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 왜 똑같이 나눠야 하지?
리볼버와 보조무기들은 코트 안 속으로 감추고. 윈체스터 라이플 한 정은 등에, 남은 하나를 손에 쥐었다.
빠르게 무장을 끝마친 막스는 자리를 이동.
바위 뒤에 은폐한 뒤, 모닥불에 꼬인 불나방들처럼 모여든 갱스터들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34명이랬나.’
야심한 밤, 활활 타오르는 불빛이 표적들을 선명하게 비추었다.
‘이제 니들이 사냥당할 차례다.’
타앙!
철컥.
타앙!
철컥.
레버를 빠르게 당겨 탄피를 배출, 장전을 이어가며 갱단을 향해 총탄을 쏟아냈다.
“기습이다!”
“전부 무장하라!”
열다섯 발을 순식간에 날린 막스는 미련 없이 자리를 이탈. 허리까지 오는 들풀 속으로 숨어들어 자세를 낮췄다.
화재와 총탄으로 일으킨 소동 속.
혼란을 틈타 마을 가까이 접근해서는 수류탄 핀을 제거해 우왕좌왕하는 놈들에게 투척했다.
3, 2, 1.
콰앙!
세 명이 날아가고 폭발의 여파로 대여섯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장내는 삽시간에 고통스러운 신음, 혼란, 경악으로 가득찼다.
“어떤 새끼들이냐!”
분노한 존 메이슨이 보이지도 않는 적들을 향해 총을 쏴댔다. 부하들도 가세하여 휑한 들판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이성을 잃은 총탄이 허공을 가르고. 아군의 총성만 가득하다는 걸 놈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전투는 심리전이지.’
콜린은 갱단을 도발해 분노를 촉발시키고, 막스는 화재를 일으킨 뒤 총을 쏴 적들을 교란했다.
쉴 새 없이 휘몰아친 공격에는 물리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물론 유효 기간은 길지 않기 때문에,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교란해야 했다.
사사사삭.
때마침 풀밭을 가르며 콜린이 미리 일러둔 컨택 지점에 나타났다.
“노동자들은요?”
“휘말리지 않으려면, 문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했어. 뭐, 몇 명은 싸우겠다고 뛰쳐나가긴 했지만.”
“어쨌든 분리는 해뒀네요. 그럼 약발 떨어지기 전에 공격합시다.”
“몇 명 남은 거야?”
“모르죠. 그냥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무기를 건네받은 콜린이 윈체스터 라이플 레버를 당겨 장전, 막스는 텅빈 약실에 총알을 채웠다.
“시선 끌어 줘요, 마을로 들어갈 테니까.”
“진심이지?”
막스는 대꾸하는 대신, 연막과 섬광을 하나씩 손에 들었다. 그런 다음 핀을 제거.
시간차를 두고 마을에 투척했다.
스스스스슷.
찌이이잉.
“으악! 내 눈!”
“이 연기는 뭐야!?”
탕! 탕!
콜린이 총을 쏘고, 그 틈에 막스는 마을 깊숙이 진입했다.
한편, 거듭되는 혼란 속에 존 메이슨의 명령은 일관됐다.
“나가지 마라! 적들은 우리를 꾀어 이곳을 점령하려는 게 목적이다! 방어에 집중해!”
마을을 벗어나는 순간, 적들이 쳐 놓은 매복과 덫이 기다리고 있을 터. 병력이 빠지면 본격적으로 마을을 쳐들어올 것이 분명하다.
어설프게 알면 오히려 독이 된다고 했다.
남군 게릴라였던 존 메이슨과 부하들은 매복, 기습, 습격에 익숙했다.
그 결과, 막스가 일으킨 소란에 과잉반응하고
음모와 전술, 전략을 확대 해석하고 있었다.
마을에 들어선 막스는 윈체스터 라이플 대신 리볼버를 들었다. 건물 벽에 붙어서는 적이 보이는 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놈들이 마을로 들어왔다!”
