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9화 (319/360)

#319 뭐는 안 위험합니까

“아침까지 마을에 있으면 위험할 텐데.”

“여기나 밖이나, 어차피 위험하긴 똑같습니다.”

뒤통수가 만연한 시대.

고된 노동을 했던 동료조차 믿지 못하는 시대.

물론 실제로 먼저 마을을 떠난 백인들이 이들의 돈을 노릴지는 확실치 않다. 분명한 건 남을 믿지 못할 만큼 피해의식으로 찌들고 자신을 약자로 여기는 자들만 마을에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막스가 그들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존 메이슨이 부하 둘과 마을을 빠져나갔는데, 어디로 갔을까요?”

“안티오치란 마을에 동료가 있다고 들었어.”

“거기에 지원을 요청했다고 가정하면. 언제쯤 올 것 같습니까?”

“아마도, 늦은 오후나 돼야 할걸?”

막스는 대답하는 30대의 백인 남자를 쳐다봤다. 버팔로 가죽을 벗길 때 본 적이 있는 남자였다.

“이곳 출신입니까?”

“텍사스로 온 지 한 20년 됐지. 원래는 버지니아 애포매톡스 출신이고.”

“애포매톡스면 로버트 리 장군이 항복에 서명한 장소네요?”

“......”

“그나저나, 버팔로 가죽은 왜 벗기고 있었습니까?”

텍사스에서 20년 살았으면 농장이라도 하나 갖고 있어야 정상일 텐데 말이다.

남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주변이 온통 갱단투성이잖아. 원래 가지고 있던 농장도 전부 빼앗기고, 사업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있어야지.”

“아, 그래서 버팔로 가죽을 벗기고 있었구나.”

“거, 말끝마다 버팔로, 버팔로. 왜 그래?”

남자가 고까운 시선으로 막스를 쳐다봤다.

한편으론 흑인 하인에게 그런 말을 듣는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지고.

“아무튼, 네가 모르는 게 있어. 이 부근에서 사업을 하려고 했거든.”

“농장 말고 여기서 할 만한 사업이 있습니까?”

“당연하지. 갱단들만 아니었으면 벌써 백만장자였을걸?”

방금까지 100달러에 눈 돌아간 사람이 할 소리인가.

보기보다 허언증이 심각해 보인다.

어찌 됐든, 남자의 이름은 라인 탈리아페로 바렛. 남군 병참 장교였으며 텍사스 동부 멜로즈란 곳에서 20년 넘게 농장에서 살아서인지, 주변 정세를 훤히 알고 있었다.

막스는 바렛이 준 정보를 토대로 작전을 구상했다.

시간은 새벽 다섯 시.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더니, 옆에 있는 콜린도 못 알아볼 정도로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밖을 어슬렁거리는 소리에 잠깐 눈을 붙였다 뗀 막스가 벌떡 일어났다.

창문 밖엔 흑인들이 가축들의 먹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습관이 이렇게나 무섭다.

‘이야···.’

막스는 넋을 놓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기계처럼 묵묵히 건초를 수레에 담아 옮겨, 말과 소들이 있는 울타리에 수북이 쌓고. 닭과 돼지 먹이까지 챙긴 뒤엔 솥단지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아침 식사니까, 남은 재료 다 쓰자. 망할 갱단 새끼들 배라도 쫄쫄 곯게.”

“문제는 내일 아침이지. 이제 우린 어디로 가냐고.”

“댈러스에 가면 일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 가는 길이 더 위험할걸.”

흑인들의 대화를 엿들은 막스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직원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

한편, 눈을 뜬 백인 둘, 바렛과 친구 해밀턴은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신없을 땐 몰랐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해밀턴이 바렛에게 말했다.

“마을에 갱단은 전부 죽거나 도망갔는데, 정작 습격한 놈들은 보이질 않아. 이게 말이 돼?”

아침이 되도록 마을이 조용하다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뉴스를 읽어 준 남자의 행동도 모순적이고.

