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 SFBC 대원을 죽였다고 들었는데
막스와 콜린은 캔자스시티에서 북동쪽으로 30km 떨어진 곳까지 리노 갱단을 추격했다.
한참을 달려온 콜린은 엉덩이가 아픈지 짜증을 냈다.
“좀 멈춰라! 물도 마시고, 간식도 먹고! 애새끼들이 여유가 없어, 여유가.”
“우리가 쉬어야, 쟤들도 쉬죠. 그나저나, 얼마나 일을 안 했으면 말 타는 걸 힘들어합니까.”
막스는 구보는 하냐, 사격 연습은 일주일에 몇 번 하나며 추궁했다.
“잠복근무하느라 그럴 시간이 없었지.”
“어이구야. 아무튼, 저놈들이 가는 곳에 리노 형제들은 있습니까?”
콜린은 고개를 크게 저었다.
“형제들은 다른 곳에 있어. 내가 대화를 엿들었는데 부하들이 훔친 물건들을 현금화하고 있더라고. 잡아봐야 피래미들이지 뭐.”
리노 갱단은 최초의 기차 강도이자 살인 행각을 벌이며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 무법자들.
활동 지역은 미 중서부 지역인 인디애나와 일리노이다.
‘그런데 왜 수백 킬로 떨어진 미주리까지 왔을까.’
높은 언덕에 이르러 막스가 속도를 줄였다.
완전히 멈춰 섰을 땐, 망원경을 꺼내 놈들이 향하는 방향을 탐색했다.
“키어니 마을로 가는 것 같지는 않네요.”
“설마 근처에 안전 가옥이 있나?”
워낙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강도질을 전문으로 하는 갱단들은 미리 은신처를 마련해두곤 한다.
특히 현상금이 걸린 놈들일수록 이런 안전 가옥을 만들어 은신처로 사용했는데, 놈들이 도망가는 곳이 이 안전가옥일 확률이 높았다.
“갑시다.”
두 놈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 망원경을 집어넣은 막스는 언덕 위를 내려가며 다시금 말 허리를 박찼다.
그렇게 두 시간을 더 달린 끝에, 놈들은 미행을 뿌리치려 길을 갈팡질팡하더니 기어이 숲속에 있는 통나무집에 이르렀다.
막스와 콜린은 말을 나무에 묶어둔 뒤 은밀히 은신처에 접근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막스가 움직임을 멈추곤 납작 몸을 엎드렸다.
본능적으로 따라 한 콜린이 속삭였다.
- 왜? 뭔 일이야?
- 우리 말고 누가 또 있습니다.
막스가 손가락으로 귀를 가리키자, 콜린은 숨을 죽인 채 소리에 집중했다. 풀 벌레 소리만 간혹 들릴 뿐, 숲은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미세한 소리를 감지한 순간 막스는 소리가 난 곳을 향해 포복으로 기어갔다.
막스와 콜린으로부터 30m가량 떨어진 곳.
‘갑자기 두 놈이 기척을 숨겼어.’
말에서 내린 두 놈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무 수풀 사이에 숨어 있던 남자는 손으로 입술을 만지며 고심에 빠졌다.
“어떻게 할 거야, 윌리엄. 방금 도착한 놈들까지 하면 일곱 명으로 늘어났어.”
옆에 있는 남자가 속삭이듯 물었다.
리노 갱단을 추적한 끝에 통나무집까지 왔지만 정작 그곳엔 핵심 인물들이 빠져 있었다.
고민 끝에 윌리엄이 입을 열었다.
“리노 형제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
“걔들이 합류하면 숫자가 너무 많아. 우리가 감당하기 힘들다고.”
“그래서 이렇게 매복하고 있는 거잖아. 게다가 방금 사라진 두 놈은 리노 갱단이 아닐 수도 있어.”
“우리 말고 누가 또 놈들을 쫓아?”
“내가.”
철컥.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남자들은 기겁하며 고개를 돌렸다.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자신들에게 리볼버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손들고 천천히 돌아.”
윌리엄이란 사내는 인상을 찡그리며 옆에 있던 동료를 노려봤다.
‘그러게 왜 말을 걸어.’
가까이 오도록 눈치채지 못한 건 전부 동료 때문이었다.
한숨을 내쉰 윌리엄은 손을 들고 몸을 돌렸다.