둘이 쓰러지자 주변에 있던 갱단 다섯이 몰려오고. 막스는 재빨리 윈체스터 라이플로 변경.
철컥.
탕!
빠르게 레버를 당겨 속사를 펼쳤다.
적들이 쓰러질 때마다 숫자를 카운팅 하고, 틈이 생기면 미리 봐둔 곳으로 몸을 이동했다.
마을 전체가 목장이라 건초 더미, 울타리, 마구간 등 은폐엄폐물이 널려 있었다.
물론 재수없으면 미리 숨어있던 놈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
건초 뒤에 숨은 놈들이 셋. 서로를 알아본 순간, 패닝으로 한 발 같은 세 발의 총탄이 놈들의 몸에 박혀 든다. 패스트드로우가 생략된 막스의 미친 속사였다.
순식간에 셋을 시체로 만든 막스는 이 장소를 이용하기로 했다.
건초 더미 뒤는 달빛과 화재로 인한 불빛이 닿지 않아 어둡고 음침했다.
‘숨기에 적당하군.’
시체들 틈을 파고든 막스는 기계처럼 누운 채 리볼버와 윈체스터 라이플의 약실을 채워갔다.
그러던 때, 두 명이 접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행동을 멈춘 막스는 죽은 듯 시체처럼 미동하지 않았다.
이윽고 코앞까지 다가온 놈들은 동료들의 시체를 발견.
밤인데다 시체와 섞여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젠장, 여기도 당했어!”
“쥐새끼같은 새끼!”
놈들이 등을 돌린 순간.
막스는 스윽 총구를 내밀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총성은 또 다른 무리를 불러들이고.
그렇게 달려온 놈들은 어느새 늘어난 시체더미를 발견했다.
하지만 놀랄 틈도 없이.
탕! 탕!
놈들 역시 막스를 가려줄 시체가 되었다.
이는 콜린이 마을 밖에서 적들의 시선을 분산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13.’
그에 앞서 불나방들과 수류탄으로 날아간 놈들까지 치면 대충 25명. 콜린이 몇을 제거했는지 모르나, 끝이 얼마 남지 않은 건 확실했다.
막스가 담담히 약실을 채워갈 때, 말 몇 필이 마을 밖을 빠져나갔다.
‘존 메이슨인가.’
그게 누구든, 어차피 예상한 일이다.
단둘이서 수십 명의 갱단을 완벽하게 전멸시키리라곤 기대하지도 않았으니까.
아니, 오히려 막스는 놈들이 다른 갱단을 불러들이길 바라고 있었다.
흥미로운 건, 도망친 놈들은 과연 자신들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였다.
텍사스 레인저스, 북군, 연방 보안관? 혹은 경쟁하는 다른 갱단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시체 틈에서 휴식하는 동안.
막스는 총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콜린은 재장전에 들어갔는지, 마을 밖에서 총성이 울리지 않았다. 마을 내부도 마찬가지.
그런데 콜린이 다시 총을 쏘아도, 마을에선 일체 대응 사격을 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대부분 갱단이 말을 타고 도망갔을 거라고 착각하기 쉬웠다. 하지만 막스는 지금이 가장 위험한 때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지휘관이 똑똑하면 교란이고, 그것도 아니면.’
도망가지 못하고 숨어있는 놈들만 남았을 가능성이 크다. 놈들을 리스크 없이 제거하려면 방법을 달리해야 했다.
막스는 눈에 띄는 윈체스터 라이플을 시체 틈에 숨기고 최대한 피를 닦았다.
그런 다음 포복으로 기어 어딘가로 향했다.
“아무래도··· 상황이 끝난 것 같죠?”
“그럼 누군가 찾아오겠지.”
그게 누가 됐든, 노동자들은 제 발로 헛간을 나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밖에서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농기구와 건초 더미로 문을 막기까지 했다.