“우리 보고 헛간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하더니, 정작 자기는 하인하고 밖에 있었어. 게다가 도망가려는 갱스터들을 죽였던 총은 북군이 쓰던 총이었어.”

“헨리 라이플을 말하는 거야? 남군 병참 장교였을 때 직접 만져본 적도 있는데, 달랐어.”

“후속 모델일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긴 하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 그냥 이상하다는 거지 뭐.”

바렛이 김빠지는 반응을 보이자 해밀턴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바렛 역시 둘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었다.

“몇 개월 전, 텍사스 레인저스와 갱단끼리 충돌했던 거 알지?”

“물론. 근데 그게 왜?”

“피해를 본 레인저스가 지금껏 잠잠했잖아.”

“..... 설마?”

해밀턴의 눈이 커졌다.

자신은 기껏 다른 갱단 정도로 여겼는데, 바렛은 전혀 다른 각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간밤에 일어난 습격이 텍사스 레인저스라면 의혹이 전부 해소되는 셈이었다.

“그들이 누구든. 이번 기회에 갱단이 없어지길 바라야지. 더는 유전 탐사를 늦출 수 없다고.”

바렛이 막스에게 말한 사업은 석유 시추였다.

실제 원 역사에서 1866년 텍사스 오일을 최초로 발견하고 시추한 인물이 바로 라인 탈리아페로 바렛이었다.

텍사스 동부 멜로즈라는 곳에 살던 바렛은 우연히 그곳에 살던 인디언들의 말을 듣게 되는데. 초기 정착민들이 자연적으로 누출된 고약한 냄새의 액체를 약처럼 사용했다는 이야기였다.

바렛이 이 말을 주목하게 된 건, 몇 년 뒤인 1859년에 펜실베이니아에서 미국 최초의 유전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 영향을 받은 바렛은 친구 해밀턴과 여러 투자자를 모아 탐사할 땅을 임대하고 희망과 꿈을 담아 힘차게 드릴링을 시작했다.

그리고 남북 전쟁이 터졌다···.

- 뻑뻑뻑!

배럴당 20달러였던 석유는 전쟁이 터지자마자 52센트로 폭락하고 투자자는 자금을 회수.

사업에 실패한 바렛은 곧바로 남군의 보급 장교를 지원했다.

여기까진 원 역사와 똑같고.

바렛의 운명이 틀어진 건 종전 이후였다.

전쟁이 끝나고. 사업을 재개하려 했지만, 전쟁으로 집안이 몰락하고 돈이 궁해진 바렛은 닥치는 대로 일을 해 돈을 모아야 했다.

그 중 하나가 버팔로 가죽을 벗기는 일이었다.

바렛의 인생이 이렇듯 꼬이게 된 데에는 막스의 영향이 컸다.

원 역사보다 전쟁을 1년 단축하고 희생자를 절반으로 줄었다는 건, 역설적으로 죽어야 할 게릴라와 무법자들이 그만큼 살아있다고 볼 수 있었다.

더욱이 텍사스를 초반에 점령해서 주둔하는 군대가 다른 주에 비해 많지 않았고.

결국 이런 치안 공백이 한 사업가의 미래를 막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물론 바렛은 여전히 유전을 탐사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갱단만 없어진다면.

*

흑인들이 만든 아침 식사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

그런데 배를 채우자마자 바렛과 해밀턴은 결심한 듯 작별 인사를 건넸다.

“나중에 볼 수 있으면 봅시다.”

두 명의 백인이 떠나고, 흑인들과 막스, 콜린만이 남았다.

아침 식사를 든든하게 먹은 막스는 흡족한 얼굴로 한 가지 제안했다.

“우리 일을 도와주면 일당을 후하게 쳐 드리죠.”

“······ 무슨 일인데요?”

“뭐, 늘 하던 일과 차이는 없을 겁니다. 물건 나르고, 쌓고, 가끔 땅도 파는 일이니까.”

“음. ”

흑인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대답을 망설였다.

“주급 10달러.”

“언제부터 하면 되나요.”

