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 콜로라도로의 귀환
막스 일행은 세인트루이스에서 미주리주와 캔자스 국경 부근인 캔자스시티로 이동했다.
그런 뒤 최근 완공된 캔자스 퍼시픽 레일로드를 이용. 철도 대주주인 막스와 홀리데이는 역과 역무원, 열차 상태까지 꼼꼼히 살펴보며 열차에 올랐다.
딸 루시에게 젖을 먹이던 피치가 옆을 힐끔거렸다. 막스는 무슨 상각을 하는지 말없이 창밖을 보고 있었다. 시선을 쫓아가 보면 캔자스강 북쪽을 따라 펼쳐진 초원뿐이었다.
“옛날에 말 타고 수없이 다녔던 곳인데 이렇게 기차로 다니니까, 기분 이상하지?”
“좀 그렇긴 하네.”
마침 창문으로 보이는 초원길은 한때 막스가 리븐워스에서 로렌스로 가던 길이었다.
보더 러피안과 총격전을 벌이고, 제임스 헨리를 만난 것도 이 부근이었고.
“그때 홀리데이를 안 만나고 내가 제임스와 리븐워스 대장간에서 일했으면 어땠을까?”
“음. 그래도 나랑 만났을 거야.”
그걸 물어본 건 아닌데.
“... 로렌스에 안 갔으면 못 만나지 않았을까?”
“그래도 만났다니까. 그게 바로 데스티니라고.”
“그치. 운명은 거스를 수 없지.”
막스는 생글생글 웃는 피치를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콩깍지를 벗지 못한 채 자신의 아기까지 안고 있으니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피치의 말마따나, 시작이 대장간이든 홀리데이를 만나지 못했든. 현재의 결과가 보여주듯, 막스의 선택은 자유주의 심장 로렌스일 수밖에 없었다.
동양인으로서 성공할 기회를 인종차별, 폭력, 혼란 속에서 찾았으니까.
‘지금까지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비록 수많은 사람을 죽이며 닦아온 길이지만, 한 조각의 후회도 들지 않았다. 다만 스스로에 대한 자만과 오만함은 늘 경계해야 한다.
조직이 무너지는 것도 결국 내부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오, 로렌스 역이다.”
속도를 줄인 기차는 크지 않은 로렌스 역에 멈춰 섰다. 내리는 사람과 타는 사람들이 얼추 비슷한 숫자를 유지했다. 그래 봐야 30명 정도.
한때 철도 사업은 기획 초기부터 투자자가 몰리고, 주가가 폭등하는 등.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지기까지 했지만 한 차례 거품이 걷히면서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동부를 제외하면 서부의 철도 노선은 생각보다 이용객이 많지 않다는 거. 동부에 넘쳐나는 인구가 서부로 옮겨갈 것이라 여겼지만, 그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철도로 이익을 보기엔 까마득한 일이었다.
‘내가 원인인가.’
원 역사대로라면 서부 인구를 늘리기 위해 링컨은 홈스테드 법(자영농지법)을 실시했다.
동부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시키고, 서부 개척지를 발전시키기 위한 것으로 공화당 차원에서 강력하게 밀어붙인 정책이었다.
깃발을 꽂는 사람에게 해당 지역의 160에이커에 달하는 농지를 할당하고, 5년간 거주하여 농작하면 소유권을 지급하는 파격적인 방식.
그런데 막스는 홈스테드 법에 부정적이었다.
적용 대상이 백인에 한정된 것. 그 영토를 마련하기 위해 인디언을 쫓아내는 건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막스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존 브라운, 링컨에 걸쳐 법안은 통과되지 못한 채 의회를 표류하고 있었다.
철도 사업을 시작으로 정치 법안까지 고민하는 동안 열차는 레콤프턴을 지나쳤다.
로렌스와는 반대로 노예주의 심장이자 한때 캔자스주도였던 곳은 현재 고스트 타운처럼 썰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긴 회생 불가능하겠는데.’