막스는 얼굴 대신 가슴에 달린 배지에 시선을 고정했다. 어쩐지 인디애나주에 있어야 할 갱단이 여기까지 도망쳐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핑커톤?”
“...... 누구십니까?”
“막스 조다.”
스카프를 내리자, 탐정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윌리엄은 가슴을 쓸어내리는 한편 못마땅한 눈으로 막스를 쳐다봤다.
여타 탐정들의 반응과는 사뭇 달랐다.
“시카고에서 온 윌리엄 핑커톤입니다.”
“앨런의 아들?”
“...... 예. 장남입니다.”
20살이 된 윌리엄 핑커톤은 미성년자임에도 남북전쟁 기간 앨런의 첩보 활동을 도왔다.
터커가 국장으로 있는 비밀경호국(USSS)의 요원으로 활약하기도 했고.
윌리엄은 막스를 직접 본 적은 처음이지만 그에 관한 건 상세히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를 필요 이상으로 의존하고 높이 평가한다는 것도.
“어디서부터 놈들을 쫓은 겁니까?”
“캔자스 시티.”
“우린 인디애나주부터 쫓았습니다. 무려 보름 동안이요.”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지.
막스는 불만 섞인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윌리엄을 넌지시 쳐다봤다.
“나보고 개입하지 말라는 뜻인가?”
“...... 이번 일은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해.”
막스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렸다. 턱을 매만지던 콜린 역시 이내 뒤를 따라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저 둘에게 도움을 받는 게 낫지 않을까? 전력에 엄청 도움이···.”
“우리끼리 할 거야.”
“윌리엄.”
“우리가 시작한 일은 우리가 끝내야지. 기껏 개고생했는데, 저 둘에게 빼앗길 셈이야?”
탐정들은 입맛을 다시며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앨런과 달리 윌리엄은 SFBC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어쩔 땐 노골적인 적개심까지 갖고 있었는데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다.
말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온 콜린이 시가를 입에 가져가며 물었다.
“진짜 그냥 놔둘 셈이야? 다들 나이도 어리고 초짜 같던데.”
“실패하든 성공하든. 자기 힘으로 하겠다는데 의욕과 열정을 깔아뭉개면 안 되죠. 더구나 철도 회사에서 핑커턴에 의뢰했으면 이 일은 쟤들이 처리하는 게 맞습니다.”
“흠. 그건 그렇다 치고. 윌리엄인가 그놈 반응은 왜 그래? 아버지도 함부로 못 하는데, 눈빛 봤지? 만약 동양인이라서 그런 거라면, 앨런이 애새끼를 잘못 키운 거야.”
“남의 가정사까지 참견하는 건, 오지랖입니다.”
턱을 긁적이던 막스는 나름 이유를 추측해봤다.
“인종차별은 모르겠고. 핑커톤과 SFBC 관계를 못마땅해할 순 있습니다.”
“왜? 지금까지 우리 때문에 득 본 것도 많을 텐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 주도권의 문제죠.”
“주도권?”
수평적인 파트너 관계에서 누가 누구를 주도하고 있단 말인가. 콜린은 이해가 가지 않은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후.
통나무집에서 갱단 무리가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곤 하나둘 말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막스는 망원경으로 방금까지 추격했던 두 남자를 찾아 훑어봤다. 얼굴은 어둡고 양 볼이 시뻘겋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철수하려나 보네요.”
“그런데 핑커톤은 왜 안 움직이지?”
“리노 형제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 아닐까요?”
“병신들. 여기에 없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네.”
갱단은 통나무집을 떠나 서쪽으로 말을 달렸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그 뒤를 핑커톤 탐정들이 쫓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도 가죠.”
“개입 안 한다며?”
“핑커톤의 미래를 짊어질 텐데, 어떻게 하는지 지켜봐야죠.”
원 역사에서 핑커톤은 강도남작의 편에 서서 노동자를 탄압했는데, 시점은 대략 앨런이 죽고 난 뒤였다.
핑커톤의 변절이 그의 뒤를 잇는 아들 윌리엄 때문이라는 걸 의심해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욕심만큼 실력도 따르는지 지켜보마.’
막스와 콜린은 핑커톤의 뒤를 쫓았다.
*
미주리주 킹스턴 펄스 농장.
열댓 명의 남자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축 늘어져 쉬고 있었다.
“망할 전쟁에서 얻은 건 배고픔뿐이야. 목숨 걸고 싸운 군인들 꼴을 봐. 흑인처럼 농장에서 일하고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흑인? 콜로라도 얘기 못 들었냐? 거기 인디언들은 백인하고 임금도 비슷하다더라.”
