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2화 (322/360)

#322 아기용품도 손대야 하나

투지와 열정을 온몸에 두른 혈기 왕성한 청년은 20대가 채 되지 않아 보였다. 짧은 머리를 위로 빗어 넘겨, 외모는 곱상하긴 미남이었다.

히콕은 자신을 꼬나보는 남자를 향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예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군. 괜한 목숨 버리지 말고, 역마차나 잘 챙겨. 그게 네 일이니까.”

“서부에선 당신을 모르는 사람이 없더군, 와일드 빌 히콕. 그런데 어쩌지? 내가 궁금한 건 당신이 아니라 막스 조거든.”

“호오. 우리 보스를?”

대원들은 흥미로운 얼굴로 남자를 쳐다봤다.

실력은 원탑이지만, 동양인이라 좀처럼 백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 그게 대원들이 생각하는 보스의 모습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백인들의 질투와 시기는 강요한다고 바뀔 게 아니었다.

그런데 혈기 왕성한 젊은이가 보스에게 관심을 보이다니. 저절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동양인을 이겨서 단숨에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 명예와 위치 모두!”

“미친.”

대원들의 입에서 탄식과 웃음이 흘러 나왔다.

그런데 이때, 역마차 앞에서 망을 보던 자가 소리쳤다.

“젠장! 갱단이 더 있었어! 더 많은 놈이 몰려오고 있다고!”

말이 끝나자마자 협곡에 말발굽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방을 응시한 남자의 미간이 좁아졌다.

역마차를 호위하는 동료들은 일곱.

그에 반해 적들은 30명이 넘었다.

철컥.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남자가 움찔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히콕과 대원들이 총을 꺼내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도와줄 건가?”

“길은 하난데, 그걸 막고 있으면 제거해야지. 딱히 너희들을 도우려는 건 아니야.”

“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당신들은 지금도 SFBC인가?”

히콕이 눈에 이채를 띄며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지. 한 번 SFBC는 죽어서도 SFBC다.”

‘쳇.’

히콕이 이죽거리자 남자가 다시금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장한 자들이 뒤에 있지만, 딱히 불안하진 않았다. 히콕, 아니 그가 속한 단체라면 뒤통수를 치는 짓은 안 할 테니까.

남자는 샷건 대신 라이플을 들었다.

전방에 몰려오는 적들은 속도를 줄이더니, 갑자기 멈춰서서는 주변에 널린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이곳 지리에 익숙해 보였다.

“매케인 갱단을 건드린 이상, 이 협곡이 네놈들의 무덤이 될 거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협곡에 울려 퍼진다. 이에 응답하듯 히콕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아앙!

총알은 꼬리가 달린 듯 그 궤적을 따라 소리를 남기고. 곧이어 수차례의 총성이 연달아 울리기 시작했다.

타아아앙!

타아아앙!

적들의 비명이 들리는 거로 봐선 상당수 총에 맞은 듯하다.

‘상당히 먼 거리인데.’

남자가 멍한 표정을 지을 때, 총성이 멈추고 히콕과 대원들이 역마차를 앞질러 갔다.

지나치던 버팔로 빌 코디가 남자를 힐끔 쳐다보며 말을 내뱉었다.

“안 가고 뭐 하냐.”

‘그냥··· 전진한다고?’

역마차를 호위하는 동료들은 멍한 얼굴로 그들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SFBC 대원들은 진을 치고 기다리는 적들을 향해 망설임 없이 전진했다.

이 모습에 자극을 받은 남자 역시 라이플을 움켜잡았다.

“우리도 가자!”

타아앙!

타아앙!

총탄이 오고 가고, SFBC는 길을 뚫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대충 쏘는 것 같지만 총성에 하나둘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 경악할 만큼 정확했다.

게다가 과감하고 빠른 돌격으로 순식간에 적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

‘남북전쟁에서 특수부대원들이 이런 식으로 싸운 건가?’

나이가 어렸던 남자는 남북전쟁 영웅들의 무용담을 신문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다.

숱한 전투가 있었지만 그중 특수부대원들의 활약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혹적이라 미래의 총잡이 꿈나무들에겐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일까, 집에서 뛰쳐나온 남자의 첫 직업은 특수부대원이자 서부 지역에 이름을 떨친 와일드 빌 히콕과 같은 역마차 샷건 메신저였다.

타아앙!

타아앙!

남자도 뒤지지 않기 위해 경쟁하듯 앞으로 나아갔다. 의욕만 앞섰다고 치부하기엔, 나이에 맞지 않게 남자 역시 총에 능숙했고 정확도도 뛰어났다. 그래 봐야 SFBC 대원들의 수준에는 못 미쳤지만.

길목을 지키는 갱단 대 역마차 호송단과 SFBC의 교전. 협곡에 널린 바위들을 은폐 엄폐 삼아 벌어진 총격전 끝에, 갱단은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 내빼기 시작했다.

“후퇴다! 후퇴!”

“그게 가능할 것 같냐?”

SFBC 대원들은 후환거리를 남기지 않으려 총탄으로 뒤통수를 날려댔다.