마을의 기반인 우체국마저 사라져, 노예제 옹호론자들조차 로렌스의 우체국을 이용하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열차는 레콤프턴을 지나쳐 토피카에 도착. 캔자스주도에 걸맞게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내 땅은 잘 있나.’
토피카가 지어질 당시, 500달러를 투자한 막스는 625에이커(76만 5천평-2.25㎢)을 할당받았다. 그것도 캔자스강 이남의 노른자 땅으로.
‘한 10년 됐으면 땅값 좀 올랐을 텐데.’
토피카를 가장 잘 아는 건 홀리데이.
상황을 물어보려다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로렌스가 막스에게 추억이 깃든 것처럼, 홀리데이는 토피카를 보며 감상에 젖어 있었다.
“여기를 주도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당신한테 편지를 제일 많이 보냈던 것도 그때였을 거야.”
“저도 그때 편지 읽으면서 많이 울었어요. 이제와서 말하는 거지만, 사실 다 포기하고 펜실베이니아로 오길 바랐거든요.”
당시 홀리데이 부인은 둘째를 임신하는 바람에 둘은 2년 정도를 떨어져 살아야 했다.
둘은 서로 어깨를 기댄 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창밖을 바라봤다.
캔자스주 디킨슨 카운티의 애블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풀이 많은 평원이라 역마차들의 정류장 정도로 쓰이던 곳이었다.
그런데 기껏해야 건물 몇 개에 온통 들판이었던 마을이, 지금은 4층짜리 호텔, 선술집, 마구간, 방목장이 들어서 있었다. 정확히는 완성되지 않고 공사하는 중이었다.
이런 놀라운 변화에 피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창밖을 바라봤다.
“여기가 언제 이렇게 바뀌었지? 나 뉴욕에 있는 사이에 뭔 일이 벌어진 거야?”
“한 사업가가 이곳을 사들였거든. 우리 기차와 계약도 했고.”
“무슨 계약인데?”
“소를 싣는 거. 이곳에서 캔자스시티까지 열차 1량에 5달러씩 주기로 했거든.”
“아··· 동부에 소를 팔기 위해서구나.”
서부, 특히 텍사스의 소값은 두당 4달러인데 반해 동부에선 자그마치 40달러에 거래되었다.
한 뛰어난 젊은 사업가는 이 차익을 노려 사업에 뛰어든 것이었다.
“시작하기도 전에 저렇게 건물부터 짓는 걸 보면 꽤 대담한 사람이네.”
“성공을 확신한 거지. 앞으로 이 마을, 엄청 시끄러울 거야. 곧 카우보이들이 바글거리겠지.”
“텍사스에 있던 카우보이들?”
피치가 생각하는 카우보이 이미지는 목장에서 소를 치는 히스패닉, 흑인들의 모습이다. 과거 텍사스에서 콜로라도까지 소 떼를 몰았던 카우보이들도 그랬었고.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진다. 전쟁이 끝나고, 직업이 없는 퇴역 군인들이 카우보이가 될 테니까.
남군과 북군의 구분은 사라지고 오로지 돈과 낭만을 위해 카우보이가 된 상남자들의 시대.
캔자스 퍼시픽 레일로드의 완공은 텍사스 남부에 있던 그런 남자들을 캔자스로 불러들여 본격적인 카우보이 시대를 열었다.
*
막스는 요새를 포함 그 주변 690에이커(2.8㎢)를 아우르고, 준투 도시 내에는 3분의 1에 해당하는 3만 에이커(121㎢)를 보유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 SFBC 대원 개개인의 명의로 초기 콜로라도를 개발하면서 얻게 된 땅이었는데, 당시 에이커당 1.25달러를 완납함으로써 완전한 소유권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 땅을 이주자들에게 임대해 현재 준투 도시에서 거둬들이는 수익만 월 5만 달러에 달했다. 막스는 이를 상가와 주택을 짓는 건설 비용으로 재투자해 도시 규모를 확장했다.
