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내가 마스터였지, 참
“그래서 생각해둔 이름이라도 있어?”
피치가 물었다. 나이 들었다고 걱정하더니, 피치는 한 번에 둘을 낳는 기염을 토했다.
그렇게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성별은 딸과 아들. 딸이 2분 먼저 태어났단다.
막스는 이름을 생각하며 아기들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둘 다 동양인스런 서양인인데, 굳이 따지면 아들은 막스를 닮고 딸은 피치를 닮은 듯했다.
물론 좀 더 커서 바뀔 수도 있겠지만.
‘이름이라.’
꿀 떨어지는 눈으로 아기들을 바라보던 막스가 턱을 긁적거렸다.
“피치는 생각해둔 이름 있어?”
“뭐야, 여기 오는 동안 그것도 생각 안 했어?”
“성별을 모르니까···?”
“그거 핑계야, 핑계. 둘 다 준비했어야지.”
궁지에 몰린 막스는 머리를 굴린 끝에 말했다.
“에스와 에프 어때?”
“...... 셋째는 비고 넷째는 씨겠네? 못 들은 거로 할게.”
“음. 그럼 콜로와 라도는?”
고개를 절레 저은 피치는 작명 센스는 꽝이라며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나름 그녀가 준비해둔 이름이었다.
그중 길가에 널린 돌처럼 흔한 건 거르고 막스의 눈에 띈 건.
루시와 아서.
“이거다, 이거.”
“그 이름이 마음에 들어?”
“뭔가 딱 얼굴하고 매칭이 되잖아.”
“크면 변할 텐데 뭘.”
“그래도, 딱 어울려.”
이렇게 이름을 얻게 된 이란성 쌍둥이 루시 피치 조와 아서 피치 조는 미국 역사상 길이 남을 가문의 뒤를 잇게 되었다.
*
“총 맞은 거 괜찮아요?”
“빨리도 물어본다. 보다시피 멀쩡 해.”
홀리데이는 양팔을 휘이 저으며 건강함을 알렸다.
“요새 일은 어때요?”
“뭐, 똑같이 바쁘지. 대륙횡단 열차 공사는 60% 정도 진행돼서 앞으로 한 2년이면 끝날 거고, 캔자스는 내년 봄이면 개통을 하게 될 거야.”
“콜로라도까지 연장하는 건요?”
“그건 내년 여름쯤? 반대쪽에서 한창 공사를 하고 있으니까.”
현재 콜로라도 준투에서 뉴욕까지는 대략 보름이 소요된다. 하지만 노선이 완공되면, 평균 시속 40마일(64km)의 증기 기관차로는 3일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원 역사에선 콜로라도로 연장되는 노선이 훨씬 늦어지지만 막스는 이를 3년이나 앞당겼다.
“그나저나, CPR 부사장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네브래스카 오마하에 있어.”
“앨런 핑커톤이 곧 역대급 스캔들이 터질거라고 하던데. 꽤 많은 사람이 엮인 것 같더라고요.”
홀리데이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대충은 알고 있어. ‘크레딧 모빌리에’라는 유령회사를 만들어서 투자자를 유치하고, 하청업체와 연방 정부 사이에서 폭리를 취했더라고.”
“그걸 자꾸 들춰내서, 암살을 사주한 모양이네요.”
“아마도.”
증거는 어느 정도 확보해 둔 상황이다.
하지만 앨런 핑커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암살을 시도한 집단. 남부 PMC 집단인 WCBS와의 연결점까지 증거를 모으고 있었다.
홀리데이는 화제를 전환하려 신문을 내밀었다.
“근데 이 기사 네가 낸 거야?”
“음?”
신문은 프리덤 에코에서 발행된 것으로 기사 제목은 굵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북서부 대초원에서 집단 폐사한 버팔로, 유럽 전역에 퍼진 펨비나 질병과 관련 있어.]
이 기사가 터진 이후 버팔로 가죽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다. 이제 막 가죽을 매입해 제품으로 만들려던 사업가에겐 최악의 기사였다.
“이거 저도 신기해서 편집장한테 물어봤거든요. 그랬더니 뉴욕 브룩클린 신문에서 처음 발표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난 또. 네가 일부러 사냥 못 하게 기사 조작한 줄 알았지. 버팔로에 진심이었잖아.”
“대체 나를 뭐로 보는 겁니까.”
막스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자 홀리데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뭐, 잠깐은 사람들이 기피해도 결국 버팔로 가죽 수요는 늘어날 겁니다.”
“그렇긴 하겠지. 아, 맞다. 그러고 보니까 얼마 전 CPR 본사 직원이 왔었거든.”
대륙횡단 철도 노동자들의 식량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팠는데, 최근 혜성처럼 등장한 음식이 엄청 인기라는 얘기였다.
