콜린이 미리 말해둔 덕에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

다만 수레를 검색당했는데,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마을 위치도 모르는데, 차라리 제가 작업을 도와주고 같이 가는 게 좋겠네요.”

“이 새끼, 마인드 마음에 드네.”

나서서 버팔로 가죽을 벗겨주겠다는데 마다할 리가 있나. 게다가 칼 솜씨까지 좋다.

갱단들은 혀를 내두르며 감시를 거두었다.

막스는 구석진 곳부터 시작해, 밤이 될 때까지 작업을 이어갔다.

*

마을에 건물이라곤 나무로 지어진 다섯 채가 전부.

무장한 갱단들이 돌아다니는 걸 봐선, 순찰 대원이 정찰했던 마을이 이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존 메이슨은 마을 창고처럼 사용되는 곳으로 콜린을 안내했다.

“곧 사람들을 이쪽으로 부를 거야. 그때 넌 이걸 읽으면 돼.”

존 메이슨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굵은 글씨로 [텍사스의 영웅 존 메이슨]이라 쓰여 있고. 내용은 한 영웅의 일대기와 텍사스 독립에 관한 선동과 날조로 가득했다.

콜린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존 메이슨을 쳐다봤다.

‘뭐지, 이 새낀.’

자세히 보면 눈빛에 광기가 번들거리는 것도 같다.

“영웅은 그냥 탄생하지 않아. 누군가가 그 이름을 불러줘야 비로소 영웅이 되는 거지.”

“음. 그야 그렇긴 하죠.”

바짝 다가온 존 메이슨이 위협적으로 콜린을 노려봤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건, 사람들을 신념과 행동으로 이끄는 힘이다. 버벅거리지 않으려면, 오늘 기사의 메인을 잘 읽어둬.”

콜린에게 감시를 붙인 뒤 존 메이슨은 사라졌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사에서 눈을 떼고, 콜린이 눈치를 살폈다.

그리곤 감시하는 놈에게 물었다.

“텍사스 동부를 인디펜던스 레인저스와 마운틴 부머스가 지배한다고 들었는데, 메이슨 헨리 갱단은 어디 소속이지?”

“알 것 없다.”

“마운틴 부머스구먼.”

감시병이 눈을 흘겼다.

“내가 언제 마운틴 부머스라고 했어?”

“느낌이 왔다. 뭔가 산을 잘 탈 것 같은 분위기랄까.”

“지랄. 그딴 겁쟁이 새끼들하고 비교할 걸 해라.”

콜린은 짐짓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인디펜던스 레인저스였구나!?”

“보스가 그 리더 중 하나다, 새끼야.”

그동안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텍사스의 인디펜던스 레인저스 리더는 다섯 명.

그중 컬렌 베이커라는 자는 알려졌지만, 나머지가 누구인지는 정보가 엇갈렸다.

‘존 메이슨이 그중 하나라 이거지.’

뜻밖의 소득. 더 나아가 입이 근질거린 감시병이 정보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또 하나 알려 줄까?”

“뉴스 읽어 주는 남자에겐 뉴스가 생명이지. 알려 다오.”

감시병은 쳇하며 침을 뱉은 뒤 은밀하게 말을 이었다.

“보스가 텍사스 동부 KKK단 드래곤 중 하나거든. 나는 사이클롭스. 신문 같은 거 때려치우고 너도 이참에 우리 쪽에 붙는 게 어때? 남군 장교였다며?”

“솔깃한 제안이군.”

콜린은 감시병의 비위를 맞추며 몇 가지 사실을 더 알아냈다.

마을은 존 메이슨이 땅을 무단 점거하고 목장을 운영하면서 생겨났다.

그는 버팔로 가죽 말고도 이곳에서 말과 소, 돼지, 닭을 키워 자금을 축적했다.

‘마을에 거주하는 자들은 갱단과 노동자 이 두 부류로 보면 되겠군.’

밤이 되자 헛간으로 사람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버팔로 가죽을 벗기던 노동자들까지 마을로 복귀해 대략 70명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들 속엔 막스도 껴 있었다.