흑인 노동자들은 적들의 정체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는데. 흑인에게 적대적인 집단이 아니길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쾅! 쾅!
누군가 헛간 벽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싸움은 끝났습니다!”
“누, 누구요?”
“뉴스 읽어 주는 남자 하인이요.”
“오오!”
탄성 속에 누군가 중요한 걸 물었다.
“그래서 싸움은 누가 이겼어?”
“······ 우리 편이요.”
과연 누가 우리 편인지 각자 받아들이는 게 다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그 말 자체가 주는 안도감이 크다는 사실. 곧바로 문을 막고 있던 것들을 제거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끼이이익.
헛간 문이 열리고 노동자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40. 그들은 피와 먼지로 범벅인 막스를 보곤 혀를 끌끌 찼다.
“그러게 밖은 뭐 하러 나가서 그 고생을 했어.”
막스는 노동자들 틈에 자연스레 끼어들었다.
“자네 주인은?”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네요.”
“흠. 그럼 일단 불부터 끄고 찾아···.”
이때, 막스의 예상대로 어디선가 숨어있던 놈들이 튀어나왔다. 그 수가 셋.
놈들이 총구를 겨누며 소리쳤다.
“겁쟁이 새끼들! 밖에서 싸우는 동안 대체 뭘 하고 있던 거야?”
“에휴, 쓸모없는 새끼들.”
무기도 없고, 허드렛일이나 하는 사람이 싸우길 바라는 건가?
‘지들도 숨어있던 주제에?’
어이가 없는 일이다. 총구 앞에 말을 삼키지만, 노동자들의 눈빛엔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새끼들 봐라.’
그 변화를 짐작한 갱스터들은 내심 섬뜩한 마음이 들었다.
쪽수에 밀릴뿐더러, 시체가 된 동료들이 떨군 무기들은 곳곳에 널려 있다.
게다가 마을을 방어하려면 셋으론 부족하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갱스터들은 태도를 바꿔 노동자들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보스가 지원군을 요청하러 갔다. 내일이면 도와주러 올 거야.”
“일단 여길 지켜야 돈이라도 받을 거 아냐?”
갱스터들은 얄팍하게 노동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돈으로 회유를 시도했다.
이때 막스가 질문을 던졌다.
“습격하던 적들은 다 죽은 건가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새끼야.”
짜증 섞인 눈으로 막스를 노려본 놈이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
“그나저나 네 주인 새낀 어딨어?”
“저도 찾고 있습니다. 전쟁 후유증 때문에, 전투만 보면 흥분한다고 그랬거든요.”
“지랄. 그따위 기사 읽었으니, 보스한테 죽을까 봐 도망갔겠지. 남군 장교는 얼어 죽을.”
신랄하게 콜린을 까댄 뒤엔, 막스를 하인 부리듯 말을 건넸다.
“죽기 싫으면 넌 여기 남아서 주변이나 정리해.”
“알겠습니다.”
새벽 두 시.
대충 정리를 끝내고 노동자들 틈에서 잠을 자게 된 막스가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남은 갱스터들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어둠 속에 스며든 막스가 놈들을 찾아 다닐 때.
한 건초 더미 뒤에서 익숙한 뒤통수를 발견했다.
- 뭐해요.
소스라치게 놀란 콜린은 반사적으로 보위 나이프부터 찔러왔다. 그러다 막스라는 걸 알고는 재빨리 칼을 회수했다.
- 방금 심장마비로 갈 뻔했다.
- 그러니까 뒤를 항상 조심해야죠.
이때 갱스터 한 놈이 소리를 들었는지 잔뜩 경계하며 다가온다. 막스가 칼을 꺼내 들자, 콜린이 고개를 저었다.
‘뭔가 있는 모양이네.’
둘은 슬그머니 자리를 이탈해 상황을 관망했다. 정찰하러 온 놈은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그래서인지 대충 훑어보곤 다시 일행에게 합류했다.