남자도 가세해 적들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타앙!

타앙!

‘젠장!’

거리가 먼 적들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남자가 총알을 허비하는 동안 SFBC 대원들은 정확히 적들을 쓰러트렸다.

방아쇠에 손만 걸친 채 남자는 대원들의 모습을 힐끔거렸다.

충격적이게도 히콕 뿐 아니라 대원들의 사격 솜씨 역시 하나같이 뛰어났다. 심지어.

‘쟤는 나랑 비슷한 또래 같은데.’

남자의 시선이 버팔로 빌 코디를 향한다.

총격전에도 긴장하지 않고, 빠르고 정확한 사격 솜씨는 자신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교전 끝! 숨어있는 쥐새끼를 찾아볼까.”

대원들은 라이플 대신 근거리 대응에 효과적인 리볼버로 바꾼 뒤, 먹잇감을 찾는 맹수처럼 주변을 수색했다.

히콕은 합류하는 대신 남자 옆에 다가왔다.

“애송이지만, 생각보다 잘 쏘더군. 싹수가 보여.”

“..... 비아냥대는거야?”

“노노.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미래가 아주 기대되거든. 다만.”

히콕이 쳐진 눈꼬리로 와이어트를 쳐다봤다.

눈빛은 묘하게 냉정하고 차가웠다.

“지나친 자신감은 자제하는 게 좋아. 막스를 이기겠다고 했나?”

“......”

“지금 실력으론 너 같은 애송이 백 명이 덤벼도 막스의 옷자락 하나 못 건든다. 내 이 손모가지를 걸지.”

남자가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번 교전으로 자신감은 많이 떨어져 있었다. 눈앞에서 목격한 SFBC는 신문 기사만큼이나 황당한 실력이었으니까.

히콕같은 실력자들이 우글거리는 곳.

그곳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런데 히콕의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글쎄. 6년 동안 인원 변동이 없어서 말야.”

SFBC는 영구 결번 두 명을 제외하면 238명을 수년째 유지했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전원 노예제 폐지론자라는 사실이었다.

애초에 제이호커스가 그 시작이었으니까.

‘그래도 꽤 아까운 놈인데.’

히콕이 누군가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흔치 않았다. 하지만 교전 중 지켜본 남자의 모습은 나름 흥미를 당기게 했다.

총기 다루는 스킬은 후천적이라 해도, 총격전 내내 보인 침착하고 대담한 모습은 가르쳐서 될 게 아니었으니까.

“어디 출신이지?”

“일리노이주 몬머스.”

“이름은?”

히콕의 머릿속에 각인이라도 시킬 셈인지.

남자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와이어트 어.프.”

히콕이 고개를 끄덕이던 때, 대원들이 돌아왔다.

“쓰레기 청소 끝. 가자, 히콕.”

“오케이.”

히콕이 말에 올라타자, 다급해진 와이어트가 물었다.

“콜로라도에 가면 막스 조를 만날 수 있어?”

“글쎄. 나도 못 본 지 오래돼서 말야. 다만, SFBC에 관심 있다면 찾아오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보스는 사람 보는 안목이 뛰어나거든. 나를 보면 감이 오잖아?”

“일본 가더니 썰렁한 농담만 늘었어, 히콕.”

“다 게이샤들 때문에 그래. 재미없어도 리액션을 해주니까 버릇이 더럽게 든 거라고.”

대원들이 투덜거리자 히콕은 어깨를 으쓱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와이어트 어프는 그들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고민했다.

SFBC의 일원이 되기 위해 콜로라도를 찾아갈 것인가. 아니면 경험을 좀 더 쌓은 뒤,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 것인가.

‘형제들하고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

이복형을 제외하면 와이어트 어프는 7형제 자매 중 네 번째.

원 역사에서 서부의 전설로 남게 될 어프가의 형제들은 서부 전역에 흩어져 경험치를 축적하고 있었다.

*

워싱턴 DC.

텍사스에서 일을 마친 막스는 뉴욕으로 가려던 방향을 틀어 백악관으로 향했다.

알래스카 매입자금과 컨소시엄 구성을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백악관 집무실.

링컨 대통령은 그동안 연방 보안관이 했던 대부분의 사건들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멤피스 폭동을 진압한 공로로 주에서 훈장을 수여한다더군. 그런데 정작 당사자를 찾을 수 없어서 백악관에 연락이 왔네.”

“상금은 없습니까?”

“...... 없네. 아무튼, 우후죽순 창궐하는 KKK단의 세력을 약화하고, 골칫거리였던 텍사스 동부 갱단까지 제거한 일은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업적이었네.”

해서 연방 차원에서 대통령 훈장을 수여하기로 했단다.

“상금은요?”

“...... 없네. 요새 사업이 잘 안 되나? 갑자기 안 하던 돈 타령을··· 아.”

뭔가 짐작을 한 듯 링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설마, 알래스카 매입 자금이 부족한 건 아니겠지? 갑자기 돈 없다는 소리하면 자네가 러시아에 직접 이야기해야 할 거야.”