- 정보는 알아냈어요?

막스가 다가와 콜린에게 속삭였다.

- 그보다 무기는?

- 잘 가져왔죠.

- 흠. 아무튼, 상황이 어떠냐면 말야.

콜린은 알아낸 정보를 말해주고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걸 읽은 막스는 대충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 미친 새끼군요.

- 내 말이. 그나저나 이거 읽어주면 되겠지?

- 오히려 반대죠. 이놈들을 도발해서 흥분하게 날뛰게 만듭시다. 인디펜더스 리더 하나를 잡았으면 더는 이 짓을 할 필요가 없어요.

- 그래?

막스가 신문기사 읽는 순서를 정해줬다.

그걸 듣는 콜린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 나왔다.

땅땅땅.

“입장권은 10센트입니다! 10센트를 내셔야만 뉴스를 들으실 수 있어요!”

막스는 깡통을 치며 수금에 열을 올렸다.

급조된 테이블 앞에 선 콜린은 신문을 겹겹이 늘어놓고, 한쪽엔 회중시계를 가지런히 올려 두었다.

“해가 뜨고 질 때까지. 오늘도 고된 노동으로 하루를 마친 여러분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흥미로운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저는 뉴스 읽어 주는 남자 프랭크 매드슨 네일리라고 합니다.”

박수가 나오고 도수 없는 안경을 쓴 콜린이 신문을 뒤적거렸다.

“자, 그럼 첫 번째 소식을 알아볼까요. 지난 4월 10일 자, 뉴욕 타임지에 실린 기삽니다. 동물은 인간의 손에 의해 친절하고 정중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법에 따라 보호되어야 한다는 동물 학대 방지 협회···.”

“?”

방금까지 버팔로 가죽을 벗기던 노동자들의 눈빛이 등잔불처럼 흔들렸다.

존 메이슨은 눈을 가늘게 떠 콜린을 노려봤다. 닥치고 자기가 준 기사나 읽으라는 표정이다.

“아무튼, 쓸모없는 협회가 만들어졌다는 기사는 패스하고···.”

신문 기사를 교체한 콜린이 존 메이슨을 응시했다.

“이번에는 미국 최초의 황제가 산다는 캘리포니아로 가볼까요. 가끔 나라를 만들겠다는 망상에 빠진 인간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시작은 혁명이라지만 결국엔 자신이 황제가 되겠다는 미치광이들이 대부분이죠.”

존 메이슨의 얼굴이 점차 굳어져 간다. 눈치를 살피던 부하들이 잡아먹을 듯 콜린을 노려봤다. 일부는 목을 그으며 죽을 준비하라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막스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시발. 진짜 너무한거 아니냐고!’

입이 바짝 마른 콜린이 혀로 입술을 축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의 황제 노턴 1세는 다릅니다. 시민들의 교통을 걱정하고 하수구를 정비하며, 부패한 정부를 비난했습니다. 한번은 황제께서 남북전쟁을 끝내기 위해, 존 브라운과 제퍼슨 데이비슨 대통령을 호출한 적이 있었습니다.”

“진짜야? 그런 미치광이를 놔둔다고?”

반신반의했던 사람들은 콜린의 말이 이어질수록 노턴 1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반면 더는 참지 못한 존 메이스는 잔뜩 성난 얼굴로 소리쳤다.

“그만! 오늘 뉴스는 여기까지다!”

“아직 노턴 1세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가 많습니다만.”

“닥쳐!”

존 메이스가 총을 뽑자, 장내 분위기에 험악해졌다. 콜린은 마른침을 삼키며 막스가 무언가 해주길 기다렸다.

그리고 때마침.

“무기고에 불이 붙었다!”

존 메이스의 안색이 돌변하더니, 황급히 부하들을 이끌고 헛간을 빠져나갔다.

이때 불을 붙여놓은 막스는 장소를 이탈.

마을로 싣고 온 버팔로 사체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피 묻은 가죽을 꺼내 펼치니. 리볼버 여섯 정, 윈체스터 라이플 두 정, 탄약과 수류탄 등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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