“진짜? 화, 시발. 말세네, 말세야.”
저마다 불평을 늘어놓을 때, 리볼버를 손질하던 남자가 냉소했다.
“그렇게 욕할 시간에 총 쏘는 실력이라도 키워. 이 나라는 힘이 법이고, 대화 수단은 바로 이 총이니까.”
“존 형 말대로야. 빌어먹을 세상에 믿을 거라곤 이 총뿐이거든.”
시먼 리노가 형 존의 말에 동조하며 리볼버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건다. 그리곤 현란한 스핀을 하며 말했다.
“핑크 양키들이 나타나면, 내가 제일 먼저 이 총으로 대가리를 날려줄 거야. 나만 믿으라고.”
“웃기네. 아마 너보다 내 총이 더 빠를걸.”
이번엔 시먼과 비슷한 또래의 짐 영거가 경쟁하듯 건스핀을 선보였다.
사람들은 갱단의 새싹들을 보며 피식거렸다.
딱히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지만, 이런 세상에서 제 목숨 지키려면 조금이라도 일찍 총과 익숙해지는 편이 나았다.
무리와 조금 떨어진 곳.
리노 갱단 리더가 묵직한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나무 상자 안에는 금속 탄피 총알 수백 개가 들어 있었는데, 그 가치만 해도 대략 백 달러가 넘었다.
“약속한 대로 돈은 이걸로 대신하마.”
“뭐, 나쁘지 않네. 딱 이틀이다. 그때까지 당신 부하들이 안 오면 여기서 나가줘야 해.”
리노 갱단의 리더 프랭클린 리노.
형제 중 맏이인 그는 핑커톤에 쫓겨 갱단을 이끌고 미주리까지 밀려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인디애나와 일리노이가 주 활동 지역이라 행동에 제약이 따랐다. 해서 한때 남부 게릴라로 활동했던 미주리주의 갱단과 거래하게 되었다.
“전쟁 때 핑커톤을 겪어 봐서 아는데, 꽤 신중한 놈들이야. 정보를 토대로 움직이거든. 프랭크, 당신 부하들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벌써 탐정 새끼들한테 당했을 수도 있어.”
“재수 없는 소리 마. 우리가 공격당하면 총을 쏘는 게 네 할 일이니까.”
“그게 우리의 거래였지. 날 못 믿어? 난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라고.”
미주리주 갱단 리더는 자기 가슴을 손으로 두드며 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식하던 프랭클린 리노는 문득 예전에 들었던 소문을 떠올렸다.
“예전에 SFBC 대원을 죽였다고 들었는데. 그거 사실이야?”
“호, 그 소문이 인디애나주까지 퍼진 거야?”
어디까지나 갱단들 사이에서 번져간 소문.
하지만 다들 반신반의했다. 공식적으로 SFBC 대원들은 테네시주에서 죽은 두 명이 유일했으니까.
당시를 떠올리던 미주리주 갱단 리더, 아니 제시 제임스는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5년 전이었나. 나이가 어려서 군인은 못되고, 소년병으로 게릴라가 된 적이 있었거든. 그때 SFBC 새끼들이 스타우츠 마을을 습격했는데, 내가 거기서 한 놈을 총으로 쓰러트렸지.”
“죽은 건 확인했어?”
“가슴에 정확히 맞았어. 바로 즉사했지.”
제시 제임스는 아직도 자신이 맞춘 피치가 여자였다는 사실과 브로치에 총탄이 맞아 멀쩡하게 살아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SFBC 대원을 죽이고도 살아있는 건 내가 유일할걸?”
어쩌면 이런 자부심이 오늘날 그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날의 일을 영웅처럼 떠벌렸으니까.
제시 제임스와 프랭크 리노가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때.
“누가 오고 있어!”
주변을 경계하던 부하가 달려와 소리쳤다.
농장으로 접근하는 자들의 수는 일곱.
맨눈으로 확인할 정도의 거리가 되자 리노 갱단들임을 알 수 있었다.
“꼬리를 달고 왔을지도 몰라! 전부 위치로!”
제시 제임스의 명령이 떨어지자 휘하의 갱단들은 일사불란하게 농장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평소 습격에 대비해둔 곳이라 곳곳에 참호와 은폐물들이 널려 있었다.