“어, 음. 물론 자금은 마련해뒀습니다. 이후가 문제라는 소리지요.”

“혹시 혼자 다 감당할 생각인가?”

“설마요.”

막스는 미리 준비한 서류를 내밀었다.

알래스카 매입에 필요한 자금 7백만 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개인 또는 회사가 컨소시엄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름은 ‘DOA(Dream of Alaska) 인베스트먼트’.

구성원은 코넬리우스 밴더빌트, 리바이 스트라우스, 존 피어폰트 모건, 사이러스 컬츠 홀리데이.

그리고 막스 조, 에밀리에 피치 조, SFBC.

놀랍게도 율리시스 그랜트와 윌리엄 테쿰셰 셔먼도 끼어 있었다.

언제부턴가 막스를 맹신하게 된 그랜트는 묻고 따지지 않고, 셔먼까지 꼬드겨 알래스카 투자에 열을 올렸다.

물론 이들의 액수는 전체 자금의 0.7%인 5만 달러에 불과하다. 하지만 둘의 입장에서 영혼까지 끌어모은 인생 최대의 투자로 볼 수 있었다.

- 회수하는데 시간은 걸리지만, 확실합니다.

- ...... 그래서 얼마나 걸리는 건데?

- ...... 좀 걸립니다.

어찌 됐든, 알래스카 컨소시엄은 이렇게 총 아홉 곳에서 자금을 대기로 했다.

앤드류 카네기의 경우 제철소 짓느라 돈 없다고 징징거려서 빼주고, 캔자스의 광산 주주들 역시 백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금액 때문인지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결국, 밴더빌트와 JP 모건을 빼면, 막스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돈이었다.

“알래스카 사업이 망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

“음. 일단 그랜트, 셔먼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킬 확률이 높습니다.”

웃음을 터트린 링컨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끝에, 국무 장관과 재무장관을 불러 들였다.

막스는 이들과 알래스카 매입 외에도 철도, 석유, 해상 무역, 일본과 조선에 관해서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사흘을 백악관에 머물고 막스는 뉴욕으로 향했다. 볼티모어를 지나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막스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실 이번 일정은 피치에겐 비밀이라 깜짝 놀래켜줄 생각이었다.

뉴욕 맨해튼 기차역.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막스는 모자를 눌러쓴 채 먼저 백화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아기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골랐는데, 막스 기준에선 탐탁지 않은 것들 뿐이었다.

‘아기용품도 손대야 하나.’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

정작 아기용품은 패스하고 막스는 피치에게 줄 선물을 찾아봤다. 이때 용기를 낸 여직원이 다가왔다. 총과 칼이 그려진 검은 스카프를 두른 모습은 강도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부인께 줄 선물이라면, 이 브로치는 어떠세요?”

과거 막스가 준 브로치는 피치의 생명을 지켜주고 파손됐다. 피치는 그걸 수리해서 지금껏 사용했는데, 이참에 새것을 사주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루비와 사파이어 색깔별로 다양합니다. 대신 가격은 좀 나가요···.”

계산할 때 비싸다고 지랄할까 봐 미리 얘기해주는 걸까. 여직원이 스카프를 두른 막스를 힐끔거렸다.

“음.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전부 주세요.”

“예? 저, 전부 다요?”

막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직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일단 시키는대로 쓸어 담았다.

“다해서 57달러입니다, 고객님.”

막스가 100달러 지폐로 쿨하게 계산을 끝내자, 훔쳐보던 여직원들이 득달같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부인께서 옷을 선물해드리는 건 어떨까요? 빅토리아 여왕께서 대관식 때 입은 드레스가 어제 들어왔거든요.”

“뉴욕 최고의 세공사가 만든 목걸이와 반지 세트는 어떠신가요!?”

여직원들의 손에 이끌려 막스는 피치와 처갓집 식구들 선물까지 사버렸다.

이날 백화점에서 지출한 돈만 3백 달러.

서부에서 8개월 동안 돌아다니던 때보다 더 많이 쓴 셈이었다.

짐이 많아진 막스는 백화점에 나오자마자 마차를 불러 세웠다.

“파이브포인츠 로잔나 피어스로 갑시다.”

시간은 저녁 6시.

맨해튼 대로를 가로질러 가는 동안 막스는 창밖 풍경을 감상했다. 서부와 달리 건물들이 촘촘히 세워져 있고, 사람들은 활기 넘치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대조적인 서부와 동부의 풍경은 때론 이질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로잔나 피어스.

옆에 난 길을 따라 뒤에 세워진 3층 건물 앞에 섰다. 그곳에서 막스를 가장 먼저 반긴 건, 네이선 로어만큼이나 거구의 중년 남자.

“그동안 건강하셨습니까, 장인 어르신.”

“아니, 이게 누구야!”

몸집만큼이나 목소리가 큰 레드 피치가 사위가 왔다며 소리를 질러댔다.

곧이어 처남, 처남댁과 아이들이 달려 나오고.

뒤늦게 피치와 장모님도 나타났다. 그리고.

둘의 품에 각각 아기가 안겨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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