“버팔로 고기 대신, 막스날드 버거가 장난 아니게 팔리고 있다던데. 그 소식 들었어?”
“..... 편지는 받았습니다. 진짜 이름을 그따구로 지었더군요.”
“그 레시피 네가 한 거야?”
막스가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홀리데이가 탄성을 내질렀다.
“너 로렌스에서 소스도 만들었잖아?”
“버거 안에 들어간 소스가 바로 그 케첩이죠. 피치 케첩.”
“이름 안 바꿨어? 토마토로 만들었다며 웬 복숭아. 훼이크냐? 주재료도 감추려고?”
“...... 그건 아니고. 아무튼, 이번에 동부에서 판매할 땐 이름 바꿀 겁니다.”
'오투기'로. 홀리데이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지만, 막스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
육아 휴직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시대라 피치는 연방 보안관을 그만두었다.
배지를 반납한 현재, 피치는 COL(생활의 편리함_Convenience Of Living)이라는 회사를 관리 감독했다.
혹자는 콜로라도의 ‘콜’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지만, 말 그대로 생활을 윤택하게 만드는 제품을 제조해 판매하는 회사다.
COL이 주로 생산하는 품목은 미국을 충격에 빠트린 밟으면 열리는 페달 쓰레기통, 뚜껑에 구멍이 뚫린 주전자, 커피 원두 찌꺼기를 거를 수 있는 주전자, 클립, 압정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이러한 제품들은 콜로라도에서 연구 개발, 샘플을 만들어 테스트를 마치면 뉴욕 공장에서 생산해 판매하는 시스템이었다.
COL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대략 800명.
매출 이익은 연간 120만 달러다.
그 밖에도 식품은 푸디스(Foodies), 일자리를 매칭시켜주는 자버스(Jobus), 의류 관련 메리 딜런(Marry Dillon)이라는 회사도 갖고 있었는데, 부도가 나 헐값에 매각한 회사들이 대부분이었다.
막스가 이들을 사들인 건 공장부지, 생산라인을 그대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의 데브니 모건 앤 컴파니. JP 모건이 서류를 뒤적거리며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다.
“회사 지배 구조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국세청이나 남들에게 공격받는 걸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 그런데 막스 자네가 하는 방식은 복잡해도 너어무 복잡해, 너어어어무.”
“그래서 깔끔하게 정리 좀 해달라고 했잖아.”
“일단 의도하는 바는 알겠어. 되도록 자신을 되도록 감추고 싶다는 거잖아?”
막스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적이 좀 많아?”
“뭐, 그렇긴 하지. 근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이 벌려놨어. 자네가 손을 안 댄 사업이 없다 이거지. 내가 걱정하는 건 돈을 모으지 않고, 쌓이는 족족 써버린다는 거야. 이건 엄청난 리스크를 떠안는 거라고.”
울며 겨자 먹기로 알래스카에 투자한 뒤로, 부쩍 JP 모건의 잔소리가 늘었다. 정작 본인도 문어발처럼 온갖 사업에 투자할 거면서.
“캘리포니아에선 웨스턴 유니온 텔레그래프에 자금을 대줬다며? 러시아 베링 해협 지나 전신주를 구축한다는 사업 말야.”
“어, 시원하게 쐈지.”
“어휴, 그거 쫄딱 망한 것 알지? 한 달 전, 아틀랜틱 텔레그프에서 대서양 해저케이블 까는 데 성공했어. 영국하고 수십 번이나 교신에 성공했다고.”
JP 모건이 가슴을 치며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막스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웨스턴 유니온에 투자한 건 유럽과 전신주를 연결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 그럼?”
“러시아, 중국, 조선, 일본. 동시에 우리 미래가 걸린 알래스카에 전신을 깔아두는 게 내 목적이었어.”
JP 모건의 고개가 살짝 틀어졌다.
“그 말은 앞으로도 계속 사업을 밀어 붙이겠다는 거야?”
원 역사에서 러시아를 경유하는 전신주 사업이 비참한 실패를 겪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사업에 동원된 동식물 및 지질학자, 전신 전문가들은 캐나다와 알래스카에 전신 작업을 하면서 얻은 데이터가 상당했다.
막스는 여기에 더해, 동북아시아와 긴밀한 연결망을 유지하기 위해 투자를 지속할 생각이었다.
“유럽만 목적으로 했으면 실패한거지만,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사업성은 충분히 있어.”
“흠. 가만 보면 자넨 너무 큰 그림을 보는 것 같아. 당장 동북아시아에 전신망을 깔았다 쳐도, 이익으로 돌아오려면 최소 10년은 걸릴걸?”
JP 모건의 말에 막스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사과나무를 심었다고 생각해. 10년 후, 열매가 달렸을 땐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맛있을 테니까.”
