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8화 (328/360)

#328 마침 잘 왔어, 가자!

휘이이잉.

바람에 코트 자락이 휘날리고, 굴러다니던 회전초들은 화가 난 듯 여기저기를 들이받는다.

곧 생겨날 시체를 기다리듯 독수리는 하늘을 맴돌고. 석양을 등진 히콕은 담담하게 맥캔스를 응시했다.

서부영화 결투 장면에는 몇 가지 불문율이 있다.

절대 비겁하게 행동하지 말고, 등 뒤에서 총을 쏘지 않을 것. 그리고 상대보다 늦게 리볼버에 손을 대고 이길 것···.

한 마디로 영화는 결투를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켰다. 현실이 어떻든지 간에.

한 번은 전생 용병 시절, 이와 관련해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핵심은 총을 쏘기 직전 당사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가였다.

- 친구, 가족, 혹은 매춘부 생각하겠지.

-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나 후회할 듯.

- 병신들아. 결투라는 건 서로 감정이 극에 달해서 벌어지는 거야. 그러니까 생각이 아닌 증오와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을 거라고.

언제나 그렇듯 정리하듯 조유강이 끼어들었다.

- 닥치고. 그냥 아무 생각 없어 새끼들아. 시간은 정지되고, 몸은 본능에 내맡긴 채 눈으로는 상대의 미세한 움직임을 관찰할 뿐. 움직이는 건 이 손가락이다.

- ... 이 새낀 꼭 경험해본 것처럼 얘기한다니까.

- 왜? 쟤는 신이야, 신. 모르는 게 없다고.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실제로 히콕과 맥캔스의 표정을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눈동자는 상대 손에 고정되어 있고, 양손은 팽팽한 긴장감을 담아 손바닥을 쥐락펴락했다.

그런데 이때.

“덕빌.”

맥캔스가 흐름을 끊으며 말을 건네왔다.

마지막 유언이라도 남길 셈인가.

히콕은 어디 한번 지껄여보라며 침을 뱉었다.

“예전에 내가 네 돈을 훔쳐간 적이 있었는데. 5달러인가. 그 돈으로 게임을 한 적이 있었지. 그런데 말야."

"......."

"단 한 판도 못 이겼어. 너만큼 돈도 재수가 없던거지. 네 이름, 면상 만큼이나 말야."

맥캔스의 도발에도 히콕은 무심한 듯 반응하지 않았다.

'예전과 달라지긴 했군.'

꼬맹이와 놀던 히콕이 조금은 거대해 보인다. 마음이 위축되자, 맥캔스가 어금니를 깨물어 히콕을 노려봤다.

'그래봐야 넌 내 밑이야.'

순간 모든 집중력과 응축된 힘을 폭발하듯 맥캔스가 홀스터에 손을 뻗는다.

수없이 만져본 리볼버 손잡이의 나무 감촉.

이를 움켜쥔 즉시 홀스터에서 뽑아 총구를 들어 올린···.

타아앙!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동자가 빠르게 둘을 교차했다. 리볼버를 뽑다 만 맥캔스는 고개를 숙여 심장 언저리를 쳐다봤다. 믿어지지 않는 듯 왼손을 들어 가슴에 대려 하지만, 몸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털썩.

쓰러진 맥캔스의 피가 땅을 적시며 번져가고.

휘리리릭.

히콕은 홀스터에 리볼버를 집어넣었다.

“......”

순식간에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결투.

장내에 흐르는 적막. 이 가운데 남겨진 부하들의 불안한 시선들이 서로 교차했다. 이윽고 눈동자는 널빤지 위에 있는 총들로 향하더니 가까이에 있던 놈이 먼저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콰직!

누군가 그 손바닥을 보위 나이프로 찍어, 널빤지에 고정했다. 비명이 새어 나오기도 전, 리볼버를 집어 든 막스가 이마에 총구를 겨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머리가 뒤로 젖혀지지만 고정된 손 때문인지 놈의 몸이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어느새 막스의 총구는 맥캔스의 부하들을 무작위로 겨누며 방울뱀의 혀처럼 날름거렸다.

“신성한 결투에 칠리소스 뿌리면 되나.”

충격적인 막스의 몸놀림에 부하들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그 눈동자를 슬그머니 굴리자 더 큰 문제에 직면했다. 구경꾼들이 저마다 총을 뽑으며 자신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꿀꺽.

부하들이 슬쩍 손을 들며 널빤지에서 물러났다.

“이 총들은 압수다. 꺼져.”

막스는 친절하게 총구를 마을 밖으로 가리켜 도망갈 방향을 알려 주었다.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던 놈들은 이내 자기들이 타고 온 말에 올라타고, 총을 뽑는 속도만큼 빠르게 마을을 벗어났다.