“언제나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묻고 따지지도 않고, 고용은 이루어졌다.

사실상 갈 곳이 없던 이들에겐 돈보다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했다.

막스는 파격적으로 선금을 지급한 뒤 지시를 내렸다.

“자, 그럼 여러분들은 실과 못, 나무판자를 가져다주세요.”

“알겠습니다!”

노동자들은 위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지 짧은 시간에 물건들을 챙겨왔다.

“실은 나한테 주고, 나무판자는 톱으로 잘라서 이렇게 만들 겁니다.”

막스는 나무판을 잘라 총알 한 개 너비에 깊이는 3분의 2쯤 들어갈 수 있도록 작은 통을 만들었다. 그리고 바닥 정중앙에는 못을 박아 튀어나오도록 했다.

“이걸 그대로 만들면 됩니다. 수량은 100개가 필요해요.”

“뭐, 어렵진 않네요.”

흑인들이 작업하는 동안 막스와 콜린은 존 메이슨이 거주했던 가옥으로 들어갔다.

방을 열자 침대가 비뚤어져 있고, 바닥엔 나무가 뜯겨 있었다. 그 안의 빈 곳에는 노트와 서류가 있었다.

“여기에 돈을 숨겨뒀었군요. 혹시 모르니까 이것들은 챙겨두죠.”

막스는 가방에 노트와 서류를 쓸어 담고.

문에 부비트랩을 설치했다.

존 메이슨이 돌아오면, 여기부터 찾아올 테니까.

작업을 끝낸 뒤, 막스는 목장에 있는 마차 네 대에 짐을 싣기 시작했다. 시체들을 털어 얻은 총과 탄약, 헛간에 널린 공구.

그동안 모아둔 버팔로 가죽까지 쓸어 담았다.

정오가 될 무렵.

흑인들은 작은 나무통 만드는 작업을 끝내고, 길쭉한 나무 끝을 뾰족하게 만드는 작업을 이어갔다.

목재도 어느 정도 쌓여 있었기 때문에, 끝을 도끼로 비스듬히 깎는 비교적 간단한 작업이었다.

“자, 그럼 다 싣고 갑시다.”

마차 다섯 대와 말 열 필을 끌고 향한 곳은 마을과 20km 떨어진 버팔로 사냥터. 죽은 버팔로 사체들이 즐비한 들판이었다.

콜린이 미간을 좁히며 막스에게 물었다.

“진짜 여기서 싸우려고?”

“뒤로는 숲이 있고, 언덕도 있습니다. 놈들이 온다면 우리가 왔던 길로 올 테고요.”

마차 바퀴 자국이 흔적을 고스란히 남겼으니 말이다. 막스는 마을에서 만든 작업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럼 작업을 시작해 볼까요.”

가장 먼저 한 일은 진지를 구축하는 일. 놀랍게도 막스는 버팔로 사체를 끌어다 벽을 쌓았다.

참다못한 흑인 노동자 한 명이 물었다.

“근데 이건 왜 쌓는 거예요? 작업한 건 다 뭐고요?”

“우린 오늘, 여기서 결전을 벌일 겁니다.”

이쯤에서 막스와 콜린은 자신의 정체를 알리기로 했다. 더는 위장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막스는 얼굴을 닦아내고, 연방 보안관 배지를 보여줬다.

노동자들이 탄성을 내지르고 눈빛은 미친 듯이 요동쳤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 12달러?”

“콜.”

작업 시간만 세 시간.

대략 10평 정도의 둥근 진지를 구축하는데, 여기에 동원된 버팔로 사체만 300마리가 넘었다.

그다음엔 단체로 말을 타고 오지 못하도록, 들판 여기저기 끝이 뾰족한 나무를 비스듬히 땅에 박아 두었다.

마지막 작업이 가장 중요했는데.

총알이 들어간 작은 통들을 땅에 묻는 작업이었다.

하단부에 못이 박혀 밟는 즉시 뇌관이 폭발해 총알이 발사되는 방식으로,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콩이 사용해 꽤 큰 피해를 남긴 부비트랩이었다. 이 경우 그 위력을 온전히 발휘하려면 심어놓는 위치가 중요했다.