콜로라도에서 가장 큰 도시 준투.
손을 붙잡은 한 쌍의 남녀가 요새 주변을 거닐며 대화를 나누었다.
“불과 10년 전엔 오두막집 한 채가 전부였데. 그런데 금광이 발견되고부터 엄청나게 발전했지.”
“자긴 그럼 언제부터 여기에 정착한 거야?”
“금광을 캐고, 요새가 막 지어질 무렵? 거의 초창기라고 보면 되지.”
“그렇구나. 아, 맞다. 예전에 여기 공격받았다는 얘기 들은 적 있는 것 같은데. 남군 1만 명을 단 몇백 명이 막아냈다는 기사.”
“어, 그거 진짜야. 아버지가 확인해 주셨거든. 뭐, 막스 형이 세워둔 작전대로 했으면 당연한 결과지.”
남자가 자랑스럽게 말하자 여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진짜 총사령관님하고 가까운 거 맞지?”
“뭐야, 너도 아직 나를 못 믿는 거야?”
“아니, 아니. 나야 당연히 믿지. 알잖아, 우리 아빠 때문이라는 거.”
여자가 슬쩍 뒤를 돌아봤다. 뒷짐을 지고 도시를 구경하던 남자는 그녀의 아버지였다.
보름 전, 일리노이 스프링필드.
- 그래서 자네 부모님 직업이 뭔가?
- 콜로라도에서 대장간을 하고 있습니다.
- ...... 난 이 결혼 반댈세. 애지중지 키운 딸을 콜로라도에 보내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보다시피 우린 학자 집안이네.
여자의 아버지는 일리노이 대학의 교수.
직업의 귀천을 따지진 않지만, 고생길이 빤한 곳으로 절대 딸을 내줄 수 없다고 했다.
- 나중엔 동부에서 정착할 수도 있습니다. 일자리도 이미 정했구요.
- 일? 무슨 일?
- 좀 애매하긴 하지만 회계나 경영 파트를 맡을 것 같습니다.
- 진짜 애매하게 대답하는군. 그나저나, 군대는 갔다 왔나?
- 행정병으로 근무했습니다.
- 행정병?! 행정벼엉?
- 특수··· 행정병이었습니다만.
특수는 개뿔이라며 혀를 찰 때.
- 총사령관님 직속 휘하에 있었습니다.
- 그래서 뭐, 가까이서 얼굴 한번 봤다고 자랑이라도 할 셈인가?
- 자랑이라니요. 형 동생 하는 사이라 새삼스러운 것도 없는데요.
- 어이구야, 내 앞에서 거짓말까지 하다니 더더욱 실망스럽군.
- 제힘으로 결혼을 승낙받고 싶었지만···. 일단 거짓말은 아닙니다. 사실 저희 콜로라도 옆집이 막스 총사령관님 집이거든요.
결국 사랑에 눈이 먼 남자는 막스 조의 이름을 팔아 버렸다.
- 우리 옆집은 링컨 대통령이 살았었네.
- ...... 믿습니다.
- 그걸 믿는다고!? 아무리 내 딸과 결혼하고 싶어도 그렇지, 어디서 그런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할 수 있나!
- 진짜라니까요? 정 못 믿으시겠으면 콜로라도에서 직접 확인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남자도 오기가 치밀어 잔뜩 눈에 힘이 들어갔다.
마침 기차도 뚫렸겠다, 그렇게 해서 여자의 아버지는 콜로라도를 직접 가겠다며 따라나섰다.
막상 도착한 부녀는 오랜 기차 여정으로 힘들다며 남자의 부모님을 만나는 걸 내일로 미뤘다.
그리고 숙소를 잡은 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끝내고 여유롭게 도시를 구경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때, 일단의 마차와 말들이 다가왔다.