갱단이 사라지자 구경꾼들은 하나둘 총을 집어넣었다. 누군가는 심판처럼 결투 결과를 확정하듯 소리쳤다.

“캔자스의 와일드 빌 히콕이 네브래스카 맥캔스를 이겼다!”

곧이어 히콕의 실력은 진짜였느니, 과연 서부 최강의 총잡이라는 찬양이 이어졌다.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결투에서 승리한 히콕에게 쏠렸다. 막스의 놀라운 솜씨는 탄성을 자아냈지만 주인공은 히콕이었다.

반면 냉정한 승부의 결과를 보여주듯 맥캔스의 피는 빠르게 식어갔다.

오늘 결투의 의의는 히콕의 실력을 증명하고, 애블린에 한 가지 룰을 만들었다는 것.

“당신··· 이름이 뭐야?”

옆에서 막스의 모든 움직임을 지켜본 텍사스 잭이 물었다. 보위 나이프 칼날을 시체 옷으로 닦던 막스가 시간을 두고 말했다.

“막··· 스카프다.”

물론 웃자고 한 소리다. 귀찮기도 했고.

그런데.

“막스카프. 막스카프····.”

텍사스 잭이 몇 번이고 이름을 곱씹었다.

정정하려던 막스는 진지한 그의 얼굴을 보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깨끗해진 칼날을 칼집에 꽂고 리볼버를 주섬주섬 챙기자 히콕이 다가왔다.

손에는 편지가 들려 있었다.

“맥캔스 품에서 나온 거야. 역시 그냥 온 게 아니었어.”

내용은 맥캔스가 누군가에게 받은 서신으로, 놈이 이곳으로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편지를 보낸 자는 알 수 없으나, 맥캔스 갱단을 이용해 보안관을 제거하고, 조셉 맥코이를 협박해 사업장을 빼앗으려 했다.

궁극적으로는 애블린 마을을 자신들의 영향력에 두려는 수작이었다.

“최근 조셉 맥코이가 협박 편지를 받았는데, 이놈들 짓인 것 같아.”

“날파리들이 꼬이기 시작했군.”

텍사스에서 캔자스까지, 치솜 트레일을 통해 소 떼를 몰고 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텍사스 롱혼이 힘든 여정을 제대로 버틸지, 가는 길에 인디언들과 무법자들의 습격은 어떻게 막아낼지. 리스크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조셉 맥코이가 기차에 소를 싣고 동부에 파는 걸 입증하면서 사람들의 시각이 바뀌었다.

맥코이에게 선점을 빼앗겼다면 빼앗으려는 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돈이 되는 곳엔 벌레가 꼬이게 마련이지.”

“나를 여기 왜 보냈는지 알겠네.”

“말했잖아. 심심할 날이 없다고.”

카우보이와 무법자들이 몰려들 애블린. 이곳 보안관에겐 야수의 심장과 실력이 필요하다.

히콕은 적임자가 틀림없지만 혼자 맡기엔 위험 요소가 많았다.

“이참에 부보안관을 붙여달라고 요구해. 마을의 치안은 결국 조셉 맥코이의 사업과 연관되어 있으니까. 자금을 댈 용의가 있다면, 코디를 이곳으로 보내주지.”

“흠.”

24시간 무슨 일이 터질지 누가 알겠는가.

막스는 히콕과 코디 듀오로 애블린의 치안을 해결하려 했다. 이때 텍사스 잭이 불쑥 끼어들어 히콕과 막스를 번갈아 쳐다봤다.

“저기, 부보안관으로 나는 어때?”

“처음 보는 놈에게 내 등 뒤를 맡기라고?”

“아마 든든할걸?”

“개소리 말고. 조용히 텍사스로 돌아가.”

히콕이 코웃음 치며 귀를 후벼 팠다.

텍사스 잭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집요하게 자신을 어필했다. 막스는 한 걸음 물러나 히콕에게 선택을 맡기는 듯 방관했다.

원 역사와 마찬가지로 히콕, 코디, 텍사스 잭 오모훈드로가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그려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

애블린의 일은 히콕에 맡겨두고, 막스는 다시 기차에 몸을 실었다.

캔자스 로렌스.

막스는 주지사 찰스 로빈슨과 제임스 헨리 레인을 보며 내심 흐뭇해하고 있었다.

원 역사에서 둘 사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생은 함께 하되 행복은 나눌 수 없는 앙숙이었다.

주지사인 찰스와 상원 의원인 레인의 비방과 폭로는 서로를 파국으로 몰아, 결국 레인의 자살로 끝을 낸다.

하지만 뒤틀린 역사에서 둘은 정치적 파트너로서 관계를 공고히 다지고 있었다.