막스가 콜린에게 속삭였다.
- 뭘 기다리는 겁니까?
- 저 새끼들 여기서 도망갈 생각하고 있거든.
- 그래서 그거 구경하려고요?
- 아니지. 지금 두 새끼가 숨겨둔 돈을 찾고 있거든.
그제야 막스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갱스터들은 지시를 받은 게 아니라 미처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한 놈들.
때문에 위험한 마을에 남느니, 돈이라도 챙겨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콜린은 알아서 돈을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 탁월합니다, 콜린.
- 10년 넘게 같이 일했으면, 이 정도는 해야지.
히죽거린 콜린은 습관처럼 시가를 물었다.
물론 불은 붙이지 않았다.
막스는 내친김에 이 상황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둘이 작당하는 사이, 갱스터들이 마침내 돈을 찾았는지.
보따리 두 개를 들고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마구간을 나오는 순간 그들을 기다리는 건, 윈체스터 라이플.
“!”
탕!
철컥.
무차별 사격을 가해 놈들을 말에서 떨어트렸다.
막스는 날듯이 달려가 칼로 숨통을 마저 끊고, 돈 보따리 한 개를 챙겨 어디론가 사라졌다.
얼마 되지 않아, 총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건 남은 돈 보따리를 들고 이죽거리는 콜린이었다.
“돈을 갖고 튀려는 걸 내가 잡았습니다.”
“돈을요?”
콜린은 동요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보따리를 내던졌다.
“마을이 이 지경이 되고, 동료들까지 도망갔는데. 여기에 남을 이유가 뭐겠습니까.”
마치 탐정이라도 된 듯, 콜린은 자신의 추리 과정을 설명했다.
그동안 어디에 있다가 이제 나타난 건지, 어떻게 이들의 계획을 눈치챘는지. 여러 의혹이 있지만, 당장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건 돈주머니였다.
그들의 시선이 온통 그곳에 쏠려 있었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여기 있다간 월급은커녕, 목숨이 날아갈 수 있어요. 그거 나눠서 여길 떠나세요.”
“······ 나눠 갖으라고요?”
달빛만큼이나 노동자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만큼 돈 보따리가 묵직했다.
그런데 막상 돈을 나누려니 묘한 분위기가 펼쳐졌다. 백인들이 흑인들을 노골적으로 노려보기 시작한 것이다.
‘왜 똑같이 나눠야하지?’
인종 간 임금엔 분명 차이가 존재했으니 흑인이 백인보다 2~30% 낮았다.
그러나.
“설마 이런 상황에서 그걸 따지는 미친 새끼는 없겠죠?”
콜린의 뼈있는 말에 백인들의 탐욕스러운 눈빛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엄밀히 따지면 감춘 것에 가까웠다.
콜린은 윈체스터 라이플을 어깨에 걸치고, 시가를 피우며 공정하게 갈라지는 돈들을 지켜봤다. 이때 보따리 하나를 감춘 막스가 슬그머니 그 옆에 섰다.
다들 막스가 사라졌다 나타난 걸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돈 나누는 데 열중했다.
어찌 됐든, 40명이 나눠 가진 돈은 대략 100달러. 수개월 치 월급이었다.
“그럼 우린 이만 마을을 떠나겠습니다.”
수중에 돈이 생기면 목숨의 가치는 더욱 소중해지는 법. 목장에 말들도 넘쳐나겠다, 돈을 챙긴 자들이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고. 백인 둘, 흑인 일곱이 머뭇거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뭐합니까, 안 가고?”
“...... 이대로 가면 돈을 빼앗길 겁니다.”
“먼저 간 자들은 전부 아이리쉬거든요.”
전부는 아니지만, 텍사스의 많은 아일랜드인이 남군에 속하고 노예제를 옹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아있는 자들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의 습격을 걱정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