“작업해둔 곳은 절대 밟으면 안 된다.”

“······ 13달러.”

“적당히 해.”

“옙.”

흑인 노동자들은 떨리는 손으로 흙을 파고 트랩을 심었다. 작업량과 위험도로 치면 주급 12달러는 결코 많은 돈이 아니었다.

점차 흑인들의 입에서 닭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같은 날 저녁.

백 명에 달하는 무장한 갱스터가 마을로 들어섰다.

사선을 넘나들며 투쟁했던 부하들의 시체들. 그 처참한 광경에 존 메이슨이 이를 깨물었다.

“아주 쑥대밭을 만들어 놨구만.”

“우리한테 올 만했네, 존.”

존 메이슨과 나란히 마을로 입성한 두 남자는 시체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들 역시 각각의 갱단을 이끄는 인디펜던트 레인저스의 리더들이었다.

“어떤 새끼들 짓인지 우리가 조사해볼 테니까, 너는 볼일부터 봐.”

“그럼 부탁하마.”

잔뜩 얼굴이 굳은 존 메이슨은 부하 셋을 이끌고 자신의 가옥을 찾아갔다.

‘모조리 찾아내 죽여주마.’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죽음으로.

존 메이슨은 말에서 내려 집 안으로 들어섰다.

끽, 끽.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무로 된 바닥 소리가 들려오고, 난장판이 된 집안을 보며 존 메이슨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이를 바득 갈며 방문을 열자,

팅.

톡.

소리는 듣지도 못한 채. 비틀어진 침대와 뜯긴 바닥을 보며 존 메이슨이 소리쳤다.

“야 이 개···.”

콰아앙!

존 메이슨과 뒤를 따르던 부하들까지 폭발에 날아가고, 집안이 들썩거리며 먼지가 피어올랐다.

“왓더··· 뻑.”

“젠장!”

리더들이 갔을 땐, 창밖으로 튕겨 나온 존 메이슨의 반죽이 된 상반신이었다.

“이런 미친 새끼들!”

“당장 이 부근을 샅샅이 수색해라!”

하지만 아무도 발견할 수 없자, 그때야 트랩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리더들은 방향을 틀어 적들이 어디로 향했는지를 조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 바퀴가 난 곳을 찾아냈다.

“가자!”

시간은 저녁때를 지나 밤 9시.

그때가 되도록 주변은 고요하기만 했다.

버팔로 진지 안에서 모닥불을 피고, 저녁까지 먹은 뒤 후식으로 커피를 홀짝였다. 흑인들은 지금까지 했던 노동 중 가장 힘들었다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내일도 이러면 진짜 13달러 주셔야 해요, 사장, 아니 보안관님.”

“이제 이런 일 없다니까 그러네.”

“믿겠습니다.”

한쪽에서 콜린이 하늘로 시가 연기를 내뱉었다.

“근데 얘들은 오긴 오는 거야? 정보가 틀린 건가.”

막스는 팔짱을 낀 채 고심했다. 지금까지 안 왔다는 건 한 가지를 의심해 볼 수 있었다.

“여러 곳에 지원을 요청했다면, 느릴 수도 있죠.”

“그럼 위험한 거 아냐?”

“뭐는 안 위험합니까. 다만, 50명 넘어가면 진짜 힘들겠···.”

말을 하다 멈춘 막스가 컵을 내려다봤다.

은은한 진동이 느껴지듯 물결에 파장이 일었다.

곧이어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뒤흔들었다.

부실 공사인지, 위에 있던 버팔로 사체가 아래로 떨어졌다.

“······”

막스가 흑인들을 쳐다보자 슬쩍 고개를 돌렸다.

“다들 총 들어. 눈 감고 쏴도 되니까 총 소리만 내.”

“알겠습니다.”

막스는 버팔로 사체 틈으로 몰려오는 놈들을 바라봤다.

정확한 숫자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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