“네브래스카 갱단이 애블린을 노릴 줄이야. 하여튼 돈 냄새는 귀신같이 맡는다니까.”

“카우타운은 캔자스의 주 수입원이 될 겁니다. 미국 최고의 소 유통 시장을 유치한 셈이죠.”

“자네와 보안관을 상의한 것도 그런 이유지. 아무튼, 애블린도 문제지만 열차 노선이 지나가는 곳마다 몸살을 앓고 있네.”

주지사 찰스의 말에 따르면 중서부 지역에서 기차 강도가 출몰하기 시작하더니, 점차 확산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레인도 동감하며 말을 보탰다.

“인디애나 시모어에서 기차가 털린 뒤로, 모방 범죄가 생길 걸 염려하고 있네. 리노 갱단이 잡히질 않았으니, 만만하게 생각한 게지.”

1866년 2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은행 강도 사건이 발생하더니, 같은 해 10월엔 마찬가지로 최초의 기차 강도가 발생.

용의자들 역시 미국 최초의 무법자 형제로 불리는 리노 갱단이었다. 새로운 열차 강도라는 시장을 개척한 나름 개척자들이었다.

이 일로 열차 회사인 아담스 익스프레스 컴파니는 핑커톤 탐정을 호송 요원으로 고용했다.

새롭게 운행을 시작한 캔자스 퍼시픽 레일로드 역시 핑커톤과 계약을 맺고 있었다.

막스는 찰스와 레인의 근심을 이해한다며 말을 이었다.

“리노 갱단을 잡아도, 열차 강도는 더 늘어날 겁니다. 돈 벌기 쉬운 방법이 있는데, 그 유혹을 쉽게 뿌리치긴 힘들겠죠.”

그렇다고 막을 방법도 딱히 없다. 현재로선 호송 요원들의 능력에 맡길 수밖에.

레인 의원이 화제를 전환해 정치적 현안을 이야기했다.

“링컨 대통령의 인기가 하락하는 바람에 공화당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네.”

“알래스카 매입으로 워싱턴이 시끌시끌하다는 건 들었습니다.”

“그건 그것대로 문제고, 재건하는 과정에서도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네.”

해서 차기 대선을 대비해 대중의 관심을 돌릴 만한 파격적인 정책이 필요했다.

“급진 공화당 의원들이 자네가 지금껏 반대했던 홈스테드 법을 또 들고나왔네. 선거권을 가진 성인들에게 땅을 준다는데, 누가 싫어하겠나.”

“통과될 가능성은요?”

“아직은 반반이네. 나를 포함해서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니까.”

이유는 인디언의 강제적인 이주다.

일부는 그게 왜 문제가 되냐며, 미국의 국익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다.

그들은 인디언을 미국과 분리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선거가 다가오면 그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겠지. 민주당에 정권을 빼앗기면, 어차피 그쪽도 홈스테드 법을 추진할 테니까.”

“정책을 수정하려면 뭔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겠군요.”

사실 간단한 방법은 인디언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홈스테드 법에 백인들이 아닌 그들까지 포함하면 되는 일이다.

‘이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고.’

동부 인구를 서부 전역에 분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홈스테드 법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고민을 안고 로렌스를 떠난 막스는 기차 종착역인 캔자스 시티로 향했다. 회사 본부도 방문하고 겸사겸사 콜린도 만날 생각이었다.

기차역에 내린 막스는 역마차에서 말을 빌린 뒤 캘리 여관을 찾아갔다.

‘일은 하고 있나 모르겠네.’

- 연방 보안관이 바운서를 하고 있으면 웃기지 않습니까?

- 왜 웃겨? 난 잠복 수사를 하는 거라고.

- 집에서? 그것도 와이프랑 같이? 점점 뻔뻔해지네요, 콜린.

사실 콜로라도에서 사업하고 있는 막스도 정상적인 연방 보안관은 아니다. 막스나 콜린이나, 임무를 망각했다고 비난해도 딱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피식거리던 막스의 눈에 캘리 모텔이 들어왔을 즈음.

갑자기 안에서 튀어나온 두 놈들이 말에 올라타더니 막스와는 반대 방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누군가 문을 박차고 나왔는데, 무장한 콜린이었다.

막스를 본 그는 어울리지 않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침 잘 왔어, 보스! 가자!”

“어딜요?”

“방금 말 타고 도망가는 놈들 못 봤어? 그 새끼들 리노 갱단 일원이야.”

‘열차 강도가 여기를?’

“내 잠복 수사에 걸려든 거지.”

이쯤 되면 진짜인가 싶기도 하다.

막스는 오자마자 콜린과 리노 갱단을 추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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