워낙 많은 인원이라 사람들이 길을 터주느라 구석으로 비켜섰다. 남자의 일행도 중심에서 벗어나 그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스카프로 얼굴 가린 것 봐. 왠지 무서워.”
무법자들이 활개 치는 서부. 기사에서 얼마나 안 좋게 표현했는지 여자는 붙잡은 남자의 손을 꽉 쥐었다.
그런데 이때. 문제의 총칼이 그려진 검은 스카프를 두른 남자가 말을 멈춰 세운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여자를 쳐다봤다.
그 눈빛을 본 순간.
딸꾹.
입을 막는 여자은 남자친구를 붙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고, 자식을 향한 본능인지 아버지는 은근슬쩍 앞으로 나서 보호하려 했다.
그런데 정작 여자친구를 보호해야 할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다가가기까지 했다.
‘이 자식이 미쳤나.’
여자 아버지의 얼굴이 일그러질 때.
말에 탄 자가 스카프를 슬쩍 내렸다.
빠르게 일행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이 색, 형이 기껏 비싼 등록금 내줬더니.”
코닐이 머리를 긁적이자, 뒤에 있던 마차에서 누군가 쓱 얼굴을 내밀며 손을 흔들었다.
피치였다.
코닐이 웃으며 손을 흔들자, 막스는 다시 스카프를 올리며 말을 움직였다.
“저녁때 보자, 코닐.”
일행이 사라지자, 코닐의 어깨에 누군가 손을 얹었다.
“내일이 아니라, 지금 자네 부모님을 만나러 가세나.”
*
콜로라도에 정착한 뒤, 가장 얼굴이 좋아진 건 다름 아닌 피치였다.
타앙!
타앙!
“이거지! 이 느낌!”
쌍둥이를 키우느라 그동안 못했던 걸 하겠다며 찾아간 곳은 사격장. 알프레도와 존 브라우닝이 개조를 끝낸 윈체스터 라이플 일명 윈체스터 X를 마음껏 쏘고 있었다.
피치가 사격하는 동안, 막스는 한쪽에서 총기를 분해하고 알프레도, 존 브라우닝, 그 밖에 건스미스 세 명과 대화를 나누었다.
“라이플은 당분간 큰 변화는 없을 거야. 레버 액션은 내구성만 강화하는 거로, 대신 리볼버는···.”
말하던 도중, 막스의 시선이 오와 열에 맞춰 구보하는 일행들에게 쏠렸다.
조선과 일본, 인디언, 히스패닉, 인디언, 그리고 백인 아이들이 뒤섞여 조교의 구령에 맞춰 달리고 있었다.
막스를 발견한 오동패와 고유지의 눈이 반짝거리자 어김없이 조교 코디의 지적이 이어졌다.
“구보 중엔 전우가 죽어도 눈깔을 돌리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뭐다?”
“구보!”
“세상이 망해도 우리는 한 바퀴의 구보를 끝낸다!”
일본에서 돌아온 코디와 SFBC 대원은 콜로라도에서 훈련 교관으로 배치되었다.
히콕은 준투 도시를 순찰하며 치안을 담당했는데, 사실 연방 보안관이 아닌 SFBC 대원은 용병도 아닌 사업체나 도시를 관리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었다. 외부 용역이 아닌 자체 업무라는 점에서 뭔가 애매한 위치랄까.
막스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즈음.
때마침 캔자스주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개척마을은 늘어나고, 덩달아 무법자들도 많아졌네. 특히 캔자스 레일로드가 생기고부터 마을 치안이 최악이 돼버렸거든.”
“그래서 보안관이 필요하다 이 말입니까?”
“본래 마을에서 충당해야겠지만, 그런 실력자들을 구하기가 어디 쉽나.”
캔자스주의 주지사, 찰스 로빈슨이 마을 보안관으로 SFBC 대원을 요청했다.
사실상 총잡이로 이름을 날린 히콕같은 자가, 막스가 버티고 있는 준투에 있는 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