“흠냐. 난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처럼 모으는 족족 썼다간 정작 필요할 때 돈이 없어서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것만 알아 둬.”
막스는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당분간 지출을 줄일 생각이야. 적어도 3년은 모아야지.”
“오, 진짜? 그 말을 지킨다면 3년 후엔 최소 2천만 달러 이상은 축적할 수 있을 거야. 물론 지금 사업이 꾸준히 유지된다는 가정하에서.”
‘유지가 아니라 계속 증가할 거야, 모건.’
다이너마이트는 시작한 지 반년도 안 됐고, 석유는 이제 막 시추를 시작했다.
정유소를 건설하고, 인수하는 자금을 제외하면 당분간 돈 들어갈 일도 딱히 없었다.
막스는 뉴욕에 머무는 동안 육아와 사업을 병행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무실은 파이브포인츠 로잔나 피어스, 현재 RP 리서치 컴파니 3층. 국내외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매그 사장과 하루가 멀다하고 회의를 벌였다.
현재 막스가 집중하는 부분은 동부에서 유능한 인력을 포섭하는 일. 엔지니어, 학자, 의사, 변호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매그가 그동안 겪었던 애로사항을 말했다.
“콜로라도가 너무 멀어서 가끔 인재 영입을 놓치는 경우가 있었어요. 연봉, 복지는 마음에 드는데 위치 때문에 포기하더라고요.”
“콜로라도 준투가 아직 대도시급은 아니긴 하지. 그래서 대안은?”
“음.”
매그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급을 나누는 건 어때요? 콜로라도에 간다는 것 자체가 영광으로 여기게끔.”
흥미를 느낀 막스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이를테면 동부 대학에서 성과가 뛰어난 교수들이 저절로 콜로라도를 꿈꾸는 그런 건가?”
“바로 그거죠! 콜로라도가 로망이 되는 거죠.”
“오케이. 방법이 있지.”
“벌써 생각해낸 거에요?”
막스는 노벨상의 시스템을 떠올렸다.
비록 미국에 국한되겠지만 분야별로 막대한 상금을 내걸고, 수여자의 명예와 공로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 수여자가 대부분 콜로라도 연구소 CIE Lab 출신이라면?
아이비리그가 선망의 대상이 된 건, 그곳 출신의 인재들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가장 앞선 연구를 하는 CIE Lab을 선망의 대상으로 만들면 된다.
막스에게 필요한 건 이를 위한 객관적 지표.
상이라는 시스템으로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는 방법이었다.
물론 CIE와 전혀 상관없는 자들이 상을 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인물을 발굴하는 것 또한 의미가 있었다.
‘죽기 전까지 비행기도 타고, 스마트폰이라도 구경하려면 닥치는 대로 인재를 영입해야지.’
게다가 아기들이 태어난 이후, 발전이라는 걸 보다 넓은 의미로 생각하게 되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지만 그걸 마냥 기다릴 이유가 있나.
콜레라, 장티푸스, 말라리아, 기타 감염증과 무지에서 비롯된 죽음이 이 시대에 만연해 있었으니.
시간을 앞당겨 백신을 만들고 올바른 지식을 전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 일은 매그한테 맡길게. 뉴욕에 있는 저명한 학술단체를 찾아가서 일을 추진해 봐. 후원자 기금 형식으로 매년 진행할 생각이야.”
“상금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어요?”
“분야별로 최소 3천 달러는 걸어야지.”
“!”
3천 달러면 어지간한 주지사의 연봉과 비슷한 금액. 매그의 입이 쩍 벌어졌다.
*
겨울 동안 막스는 육아와 사업을 병행하며 뉴욕에서 시간을 보냈다. 물론 본연의 직업인 연방 보안관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맨해튼 남동부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
막스가 한 남자의 목을 움켜쥔 채 물었다.
“갱단 이름은?”
“더, 더치 몹···입니다. 해산··· 하겠습니다.”
“소매치기 스킬 배울 시간에 일을 해, 일을.”
“옛··· 썰···. 켁.”
막스가 힘을 풀자 남자가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뒤엔 쓰러진 동료들을 깨워 골목을 벗어났다.
막스는 다시금 골목을 나와 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NYPD에 들러 회의에 참석하려 했다. 이때.
한 남자가 막스 앞을 가로 막았다.
“막스 조가 맞습니까?”
“갑자기 길막하면 예의가 아닌데.”
“음. 로버트 홈즈라고 합니다.”
“그래서?”
“콜로라도 그랜드 롯지의 마스터라고 들었습니다만.”
‘아, 내가 마스터였지, 참.’
막스는 콜로라도의 롯지를 가본 게 언젠지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어찌 됐든.
막스의 눈이 가늘어지자, 홈즈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뉴욕 그랜드 롯지의 마스텁니다.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찾아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